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닌 수필.

박민진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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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에 대한 수필

 

 

 

 얼마 전 한 낮의 무료함과 답답함에 굴러다니는 때 지난 영화잡지를 하나 찾아 읽었다. 영화 리뷰와 배우 인터뷰 그리고 영화제 현장의 기사들을 후룩후룩 넘겨보며 난 부족한 듯  글 하나를 찾고 있었다. 잡지의 후반부에 자리 잡은 수필 한 수를 원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글이 필요했다. 답답한 일상에 시원한 음료와도 같은 글이 필요했다.


 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논리적인 설명문과 논설문도 있고, 생활을 소개하는 기행문과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칼럼과 리뷰도 있다. 이런 글들의 공통점은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목적이 없는 글은 없다. 하지만 목적 없이 쓰고픈 목적을 가진(?) 글이 바로 수필이다. 목적이 없다는 말은 곧 형식의 구애가 없다는 말이다. 수필의 매력은 그렇게 무형식(無形式)의 형식을 가진 서정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동양 수필의 효시라 일컫는 중국 남송 때 ‘홍매’의 <용재수필(容齋隨筆)>의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수필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치한다. “그냥 쓴 거야. 답답해서 한번 써 본거야. 이유 없이 쓴 거야. 주절주절 나불거린 거야.” 그래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다. 관습적이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언제나 난 더욱 솔직하고 형식 없는 수필을 찾아 나선다.


 그러고 보니 수필은 힙합음악과 참 닮았다. 할렘가의 흑인정신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힙합이 주는 자유로움은 수필과 비슷한 쾌락이 있다. 어디 힙합뿐일까. 서민의 술 소주도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무형식의 즐거움이 있다. 저항정신과 혁명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도 반항할 수 있는 우리들의 특권이 묻어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꾸 얽매인다. 가진 게 많아진다. 내가 소유한 것이 집착을 부르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위해 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릴 적 꿈은 이제 지나버린 추억으로 포장되어 콧등을 간질이고, 현재의 지위를 위해 꿈을 팔아버린다. 그래서인지 삶의 곳곳에서 자신을 바꾸는 혁명을 원한다. 아니 귀여운 반항을 한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삶을 바꿀 용기가 부족해 하는 선택이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에서 묻어나는 법이다. 잡지 속 수필의 소소함을 읽는 기분은 내가 가진 일종의 세상에 대한 반감이라 할 수 있겠다 싶다. 좀 슬프긴 하지만.

 

 


 얼마 전 결혼한 친구를 만났다. 결혼식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얘기하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그리는 녀석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난 짓궂게도 이런 생각을 해봤다. ‘너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수 있지? 계속 그런 행복 속에 살 자신 있니?’


 요즘 삶을 살며 하는 선택이란 동반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조건과 지위에 따른 관습적인 선택 속에 벗어나질 못한다. 나이가 차고, 적당한 조건으로 하는 결혼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사랑해 죽고 못 살아 하는 결혼인데 뭔 태클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정말 죽고 못살아하는 결혼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요즘 직장은 45세 이후까지 버틸 수 없다고들 하더라. 공무원같은 철밥통 아니고는 그 좋은 S기업을 들어가고도 금새 퇴물 취급 받기 마련이란다. 좋은 대학을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까.  꿈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노처녀는 명절의 천덕 꾸러기가 되고, 광화문에서 촛불시위하는 아이들을 보며 관조하듯 길을 걷다보면, 꽉 들어찬 극장 속에선 '밥 딜런'이 열심히 자신의 생을 자유로웠다 항변한다. 홍대 락 밴드는 여전히 머리를 과격하게 흔들지만, TV에는 여전히 어항 속 금붕어들의 춤사위에 빠순이들이 열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어항을 모든 세상인냥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 반항하고 싶다. 어항을 깨고 싶다. 그래서 수필을 읽고 쓴다. 

 

 속물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푸념이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이런 글을 이 새벽부터 왜 쓰는지.. 수필은 이런 못된 심보도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수필이다. 또 일하기 싫어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앉아 있구먼. 얼른 일하자. 끝나고 영화 한 편 보려면 서둘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