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중계] 경찰, 시위대 진압…시민들 강제 연행

한보람2008.06.09
조회111
[현장중계] 경찰, 시위대 진압…시민들 강제 연행 [한겨레신문] 2008년 06월 07일(토) 오후 07:03 가  가| 이메일| 프린트 [현장중계] 경찰, 시위대 진압…시민들 강제 연행[한겨레]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 3일째]

‘쇠파이프’ 표적 연행…중학생도 영등포서로


[11신 8일 오전6시25분]
72시간의 촛불집회 시위대열 사실상 해산
동이 틀 무렵 시작된 경찰의 강제 진압작전이 한 시간만에 끝났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벽 5시5분부터 경찰에 밀린 시위대는 결국 아침 6시15분, 태평로 인도로 밀려났다. 순식간에 태평로와 종로엔 차량이 밀려들었고, 교통경찰들이 나타나 차량 소통을 재개시켰다.

경찰은 광화문과 서대문 등 양쪽에서 포위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밀어냈다. 시민들은 한때 광화문우체국 앞 도로와 청계광장에서 “폭력경찰 물러나라” “이명박 물러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하지만 전경들은 두세 줄로 대열을 이뤄 공격하는 방식으로 시위대를 밀어냈다. 시민들은 경찰의 ‘급습’에 쫓기다가 인도 쪽으로 흩어졌다.

한 시간 여 동안 경찰의 강제 진압작전이 진행되면서 연행자 또한 속출했다. 5시50분께 정안성(27)씨도 경찰에 붙들렸다. 정씨가 연행되자마자 “(정씨가) 쇠파이프로 경찰 버스를 쳤기 때문에 연행했다”는 경찰 방송이 시위대에 퍼졌다. 경찰은 정씨를 도봉경찰서 버스로 끌고 갔다. 이밖에 15살짜리 중학생도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생도 강제 진압 과정 중에 연행돼 영등포경찰서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침 6시25분, 경찰은 모든 시민들을 인도로 몰아내고 대여섯 겹으로 막아 가두 진출을 막고 있는 상태다. 일부 시민들은 파란불이 켜질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른바 ‘파란불 행진’을 시도했으나, 전경들은 횡단보도를 ㄷ자형으로 에워싸면서 이를 막았다. 시민들은 “파란불인데도 왜 길을 막느냐” “건너가게 해주세요”라고 항의했다. 시민들은 흩어지고 전경들은 늘어나고 있다.

72시간 촛불집회의 마지막 밤은 이로써 사실상 막을 내렸다. 촛불집회 참가자 15만명은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쟁취하는 ‘국민엠티’이기를 바랬으나, 결국 경찰의 강제진압과 연행, 부상 사태 등으로 얼룩진 우울한 아침을 맞았다.

송경화 기자
[10신 8일 오전 5시05분]
예비군 시위대, 저지선 속수무책…시위대, 곤봉에 머리 맞아
5시5분. 경찰이 시위대 강제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방향 인도를 따라 몰려들었다. 곤봉을 휘두르며 방패를 땅에 찍으면서 시민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놀란 일부 시위대는 태평로를 따라 뒤로 물러났다. 다른 일부는 경찰의 강제진압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예비군 시위대가 경찰에 대항해 저지선을 쳤으나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다.

5시20분. 경찰이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시위대는 종로, 시청, 서대문 방향 등으로 흩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으로 밀리고 있다.

청계광장까지 밀린 본대열은 2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전경과 대치하고 있다. 시위대 맨 앞에는 예비군이 스크럼을 짜고 있고,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중앙을 공격하면서 양쪽 인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아무개(30)씨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태평로 길가에 앉아 있었다. 즉각 긴급 의료지원단이 투입돼 전씨는 응급처치를 받았다. 전씨는 “교보문고 근처에서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세게 머리를 찍혔다”고 말했다.



광화문 네거리와 태평로를 점거한 시민들은 양쪽 인도로 밀려났다. 하지만 시민 20~30명이 광화문 네거리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파란불, 파란불”을 외치면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사히 길을 건넜다.

5시50분. 정안성(27)씨가 경찰에 연행됐다. “쇠파이프로 경찰 버스를 쳤기 때문에 연행한다”는 경찰 방송이 광화문 일대에 울려 퍼졌다. 경찰은 정씨를 도봉경찰서 버스로 끌고 갔다. 중학생도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학생은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 중에 연행돼 영등포경찰서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들은 교보문고 인도와 청계광장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본 대열은 청계광장에서, 작은 대열은 교보문고 인도 쪽에 있다. 시민들은 “함께 해요”라고 외쳤다. 송경화 기자
[9신 8일 오전 4시50분]
경찰 ‘버스벽’ 뚫려…밧줄로 묶어 끌어내
전경 ‘오물’ 투척·욕설에 시위대 감정 격앙
72시간 촛불집회 내내 막혔던 광화문 네거리의 ‘경찰 버스벽’이 뚫렸다.

8일 새벽 4시 30분께,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은 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냈다. 시민 100여명은 밧줄 세 개로 버스를 묶은 뒤, 안쪽으로 20~30미터를 끌어냈다. 이에 따라 끌려나온 버스와 바로 뒤 ‘버스벽’ 사이에 세 군데의 틈이 생겼다. 경찰과 시민들은 이곳에서 다시 격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사다리를 가져와 경찰 방패를 밀고 있고, 경찰들은 방패로 시민들을 가격하고 있다.

시민들이 끌어낸 경찰 버스는 ‘광화문 버스벽’ 가운데 가장 무거운 ‘정화조 버스’다. 전의경들의 임시 화장실로 이용되는 터라 물탱크가 달려 있다. 새벽 3시께부터 이 버스를 대치선으로 시민과 경찰과의 격한 대립이 이어졌다. 한 전경은 오물로 보이는 물병을 시위대에게 던졌고, 이어 주위에는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산발적으로 뿌려지는 소화기 분말과 오물 냄새 그리고 일부 전경들의 욕설 때문에 시위대는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된 상태다.

경찰의 강제 진압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부 버스 위에 기자들이 올라가 취재를 벌이고 있다. 4시50분께 경찰은 “위험하니 즉시 내려가라”고 경고 방송했다. 버스 앞의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그대로 있으라”고 외쳤고, 일부 시민들은 “조중동만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송경화 기자
[8신 8일 오전 3시40분]
시민들 버스 유리창 깨고 파손…경찰 “폭력집회 중단하라”
8일 새벽 3시40분, 광화문 네거리에 남은 시민들은 1만여명(경찰 추산 3천명)이다. 노란 살수차가 경찰 버스 대열 뒤에서 기다리고 있고, 시민들은 빨간색, 흰색, 노란색 비옷을 입고 있다. 72시간 촛불집회의 마지막 밤은 저물지 않고 있다. 물러서지 않는 시민과 소화기 분말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경찰.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과 시민의 격한 대치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2시5분. 경찰은 여기저기서 소화기를 분무했다. 광화문 일대는 매캐한 연기로 숨쉬기조차 곤란할 지경이다. 앞은 보이지 않고 기침 소리만 들렸다. 이어 시민 100여명은 광화문역 7번 출구 옆 공사현장 가림막을 뜯어내고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산발적으로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 분말을 뿌렸다.

2시30분. “차 빼라”는 구호가 광화문을 울렸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 버스에 다가가 철창을 뜯어냈다. 일부 버스는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서너 대의 경찰 버스가 일부 파손됐다.

‘시민 물대포’도 등장했다. 일부 시민들은 지름 5㎝ 가량의 호스를 끌어와 경찰쪽을 향해 10여분 동안 물을 뿌렸다. 시민들이 뿌린 물은 버스를 넘어 전경 대열에서 흩어졌다. 버스 너머 전경들을 향해 계란, 물병 등도 날아갔다.

흥분한 일부 시민 서너 명은 공사장에서 얻은 것으로 보이는 길이 1.5미터 가량의 철근을 들었다. 이들은 철근을 이용해 전경들이 비우고 떠난 버스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철창을 뜯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전경을 위협하지 않았다.

2시50분. 여경의 목소리가 광화문을 울렸다. “여러분은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차량을 부수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비폭력 평화 집회입니까.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이제 그만 불법 집회를 중단하고 해산하십시오.”
경찰 버스 위에 오르다가 전경 방패에 찍히거나 추락해 부상당한 시민도 속출했다. 새벽 3시30분께에는 경찰이 뿌린 소화기 분말로 고통을 호소하던 시민이 실려나가기도 했다. 아직까지 광화문 네거리는 전경들이 무차별적으로 직사하는 소화기 분말 가루로 희뿌옇다. 7일 오후부터 이날 새벽까지 시민 10여명이 강제 연행된 것으로 보인다.

새벽 3시40분까지 시민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기 위해 버스에 밧줄을 매달아 끌고 있다. 경찰은 연신 소화기를 분무한다. 이어 경찰은 “살수차를 동원해 살수하겠다”고 경고했다.

경찰의 계속되는 소화기 공격과 살수차 동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위대는 크게 격앙됐다. 경찰과 시위대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4시2분. 한 시민이 검은색 막대기를 경찰 방패를 향해 휘둘렀다. 다른 시민들도 전경버스 위 바리케이트를 공격했고, 잠시 뒤 플라스틱 바리케이트가 시위대 쪽으로 넘어졌다.

4시3분. 한 시민이 전경버스 위로 올라가 경찰 방패를 향해 막대기를 한 차례 휘둘렀다. 대치하고 있던 전경이 그의 허리를 방패로 수차례 때리자 힘없이 거꾸라졌다. 경찰들은 버스 밑으로 그를 끌어내 연행했다.

4시8분. 시위대의 공격이 격해지자 경찰들이 전경버스 밑으로 빠졌다. 이 틈을 타 시민 50여명이 전경버스 위로 올라갔다. 일부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었다. 경찰은 “지금 여러분들은 불법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즉각 버스위에서 내려가 해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경고방송을 계속했다. 시위대는 “평화시위 보장하라”고 맞섰다. 송경화 기자


[7신 8일 오전 1시50분]
‘소화기 안개’에 뒤덮힌 광화문…서로 소화기 뿌려대
광화문 네거리는 경찰이 뿌린 소화기 분말로 안개에 덮였다. 격앙된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부쉈다. 시위대는 얼굴을 찡그리며 기침을 토했다. 경찰이 쉴새 없이 소화기를 뿌려 아직까지 광화문의 안개는 걷히지 않고 있다.

8일 새벽 1시20분.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과 시민 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밧줄로 버스를 묶어 경찰 버스를 당겼다. 청와대로 가겠다는 의지였다. 버스는 조금 움직이다가 주저앉았다. 버스 위로 각 대학 총학생회 깃발이 휘날렸다.

한 여성이 대열 후미에 대고 소리쳤다. “경찰이 앞에서 계속 소화기를 계속 뿌려댑니다. 뒤에 계신 분들은 마스크를 앞으로 보내주세요.”
1시30분. 일부 시위대가 소화기를 가져왔다. 일부 시민은 소화기를 경찰을 향해 뿌렸다. 경찰 버스를 사이에 두고 소화기와 소화기의 싸움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공중에 쏜 폭죽이 광화문의 안개를 밝혔다.

경찰의 소화기 세례는 그치질 않는다. 경찰 두 명이 경찰 버스에 올라 시민들이 있는 아래쪽을 향해 소화기를 뿌려댔다.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 속에서, 경찰은 시민들이 접근하면 사정없이 소화기를 뿌렸다. 경찰과 시민의 대립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1시40분 현재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경찰 버스 여러 대는 부서진 상태다. 일부 버스는 철망이 뜯겨나가고 유리창이 깨졌다. 버스 위 바리케이드도 뜯어졌다. 시위대는 특히 새벽 1시께 한 시민이 경찰 방패에 연이어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격앙된 상태다. 당시 시민 세 명이 버스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했고, 이 가운데 첫 번째 올라간 남성은 경찰 방패로 세 번 가격당했다. 이어 피를 흘리며 탈진한 그를 전경은 버스 위로 끌어올렸고, 전경들은 그를 방패로 가린 뒤 다시 안에서 방패로 가격했다. 이를 올려다보던 시민들은 공포에 떨며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하어영 송경화 기자
[6신 8일 오전 1시]
시위대와 경찰 대립격화…긴장감 높아져
시민들이 전경버스 위로 일제히 올라가자 당황한 경찰이 방패로 찍는 등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분말 소화기도 뿌렸다.

12시50분. 대책회의 무대차량이 시위대 앞으로 나오면서 자유발언을 시작하려고 했다.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너희들이 불법이다”고 연호했다.

12시52분. 한 시민이 갑자기 전경버스에 올랐다. 동시에 3~4명의 시민들이 한꺼번에 여러 대의 버스로 뛰어 올랐다. 시민들은 전경버스 위에 쳐놓은 플라스틱 바리케이트를 해체했다. 당황한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둘렀다.

새벽 1시. 일부 전경버스 유리창이 깨졌고, 시위대가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었다. 여성 시위대들은 계속해서 “너희들이 불법이다, 차빼라”고 소리쳤다. 경찰이 올라오는 시민들을 방패로 막는 사이, 6대의 사다리가 동시에 전경버스에 놓였다. 시민들이 사다리로 올라가자 경찰이 또 방패를 휘두르며 사다리를 밀어냈다. 경찰은 소화기도 뿌렸다.

한 남성이 사다리에 올라 경찰과 대치했다. 잠시 뒤 경찰이 방패로 그를 내리 찍어 피를 흘렸다. 여성 시위대들의 비명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패로 5~6차례 더 찍었다. 흥분한 시위대들은 전경버스에 묶은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사다리를 이용해 계속 버스 위로 오르려고 하고 경찰은 방패로 찍거나 소화기를 뿌리면서 맞서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면서 광화문 앞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하어영 송경화 기자


[5신 8일 오전 0시]
청와대를 두고 시민과 경찰의 대치 며칠째 계속
세종로 네거리 3만여명 시위대들은 교대로 전경버스에 오르는 등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7일 밤 12시까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7일 밤 늦게까지 시위대는 광화문 네거리, 안국동 네거리, 사직터널 입구 등 세 곳에서 경찰과 맞닥뜨렸다. 중과부적이었다. 사직터널을 빽빽히 막은 경찰 버스를 시민들이 맨손으로 밀었으나, 버스는 꼼짝 하지 않았다.

“다시 광화문으로 가자!”
시위대는 다시 광화문 네거리로 모여들였다. 사직터널까지 행진한 학생 시민들도 교남동사무소 방향의 골목길을 통해 10시10분께 광화문에 닿았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도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이들로 인해 이순신 동상 앞에서 대치하던 시위대열의 몸집은 점점 불어났다. 시민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가로 세로로 연병한 경찰 버스 20여대다. 버스 뒤로는 방패를 든 전의경이 도열했다.

10시20분께 전경버스 위로 올라 간 시민 서너 명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시민을 밀어냈고, 아래에서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위험하다”고 소리쳤다. “폭력경찰 물러나라”는 함성 속에서 한 시민이 바리케이드를 기어 올랐다.

10시40분. 대구에서 올라온 이진록(49)씨가 소형 스피커와 마이크를 들고 나와 경찰 버스를 향해 외쳤다. 이씨는 “청와대와 경찰 관계자들에게 국민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나왔다”며 “여러 분들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전경 버스를 넘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외쳤다.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씨는 “새벽까지 인터넷을 통해 시위 현장을 시청하면서 너무 답답했다”며 “대통령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스피커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10시50분. 한 50대 남성이 전경버스에 올라가려다 위험하게 매달렸다. 전경들은 “내려가라”고 하고, 시민들은 “올라가라”고 독려했다. 다른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내려와”를 외쳤다. 이 남성은 경찰과 10여분 실랑이를 벌이다 내려왔다. 이때 경찰이 카메라 1대를 꺼내 채증하려고 하자, 아래 있던 시민 50여명이 일제히 폰카와 디카를 꺼내 오히려 경찰을 ‘채증’했다.

경찰 버스에 시민들은 하얀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에서는 빨간 글씨로 “폴리스라인을 걷어라”고 써졌다. 시민들의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에 대한 분노다. 연이어 현수막의 여백에는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정직과 진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어청수 룸싸롱 안 가고 뭐하니?” 등의 낙서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민들은 맨손으로 경찰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으쌰으쌰…

하지만 시위대열 후미는 즐겁고 쾌활하다. 서울시의회 앞에선 네 명의 길거리 공연단이 타악기를 치면서 시민들을 모은다.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주최하는 즉석 시국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촛불다방’도 눈에 띤다. 한 시민은 스타렉스 승합차량을 갖고 와서 커피를 끓여 나눠준다. 사직터널에서, 안국동에서 돌아온 시위대열은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태평로를 메웠다. 지금 태평로는 시민들의 거리다.

며칠째 청와대를 두고 시민과 경찰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나아가고, 경찰은 청와대만은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11시50분 “불법시위를 해선 안 된다”는 경찰의 경고방송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5호선이 광화문역에서 한때 정차하지 않아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밤 11시부터 약 30분 동안 지하철은 광화문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이로 인해 밤 늦게 거리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온 시민들이 서대문역에서 내려 걸어오는 등 불편을 겪었다.

하어영 송경화 기자
[4신 오후 10시40분]
전경버스 스티커로 도배…진짜 쥐덫 매달기도
광화문에 있던 본대열은 전경 버스 꾸미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10시. 광화문에 도착한 시위대는 전경버스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순식간에 전경버스는 시민들이 붙인 스티커로 도배가 되었다. 일부 시민들은 전경버스에 담배를 던져 주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오늘은 쥐 잡는 날’이라고 쓰인 손팻말이 전경버스 맨 꼭대기에 붙어 있고, 진짜 쥐덫이 전경버스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런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전경버스에는 현상수배 포스터도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찾습니다. 실종일자: 2월24일. 일종 장소: 국민의 마음. 특징: 아이부터 공무원까지 4시간 이상의 수면을 방해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전경 버스 곳곳에 붙어 있다.

10시10분. 한 시민이 전경버스 타이어 쪽으로 가더니 바람을 빼고 있다. 다른 시민은 노란색 쇠뭉둥이를 들고 전경버스를 때리쳤다. 시민들은 그의 팔을 잡고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진정시켰다. 이때 전경버스 위에서 카메라가 나오더니 시위대에 사진을 찍었다. 경찰들은 오늘 사진기보다는 캠코더를 더 많이 들고 있다. 몇몇 청소년들은 채증하는 전경들을 향해 물총을 쏘면서 ‘물총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며칠전 물대포로 폭력 진압한 것을 항의하려는 뜻이다.

10시20분. 건장한 남성 시위대 20여명이 리듬에 맞춰 전경차를 두드리며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고 있다. 시민들의 분위기는 어제와 사뭇 다르다. 노래와 춤보다는 구호가 더 요란하다. 일부 시민들은 “놀고만 있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오늘은 끝장을 내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다.

같은 시각 10시20분. 사직터널 쪽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시위대는 독립문 네거리를 돌아 사직터널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버스로 막은 탓이다. 경찰은 사직터널 입구 고가도로를 중심으로 버스를 세로로 세워 길을 막았다. 사직터널 입구를 막은 버스는 모두 7대. 일부 시민이 경찰 버스에 오르려고 하자, 다른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말리고 있다.

사직터널과 이어지는 고가도로 역시 경찰이 장악했다. 경찰은 고가도로 위에서 카메라를 뻗어 아래 시민들을 찍고있다. 시민들은 고가도로 위를 올려다보며 “찍지 마, 찍지 마” 구호를 외친다.

10시30분. 안국동 네거리. 광화문 입구로 경찰 버스가 역시 막고 있다. 경찰 버스 지붕 위에서 ‘질서’라고 써진 가림막이 세워졌다. 시민들은 이어 버스에 올랐다. 경찰은 내려가라고 손짓한다. 시민들은 뜬금없이 “노래해, 노래해”라고 경찰에게 주문했다. 이에 앞서 한 시민이 경찰 버스에 올라 타이어를 던졌다. 경찰 버스도 계속 흔들리고 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밀기 때문이다. “불법 주차, 차 빼라”라는 함성도 요동친다.

10시45분. 사직터널 입구에서 경찰 버스에 가로막힌 시민들은 발길을 돌렸다. 1만여명은 다시 서대문 4거리로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송경화 하어영 기자


[3신 오후 9시40분]
광화문에서 서대문까지 ‘촛불의 바다’ 넘실
“여러분 청와대로 갑시다!”
‘72시간 국민 엠티’의 마지막날, 15만명이 참가한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7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 15만명은 1987년 이후 최대의 행진을 시작했다. 촛불문화제를 마친 본대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남대문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남대문까지 내려간 뒤, 남대문시장과 한국은행으로 행진했다. 거대한 촛불의 대열은 서울 중심가를 가득 메웠다. 거리행진에는 이전과 달리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도 자주 들린다. 오늘 행진은 대책회의 4.5톤 방송차량이 이끌고 있다. 사회를 맡은 대책회의 관계자는 “이명박 물러가라” “재협상을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시민들은 이에 화답한다.

8시 20분.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졌다. 시민들이 밝힌 촛불 노랗게 빛난다.

8시50분. 서울대, 중앙대 등 각 총학생회 깃발 아래 모인 학생 3천여명은 본대의 행렬을 따르지 않고 곧장 태평로로 나갔다. 일부 시민 역시 학생들을 뒤따랐다. 전경과 경찰차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들을 맞았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는 학생과 시민 2만명 이상의 거대한 촛불의 물살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상 앞에 도열한 전경버스 장막에 가로막혔다. 각 총학생회 깃발 아래 학생들은 현재는 경찰과 충돌없이 경찰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다.

9시. 학생들을 앞질러 경찰 버스 앞으로 청소년과 시민들이 나갔다. 광화문 네거리 앞의 시민 1천여명은 경찰 버스에 다가갔다. 이들은 버스 창문에 ‘주차 금지’ 스티커를 붙였다. 전경들은 버스 위에 올라 시민들을 주시하고 있다. 한 여중생은 “전경 오빠, 사랑해요! 전경 오빠, 내려와요!”라고 외쳤다. 시민들의 웃음이 뒤따랐다.

이 시간 촛불집회 배후론을 설파한 조선, 중앙, 동아에 대한 분노도 격해지고 있다. 가 소유한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는 ‘바른언론을 지지하는 시민모임’ 깃발 아래 3천여명이 보수언론에 항의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일보는 폐간하라”고 외치고 있다.

같은 시간 9시. 남대문으로 내려간 시위대 본대는 한국은행을 돌아 을지로 1가에 도착했다. 방송차량을 앞세운 사회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촛불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안다면 즉각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배후가 누구입니까?”라고 시위대에 물었다. 시위대는 “이명박, 어청수”라고 화답했다. 사회자는 “이 대통령은 이 촛불을 누가 샀느냐고 배후설을 제기하는데, 이 촛불을 우리가 모금한 돈으로 샀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며 “그런 정보력으로 어떻게 한나라의 대통령을 할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9시20분. 광화문까지 행진한 시위대열 가운데 시민 1000명이 앞장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대학생들이 뒤따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시작한 거리행진 대열은 편도 3차선을 메워 서대문까지 이어졌다. 박아무개(42)씨는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인 두 딸을 데리고 나왔다. 박씨 가족은 대열의 선두에서 걸어가고 있다. 박씨는 “대열 선두라도 부담스럽지 않다. 비폭력 시위인데 문제 될 게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씨 가족의 집은 무악재 부근. 그는 “어제도 이 길을 따라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옆에서 두 딸은 “거리행진이 재밌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내는 “촛불집회도 하나의 교육이고, 이런 시민행동을 두 딸이 배우라고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9시40분. 남대문과 롯데백화점, 종각역에 돌아온 본대는 광화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한 시위대열은 서대문 네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무악재로 향했다. 행렬의 목적지는 청와대다. 종각역에서 광화문, 광화문에서 서대문까지 촛불의 바다는 넘실거리고 있다.

하어영 기자 송경화 기자


[2신 오후 8시]
“국민이 싫다잖아, 국민에게 물어라”
7일 저녁 7시. 대한문 앞에 설치한 무대에 가 울려퍼졌다. 태평로를 차지한 시민들은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손팻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손팻말에는 “공공의 적 이명박 아웃” “의료민영화 반대” “삽질은 밭에서 이명박은 집으로” “미친소 국민이 싫다잖아” “국민에게 물어라 국민이 결정한다” “우린 촛불의 힘을 믿어요” “다-악치고 재협상”등 다양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민들이 피켓을 흔들 때마다 태평로 거리에는 오색 물결이 출렁거렸다.  오늘도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각자의 깃발을 앞세우고 집회에 나왔다. 숙명여대, 공주교대, 서총련, 한양대, 서울대, 서울예대, 경기대 등 대학들의 깃발 뒤로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들의 깃발이 바람에 춤을 췄다.

촛불문화제가 주말에 열려서 인지 참여한 시민들은 더 다양하다. 무대를 구경하려고 까치발을 든 어린 아이들, 시민단체가 나눠준 손팻말을 흔들고 있는 머리가 하얀 노인들, 마스크를 쓴 10대 소녀들, 촛불 모양의 모자를 종이로 만들어 쓰고 있는 20대 남자, 모자와 태극기를 꽂고 앉아 있는 40대 남성,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10대 남학생…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몸짓으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고 재협상을 요구했다. 박진희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어제도 경찰은 시민들을 연행하면서 방패로 찍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며 “경찰은 미란다 원칙도 무시하고 사람을 끌어가고, 가족들의 통화도 거부하는데 모든 것이 반인권적 행태”라고 주장했다.

경기 성남시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박한표씨는 밀집모자를 쓰고 무대에 올라왔다. 박씨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없으니 이명박은 즉각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며 “이 싸움은 그 어떤 이념이나 색깔로 할 싸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여대생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자 대열 앞에 있던 대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김지윤(고려대 사회학과 4년)씨는 6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연 연세대 시국 토론회에서 날카로운 발언으로 한 총리를 쩔쩔매도록 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고대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씨는 ‘재협상 불가’라고 말한 이 대통령을 향해 “국민이 죽든지 말든지 핸드폰 자동차만 더 팔면 된다는 발상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국민의 건강이 우선인데, 청소년들에게 0교시 하게 하고 야간자율학습 하게 하는 정부”라고 비난했다. 이 대목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언니 멋있어요” “언니 짱”이라고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전국 각지 농민들이 보내온 농산물을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전국한의계대책회의에서는 시위 시민들에게 ‘국민건강탕’ 1500포를 보내왔고, 전남 구례 농민들은 수박과 오이를 대책회의에 보내왔다.

7시50분.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시민들이 든 촛불은 더욱 선명하게 불을 밝혔다. 서울광장 주변과 덕수궁 앞 도로, 광화문 부근까지 촛불을 든 행렬은 끝이 없다. 주최 쪽은 “1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고 선언했다.

8시20분.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사회자는 “가자, 6·10으로” “이명박 정권 심판하자” “국민들이 심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송경화기자 freehwa@hani.co.kr


[1신 오후 7시]
“독재 그만, 국민 소리 제대로 들어주소”
“이명박 대통령님, 독재 그만 하시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세요.”
카랑카랑한 여중생의 목소리가 서울광장에 울려퍼졌다. 31번째 촛불 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 광장 주변에 시민들이 속속 모여 들고 있다. 황금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유모차 부대에 이어 돗자리 부대가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가족 시위대는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눠 먹거나 손팻말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연인들도 주말 데이트 코스로 서울광장을 택했다. 이곳 저곳에서 손을 꼭 잡고 집회를 기다리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천에서 딸과 함께 온 김강철(43)씨 “시위라는 부담보다는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문화공연을 보는 기분으로 나왔다”며 “딸에게 사람들이 모여 먹거리 걱정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화제가 끝나면 거리행진까지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어제처럼 대한문 앞에 무대차량을 세웠고, 학생들과 단체 깃발을 든 시위대가 태평로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다. 잔디광장과 태평로를 합쳐 1만5천여명(경찰 추산 7천명)의 시민들이 집회를 기다리고 있다.

6시30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 3천여명이 풍물패를 앞세우고 종로를 거쳐 서울광장에 들어왔다. 잔디밭 시민들은 일제히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민노당 당원과 청소년 등 합세한 시위대는 대학로에서 출발할 때는 1500여명에 불과했으나 거리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서울광장에 도착하니 2배로 숫자가 늘었다.

오늘 한겨레가 서울광장 앞에 마련한 에는 시민들의 주장이 쏟아졌다. 아이를 목에 태우고 나온 김아무개씨는 “아무 것도 들지 않는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며 “이대로 가면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나왔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회원들과 함께 나온 채수정(경기 안산시)양은 형광색 옷을 입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채양은 “광우병, 의료 민영화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힘들게 하고 못살게 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님 독재 그만하시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대통령이 되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태일(의정부 신곡중 1년)군도 “쇠고기 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이명박 대통령 물러나세요”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자유발언대 주변에 모여 발언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주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흥얼거렸다. 6월10일 집회 때는 홍세화 기획위원이 자유발언대의 사회자로 나선다.

경찰은 지금 160개중대 1만4천여명의 병력을 광화문과 독립문 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경찰은 7일 새벽까지 계속된 촛불시위 과정에서 시위대 5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1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4명을 종암·금천경찰서에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송범 경찰청 경비부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극력 폭력 시위자는 현장에서 검거하는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부장은 “촛불 문화제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밤샘 폭력불법시위로 변질됐다”며 “전경 버스를 손괴하는 등 행위가 계속되면 물대포 사용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물대포 사용 뒤 여론이 악화되자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경찰이 시위대에 대한 엄벌과 물대포 사용 방침을 밝혀 시위대와 다시 충돌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어영 송경화 기자 haha@hani.co.kr


■ 촛불문화제 특별취재팀
총괄 데스크 : 함석진 기자
현장 생중계 : 이규호 박수진 은지희 김도성 피디, 콘텐츠팀 정해빈
취재 : 박종찬 남종영 하어영 송경화 기자
편집 : 이충신 박상철 장수경 기자
■ 안내 = 10일 촛불 문화제 생방송 때는 김어준 전 총수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현장 진행을 맡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한겨레 관련기사]
▶ [한겨레21] “협상 타결 전에 쇠고기 거래됐다”
▶ 이 대통령 “노 정부서 처리했으면 말썽 안났다”
▶ ‘동아’‘중앙’ 기자들도 자성의 목소리
▶ [한겨레21 단독] “협상 타결 전에 쇠고기 거래됐다”
▶ 어느 의경의 편지 “난 이 시대가 낳은 절름발이 사생아”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뢰도 1위' 믿을 수 있는 언론


[현장중계] 경찰, 시위대 진압…시민들 강제 연행 [현장중계] 경찰, 시위대 진압…시민들 강제 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