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마24:3) 그때나 지금이나 신실한 사람들은 주님의 강림과 마지막 때에 될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성서적인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날 환난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하셨습니다.(마24:29)
사도 요한은 주님의 강림에 앞서 하늘의 징조를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각 섬들이 제 자리에서 옮겨진다" 했습니다.(계6:12~14)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은 다음 세 가지에 목적에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잠자는 신실한 성도들의 부활시킴에 있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신실한 성도들을 데려감에 있습니다.
셋째는; 신앙이 온전치 못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대환난에 남겨서 육신을 심판하심에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주의 강림과 부활과 휴거를 알리는 내용은 많습니다. 열처녀 비유에서는 데려갈 자들과 버려둘 자들은 설명하면서 신랑을 주님의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강림이라는 적극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서는 주의 강림과 주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과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자신를 성화시킨 신실한 성도들의 휴거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으나 대환난에 남겨질 자들에 대하여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마태복은 24장 37~41절과 누가복음 17장 27~35절만이 주님의 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와 대환난에 남겨질 자들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마24:37~41)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리라. (눅17:27~35)
'임함'이라는 파라오우시아는 '강림, 재림, 내림, 현존' 등이므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강림 또는 재림이라 하겠습니다. '데려감'이라는 파라남바노는 '데려가다, 인수하다, 영접하다, 받다' 등이므로 어린양의 신부로 인정됨으로 땅에 남겨두지 아니하고 하늘로 데려감입니다. '버려둠'이라는 아피헤미는 '버리다, 포기하다, 가게하다, 이혼하다' 등이므로 어린양의 신부로 오지않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도록 버려둔다는 뜻입니다.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은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관련 성구=고전15:23, 살전2;19, 4:16, 5:23, 살후2:8, 약5:7~8, 벧후1;16, 3;4, 요일2:28)
심판주의 강림에는 주의 강림과 성도의 부활과 휴거, 세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되려면 부활의 주인이 강림해야 부활이 됩니다. 그리고 데려감을 받으려면 데려가실 분이 오셔야 휴거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셋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있다면 사두개인들 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인류를 영원히 타는 유황불로 보내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미련하고 완악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아니하고 어두움과 합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만 해 왔습니다. 회개라는 돌이킬 기회를 주면서 오랜기간을 참았으나 당신이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강림하여 환난으로 순종치 않는 자들의 육신을 심판을 하셔야만 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대환난에서 재앙들이 어떻게 자비가 되고, 사랑이 되는가? 라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결이라는 속성(성품)은 죄를 용서하실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속성입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는 유황으로 타는 불에 넣어서 태워야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속성중의 자비라는 다른 속성은 벌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속성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당신의 자비를 나누어주어야 된다는 속성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성결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 하여 유황으로 타는 불에 넣어버리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폭군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성결(Holiness)의 속성은 죄를 용납할 수 없고, 다른 자비(Mercy)라는 속성은 용납해야 된다는 상충되는 속성에 의(Righteousness)라는 속성이 중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Justice)는 옳은 것은 보상하고 잘못은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자신의 영을 성결하게 준비한 자들에게는 보상으로 부활과 휴거라는 긍휼을 베풀어서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죄악으로 자신의 영을 더럽힌 자들에게는 부활과 휴거에서 탈락시켜서 벌하심으로서 성결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한 공의(Justice)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런데 믿는 자들이 불순종하고 의로운 세마포를 더럽혔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계13:8). 그러므로 죄 지은 자일지라도 대환난에 남겨서 회개시키고 회개가 된 자들만 끌어 올려서 유황불 못으로 가지 않게하기 위해 대환난이라는 고통으로 구원키십니다.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비록 행위가 악해서 휴거에서 탈락은 되었지만, 그래도 예수 이름을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황불 못으로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 이름을 부른 자들을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으시려고 대환난에서 진정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죽게 해서라도 당신의 성결을 보호하시고 하늘나라로 끌어 올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베푸시도록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성결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대환난에 남기십니다.
주님의 강림
주님의 강림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마24:3) 그때나 지금이나 신실한 사람들은 주님의 강림과 마지막 때에 될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성서적인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날 환난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하셨습니다.(마24:29)
사도 요한은 주님의 강림에 앞서 하늘의 징조를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각 섬들이 제 자리에서 옮겨진다" 했습니다.(계6:12~14)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은 다음 세 가지에 목적에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잠자는 신실한 성도들의 부활시킴에 있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신실한 성도들을 데려감에 있습니다.
셋째는; 신앙이 온전치 못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대환난에 남겨서 육신을 심판하심에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주의 강림과 부활과 휴거를 알리는 내용은 많습니다. 열처녀 비유에서는 데려갈 자들과 버려둘 자들은 설명하면서 신랑을 주님의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강림이라는 적극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서는 주의 강림과 주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과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자신를 성화시킨 신실한 성도들의 휴거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으나 대환난에 남겨질 자들에 대하여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마태복은 24장 37~41절과 누가복음 17장 27~35절만이 주님의 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와 대환난에 남겨질 자들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마24:37~41)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리라. (눅17:27~35)
'임함'이라는 파라오우시아는 '강림, 재림, 내림, 현존' 등이므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강림 또는 재림이라 하겠습니다. '데려감'이라는 파라남바노는 '데려가다, 인수하다, 영접하다, 받다' 등이므로 어린양의 신부로 인정됨으로 땅에 남겨두지 아니하고 하늘로 데려감입니다. '버려둠'이라는 아피헤미는 '버리다, 포기하다, 가게하다, 이혼하다' 등이므로 어린양의 신부로 오지않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도록 버려둔다는 뜻입니다.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은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관련 성구=고전15:23, 살전2;19, 4:16, 5:23, 살후2:8, 약5:7~8, 벧후1;16, 3;4, 요일2:28)
심판주의 강림에는 주의 강림과 성도의 부활과 휴거, 세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되려면 부활의 주인이 강림해야 부활이 됩니다. 그리고 데려감을 받으려면 데려가실 분이 오셔야 휴거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셋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있다면 사두개인들 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인류를 영원히 타는 유황불로 보내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미련하고 완악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아니하고 어두움과 합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만 해 왔습니다. 회개라는 돌이킬 기회를 주면서 오랜기간을 참았으나 당신이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강림하여 환난으로 순종치 않는 자들의 육신을 심판을 하셔야만 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대환난에서 재앙들이 어떻게 자비가 되고, 사랑이 되는가? 라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결이라는 속성(성품)은 죄를 용서하실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속성입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는 유황으로 타는 불에 넣어서 태워야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속성중의 자비라는 다른 속성은 벌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속성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당신의 자비를 나누어주어야 된다는 속성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성결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 하여 유황으로 타는 불에 넣어버리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폭군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성결(Holiness)의 속성은 죄를 용납할 수 없고, 다른 자비(Mercy)라는 속성은 용납해야 된다는 상충되는 속성에 의(Righteousness)라는 속성이 중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Justice)는 옳은 것은 보상하고 잘못은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자신의 영을 성결하게 준비한 자들에게는 보상으로 부활과 휴거라는 긍휼을 베풀어서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죄악으로 자신의 영을 더럽힌 자들에게는 부활과 휴거에서 탈락시켜서 벌하심으로서 성결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한 공의(Justice)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런데 믿는 자들이 불순종하고 의로운 세마포를 더럽혔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계13:8). 그러므로 죄 지은 자일지라도 대환난에 남겨서 회개시키고 회개가 된 자들만 끌어 올려서 유황불 못으로 가지 않게하기 위해 대환난이라는 고통으로 구원키십니다.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비록 행위가 악해서 휴거에서 탈락은 되었지만, 그래도 예수 이름을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황불 못으로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 이름을 부른 자들을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으시려고 대환난에서 진정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죽게 해서라도 당신의 성결을 보호하시고 하늘나라로 끌어 올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베푸시도록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성결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대환난에 남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