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제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몇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 7번이면 되겠습니까?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7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얼마전 집에서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저리 굴리던중, 리모컨을 멈춘곳은 내가 즐겨 미드를 보는 OCN. 그시각엔 미드가 아닌 전도연. 송강호의 '밀양'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스크린으로 볼 기회는 놓쳤지만 여러 블로그에서 리뷰를 읽은터라 대충 스토리는 꿰고있었다. 한국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칸'의 영화라는것,
다른사람도 아닌 '이창동'의 영화라는 것.
한줄로 짧게 요약하라한다면 아들을 잃은 미망인의 절규랄까. 그보다 좀더 심오하게 쓰라 한다면- 기독교의 관점에서 '용서'가 지니는 의미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밀양을 두고 반기독교적 영화다 말이 많지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 영화가 궁극적으로 시사하고자 했던것은 사람들이 종교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며 부딪히는 문제들을 담고자 했던것 같다.
불교신자이던 기독교 신자이던 우리는 신앙을 키우면서 수많은 관문에 부딪히게 된다. '신의 존재' 에 대한 의구심에서부터, 우리의 신이 남긴 계시와 기록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자들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믿는 자들.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둘로 쪼갠다고 하면, 이세상은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들로 분류될수 있을 듯 하다.
아들이 죽고난후, 주위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찾아가 그를 용서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허나, 그 살인범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저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신애씨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하니 참 기쁩니다.'
이 말을 들은 신애는 교도소를 나오다 기절하고 만다. 아니, 내가 용서하지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그를 이미 용서를 할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부터 신애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하나님의 존재에대해 거부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계단에서 친구들과 부처님이 진짜냐, 하나님이 진짜냐를 가지고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모태신앙이었지만 교회를 꾸준히 나가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할때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이기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그렇게 말씀의 한구절도 읽지않았던 나였지만, 하나님의 존재만큼은 부정하고 싶지않았던지 결국 남자애들과 치고박고 싸웠던 기억이 있다. 늦둥이인 동생이 급성 폐렴에 걸려 입원했을때, 4학년쯤 되었던 난 십자가를 휴지에 돌돌 말아 조심스레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난생 처음 '기도'라는 것을 했다. 빨리 낮게 해달라고. 죽지않게 해달라고-
나는 철이들고 난후, 하나님의 존재를 단 한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교과서를 내게 들고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호모 사피언스'를 거들먹거리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버젓이 쓰여져있는 국사책을 내게 가져온다면, 빅뱅이론에 대한 논문을 한아름 안고와 내 의견에 대해 반박한다면 난 가만히 그자리에 꼼짝않고 들어주는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예수님을 이땅에 내려 보내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면서 까지 우리의 원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이땅에는 선한거지와 악한부자가 존재하며 또한 정직하고 올바른자가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만 하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이신지를 묻는다면 .
desperate housewives . 시즌 4에서 리네트 스카보가 예배중 목사님께 손을 번쩍들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끊임없이 지진과 전쟁이 일어나며 많은사람들이 이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냐는
질문을 던졌듯이, 누군가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누군가가 하나님앞에서 열심히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뻔뻔하게 나쁜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그것에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설득할 만한 타당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빅뱅이론을, 혹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증거가 존재하듯,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해답이 존재한다.
왜 신애가 끊임없는 고난을 받아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직 신애의 인생의 단편만을 본것이라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말하고싶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자의 하나님이라, 신애가 원통하고 억울한것을 모두가 몰라준다한들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보고 계신것이다. 숨어서 거짓말을 하고 간음을 하면 모두가 보지 않은들 모를지언정
우리의 하나님은 눈으로 귀로 모든 행함을 보고 들을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지라.
앙드레 지드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리 말씀하셨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어느 사람이 죽고나서 하나님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의 인생의 길에는 언제나 두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단 하나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하나님에게 항변하였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가 어려울때 저를 배신하고 도망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너가 힘이들때 나는 너를 등에 업고 그 길을 대신 건넜다."라고 말씀하셨다.
비록,하나님께서 죄를 짓지않고 회개하는자와 죄를 짓고 그것에 대해 진실로 회개하는 자 중 후자를 더 사랑한다 말씀하셨으나 모두에게 공평한 하나님은
앞으로 남은 신애의 여생동안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그녀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가난과 시름하는 빈민들과 늘 함께하실것이다. 늘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위해, 우리의 간구를 듣기위해 귀를 쫑긋 기울이며 우리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밀양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제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몇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 7번이면 되겠습니까?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7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얼마전 집에서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저리 굴리던중, 리모컨을 멈춘곳은 내가 즐겨 미드를 보는 OCN. 그시각엔 미드가 아닌 전도연. 송강호의 '밀양'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스크린으로 볼 기회는 놓쳤지만 여러 블로그에서 리뷰를 읽은터라 대충 스토리는 꿰고있었다. 한국사람들이 그리 좋아하는 '칸'의 영화라는것,
다른사람도 아닌 '이창동'의 영화라는 것.
한줄로 짧게 요약하라한다면 아들을 잃은 미망인의 절규랄까. 그보다 좀더 심오하게 쓰라 한다면- 기독교의 관점에서 '용서'가 지니는 의미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밀양을 두고 반기독교적 영화다 말이 많지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 영화가 궁극적으로 시사하고자 했던것은 사람들이 종교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며 부딪히는 문제들을 담고자 했던것 같다.
불교신자이던 기독교 신자이던 우리는 신앙을 키우면서 수많은 관문에 부딪히게 된다. '신의 존재' 에 대한 의구심에서부터, 우리의 신이 남긴 계시와 기록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자들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믿는 자들.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둘로 쪼갠다고 하면, 이세상은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들로 분류될수 있을 듯 하다.
아들이 죽고난후, 주위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찾아가 그를 용서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허나, 그 살인범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저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신애씨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하니 참 기쁩니다.'
이 말을 들은 신애는 교도소를 나오다 기절하고 만다. 아니, 내가 용서하지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그를 이미 용서를 할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부터 신애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하나님의 존재에대해 거부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계단에서 친구들과 부처님이 진짜냐, 하나님이 진짜냐를 가지고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모태신앙이었지만 교회를 꾸준히 나가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할때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이기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그렇게 말씀의 한구절도 읽지않았던 나였지만, 하나님의 존재만큼은 부정하고 싶지않았던지 결국 남자애들과 치고박고 싸웠던 기억이 있다. 늦둥이인 동생이 급성 폐렴에 걸려 입원했을때, 4학년쯤 되었던 난 십자가를 휴지에 돌돌 말아 조심스레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난생 처음 '기도'라는 것을 했다. 빨리 낮게 해달라고. 죽지않게 해달라고-
나는 철이들고 난후, 하나님의 존재를 단 한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교과서를 내게 들고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호모 사피언스'를 거들먹거리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버젓이 쓰여져있는 국사책을 내게 가져온다면, 빅뱅이론에 대한 논문을 한아름 안고와 내 의견에 대해 반박한다면 난 가만히 그자리에 꼼짝않고 들어주는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예수님을 이땅에 내려 보내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면서 까지 우리의 원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이땅에는 선한거지와 악한부자가 존재하며 또한 정직하고 올바른자가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만 하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이신지를 묻는다면 .
desperate housewives . 시즌 4에서 리네트 스카보가 예배중 목사님께 손을 번쩍들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끊임없이 지진과 전쟁이 일어나며 많은사람들이 이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냐는
질문을 던졌듯이, 누군가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누군가가 하나님앞에서 열심히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뻔뻔하게 나쁜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그것에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설득할 만한 타당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빅뱅이론을, 혹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증거가 존재하듯,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해답이 존재한다.
왜 신애가 끊임없는 고난을 받아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직 신애의 인생의 단편만을 본것이라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말하고싶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자의 하나님이라, 신애가 원통하고 억울한것을 모두가 몰라준다한들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보고 계신것이다. 숨어서 거짓말을 하고 간음을 하면 모두가 보지 않은들 모를지언정
우리의 하나님은 눈으로 귀로 모든 행함을 보고 들을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지라.
앙드레 지드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리 말씀하셨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어느 사람이 죽고나서 하나님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의 인생의 길에는 언제나 두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단 하나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하나님에게 항변하였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가 어려울때 저를 배신하고 도망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너가 힘이들때 나는 너를 등에 업고 그 길을 대신 건넜다."라고 말씀하셨다.
비록,하나님께서 죄를 짓지않고 회개하는자와 죄를 짓고 그것에 대해 진실로 회개하는 자 중 후자를 더 사랑한다 말씀하셨으나 모두에게 공평한 하나님은
앞으로 남은 신애의 여생동안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그녀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가난과 시름하는 빈민들과 늘 함께하실것이다. 늘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위해, 우리의 간구를 듣기위해 귀를 쫑긋 기울이며 우리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 태초에 우리의 삶이 고난과 절망을 짊어지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written by H
04/06/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