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마지막 중흥기를 이끌었던 천재 개혁군주 정조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이산'의 종영을 계기로 오래도록 초보 정치학도로서 가져온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절대선(善)인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사상가인 플라톤같은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날 정치학 교과서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어리석은 대중에 의한 '중우정치'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민주정을 최선의 정체(政體)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철학자와 같은 현명한 사람, 즉 철인이 나와 그러한 현명함과 통찰로서 사람들을 통치하는 것을 이상적인 통치체제로 여겼다. 이른바 철인에 의한 통치, '철인군주(philosopher king)론'이다. 현명한 철학자가 앞서서 우매한 대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선정을 펼치는 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결국 현명한 자에 의한 독재가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는 것인데,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들이 선뜻 받아들이기엔 그 의도를 짐작함에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통찰은 정확한 것이었다. 생활환경의 차이, 경제적 접근성 및 교육수준의 차이, 정치사회적 문화의 차이 등에 의해 우리가 '대중'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그 정치의식 수준에 있어서 완벽하게 단일한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에게 동일하게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다. 따라서 그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다수의 의지가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정의'라고 불릴 수 있는 가치들로부터 괴리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또한 동일한 정치적 권리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집단들의 뜻과 의지를 모으고 조율하고 조정하여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많은 인내와 수고 그리고 시간을 요한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사회집단간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조정되지 못하고 전체 국가가 이해관계의 충돌속에 공전하는 일도 역사속에서 비일비재하다.
분명 왕정이나 독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여러 문제점들을 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최고통치권자의 결정과 결단으로 민주주의에서 거쳐야하는 많은 수고스러운 갈등 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며, 신속한 결정이 필요로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더 적시성있는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 왕정이나 개인에 의한 독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그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통치의 효율성에서는 더 나은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의 효율성은 한 국가나 집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진 다른 상위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일 뿐이지,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목적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무엇을 위한 통치의 효율이 되어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 통치의 효율을 진정 '정의'의 방식으로 '정의로운 것'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춘 자, 곧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가 기본적인 전제가 됨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한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인 '중우정치'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된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철인군주론'은 민주정의 비효율을 극복하고 어리석은 대중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것도 방지하여, 철학자의 현명함에 기초한 선정을 효율적으로 펼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군주라 할 수 있는 세종과 정조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형적인 철인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통치기간동안 조선은 중흥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항상 그와 같은 '철인'이 군주가 될 수 없다는데 있다. 철인군주론은 인간의 이타심과 완전성을 전제로 한 정체이론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이기적이고 제한된 이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완전히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철인'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은 철인이 아닌 사람에 의한 일인독재가 야기할 수 있는 막대한 폐해를 겪었고, 그러한 인간의 이기적이고 불완전함을 제도에 의해 통제하고자 하니, 바로 '민의에 의한 권력교체의 제도화'를 그 핵심을 하는 민주주의의 탄생이다. 인간의 본성을 제거할 수 없다면, 강제적 규율과 제도로서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철인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근본적인 조건속에서 철인군주제가 직면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리와 그에 따른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정은 그 비효율과 중우의 위험성에도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의로운 정치체제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초보 정치학도로서 내가 늘 지니고 살아가는, 내 생명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방금 끝난 드라마속에서 환생한 천재 개혁군주이자 철인군주의 전형인 정조대왕의 모습에서 그러한 신념이 흔들림을 느낀다. 세종이나 정조같은 군주를 우리가 계속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존재한다면 , 난 오래도록 가져온 민주주의에 대한 내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지속될 것이라 장담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아까운 군주였다. 그와 같은 군주가 그의 사후, 2-3명만 더 나왔어도 그 엄혹한 서세동점의 시기에서 적어도 우리 민족의 자주와 자존을 지키며 국제사회의 떳떳한 행위자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제는 의미가 없을 역사적 가정마저 망설임 없이 하고 싶을 정도로.
조선, 아니 어쩌면 우리 민족사 최고의 천재개혁군주, 철인군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정조대왕의 치열했던 삶은 초보 정치학도로 하여금 정치학의 기본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그의 삶만큼이나 치열하게 고민하게 한다.
정조..철인군주...그리고 민주주의
조선 후기 마지막 중흥기를 이끌었던 천재 개혁군주 정조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이산'의 종영을 계기로 오래도록 초보 정치학도로서 가져온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절대선(善)인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사상가인 플라톤같은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날 정치학 교과서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어리석은 대중에 의한 '중우정치'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민주정을 최선의 정체(政體)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철학자와 같은 현명한 사람, 즉 철인이 나와 그러한 현명함과 통찰로서 사람들을 통치하는 것을 이상적인 통치체제로 여겼다. 이른바 철인에 의한 통치, '철인군주(philosopher king)론'이다. 현명한 철학자가 앞서서 우매한 대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선정을 펼치는 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결국 현명한 자에 의한 독재가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는 것인데,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들이 선뜻 받아들이기엔 그 의도를 짐작함에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통찰은 정확한 것이었다. 생활환경의 차이, 경제적 접근성 및 교육수준의 차이, 정치사회적 문화의 차이 등에 의해 우리가 '대중'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그 정치의식 수준에 있어서 완벽하게 단일한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에게 동일하게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다. 따라서 그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다수의 의지가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정의'라고 불릴 수 있는 가치들로부터 괴리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또한 동일한 정치적 권리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집단들의 뜻과 의지를 모으고 조율하고 조정하여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많은 인내와 수고 그리고 시간을 요한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사회집단간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조정되지 못하고 전체 국가가 이해관계의 충돌속에 공전하는 일도 역사속에서 비일비재하다.
분명 왕정이나 독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여러 문제점들을 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최고통치권자의 결정과 결단으로 민주주의에서 거쳐야하는 많은 수고스러운 갈등 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며, 신속한 결정이 필요로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더 적시성있는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 왕정이나 개인에 의한 독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그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통치의 효율성에서는 더 나은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의 효율성은 한 국가나 집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진 다른 상위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일 뿐이지,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목적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무엇을 위한 통치의 효율이 되어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 통치의 효율을 진정 '정의'의 방식으로 '정의로운 것'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춘 자, 곧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가 기본적인 전제가 됨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한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인 '중우정치'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된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철인군주론'은 민주정의 비효율을 극복하고 어리석은 대중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것도 방지하여, 철학자의 현명함에 기초한 선정을 효율적으로 펼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군주라 할 수 있는 세종과 정조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형적인 철인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통치기간동안 조선은 중흥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항상 그와 같은 '철인'이 군주가 될 수 없다는데 있다. 철인군주론은 인간의 이타심과 완전성을 전제로 한 정체이론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이기적이고 제한된 이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완전히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철인'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은 철인이 아닌 사람에 의한 일인독재가 야기할 수 있는 막대한 폐해를 겪었고, 그러한 인간의 이기적이고 불완전함을 제도에 의해 통제하고자 하니, 바로 '민의에 의한 권력교체의 제도화'를 그 핵심을 하는 민주주의의 탄생이다. 인간의 본성을 제거할 수 없다면, 강제적 규율과 제도로서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철인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근본적인 조건속에서 철인군주제가 직면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리와 그에 따른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정은 그 비효율과 중우의 위험성에도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의로운 정치체제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초보 정치학도로서 내가 늘 지니고 살아가는, 내 생명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방금 끝난 드라마속에서 환생한 천재 개혁군주이자 철인군주의 전형인 정조대왕의 모습에서 그러한 신념이 흔들림을 느낀다. 세종이나 정조같은 군주를 우리가 계속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존재한다면 , 난 오래도록 가져온 민주주의에 대한 내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지속될 것이라 장담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아까운 군주였다. 그와 같은 군주가 그의 사후, 2-3명만 더 나왔어도 그 엄혹한 서세동점의 시기에서 적어도 우리 민족의 자주와 자존을 지키며 국제사회의 떳떳한 행위자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제는 의미가 없을 역사적 가정마저 망설임 없이 하고 싶을 정도로.
조선, 아니 어쩌면 우리 민족사 최고의 천재개혁군주, 철인군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정조대왕의 치열했던 삶은 초보 정치학도로 하여금 정치학의 기본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그의 삶만큼이나 치열하게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