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 그 정치적 종교의 정치적 역사(주절주절 생각대로 썼습니다)

현승훈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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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정치적인 종교다. 그것은 기독교가 발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가 유지되는 과정은 그것을 확신케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모습은 그것을 실감나게 한다. 그것은 전통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커다란 비극임에 틀림없다.


 기독교의 처음은 외부의 압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 시작은 모세가 이집트 파라오의 핍박을 피해 홍해를 건너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가 받았다고 하는 십계명은 이후 기독교인의 생활규범 내지 종교적 규범이 되었고, 유대인의 민족적 구심점이기도 했다. 그들이 건설한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은 잠깐의 전성을 구가하고 곧 신 바빌로니아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 바빌로니아가 망한 후에는 곧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정치적인 핍박이 정치적인 종교를 만든 것일까. 이 시련을 맞아 유대 민족은 그들 특유의 선민의식을 갖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높여 갔다. 그리고 기독교가 만들어 낼 수많은 비극의 원천인 유일신 사상을 배태하였다.


 로마제국내에서 기독교는 정치권력자와의 타협을 통해 스스로를 유지하였다. 그 방법은 로마의 행정단위에 스스로의 기구를 일치시킨 것이다. 그들은 점차 그 역할을 이양받게 되었다. 이제 로마의 황제들은 통치를 위해 기독교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가 국교로 삼았을 때, 황제들의 신앙심은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에 의한 무정부상태가 도래하자 교회는 새롭게 기댈 곳이 필요했다. 특히 약탈과 침략이 일상이었던 그 시대에는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정치적 강자가 절실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역대 실권자들이 적격이었다. 그들은 당시대의 게르만 국가들 중 이탈리아의 이권을 가장 잘 보장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大帝로 추앙받는 샤를마뉴가 서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받은 것은, 사실 교황에게 더욱 절실한 선물이었다. 이 선물의 대가가 바로 중세의 교회를 살게 한 것이다.


 중세의 교회는 정치적 지배층에게 의지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나의 정치적 주체가 되고자 했다. 그 지위는 봉건 영주와 국왕과의 타협,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세속민에 대해서는 문화적인 지배에 의해 보장되었다. 교회는 그 대가로 그들에게 정신, 윤리적인 만족감을 주었고 때로는 정치적인 동반자 역할도 했다.


 교회의 종교적 심판(?)은 그들의 정치적 지향을 잘 보여 준다. 고위층인 왕, 봉건 영주(혹은 기사), 성직자에게 매우 관대했고 농민, 상인, 노예에게는 엄격했다. 똑같이 자살을 하더라도 기사의 것은 숭고한 희생으로, 농민의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긴 지옥행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게다가 교회 자체는 지주였고 사치스러웠으며 따라서 비 윤리적인 성직자도 흔했다. 윤리에의 봉사는 정치의 본질이라 하기 어렵다.


 중세가 끝날 무렵,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기독교의 정치적 지위는 잠깐의 위기를 맞았다.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상의 반성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쟁은 개신교와 구교가 더 많은 정치주체와의 타협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신앙은 정치와 일치되었다.


 루터파 교회는 독일 영방군주들에게 지지를 받는 대신 농민 운동에 등을 돌렸고, 로마 교회는 여전히 많은 영주와 국왕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로마가 취한 자성의 노력도 대개 교육이나 포교활동 등으로서,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이 두 계파의 노력은 결국 세속적 정치권력의 지지를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지지를 양분한 것으로  끝났다. 당대에 순수 종교적 역할에 충실하려 했던 계파들은 오히려 '이단'으로 몰렸다. 종교적 신념은 정치적 권위에 의지하였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가 형성되었을 때,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비스마르크 체제 하의 독일같은 경우, 기독교 정당이 커다란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 이전과 같은 사법권의 행사나 조세를 걷는다던가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국가가 강해지면서 교회의 그늘은 걷혀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라질 수 없었다. 국가는 오랜 시간동안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해 온 교회를 한번에 누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국가체제 안에 포섭하려고 했다. (상당수의 유럽에서)성직자는 공무원이 되었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게 되었다. 권력에 기댔던 교회는 이제 그 일부가 된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순수 종교적 역할이 줄어든 동시에 중세에 비해 자율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편, 근대 이후 교회는 서유럽의 열강의 식민지 개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현상은 그들의 복음이 얼마나 편협하게 해석되고 작용 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고, 중국에 아편을 팔며 인도에서 은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목사들은 신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응원하였다. 원주민에 대한 억압과 근대 문물의 폭력적인 주입은 그리스도의 축복을 전파하는 일로 찬양되었다. 서유럽의 제국주의는 교회가 제멋대로 내리는 오만한 축복을 받으면서 자라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하자, 교회는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교회를 하나의 '표 단위'로 만들어 정치인으로 하여금 성직자를 '국가원로'로 대접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성직자는 종신이다. 샤를마뉴는 교황이 씌워주기 위해 애쓴 왕관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정치인이 그것을 원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교회의 정신적인 지도력은 그들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유지시켜 주었다.


 기독교는 오늘날에도 강력한 종교이다. 신자의 수, 지도자의 세속적 영향력, 문화적인 업적.. 그것과 비교될 만 한 조직이나 사상체계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종교가 이렇게 정치적이고 세속적이라는 사실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종교가 종교로서 정의와 사랑의 구현에 봉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위치를 위해 애쓴다는 사실은 그들이 부르짖는 복음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것은 오만한 자기만족이거나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 다름없다.  


 

 정치적 종교라는 말은 그 자체가 너무나 큰 아이러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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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기독교가 나쁜 종교라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정치적인 부분이 참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