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괴물이 되어버려서는 안된다.

임흥선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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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으로 촉발된 5월과 6월의 촛불 시위.

 

국민 스스로가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한 사건이었습니다.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 달성만을 고려하는 권위적인 통치스타일로 반감을 산 이명박 정권은 승승장구하다 뜻하지 않은 역풍을 맞고 벼랑 끝의 위기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위를 민주주의의 승리라 찬사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민중 혁명 정신의 계승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실망으로 인한 정치적 무관심을 뒤집고 민중의 정치에 대한 주체적 참여의식을 고취시킨 것이 가장 큰 승리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지켜보면 거리의 시위속에서 낙관적인 희망만 보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촛불시위의 발단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을 모으는 과정에서의 비합리적 여론 조성 구조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소= 미친소"라는 저자에 과장되게 떠돌던 루머성 이야기를 아무런 이성적 판단의 여과없이 받아들이고선 집단 공황에 빠진 것에서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많은 민주 시위와 명백히 대비되는 점은 불안의 실체가 분명치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미국소는 작년부터 다시 세계 보건기구에서 안정성을 인정받는 식품이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의심없이 먹고 있습니다. 우리를 시작으로 대만이 30개월 이상의 수입을 허용하였고 앞으로 일본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 합니다.

 

전세계 다른 나라의 여론들이 우리 대중의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면서 보이는 시각은 한국의 거부감이 이성적이기 보다 감정적 'Emtional' 인 근거를 갖고 있으며 문제를 식품의 안정성의 여부에서 찾기보다 반미주의, '이명박의 조공외교에 대한 반감'과 같은 한국 대중의 정서를 지배하는 내셔널리즘에 근거한 정치적인 요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쇠고기는 완벽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볼때, 현재 우리 나라에서 정권이 위기에 몰리게 될 정도로 국민의 원성을 살만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중국산 식품이 훨씬 위험요소가 많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값싼 식품들을 수입해도 지금 미국소의 십분의 일도 반발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조류 독감이 발생하고 수백만마리의 닭이 도살될 때도 여론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미국산 소고기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이 미국소에 대한 대중의 흥분은 안전성의 문제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추측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소로 인한 광우병 환자 발생에 관한 아무런 공식적인 리포트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하고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수많은 대책들에 불구하고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조금도 줄지 못한 것을 보아도 광우병 불안의 실체는 식품의 안정성 문제에만 근거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이전의 공식적인 견해를 보면 대중의 패닉은 상당수 잘못된 괴담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괴담을 퍼트린 사람들은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많은 세계 여론들도 '한국민들이 자유무역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댓가없이 이득만 챙기려 한다', '광우병 공포는 실체가 없고 감정적이다', '국수주의적인 경향이다'라는 분석기사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분석이 이명박 정부를 향한 대중의 분노의 모든 원인과 시위의 확산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점은 '광우병 우려'만 놓고 볼 때는 우리 가운데 여론의 형성 과정과 그것의 확산 과정이 항상 사실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정치적인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슈 제기가 대중의 여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게 만듭니다.

 

한국 대중의 여론 생성과정은 책임있는 담론들의 질적으로 확인 가능한 소스보다 정체가 불분명한 인터넷의 무책임한 선전에 더욱 휩쓸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여론 형성의 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게 만듭니다. 어떤 이슈에 관해 그것이 사실여부를 규명하기보다 흥분하기 쉬운 우리 대중의 감정적 소통구조, 출처도 없고 오보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 인터넷의 검증되지 정보들에 더욱 신뢰를 주는 대중의 모습은 앞으로 공포가 필요이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제 2 제 3의 광우병 여론을 낳지 않는 다는 장담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 인터넷 여론의 대세가 지나치게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점입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여러 의견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이 제시되는 것을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 하여 막말을 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안될 일입니다. 한국인들의 여론은 대세에 쉽게 동조하는 면을 보입니다. 주위의 다른 이들이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을 금기시 하고 이성적 검토보다 다른 이들과의 연대의식, 정서적 일체감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개인주의보다 집단 윤리의식이 강한 문화에 기인하는 성향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성향은 강한 연대감을 요구하는 집단 행위가 쉽게 가능하게 하지만 내부적으로 자기 모순에 대한 비판을 막아버리는 역기능을 합니다.

 

시위 과정에서 조금 지나친 행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마치 대의를 거스르는 배반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거나 조금만 다른 시각의 의견을 제시해도 불순한 의도가 아니냐며 잘못된 행위로 낙인찍어버리고 무차별 공격하는 태도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의견을 제시함에 있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둘러싼 형식과 절차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고려치 않는 악플들은 눈감고 용인하면서 시각은 다를지라도 정중한 반론에 대해서는 조금도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는 민주주의 정신에서 보았을 때 배격되어야 할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욕하면서도 다른 의견은 객관화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자가당착으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내부적으로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요소들이 쉽게 걸러지지 않은 채 여론의 중심이 되는 것은 우려할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광우병 괴담과 촛불 시위로 이어진 국민의 불만의 모든 시작은 이명박 정부의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비이성적인 모습에서 발단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들에 대해서 여론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 우리의 사회적 혼란과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신기해 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중들도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일은 피했으면 합니다. 정권과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나머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소수 의견에 대해서까지 분노와 증오를 뿜어댄다면 모든 사람들이 상처받고 대중이라는 또다른 권력은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짓밟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