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불러낸 것까진 좋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 너는 니 사랑이 니 맘대로 안되는 거 언제 처음 알았어?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후회를 시작합니다. 사실은 감기 기운때문에 앉아있기도 힘든데, 연말이라 일도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전화 한통에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뛰쳐나온 방금 전 내 모습이 한심해집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사실 몸이 안 좋다느니, 내일 일찍 나가야 한다느니, 핑계를 대며 그녀를 버려둘 수는 없는 일. 어쩐 일로 전화가 온다 했더니, 어쩐 일로 운이 좋다 했더니, 알고보니 오늘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짝사랑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운수 한번 제대로 나쁜 날이었나 봅니다. 나는 온몸으로 밀려드는 무력감을 떨쳐내려고 애쓰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랴고 애씁니다. 정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려 열심히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정말 잘 되면 안되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바보같지는 않은 해답을 말해주려 열심히 생각하면서, 내가 너무 형편없는 카운슬러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안되니까. 간신이 내렸던 열이 다시 점점 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까 약을 삼키려다 말고 그냥 뛰쳐나왔다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약 삼키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것도 안먹고 나왔냐.' 나 혼자 나를 비웃으며 어질한 머리로 앉아 있는데, 잠깐 행복한 꿈을 꾼 것처럼 아까의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약을 먹으려고 물컵에 물을 따르다 전화를 받고, 파카를 집어들고, 지갑을 확인하고, 운동화를 발에 꿰고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뛰자니 사납고 걷자니 답답해서 차라리 몸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태어날 땐 경보선수로 태어날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더니, 어떻게 된게 내 앞에는 강호동 같은 천하장사가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처럼 빨리는 아니더라도 16부작 미니시리즈처럼 몇달쯤이면 결국은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게 내 사랑의 장르는 2차 대전 다큐멘터리처럼 처참하고 지루하기만 합니다. 열이 올라 벌긋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래도 사노라면 언젠간 좋은 날도 오겠지. 부은 목으로 아무도 모르게 노래 한마디를 읊어보며, 사랑을 말하다 3
사랑을 말하다 - #189
갑자기 불러낸 것까진 좋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 너는 니 사랑이 니 맘대로 안되는 거 언제 처음 알았어?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후회를 시작합니다.
사실은 감기 기운때문에 앉아있기도 힘든데, 연말이라 일도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전화 한통에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뛰쳐나온 방금 전 내 모습이 한심해집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사실 몸이 안 좋다느니,
내일 일찍 나가야 한다느니, 핑계를 대며 그녀를 버려둘 수는 없는 일.
어쩐 일로 전화가 온다 했더니,
어쩐 일로 운이 좋다 했더니,
알고보니 오늘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짝사랑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운수 한번 제대로 나쁜 날이었나 봅니다.
나는 온몸으로 밀려드는 무력감을 떨쳐내려고 애쓰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랴고 애씁니다.
정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려 열심히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정말 잘 되면 안되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바보같지는 않은 해답을 말해주려 열심히 생각하면서,
내가 너무 형편없는 카운슬러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안되니까.
간신이 내렸던 열이 다시 점점 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까 약을 삼키려다 말고 그냥 뛰쳐나왔다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약 삼키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것도 안먹고 나왔냐.'
나 혼자 나를 비웃으며 어질한 머리로 앉아 있는데,
잠깐 행복한 꿈을 꾼 것처럼 아까의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약을 먹으려고 물컵에 물을 따르다 전화를 받고,
파카를 집어들고,
지갑을 확인하고,
운동화를 발에 꿰고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뛰자니 사납고 걷자니 답답해서 차라리 몸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태어날 땐 경보선수로 태어날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더니,
어떻게 된게 내 앞에는 강호동 같은 천하장사가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처럼 빨리는 아니더라도 16부작 미니시리즈처럼 몇달쯤이면 결국은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게 내 사랑의 장르는 2차 대전 다큐멘터리처럼
처참하고 지루하기만 합니다.
열이 올라 벌긋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래도 사노라면 언젠간 좋은 날도 오겠지.
부은 목으로 아무도 모르게 노래 한마디를 읊어보며,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