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넘어]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 남아공의 ‘인종혐오주의’의 폭력 사태를 통해 본 남아공 사람들의 삶
08-06-05 16:03
남아공에서의 소수 백인이 다수 흑인을 지배했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드)이 종식된 지 14년이 지났다. '무지개국가'로 전세계 민중에게 무지개빛 기대를 받았던 남아공에서는 최근 주변 국가에서 온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폭력과 집단 공격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음베키 대통령은 폭력 사태 해결과 주동자들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출동시키기에 이르렀고 국제 여론 역시 '외국인혐오공격' 사태 자체에 대해 우려와 비난의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이주민에 대한 폭력 사태가 남아공 사람들의 '외국인혐오'와 같은 일시적, 야만적 행동에 불과한가? 앞으로 3회에 걸쳐 이번 남아공에서의 폭력 사태의 배경과 이면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의 진실 2. 짐바브웨 난민들이 남아공으로 간 이유는? 3. 남아공의 ANC, 자본주의에게 길을 묻다. 남아공의 민중, 대안운동에서 길을 잃다.
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 -남아공의 ‘인종혐오주의’의 폭력 사태를 통해 본 남아공 사람들의 삶
남아공에서의 '외국인혐오주의 공격'에 대한 외신이 전해진 지 3주가 다되어간다. 지난 5월 16일부터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만해도 최소한 56명이고 수 백명이 부상당했고 2만 5천 명의 이주민들이 다시 본국으로의 행렬에 나섰다고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의 피해자였던 남아공 흑인들이 인종차별주의의 가해자로 나섰다고 비난하면서 '외국인혐오'에 대한 선정적 보도만을 내보내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소위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적인 이주민 공격'에 나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문제를 '폭동 주도자들'의 외국인혐오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남아공에 만연된 빈곤과 실업 문제, 그리고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의 난민 유입에 대한 문제로 봐야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남아공 내에서의 ANC 음베키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드라이브 때문인가, 계급차별적 정책들의 결과인가.
남아공에서의 이주민들에 대한 폭력적 공격은 그동안 남아공 사회에 만연된 문제에 기인해 이주민들에게 폭발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이러한 문제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누가 일자리 없고 가난하고 물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야만적 '폭동'에 가담하도록 밀어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인종차별에 맞선 사람들 계급차별에 희망을 도둑맞다.
남아공의 대다수 흑인 인구, 특히 현재 흑인거주지역의 빈민층은 이전의 인종분리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드)로부터 차별받았다. 그들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드를 철폐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델라에 이은 움베키의 ANC는 '94년 경제의 재구성을 통해 재건설 전략이라면서 RDP(Reconstruction and Devolopment Programme)을 채택했고, 이후 '96년 GER(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 거시경제 전략을 만들었다. 물, 주택, 전기의 기본적인 공급과 인력개발,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와 국가기관의 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추진된 RDP와 GER 전략은 2001년에 이르러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공부문-특히 물과 전기-의 사유화 정책의 가시화였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정치, 경제 발전의 사례로 꼽힐 정도로 경제적 발전의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경제 수치의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음베키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나를 대처라고 불러라. 기꺼이 불리겠다”라고 말한 것만 보더라도 쉽게 끄덕일 수 있는데, 남아공을 ‘어떤’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GER 전략은 경제 성장을 지구적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GER은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COSATU와 공산당과의 협의없이 ANC 정부에 의해 독단적으로 진행되었고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구조조정기 가속화되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공기업에 대한 탈규제와 사유화 정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시켰고 이들은 다시 ‘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에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음베키 ANC정부의 신자유주의의 적극적 수용은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나타났는데 투자자본이 런던금융시장에 유입되면서 남아공의 산업자본은 해외금융-투기-자본와 절대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남아공의 국가적 인적, 물적 자원은 금융적 자본가들의 이해에 종속되는 것은 외부 압력에 의한 것이기라보다 ANC로부터의 내부적 자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르트헤이드 철폐 이후 남아공의 절대적 빈곤층이었던 대다수 흑인들의 빈곤과 실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무지개’ 정책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특히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빈곤지역의 흑인인구는 빈곤 ‘거주지’에 갇혀 기본적인 ‘물’에 대한 권리까지 박탈당하게 이른다. 알렉산더 흑인거주지역은 남아공의 아파르헤이드에 맞서 싸우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이주민들에 대한 공격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지난 14년동안 ANC가 만든 빈곤 거주지에서의 ‘절대적 빈곤과 40%넘는 실업’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수도와 전기를 사유화했고 사유화의 결과는 사기업이 이윤율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 해고와 노동력 강화, 그리고 서비스 비용의 인상으로 이어졌다.
빈민지역에 시행된 '물선불제' 계량기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물값선불제’는 사유화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2001년 요하네스버그 시에서 실시한 ‘물 사유화’는 프랑스계 초국적 기업인 수에즈사를 참여시켰고, 이 기업은 빈민 거주지역에서 물값을 내지 않을 것을 우려해 ‘물선불제’-물 사용 전에 카드를 구입, 물사용량을 사전에 구매해 계량기에 기록, 공급하는 방식-를 도입하기 이른다. 빈민지역에 물공급을 위해 시설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빈민지역 주민들에게는 물사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차별 행위에 불과하다. 빈곤지역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물선불제’ 도입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의해 준비되었다. ‘물절약 캠페인’부터 ‘효율성과 서비스 질의 향상’에 대한 낙관까지 ‘요하네스버그 물’을 상품화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것은 현재 서울시에서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리수 물’ 상품화 전략과 아주 비슷하다.
남아공 내에서는 ‘외국인 혐오 공격’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사회운동 세력과 빈민거주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반사유화포럼'의 경우 성명서에서 "이번 이주민에 대한 공격은 주변 국가들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ANC 정부의 빈민층은 무시한 채 이윤추구 정책만을 실행하고 자본주의 계급 행위의 결과이다”라고 비판했다. 빈민거주지역의 대다수 거주민들 역시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빈곤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빈곤에 대항하는 ‘권리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주민 공격을 비난했던 음베키 대통령
남아공에서의 민주화는 자유시장과 함께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종차별정책의 철폐 투쟁 이후 계급적 갈등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과하고 그러한 현실이 은폐되고 서구자본의 최고의 투자지로 ‘민주화’의 성과만이 미화되었다. 남아공에서의 공공부문의 사유화, 주택공급의 실패, 빈곤거주지역(타운쉽)에 대한 정책적 차별, 장기 실업율의 증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의 난민 유입 등과 같은 문제들은 남아공이라는 단일 국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ANC의 시장경제의 추종과 무능력은 분명히 남아공의 사회 문제들에 중요한 책임이 있다. 남아공의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한 한 기자에게 음베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예적 생각에서 벗어나자, 그래야만 나아갈 수 있다” 인종차별에 맞서 싸워 지켜낸 남아공의 ‘무지개빛’ 가치가 ‘노예적 생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경계를넘어]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
남아공의 ‘인종혐오주의’의 폭력 사태를 통해 본 남아공 사람들의 삶
08-06-05 16:03
남아공에서의 소수 백인이 다수 흑인을 지배했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드)이 종식된 지 14년이 지났다.
'무지개국가'로 전세계 민중에게 무지개빛 기대를 받았던 남아공에서는 최근 주변 국가에서 온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폭력과 집단 공격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음베키 대통령은 폭력 사태 해결과 주동자들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출동시키기에 이르렀고 국제 여론 역시 '외국인혐오공격' 사태 자체에 대해 우려와 비난의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이주민에 대한 폭력 사태가 남아공 사람들의 '외국인혐오'와 같은 일시적, 야만적 행동에 불과한가? 앞으로 3회에 걸쳐 이번 남아공에서의 폭력 사태의 배경과 이면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의 진실
2. 짐바브웨 난민들이 남아공으로 간 이유는?
3. 남아공의 ANC, 자본주의에게 길을 묻다. 남아공의 민중, 대안운동에서 길을 잃다.
남아공에서의 ‘이주민, 난민들에 대한 공격’
-남아공의 ‘인종혐오주의’의 폭력 사태를 통해 본 남아공 사람들의 삶
남아공에서의 '외국인혐오주의 공격'에 대한 외신이 전해진 지 3주가 다되어간다. 지난 5월 16일부터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만해도 최소한 56명이고 수 백명이 부상당했고 2만 5천 명의 이주민들이 다시 본국으로의 행렬에 나섰다고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의 피해자였던 남아공 흑인들이 인종차별주의의 가해자로 나섰다고 비난하면서 '외국인혐오'에 대한 선정적 보도만을 내보내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소위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적인 이주민 공격'에 나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문제를 '폭동 주도자들'의 외국인혐오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남아공에 만연된 빈곤과 실업 문제, 그리고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의 난민 유입에 대한 문제로 봐야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남아공 내에서의 ANC 음베키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드라이브 때문인가, 계급차별적 정책들의 결과인가.
남아공에서의 이주민들에 대한 폭력적 공격은 그동안 남아공 사회에 만연된 문제에 기인해 이주민들에게 폭발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이러한 문제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누가 일자리 없고 가난하고 물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야만적 '폭동'에 가담하도록 밀어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인종차별에 맞선 사람들 계급차별에 희망을 도둑맞다.
남아공의 대다수 흑인 인구, 특히 현재 흑인거주지역의 빈민층은 이전의 인종분리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드)로부터 차별받았다. 그들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드를 철폐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델라에 이은 움베키의 ANC는 '94년 경제의 재구성을 통해 재건설 전략이라면서 RDP(Reconstruction and Devolopment Programme)을 채택했고, 이후 '96년 GER(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 거시경제 전략을 만들었다. 물, 주택, 전기의 기본적인 공급과 인력개발,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와 국가기관의 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추진된 RDP와 GER 전략은 2001년에 이르러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공부문-특히 물과 전기-의 사유화 정책의 가시화였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정치, 경제 발전의 사례로 꼽힐 정도로 경제적 발전의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경제 수치의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음베키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나를 대처라고 불러라. 기꺼이 불리겠다”라고 말한 것만 보더라도 쉽게 끄덕일 수 있는데, 남아공을 ‘어떤’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GER 전략은 경제 성장을 지구적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GER은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COSATU와 공산당과의 협의없이 ANC 정부에 의해 독단적으로 진행되었고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구조조정기 가속화되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공기업에 대한 탈규제와 사유화 정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시켰고 이들은 다시 ‘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에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음베키 ANC정부의 신자유주의의 적극적 수용은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나타났는데 투자자본이 런던금융시장에 유입되면서 남아공의 산업자본은 해외금융-투기-자본와 절대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남아공의 국가적 인적, 물적 자원은 금융적 자본가들의 이해에 종속되는 것은 외부 압력에 의한 것이기라보다 ANC로부터의 내부적 자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르트헤이드 철폐 이후 남아공의 절대적 빈곤층이었던 대다수 흑인들의 빈곤과 실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무지개’ 정책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특히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빈곤지역의 흑인인구는 빈곤 ‘거주지’에 갇혀 기본적인 ‘물’에 대한 권리까지 박탈당하게 이른다.
알렉산더 흑인거주지역은 남아공의 아파르헤이드에 맞서 싸우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이주민들에 대한 공격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지난 14년동안 ANC가 만든 빈곤 거주지에서의 ‘절대적 빈곤과 40%넘는 실업’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수도와 전기를 사유화했고 사유화의 결과는 사기업이 이윤율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 해고와 노동력 강화, 그리고 서비스 비용의 인상으로 이어졌다.
빈민지역에 시행된 '물선불제' 계량기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물값선불제’는 사유화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2001년 요하네스버그 시에서 실시한 ‘물 사유화’는 프랑스계 초국적 기업인 수에즈사를 참여시켰고, 이 기업은 빈민 거주지역에서 물값을 내지 않을 것을 우려해 ‘물선불제’-물 사용 전에 카드를 구입, 물사용량을 사전에 구매해 계량기에 기록, 공급하는 방식-를 도입하기 이른다. 빈민지역에 물공급을 위해 시설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빈민지역 주민들에게는 물사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차별 행위에 불과하다. 빈곤지역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물선불제’ 도입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의해 준비되었다. ‘물절약 캠페인’부터 ‘효율성과 서비스 질의 향상’에 대한 낙관까지 ‘요하네스버그 물’을 상품화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것은 현재 서울시에서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리수 물’ 상품화 전략과 아주 비슷하다.
남아공 내에서는 ‘외국인 혐오 공격’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사회운동 세력과 빈민거주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반사유화포럼'의 경우 성명서에서 "이번 이주민에 대한 공격은 주변 국가들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ANC 정부의 빈민층은 무시한 채 이윤추구 정책만을 실행하고 자본주의 계급 행위의 결과이다”라고 비판했다. 빈민거주지역의 대다수 거주민들 역시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빈곤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빈곤에 대항하는 ‘권리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주민 공격을 비난했던 음베키 대통령
남아공에서의 민주화는 자유시장과 함께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종차별정책의 철폐 투쟁 이후 계급적 갈등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과하고 그러한 현실이 은폐되고 서구자본의 최고의 투자지로 ‘민주화’의 성과만이 미화되었다. 남아공에서의 공공부문의 사유화, 주택공급의 실패, 빈곤거주지역(타운쉽)에 대한 정책적 차별, 장기 실업율의 증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의 난민 유입 등과 같은 문제들은 남아공이라는 단일 국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ANC의 시장경제의 추종과 무능력은 분명히 남아공의 사회 문제들에 중요한 책임이 있다. 남아공의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한 한 기자에게 음베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예적 생각에서 벗어나자, 그래야만 나아갈 수 있다” 인종차별에 맞서 싸워 지켜낸 남아공의 ‘무지개빛’ 가치가 ‘노예적 생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참고 자료
BBC 뉴스 http://news.bbc.co.uk/2/hi/africa/default.stm
‘대안세계화 운동의 이념과 전략’을 위한 2008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참세상 기사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7961
:: 글 _ 강똥 의영
* 출처 및 링크 : 경계를넘어 http://www.ifis.or.kr/bbs/board.php?bo_table=news_best&wr_id=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