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를 바라보며

엄태원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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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교육받은 자가 통치하는 것이 이상적인 국가통치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즉 세상에 무형적으로 존재하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배운 이가 통치를 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는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현대 정치인들은 "인기"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인기는 반드시 정치인의 정치역량이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인즉 현대사회의 규모가 확대되고 복잡성이 심화됨에 따라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해 확보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성이 존재하며 편견이나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인을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무관심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무지한 다수의 유권자가 사회를 구성하고 있을 때  포퓰리즘(populism)이 꽃피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30개월 이하 월령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촛불시위의 주된 요구가 되던 것이 어느 덧 이명박 정부의 퇴진과 여기에 민영화에 반대하는 공무원 노조등의 이익집단이 교묘히 촛불대열에 합류했다. 촛불시위자간 의견 불일치로 논쟁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촛불시위가 시간을 더해가면서 그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나는 촛불시위를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정부가 국민의 뜻을 묵살하고 일부 기업 및 특정 산업의 이익만을 위해서 쌍무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했다면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국민은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평화적 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시위는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높이고 그 체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근래의 이명박 정부 퇴진 요구, 정선희씨에 대한 비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촛불시위 방문과 시위참가자들의 대화거부 등은 촛불시위의 부정성을 들어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사회의 타구성원들과 반대하고 동의하며 의사소통할 권리를 가진다. 연예인 정선희씨가 공인이고 촛불집회에 대한 발언이 경솔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받은 사회적 압력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적 집단(여기서는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집단)이 자신의 집단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반대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내에서 용인되서는 안된다. 공인 이전에 정선희씨는 국민의 한 사람이며 자신 나름의 의견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 정선희씨가 자신이 맡았던 라디오 및 TV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또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촛불시위장을 찾았을 때 집회자들은 그의 방문을 무시했다. 과거에 잘못이 있던 이라도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찾아온 한 국가의 장관을 그런 식으로 몰아내는 것은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원들끼리 멱살잡고 싸울때 비난할 자격이 없다. 처음에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했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 국민들을 대표한다고 옳지 않게 간주되는) 촛불시위대들도 정부와의 소통을 거부했다. 이는 촛불집회자들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건과 관련하여 촛불시위는 또한 한국사회의 중우정치의 가능성과 위험도 노출했다. 한 백과사전은 중우정치가 "민주주의가 상황에 적합한 효과적인 리더십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정치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우정치에 대한 개념을 상이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들이 동의하고 있는 중우정치의 의의는 "다수에 의한"이다. 다수가 동의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옳다는 식의 민중정치체제인데 만일 촛불시위대가 국민의 건강을 이유로 그들의 의견이 무조건 옳기 때문에 정선희씨를 사회적 압력으로 굴복 시키고 한국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들 또한 그들의 정부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반문해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이슈가 너무 흑백논리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국민의 건강을 생각치 않고 너무나 쉽게 미국산 쇠고기 개방의 문을 열어준 정부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따라서 촛불시위대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라는 것이다. 정부는 재협상보다 강제성이나 규율성이 약한 '재협약'을 하고 민간차원에서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무조건적으로" 한미 FTA 축산분야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한미 FTA 전체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다각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초기 대응을 잘못하여 한미자유뮤역협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통치적 기능을 위임한 기구이기에 정부에 대한 책임은 국민에게도 일부 있다. 만일 지금 촛불집회를 이끌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한미 FTA 협상 중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반대를 강하게 주장했다면 상황을 변화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분히 좌파시민단체들의 정치성이 개입됐다고 본다) 결국 국가행위에 대한 감시기능을 소홀히 한 국민도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완전히 면책될 수 없음을 깨닫고 국가와 함께 공동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협상만이 무조건적 방법이니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일체의 소통도 없다는 접근은 비합리적이고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재협상 의지가 전혀 없는 미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 사이에서 한국 정부만 궁지에 몰아넣는 꼴이 될 수 있다. 촛불시위대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쌍무적 무역협정은 두 국가간의 동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한 국가만의 의지를 통해서는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행히, 미국 정부는 재협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촛불시위를 통해 나타난 국가적 분열이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간지 및 방송매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문제점을 깊이 있게 지적해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이루었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사회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및 소비를 막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법제적, 정치적 제약을 가할 수 있고 시행해 나갈 수 있다. 두 국가간에 타결된 무역협상을 다시 들추어내어 재협상을 하는 것은 국가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무역협상 자체에도 부정적으로 돌 수 있다. 물론 협상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행복과 건강이고 이 것은 정부정책수립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어야 하지만 내가 지적한 국가신뢰도 하락과 같은 일들을 무시하듯한 태도를 견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 국가가 시간적, 인적, 재정적 자원을 투입하여 종결된 무역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는 그냥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정부와 국민간의 이러한 대치적인 갈등 상황이 좀 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국면으로 돌아서기를 바란다.

 

 

정부와 국민은 통합될 때 더 큰 국가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촛불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실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은 사회적 분열 또한 야기하고 있다. 정부와 촛불시위대 그리고 국민 모두가 갈등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은 삼가고, 현 시점에서 최대의 안전을 확보하고 한미 FTA를 비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out 이라는 주변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이 비대해진 촛불시위대를 타고 들어올 수 없도록 핵심적인 쟁점에 대한 국민적 소통을 이룬 뒤 통합된 대한민국 이룩이 시급하다.

 

 

2008.6.12. 목 Sleepless in Seattle 스탠드바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