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연

박명관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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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빈 살림만을 들고 우리는 낙조 앞에 서 있었다

어망으로 어망을 포획한 것과 같았다

 

자기 생을 낚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꺼내어

떡밥처럼 매단 것과 같았다

 

바람 한 점마다 능선을 바꾸는

사막 같은 우상을 바라본다

한 우물 판 스승의 독설 앞에 기꺼이 끓었던

무릎과도 같은 자세를 하고서

 

눈멂으로 눈을 설득하고

귀멂으로 귀를 설득한다

 

할머니가 물려준 사기그릇은

균열로 아귀 맞춘 채 결탁하고 있어서

국을 담아도 새지 않았다

한 시대가 수장되는 풍경이 국그릇 안에 있었다

 

혁명을 꿈꾼다는 것만큼

치욕적인 짝사랑이 또 있을까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멘다던

유성기 속 고복수 씨 노래와 같이

신파만이 피안이다

 

간절함을 감춘 대가로

우리는 생명을 잃고 목숨을 얻었다

 

풍짝 풍짝 풍짝짝

 

 

 

*[현대문학] 2005년 3월호

 

 

 

 

 

 

 

 

 

 

끝물 과일 사러

 

 

 

 

끝물은
반은 버려야 돼.
끝물은 썩었어. 싱싱하지 않아.

우리도 끝물이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제철이 아니야.
하지만 끝물은
아주
달아.

 

 

 

 

 

 

행복한 봄날

 

 

 

 

너의 가시와 나의 가시가

깍지 낀 양손과도 같았다

맞물려서 서로의 살이 되는

 

찔려서 흘린 피와

찌르면서 흘린 피로 접착된

악수와도 같았다

 

너를 버리면

내가 사라지는,

나를 지우면

네가 없어지는

이 서러운 심사를 대신하여

 

꽃을 버리는 나무와

나무를 저버리는 꽃 이파리가

사방천지에 흥건하다

 

야멸차게 걸어잠근 문 안에서

처연하게 돌아서는 문 밖에서

서로 다른 입술로 새어 나오는 한숨이 있었는데

흘리는 눈물의 연유는 다르지 않았다

 

꽃봉오리를 여는 피곤에 대하여도

이 얼굴에 흉터처럼 드리워진

나뭇가지 그림자에 대하여도

우리의 귀에 새순이 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_ 시인 김소연

 

 

 

김소연 은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가톨릭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쳤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에「우리는 찬양한다」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집『극에 달하다』(문학과지성사, 1996), 장편동화『오징어섬의 어린왕자』(웅진닷컴) 등의 저서가 있다. 언제나, 마음이 가 있는 곳에 몸이 가 있기를 원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게으름과, '마음'이 움직이면 뜬금없이 부지런해지는 양 극단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마음' 혹은 '진실'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동을 잡다하게 하고 있으며, 이「마음사전」을 쓰는 일은 그러한 잡다한 노동 중의 하나이자, 노동의 막간에서 취하는 가장 행복한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