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신론자와 목사님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인 그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그렇게 대결을 하는 중에 목사님이 한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증거로 대결합시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납시다. 그 때 당신은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과 교회를 버리고 잘 된 사람 10 명을 데려 오시오. 나는 믿지 않다가 예수님을 믿어서 잘 된 사람 열 명을 데려 오겠습니다.”
무신론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 유명한 목사님과 유명한 교수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 교수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을 버리고 잘 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10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잘 된 경우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생활에 나타나는 증거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신령한 증거들도 주십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은 교회였습니다(고전 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이 거룩한 은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은사가 귀하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은사,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1. 사랑은 가장 큰 계명
성경은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명령과 교훈과 가르침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 입니까?”라고 물었던 율법학자에게 예수께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대답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마 22:37-39).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1) 사랑은 단순히 많은 계명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명령은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 이 명령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명령을 순종할 때 율법을 완성 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명령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2) 사랑은 단순히 많은 은사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은사가 각기 다르지만, 사랑은 가장 중요한 은사인 동시에 모든 은사에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에도, 통역에도, 지혜에도, 지식에도, 예언에도, 영분별에도, 능력에도, 병 고침에도 사랑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어떤 면에서 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소금이 들어 있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커피도 소금을 조금 넣어야 제 맛이 납니다.
아무리 맛있게 양념을 한 불고기라도 소금을 다 빼버리면 무슨 맛으로 먹겠습니까? 그러나 양념을 전혀 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서 먹는 소금구이의 맛이 얼마나 좋습니까?
(3)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
이처럼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은사에는 사랑이 들어가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도 사랑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를 의미합니다(신약에만 116번이 기록).
『에로스』의 사랑이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이 사랑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습니다.
『필레오』가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이 사랑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애처럼 아름 다울 수가 있습니다.
『스톨케』가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가장 큰 은사
(1) 사랑은 선물
본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면서 『사랑』을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은사”(카리스마)는 신령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사랑의 선물됨』을 바로 이해해야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이 은사라는 뜻을 알게 됩니다(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은 무엇보다도 자아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가페는 구체적인 섬김의 사랑입니다. 요 13장 1절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고 하셨던 그 사랑을 인하여 제자들의 발 까지도 몸소 씻기시는 구체적인 섬김을 사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 가장 큰 은사,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선물인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합니다. 심지어 천사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대화”가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합니다. 말(언어)의 전시장이 되고 맙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기 말만 하겠다고 소리를 높입니다. 소리를 높이다보니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뜻도 의미도 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소음이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교만과 남을 멸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믿음도 기적도 사랑이 없으면 무가치합니다. 희생도 봉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성경은 극단적으로 표현합니다.
(3) 가장 큰 은사, 사랑은……
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살면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은 사랑 할 수가 없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됩니다. 순종 할 때 부어주시는 성령의 역사로만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②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이 사랑을 부어 주시는 성령님을 믿고 맡길 때 사랑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예배하고,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 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 교인들이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과 할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 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3. 가장 큰 은사, 사랑을 훈련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1) 사랑의 훈련
에릭 프롬은 『사랑은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예술이고, 작품 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고, 사랑의 기술을 열심히 성실하게 배우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누구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피와 땀을 흘리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공중회전을 배우는데 20,000번을 연습한다고 합니다(김연아). 모든 운동과 모든 과정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연습하고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며 연습하고 훈련하고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고 성령이 부어주시는 은사이지만, 사랑에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부터라도 사랑을 연습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 입니다.
지극히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지구촌에는 250만 명의 어린이들이 하루 한 끼의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25¢(250원, Q.2)이 필요하다고 UN 의 WFP(World Food Programme)은 주장합니다.
한 사람에게 250원은 아주 작은 돈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아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도울 때, 대한민국의 5,000만이 하루만 모은다면 125억, 1 년이면 4조 5,625억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작은 사랑의 노력만으로도 이 세상의 기근의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연습이고, 실천 입니다.
(2) 문제의 해답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친히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대답은 항상 질문 속에 있습니다.
“네가 왜 나를 모른다고 하게 되었는지 아느냐?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역시 사랑에 있다.”
진실하게 산다고 하는데 왜 이처럼 허무합니까? 착실하게 사느라고 살았는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합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낙심도, 피곤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큰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큰일은 못한다 해도, 이렇다 할 업적, 이렇다 할 성공은 없다 하더라도, 내 삶에 하나님이 주신 불붙는 사랑만은 온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은혜와 축복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은사 (고전 12:31-13:3)
가장 큰 은사
(고전 12:31 ~ 13:3)
한 무신론자와 목사님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인 그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그렇게 대결을 하는 중에 목사님이 한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증거로 대결합시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납시다. 그 때 당신은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과 교회를 버리고 잘 된 사람 10 명을 데려 오시오. 나는 믿지 않다가 예수님을 믿어서 잘 된 사람 열 명을 데려 오겠습니다.”
무신론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 유명한 목사님과 유명한 교수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 교수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을 버리고 잘 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10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잘 된 경우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생활에 나타나는 증거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신령한 증거들도 주십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은 교회였습니다(고전 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이 거룩한 은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은사가 귀하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은사,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1. 사랑은 가장 큰 계명
성경은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명령과 교훈과 가르침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 입니까?”라고 물었던 율법학자에게 예수께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대답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마 22:37-39).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1) 사랑은 단순히 많은 계명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명령은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 이 명령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명령을 순종할 때 율법을 완성 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명령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2) 사랑은 단순히 많은 은사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은사가 각기 다르지만, 사랑은 가장 중요한 은사인 동시에 모든 은사에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에도, 통역에도, 지혜에도, 지식에도, 예언에도, 영분별에도, 능력에도, 병 고침에도 사랑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어떤 면에서 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소금이 들어 있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커피도 소금을 조금 넣어야 제 맛이 납니다.
아무리 맛있게 양념을 한 불고기라도 소금을 다 빼버리면 무슨 맛으로 먹겠습니까? 그러나 양념을 전혀 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서 먹는 소금구이의 맛이 얼마나 좋습니까?
(3)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
이처럼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은사에는 사랑이 들어가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도 사랑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를 의미합니다(신약에만 116번이 기록).
『에로스』의 사랑이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이 사랑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습니다.
『필레오』가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이 사랑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애처럼 아름 다울 수가 있습니다.
『스톨케』가 아가페의 지배를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가장 큰 은사
(1) 사랑은 선물
본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면서 『사랑』을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은사”(카리스마)는 신령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사랑의 선물됨』을 바로 이해해야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이 은사라는 뜻을 알게 됩니다(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은 무엇보다도 자아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희생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가페는 구체적인 섬김의 사랑입니다. 요 13장 1절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고 하셨던 그 사랑을 인하여 제자들의 발 까지도 몸소 씻기시는 구체적인 섬김을 사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 가장 큰 은사,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선물인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합니다. 심지어 천사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대화”가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합니다. 말(언어)의 전시장이 되고 맙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기 말만 하겠다고 소리를 높입니다. 소리를 높이다보니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뜻도 의미도 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소음이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교만과 남을 멸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믿음도 기적도 사랑이 없으면 무가치합니다. 희생도 봉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성경은 극단적으로 표현합니다.
(3) 가장 큰 은사, 사랑은……
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살면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은 사랑 할 수가 없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됩니다. 순종 할 때 부어주시는 성령의 역사로만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②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이 사랑을 부어 주시는 성령님을 믿고 맡길 때 사랑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예배하고,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 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 교인들이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과 할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 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3. 가장 큰 은사, 사랑을 훈련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1) 사랑의 훈련
에릭 프롬은 『사랑은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예술이고, 작품 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고, 사랑의 기술을 열심히 성실하게 배우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누구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피와 땀을 흘리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공중회전을 배우는데 20,000번을 연습한다고 합니다(김연아). 모든 운동과 모든 과정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연습하고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며 연습하고 훈련하고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고 성령이 부어주시는 은사이지만, 사랑에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부터라도 사랑을 연습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 입니다.
지극히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지구촌에는 250만 명의 어린이들이 하루 한 끼의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25¢(250원, Q.2)이 필요하다고 UN 의 WFP(World Food Programme)은 주장합니다.
한 사람에게 250원은 아주 작은 돈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아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도울 때, 대한민국의 5,000만이 하루만 모은다면 125억, 1 년이면 4조 5,625억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작은 사랑의 노력만으로도 이 세상의 기근의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연습이고, 실천 입니다.
(2) 문제의 해답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친히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대답은 항상 질문 속에 있습니다.
“네가 왜 나를 모른다고 하게 되었는지 아느냐?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역시 사랑에 있다.”
진실하게 산다고 하는데 왜 이처럼 허무합니까? 착실하게 사느라고 살았는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합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낙심도, 피곤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큰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큰일은 못한다 해도, 이렇다 할 업적, 이렇다 할 성공은 없다 하더라도, 내 삶에 하나님이 주신 불붙는 사랑만은 온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은혜와 축복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