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정현호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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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1987년 6월 10일 우리는 이렇게 피흘리며 민주화를 얻어 냈는데 21년만에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 6월 항쟁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으로 불린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를 골자로 한 기존 헌법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부상당한 사건 등이 원인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 선언으로 마무리되어,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2007년 6월 10일 정부 차원의 첫 기념식이 열렸다.

 

 

 

▒ 사건의 경과 ▒


▣. 항쟁 이전

 

1987년 1월 14일 - 서울대 박종철, 경찰 고문으로 사망.
 
2월 7일 -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
 
3월 3일 -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 및 시위.
 
4월 2일 - 서울대학교 학생 학부모 130여 명, 건대사태 등 시국관련 구속학생의 징계철회 요구하며 철야 농성.
 
4월 13일 - "개헌논의 유보"를 내용으로 하는 전두환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4·13 호헌 조치).


4월 14일 -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 4·13 호헌 조치를 비난하는 시국 성명 발표.
 
4월 24일 - 가칭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발생
 
5월 18일 -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이 축소 은폐되었음이 폭로되었다.[1] 이에 군사독재정권인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이를 접하고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자주 일어났다.
 
5월 23일 - "박종철 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 결성 및


5월 26일 - 전두환 대통령,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신영 총리를 이한기로 교체.
 
5월 27일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4·13 조치 철회 및 직선제개헌 공동쟁취 선언" 발표.
 
6월 9일 - 연세대생 이한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

(7월 5일 사망).
 

6월 10일에 규탄대회 갖기로 결정.

 

▣. 항쟁 기간

 

 

6월 10일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성공회 교회인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개최. 시민들도 택시운전사들이
저항의 뜻으로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리거나, 고등학생들이 민주화시위참여자에게 마실 물을
가져다 주는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서울도심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당시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는 감사성찬례때 피아노를 연주할 예전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경찰의 감시를 피해 교회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위원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
이후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6월 26일 -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전개되었고 3,467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6월 29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8개항의 시국수습 내용을 포함한 6·29 선언을 발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재야 단체는 즉각적인 개헌작업 착수와 양심수
전원석방 및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성명 발표.
 

 

▣.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오늘 6,10일 모이자고 합니다.

6월 항쟁, 사실 어린분들은 잘 모르시죠... 왜 오늘을 이토록 부르짖었는지 의미쯤은 알고

오늘 집회에 참여 하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 이라는 말씀을 이한열 열사가 하셨죠,

수많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탓에 나라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의 힘은 큽니다. 한두명 쯤은 위정자 입장에서 우스워 보일지 모르나,

1만,10만,100만.. 그 이상이 된다면 분명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촛불을 켜왔고, 많은 분들이 다치고 연행되어 가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근본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눈가리고 아옹식이죠. 그저 보이는 불 끄기에만 급급하고 , 뒤로는 또 우리들의 목을 조릅니다.

역사적인 날이 다시 옵니다.

분명, 변화가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87년이 아니더라도 그 훨씬 앞, 일제시대때에도 6.10만세 운동이 있었죠.

우리나라에 의미가 있는 달과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꼭꼭, 우리의 뜻을, 전합시다.

비폭력으로.......... 그리고 끝까지 될때까지.

세월은 20년이 지났지만, 같은 이유로 -진정한 민주주의- 저항해야 한다는것이 그저,

씁쓸합니다만, 우리가 꼭, 반드시. 변화시켜야 합니다..

힘냅시다!!!!!!

 

출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071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