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10대와 20대가 이룩한 창대한 결실…이제 교회도 그 의미 되새겨야
그 시작은 비록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촛불문화제가 청계천의 소라광장에서 처음 시작되던 날, 나는 아내 그리고 몇몇 화가들과 함께 나섰다. 이 촛불이 과연 100일 정도 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커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그 첫날의 시작을 보고 싶었다. 과연 이 촛불이 어디까지 갈지, 그리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 첫 시작의 모습이 어땠는지 볼 수 있었다.
첫날 청계천에는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는데, 앞쪽으로는 10대들이 직접 준비한 집회였고, 뒤쪽으로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한미FTA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준비한 집회였다. 앞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좀 한산한 뒤쪽으로 왔는데, 지나가던 지인들이 날 알아보고 왜 재미없는 쪽에 있느냐고, 좀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해주었다.
사실 그랬다. 소녀들이 준비했던 그 앞쪽의 집회는 태어나서 처음 본, 그리고 한국의 10대들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주인이 된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첫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날의 소녀들이 그들의 ‘엄마’였던 30~40대 주부들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시 그들의 남편들이자 소녀들의 아빠인 구운동권들을 넥타이 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냉소주의에 갇혀있던 대학생들을 움직이고, 급기야 60~70대 노인부대까지 움직였다. 그리고 서울대의 동맹휴학 결정, 고려대의 동맹휴학 결정과 같이 ‘배신’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던 소위 SKY의 ‘나만 혼자 잘 살거야’라고 굳게 믿는 듯한 20대 엘리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누가 먼저인가, 혹은 누가 나중인가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건은 상당한 성경의 논리에 충실한 사건일 수 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먼저 움직일 것인가, 아닌가, 먼저 움직인 사람은 왜 그랬는가, 아닌 사람은 왜 또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 질문이 중요해보이지는 않는다.
‘촛불아, 모여라!’는 지금의 촛불 문화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슬로건이다. 이 뒤에 따르는 구호는 ‘민주시민, 함께해요!’ 촛불이 보기에 여전히 시민은 ‘당신들’이고, 그래서 존댓말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 시민이 촛불을 드는 순간, 그들은 촛불이라는 하나의 격(格)을 가지게 되고, 촛불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래서 평어로 ‘우리끼리니까’라는 의미로 ‘모여라!’가 된다.
지금 한국은 촛불과 촛불 아닌 것, 촛불을 지지하는 것과 촛불과 반대되는 것, 그렇게 두 개로 급속하게 나눠지는 중이다. 촛불을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 직전까지 존재하던 소소한 차이점들이, 촛불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공유점에 의해서 해소되며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전환되거나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귀에 공구리 친 이명박 정권
흔히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신문들이 촛불과 대척 중이고, 한나라당을 축으로 하는 ‘건전하지 못한 보수’ 즉, 불건전 보수들이 대척 중이다. 불건전 보수는, 부동산 투기하는 보수, 표절하는 보수, 그리고 거짓말하는 보수, 그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촛불이 타오르는 와중에 건전한 보수는 이미 촛불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계종의 신도와 가톨릭의 수녀들이 촛불을 들면서, 종교계에서는 소 때문에 망한 정권, 소망 정권을 축으로 하는 일련의 대형교회들이 촛불과 대척하고 있다.
자, 이렇게 판이 깔렸고, 급진전되던 논의들이 ‘귀에 공구리 친 이명박’ 그리고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낸 한나라당의 ‘깡통 바이게이트’에 막혀 숨고르기 하는 중이다. 이제 이 촛불은 어디로 번져가고, 어디까지 한국을 바꿀 것인가? 한국의 10대들은, 교육 파시즘이라는 사교육과 대학입시라는 고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의 20대들은,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성세대들의 줄 세우기와 비정규직 일반화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과연 한국의 10대와 20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 지금의 촛불이 밝혀줄 수 있을까?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시민적 주체로 각성한 ‘리더’들이 10만 명이 새로 생겨났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20대는? 냉정하게, 1만 명 정도의 새로운 ‘리더’들이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정답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라도 찾는 방향으로 점차적으로 해결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10대의 미약한 출발, 창대한 결과로 자라나는 중
얘기를 돌려서, 교회 안의 10대와 20대 문제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자. 최근 진보적 교회의 청년부에서 주최하는 한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뭔가를 알려주기 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온 자리였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교회 청년부의 10대와 20대들은, 일반 사회의 거대한 구조보다 훨씬 더 숨 막혀하고 있었고, 관찰자로 표현한다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노력동원의 대상이고, 그러면서도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어”라는 말로, 비난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그런 교회를 뭣 하러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도 청년부는 ‘선교’라는 이름으로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느 정도였을까? 그들 중 일부는 결국 정신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안식을 위해 찾아간 ‘하나님의 쉼터’에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10대와 20대, 즉 청년부의 실상을 낱낱이 보면서,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한국 경제에서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이 10이라면,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은 100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명박 장로가 막 장로가 되었던 시절, 소망교회에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당시 30대 중반이었다. 30대 초중반까지의 신혼부부들이 청년부에 있던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 조금은 그 구조를 이해할 것 같다.
촛불,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그 의미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촛불은, 부자 교회, 엘리트 교회가 만들어낸 교회 정권에 대해서 한국의 10대들이 밝힌 ‘미약한 출발’이 만들어내는 ‘창대한 결과’로 자라나는 중이다. 이 흐름에, 교회 안의 10대들, 그리고 교회를 떠나기로 굳게 맘먹은 20대들에 대한 질문이 얹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6·10대회 중에 마침 서울광장에서 벌어진 ‘구국 기도회’ 앞에 앉아서, 그 안을 볼 기회가 있었고, 대회가 끝나고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기도회에 나온 사람들과 잠깐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지독한 현실’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그 시작은 비록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촛불문화제가 청계천의 소라광장에서 처음 시작되던 날, 나는 아내 그리고 몇몇 화가들과 함께 나섰다. 이 촛불이 과연 100일 정도 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커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그 첫날의 시작을 보고 싶었다. 과연 이 촛불이 어디까지 갈지, 그리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 첫 시작의 모습이 어땠는지 볼 수 있었다.
첫날 청계천에는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는데, 앞쪽으로는 10대들이 직접 준비한 집회였고, 뒤쪽으로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한미FTA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준비한 집회였다. 앞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좀 한산한 뒤쪽으로 왔는데, 지나가던 지인들이 날 알아보고 왜 재미없는 쪽에 있느냐고, 좀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해주었다.
사실 그랬다. 소녀들이 준비했던 그 앞쪽의 집회는 태어나서 처음 본, 그리고 한국의 10대들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주인이 된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게 첫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날의 소녀들이 그들의 ‘엄마’였던 30~40대 주부들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시 그들의 남편들이자 소녀들의 아빠인 구운동권들을 넥타이 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냉소주의에 갇혀있던 대학생들을 움직이고, 급기야 60~70대 노인부대까지 움직였다. 그리고 서울대의 동맹휴학 결정, 고려대의 동맹휴학 결정과 같이 ‘배신’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던 소위 SKY의 ‘나만 혼자 잘 살거야’라고 굳게 믿는 듯한 20대 엘리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누가 먼저인가, 혹은 누가 나중인가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건은 상당한 성경의 논리에 충실한 사건일 수 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먼저 움직일 것인가, 아닌가, 먼저 움직인 사람은 왜 그랬는가, 아닌 사람은 왜 또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 질문이 중요해보이지는 않는다.
‘촛불아, 모여라!’는 지금의 촛불 문화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슬로건이다. 이 뒤에 따르는 구호는 ‘민주시민, 함께해요!’ 촛불이 보기에 여전히 시민은 ‘당신들’이고, 그래서 존댓말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 시민이 촛불을 드는 순간, 그들은 촛불이라는 하나의 격(格)을 가지게 되고, 촛불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래서 평어로 ‘우리끼리니까’라는 의미로 ‘모여라!’가 된다.
지금 한국은 촛불과 촛불 아닌 것, 촛불을 지지하는 것과 촛불과 반대되는 것, 그렇게 두 개로 급속하게 나눠지는 중이다. 촛불을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 직전까지 존재하던 소소한 차이점들이, 촛불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공유점에 의해서 해소되며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전환되거나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귀에 공구리 친 이명박 정권
흔히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신문들이 촛불과 대척 중이고, 한나라당을 축으로 하는 ‘건전하지 못한 보수’ 즉, 불건전 보수들이 대척 중이다. 불건전 보수는, 부동산 투기하는 보수, 표절하는 보수, 그리고 거짓말하는 보수, 그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촛불이 타오르는 와중에 건전한 보수는 이미 촛불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계종의 신도와 가톨릭의 수녀들이 촛불을 들면서, 종교계에서는 소 때문에 망한 정권, 소망 정권을 축으로 하는 일련의 대형교회들이 촛불과 대척하고 있다.
자, 이렇게 판이 깔렸고, 급진전되던 논의들이 ‘귀에 공구리 친 이명박’ 그리고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낸 한나라당의 ‘깡통 바이게이트’에 막혀 숨고르기 하는 중이다. 이제 이 촛불은 어디로 번져가고, 어디까지 한국을 바꿀 것인가? 한국의 10대들은, 교육 파시즘이라는 사교육과 대학입시라는 고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의 20대들은,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성세대들의 줄 세우기와 비정규직 일반화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과연 한국의 10대와 20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 지금의 촛불이 밝혀줄 수 있을까?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시민적 주체로 각성한 ‘리더’들이 10만 명이 새로 생겨났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20대는? 냉정하게, 1만 명 정도의 새로운 ‘리더’들이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정답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라도 찾는 방향으로 점차적으로 해결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10대의 미약한 출발, 창대한 결과로 자라나는 중
얘기를 돌려서, 교회 안의 10대와 20대 문제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자. 최근 진보적 교회의 청년부에서 주최하는 한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뭔가를 알려주기 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온 자리였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교회 청년부의 10대와 20대들은, 일반 사회의 거대한 구조보다 훨씬 더 숨 막혀하고 있었고, 관찰자로 표현한다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노력동원의 대상이고, 그러면서도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어”라는 말로, 비난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그런 교회를 뭣 하러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도 청년부는 ‘선교’라는 이름으로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느 정도였을까? 그들 중 일부는 결국 정신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안식을 위해 찾아간 ‘하나님의 쉼터’에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10대와 20대, 즉 청년부의 실상을 낱낱이 보면서,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한국 경제에서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이 10이라면,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은 100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명박 장로가 막 장로가 되었던 시절, 소망교회에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당시 30대 중반이었다. 30대 초중반까지의 신혼부부들이 청년부에 있던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 조금은 그 구조를 이해할 것 같다.
촛불,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그 의미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촛불은, 부자 교회, 엘리트 교회가 만들어낸 교회 정권에 대해서 한국의 10대들이 밝힌 ‘미약한 출발’이 만들어내는 ‘창대한 결과’로 자라나는 중이다. 이 흐름에, 교회 안의 10대들, 그리고 교회를 떠나기로 굳게 맘먹은 20대들에 대한 질문이 얹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6·10대회 중에 마침 서울광장에서 벌어진 ‘구국 기도회’ 앞에 앉아서, 그 안을 볼 기회가 있었고, 대회가 끝나고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기도회에 나온 사람들과 잠깐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지독한 현실’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우석훈/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