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산증인" 조용구 이사장 퇴임…"사람 만드는 교육을…"

남궁현우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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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산증인' 조용구 이사장 퇴임…"사람 만드는 교육을…"

2008년 4월 23일(수) 오후 3:12 [뉴시스]

"사학 산증인" 조용구 이사장 퇴임…"사람 만드는 교육을…"
【서울=뉴시스】
한국 사학(私學)의 산 증인인 조용구 배명학원 이사장이 평생 직업이었던 교육자 생활을 마감해 눈길을 모았다.

19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삼전동 배명고등학교 강당에서는 백수(白壽)를 훌쩍 넘긴 조 이사장(101)의 퇴임식이 거행됐다. 1945년 배명학원을 설립한 후 60여 년 동안 교장과 이사장으로 열정을 쏟아 온 조 이사장으로서는 감회가 특별한 퇴임식이었다.

“이 사람의 퇴임식에 참석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황송 할 따름”이라고 말문을 연 조 이사장은 교육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뜨겁게 이야기했다.

"지금 세상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이를 죽이는 기가 막힌 세상이 됐습니다. 우리 학교는 교육이 철저해야 합니다. ‘이 다음에 너 뭐 할래’하면 장관이 되겠다, 부자가 되겠다는 것 보다는 난 제대로 된 사람이 되겠다는 대답을 원합니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구와 의를 지키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선생님들도 공부만 잘 하는 애들을 만들지만 말고 사람이 되는 교육, 인간이 되는 교육을 위해 헌신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하는 그에겐 평생 사학을 지켜 온 노 교육자의 묵묵한 신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물주고 거름 주어 키워 온 배명학교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우리 배명사학 졸업생들은 의사, 한의사, 변호사 등으로 사회 곳곳에서 수두룩하게 활동하고 있고 어디서나 칭찬이 자자합니다. 배명학교 졸업생들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그가 학교에서 자리를 지킨 60여 년 동안 배명학교를 거쳐간 학생은 4만8000여명에 이른다.

1907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 이사장은 젊은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고 언론인인 남궁억(1863~1939년) 선생을 만난 것이 계기가 돼 교육계의 길로 들어섰다. 이날 퇴임식에서도 "제가 농촌계몽운동을 하면서 남궁억 선생님한테 배운 것은 교육이 강한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스승을 기렸다.

20대 초반 강원 홍천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시작한 그는 1830년 종교와 청년운동으로 범위를 확대 했으며 1934년 광희문배화여학교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 사업에 투신했다.

이날 퇴임식에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동선 광성학원이사장, 서연호 서울사립법인협회장, 김하주 대한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장, 윤남훈 서울사립중고교장회장, 왕춘정 서울인문사립고교장회장, 최수혁 서울사립중학교회장과 정치가와 제자 등 500여명이 축하객으로 참석했다.

박준호기자 pjh@newsis.com
  “교육의 핵심은 교사들의 열정”

2008년 4월 17일(목) 오후 5:57 [경향신문]


ㆍ교육계 70년 헌신 마감하는 조용구 배명학원 이사장일찍이 소명을 알고 거기에 일생을 헌신했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오는 19일 퇴임식을 갖는 배명학원(배명 중·고교) 설립자 조용구 이사장(102)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 교장으로 40여년, 이사장으로 30여년 등 모두 70여년 동안 교육 현장을 지키고 100세를 넘겨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거목은 교육의 요체를 무엇이라고 여길까. “인류가 학교를 만들어 후손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였습니다. 교육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교육받은 이는 우리 미래에 기여해야 하지요.” "사학 산증인" 조용구 이사장 퇴임…"사람 만드는 교육을…" 역시 그의 자랑은 배명이 배출한 인재다. 그가 배명학원을 연 지 70여년 동안 배명을 거쳐간 동문은 4만5000여명. 허다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정규수 삼우그룹 회장 등 정·재계에서부터 야구 스타 박철순, 탤런트 최수종, 가수 박진영씨 등 체육·연예계까지 각계에서 배명인들이 활약중이다. 그 바탕에는 ‘사람’과 ‘열정’이 있었다.

“교사들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가르쳐 온 것이 오늘날 배명고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라고 믿는 조 이사장은 “교육이나 제도, 시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교사들의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교육에 투신하게 된 것은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1928년 강원 홍천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하던 중 남궁억 선생을 만나고서부터다. 남궁억 선생이 세운 ‘보리올’학교에서 교무주임으로 일하면서 그는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길이 곧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934년 배명학원을 설립, 교장에 취임하면서 1974년 정부가 교육평준화를 실행하기 전까지 무상영재교육을 실천에 옮겼다. 돈은 없지만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학교 울타리 너머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세계교육자대회 한국대표단 단장으로 외국의 교육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1984년에는 서울시 사립인문계 고등학교장회의 회장이 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전국 수학능력모의고사의 출제, 관리 전반에 걸친 체제를 완성했다.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정책은 정치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돼 그 폐단과 부작용이 지금까지도 나타나고 있어요. 정치논리를 빼고 교육문제를 논의할 마당이 없는 것이 아쉬워요.” 비록 지팡이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기개가 느껴졌다.

  참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 받은 사명이다.   참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참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은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참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교육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