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마녀. 오노요코.의사랑.

신현기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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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녀. 오노요코.의사랑.

무표정한 얼굴과 갸날픈 몸.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듯한

큰 선글라스와 검은색 옷.

그리고 20세기,

세계의 음악팬들로 부터 가장 비난받는 여인.

 

 

 

그녀의 이름은 오노요코.

세상은 그녀를, 비틀즈를 분열시키고

천재적인 음악가 존 레논을

수염 덥수룩한 은둔자로 만들어

재능을 낭비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오노요코는 설치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수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등만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구성된

라는 영화도 제작했고,

관객에게 청진기로

전자시계 소리를 들려주는 콘서트를 열거나,

관객들에게 자신의 옷을

가위로 자르게 하는 등의 이해할수 없는 연출을해

비평가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존레논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다.

비틀즈를 시작할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애들은 얼마든지 널려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다.

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것은

1966년 오노요코의 조각전시회에서 였다.

둘은 만나자마자 곧 서로에게 끌렸다.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천재,

존 레논은 오노요코와 마찬가지로

대중이 예술가인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못한다고 느낄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들은 둘다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다른점이 있다면

존 레논이 리버풀의 노동자 출신인 반면,

오노요코는 억만 장자

은행가 젠지로 야수다의 후손으로

하인만 30명이 넘는 대저택에서 자랐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오노 요코는

"우리 집이 너무 부자라서 나는 길에서 놀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가 필요하면 근처 농가에 하인을 보내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나는 그 아이들한테

늘 장난감을 주었지만 그들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고,

나는 친구가 정말로 그리웠다"라고 회고했다.

 

"요코를 만났을때 우리는 말 그대로

벨벳 코트를 입은 두사람의 시인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두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비틀즈의 나머지 멤버들은 오노 요코가 존 레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음반을 녹음할때에도 항상 오노 요코를 대동한 존 레논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핵심멤버라 할 수있는 존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멤버들과의 불화로 인한 존 레논의 좌절감은 라는 곡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세상에, 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거야

너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거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를 십자가에 매달려고 하는 것만 같아

 

 

 

1970년 결국 비틀즈는 해산했고,

그 모든 책임이 오노요코에게로 돌아갔다.

음악적으로 존 레논은 정체상태에 빠졌다.

그룹해산 후 그가 발표한

두장의 솔로 앨범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노 요코와 함께 만든 두장의 앨범은 비틀즈 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존레논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다. 

하지만 존 레논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노 요코와의 사랑으로 행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세계 평화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존 레논과 오노요코는

침대에 누운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앨범 자켓에 자신들의 누드사진을 싣기도 했다.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비틀즈 활동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지나친 언론의 관심은 존 레논을 힘들게 만들었다.

 

 

 

천재들이 그러하듯 늘 불안했던

존 레논은 자신의 노래 의 노랫말 처럼 질투심이 많았다.

그는 단 1분이라도 자신 이외에 오노 요코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미워했다.

그에 대해 나중에 오노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어를 못하는

그는 내가 일본어를 한다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일본어로 된

신문이나 잡지도 볼 수 없었다."

 

지나친 사랑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국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둘은 18개월 동안 별거를 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을 존 레논은

"잃어버린 주말, Lost Weekend"라고 표현할 정도로,

요코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술과 절망에 빠져 산  자신에게는 음악보다 오노요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존 레논은 

결국 서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삶에서 우선 순위도 새롭게 정했다.

최우선순위를

가정의 행복으로 삼으면서 존 레논은 음약계를 떠나

새로 태어난 아들 션을 돌봤고 오노요코는 위태로워진 존 레논의 재정상태를 돌봤다.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파괴적인 시간이었다.

아이가 생긴 덕분에

우리는 그 시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션이 없었다면

나는 모든 음악산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존 레논은 5년간 평범하게 살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오노 요코와 아들 션에 대한 사랑을 음악에 담았고, 

오노요코와 함께

서로에 대한 사랑을 솔직히 담은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번째 앨범 를 함께 제작했다.

하지만 1980년 앨범을 출시하고

얼마되지 않아 존 레논은 오노요코가 보는 앞에서

정신병자 마크 채프먼의 총에 의해 살해당했다.

 

오노요코의 슬픔은 그칠줄을 몰랐다.

그녀는 존 레논을 화장한 재를 단지에 보관했고,

그의 사진과 앨범으로 집을 장식했다.

그리고 존 레논을 기리기 위해 뉴욕 센트럴 파크에 스트로베리 필드 가든을 만드는가 하면,

피범벅이 된 존 레논의 안경을 재킷사진으로 내세운 앨범 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