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에 대하여

최형순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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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대하여


 


1. ‘이기심의 표출로 느끼기에 촛불시위를 반대한다.’ 에 대한 반론



 


촛불시위가 지독한 이기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내 한복판의 교통마비와 시위 후에 있을 시위의 부산물에 대한 처리문제가 주된 의제이다.



이러한 논리는 촛불시위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난 상황상 참여하지 못하지만 남들이라도 참여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 이상의 필요한 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시내 한복판의 교통마비와 시위 후의 쓰레기들을 감내해야 할 만큼 촛불시위가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면 이 논리는 스스로 파괴된다. 기반을 잃은 논리가 살아남는 경우는 억지를 쓸 때 뿐이고 그 순간 논리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란 무엇에서 발단이 되었는가? 근원으로 돌아가 보자.


외교에 있어서 선결되어야 하는 조건 중 하나가 국내적 합의이다.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 바로 이 과정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발단은 국내적 합의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그것도 현실적인 자료검토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졸속적으로 협정을 처리했다는 것에 있다.(이것은 청문회에 들어서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얼버무리는 모습으로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국내적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의 헌법이 기본권이 달린


문제였다. 국민의 건강권 행복추구권...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일을 국가가 실행했다.


이것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아주 단순하다. ‘국가가 우릴 죽이려 한다’ 라는 단 한마디로.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권력의 주체는 국민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서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국민의 의지가 많이 국가정책에 행위에 반영될수록 민주주의는 잘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속에서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국민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하고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면서도 정치전문가로서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전문성과 국민의 의지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견제와 균형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의 원리이다.


간단히 말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못하고 있다. 대화를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독재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권력을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독재이다. 공자나 맹자와 같은 고대정치사상 동양정치사상에서도 국민을 민생을 살피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하여도 막상 그 정책을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탁상공론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이 현실적으로 먹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도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라를 올바로 가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정이 왕정이나 귀족정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권력의 독선적 행위가 있을 때 민주주의에서 내세우는 원리가 하나 있다.


나가서 싸워라! 바로 ‘저항권’이다.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답게 헌법에 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그대로 적어놓았는데 우리나라 헌법에는 헌법전문에 암시적으로 담아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의 계승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4.19라는 저항권 발현의 대표적인 민주이념의 계승이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인 헌법에 포한되어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바로 국민적 저항의 발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발전상 중 하나로 취급받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제도권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지금 사람들은 불평한다. 퇴근길을 어떻게 하냐고 이러한 교통체증을 어떻게 하냐고...왜 시위하냐고!!!



왜 직접민주주의가 좋다 좋다 말하면서도 대의제 정치를 하는지 아는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대통령을 뽑고 왜 국회의원을 뽑는가?


맨날 이렇게 촛불시위할 수는 없으니까 비효율적이니까 불편하니까!!


대신해줄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솔직히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귀족정과 다른 점은 단 하나이다. 국민의 주권에서 비롯된 권력을 위임받을 사람을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 뽑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주 비싼...국민의 피를 말이다.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가? 촛불시위를 욕하지는 마라. 최소한 이기적인 자들이라고


욕하지는 말아라. 교통체증? 쓰레기? 그것은...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쓰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비용 중 하나다.


그러한 비용을 쓰기 싫은가? 그렇다면 왕정으로 복귀하던가. 독재국가로 가던가.


그러면 이런 비용은 안 들 것이다. 사회는 그만큼 살벌하겠지만.



그리고 진짜 촛불집회를 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나가서 반대시위라도 해라.


이 민주주의 사회는 참 재미있는 것이 말하지 않는 자 참여하지 않는 자는 모두 암묵적인 동의자로 간주해버린다. 선거불참이 전형적인 예이지 않은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 자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 자격이 없다.


그리고 국민의 건강권 문제는 가치의 문제이며 헌법의 문제이기에 애국심의 측면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금전적 이익만이 걸린...일이 아닌 가치의 일이다.


 



2. 첫 번째 반응이 왜 중고생에서 시작되었는가?



 


광우병 쇠고기 이것에 대해서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들은 중고교생들이었다.


이들은 젊기에 자신들에게 올 타격을 아주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들은 잘못하면 20대에 죽을 수 있다. 젊음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다른 계층보다 이에 대한 반응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적인 세대의 문제도 있다. 중고교생의 부모님들은 386세대가 대다수이다. 과거 민주화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세대들에게 교육받은 이들이 중고교생들이기에 이들은 다른 정치세대 밑에서 교육받은 20대보다 정치적 관심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민주화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세대들이다.


오늘은 6월10일 지금의 헌법을 만들어내고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민주주의를 이룩해낸 21주기이다. 87년 6월 그때부터 이땅에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으니...


지금의 중고교생들은 철저히 민주화된 시대에 민주화된 교육을 받으며 살았다.


과거 독재정권에 의해 재단된 재조립된 것을 교육받은 이들 그러한 경험이 긴 사람들과는 다른 교육적 환경 속에서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 중고교생들이 촛불집회에 나와서 발언할 때 나오는 말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1학생의글 참조)



이것은 앞으로 아직도 절차적 민주화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화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거대한 동력이기에 앞으로의 한국정치를 기대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