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프로슈머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

박민진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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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저자 : 앨빈토플러, 하이디토플러

역자 : 김중웅 

출판사 : 청림출판 

발행일 : 2006. 9. 5 



프로슈머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



요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 중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다.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로 번역되는 라틴어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이 말을 외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사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사고자체를 너무 복잡하게 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가 현재 처해있는 것부터 제대로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영리하게 살려면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현재가 흐르고 흘러 미래가 되었을 때,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으니 어찌 보면 가장 ‘카르페 디엠’ 다운 것이 미래를 향해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부의 미래>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위대한 학자라 칭송받는다. 그는 평생을 사회비평가로서 약 15년마다 사회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몸소 체험하고, 분석하여 책을 내놓는 사람이다. 그의 이론은 단순히 한권의 책으로 평가받기 보다는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점검하는 가장 좋은 참고서적 중 하나가 되었다.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은 도서관에 가면 그의 책을 권장도서로 인식하고는 열심히들 읽는다. 방대한 570페이지 가량의 책을 엄청난 지루함과 싸워가면서 읽는 이유는 이 책에는 현재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논리적인 알고리즘(Algorithm)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역사의 자료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큰 도구이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가 위대한 서적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에서 나오는 신뢰성 높은 가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절대 밟아온 역사를 곧이곧대로 밟지 않는다. 역사의 자료만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세상사는 참으로 편할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도 미래를 궁금해 하고, 점쟁이가 아닌 이상 미래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역사 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에 집착하는 것이다. 


“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다. 부의 근원인 욕망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부는 일종의 소유이며, 효용이라 불린다.” 이 방대한 구성을 가진 책이 가지는 핵심은 미래에 정말 잘살고 싶다면 본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에 대한 인식과 태도부터 뜯어 고쳐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정 원한다면 현재를 포기하고, 진실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따를 수 있는 내제적인 강한 의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의 저서 <제 3의 물결>에서 제 1의 물결은 ‘노동’이며 제 2의 물결은 ‘산업주의’다. 그리고 제 3의 물결이 ‘지식’이라 줄곧 얘기해 왔다. 시기적절한 시간과 변화하는 공간에서 지식이 표출되었을 때 혁명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한다.

 


  수년전 유행했던 책 중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 시리즈가 있다. 3년 가까이,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Amazon.com의 종합 베스트 1위에 랭크되었던 책이다.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했던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투자와 투기를 명확히 구분 지으면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돈’과 ‘투자’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들려준다. 허나 이 책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저자가 가장 체계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미국의 정규교육을 질 떨어지는 구시대적인 교육으로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에게 한 회사의 직원이 되라고 얘기하는 것은 평생 자기 몫 이상의 세금을 내고 연금 혜택은 받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부자 시리즈는 부자가 되는 방법보다 현재를 깨는 방법을 더욱 강조한 서적이다. 사고의 틀을 바꾸고, 이 사회가 주는 제약들을 과감히 물리칠 때야 비로써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엘빈 토플러’는 현재의 교육이 획기적으로 변형하는 경제구조를 따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부분에 심히 공감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직장만을 찾는다. 경쟁을 통한 강화를 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밥통을 울부짖는 젊은이들의 태도는 이 사회의 경제를 따르지 못하는 교육제도의 문제점으로 돌려도 무방하다. 12년간의 정규교육에서 과연 얻은 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했고, 대학에서는 아직 사회에 나가기엔 부족한 나를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공무원과 같은 안전한 직업은 그들이 도망갈 출구로 인식한다. 이 시대의 고육은 고리타분 그 자체다. 사회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주지 못하고, 변해가는 이 사회와는 동떨어진 것에만 열을 내고 있으니, 한심한 인재들만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나와서는 사회에서 일하는 기계로 평생을 할부 빚에 쫒기며 사는 것이다. 정말 부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와 시스템이 겪는 ‘속도의 충돌’에 좀 더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엘빈 토플러’의 첫 번째 심층기반이다. 


 현재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24/7시스템은 기업이 고객을 위해 24시간 7일을 모두 서비스 한다는 의미다. 이전의 사회가 가진 통념인 일하는 날과 노는 날의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기업들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한다. 소비자의 욕구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은 잠재적 소비자를 채용하여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허나 사회는 잠재적인 소비자이자 생산자를 발굴하지 못한다. 구시대적 발상으로 중무장한 정규교육은 그 역할에 부적격이다. 그러니 속도의 충돌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라 정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시 기존의 틀에 박힌 패턴을 반복한다. 기업과 정부 양진영의 속도 차가 나면 날수록 기업의 요구에 맞추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의 개혁이 요원하다면 개인이 그 차이를 맞추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한다. 엘빈 영감님이 강조하는 기업사례의 나열들이 단순히 하나의 예가 아닌 개인의 변화에 대한 촉구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동시성의 원칙이다.

 

  


 

 속도의 충돌이 사회와 기업의 문제라면, 공간의 의미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경제의 중심지를 뜻한다.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소식은 흥분되지 아니할 수 없는 소식이다. 그만큼 아시아가 현재 부의 시스템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때 유럽이 패권을 잡다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힘이 2차 세계대전에 무력으로 세계를 장악한 미국이 가져가게 된다. 그리고 미국이 군사력으로 석유쟁취를 하는 와중에 슬그머니 지식경제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아시아가 전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임을 모르는 경제학자는 없다. 아니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과연 언제 중국이 미국을 앞서게 될까? 이제 이 시대는 경제의 파워로는 절대 우위에 설 수가 없다. 911테러로 한순간에 국방대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버린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횡포가 테러리즘을 양산하고, 미국의 석유를 향한 개싸움은 전 세계의 언론을 자극하며, 개개인은 인터넷이라는 가장 강력한 지식의 전달도구로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더욱 증대시킨다. 정보의 힘이 무력을 앞지른 역사적인 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산이 국가의 존립을 결정하는 시대다. 미국 내의 부자들은 미국 내에 집이 있을 뿐이지 그들이 미국을 부유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지식을 펼쳐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개인이 제공하는 지식의 컨텐츠가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중국은 그런 면에서 현세를 가장 잘 예측하고 준비해온 국가이다. 중국의 발전은 군사적인 혹은 화폐경제를 휘어잡은 것이 아닌 수많은 인적자원이 창출하는 지식경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을 위한 시스템을 장려하다 보니 부자들은 중국에 살길 희망한다. 또 다른 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대나무와 같다. 꿋꿋한 추진력을 가진 일본은 대나무처럼 곧다. 그리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는 대나무의 마디가 바뀌듯 자신을 변화시켜 시대에 적응시켜 나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역사의 그늘에서 일본의 움직임이 굼뜨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지 말이다. 이 영리한 민족은 언제나 세계의 화두 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예측한다. 그리고 그 두 강대국의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언제나 열반의 위치에 있던 한국이라는 나라는 분단국가로서 그 운명이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파괴력이 있다고 말한다. 전쟁과 평화적인 통일, 분단의 지속적 유지. 그것은 평화와 관계가 있으며 무력의 부활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정세가 세계의 부의 흐름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경제의 중심지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서 우리의 역사적인 숙명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한반도가 이제 세계의 흐름을 제어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꿈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 세계의 하나뿐인 분단국가로서 마치 숙명과도 같은 부의 혁명에 한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저자가 제시한 이 세 가지 국가의 위치는 철저히 역사의 흐름을 통해 축출한 결과물이다. 아시아로 오는 부의 권력이 과연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의 주장대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가슴 뛰는 일이 있을 수는 없겠다.   


  그가 가진 지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앨빈 토플러가 제시하는 예측의 수준은 이제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까지 뻗어간다. 좀 터무니없는 타이밍에 터져 나온 우주에 대한 그의 예찬은 그가 지식기반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집착의 최종점과 같다. 과학은 그가 바라보는 지식경제의 신화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들의 시야를 우주로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아직은 미지인 그곳이 우리 눈앞에 다가올 때 우리는 부의 최대공간과 최대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꿈꾸는 이상의 범위가 체계적인 자료에서 나옴을 봤을 때,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니다. 그는 진정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꿈같은 우주세계를 그리고 번영하는 아시아가 그 중심에 설 것임에 나도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비록 너무나 먼 얘기일 지라도 작가가 가진 지식의 방대함에 감탄을 머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기에 존경할 수밖에 없는 학자이다. 

 

 

 
 

  지식이 돈이 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다. 지식의 힘은 사라지지 않음에 있다. 오히려 사용하면 사용 할수록 빛깔이 더욱 고와진다. 사람이 철학을 하면 끝도 없이 본질을 파해 친다. 그것이 학문이 되고, 우리는 학문을 통해 가설을 얻으며 그것이 컨텐츠가 되어 형언할 수 없는 크기의 부를 창출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그가 연구해온 집대성은 이 세상은 지식 홍수 속에서 그것을 제대로 잡는 자가 부를 쟁취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거를 건 거르고, 알짜배기만 골라잡을 때 부를 얻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지식의 홍수 속에서 식견을 가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시간과 공간 모두가 지식경제를 기반으로 그가 추론한 세계를 읽는 부의 도구들(Economy Capital)이다.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인식하고, 진실을 진실로 알 수만 있다면 언제나 고담백의 정보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석유와 지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 석유는 쓸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더 많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무한하다. 지식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변화들은 현실 세계의 부, 즉 ‘누가 어떻게 부를 손에 넣느냐’하는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프로슈머는 우리가 맞고 있는 지식기반 사회의 보너스다. 지식경제의 발달로 개개인은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위해 서비스 제품,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자족의 길을 걷고 있다. 1인 기업이 1인 기업과 생산과 소비를 반복한다. 이러한 자동공장화는 지식이 이전 개념의 부를 부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CC와 개인 블로그 그리고 미니홈피의 컨텐츠는 모든 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Web2.0의 시대를 더욱 고조시켰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개인공화국이 진정 설립된 것이다. 이제 화폐가 부의 상징이 된 시대는 저 먼 과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프로슈머가 긍정적인 변화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무형 자산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의미를 퇴락시켜 사람들을 혼란시킬 것이다. 인터넷의 지속적 발달은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킬 것이고, 그것에 벗어나려는 프로슈머들은 또 다른 탈출구로 세상과의 소통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이제 아날로그의 정서는 점점 사라진다. 무언가가 나타나면 그것을 셈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이제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를 저장할 저장매체를 휴대하는 것이 더욱 영리한 시대가 된 것이다. 자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적응해야 할까? 조금은 두려운 생각들이 가득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고, 현재는 그 미래의 가장 중요한 마스터키라는 점이다. 


저자는 내 생각에  화룡점정을 하듯 컨버젼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한 점으로 집합함. 집중성의 의미를 지닌 이 용어에 대해 그는 잘하면 +가 되고, 못하면 -가 되는 융합의 특징이 이 사회의 정보구조와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됨을 강조한다. 누가 더 효과적으로 포장하고, 제대로 이용하는 가의 싸움이다. 요즘 사회는 정보의 창출을 제재하는데 급급하다. 그들이 만들어 낸 후진적인 구조에 날고기는 프로슈머들을 구속하려 하다 보니 정보의 흐름이 도용이라는 범죄가 되고, 해킹과 크래킹을 구분할 수 없는 범죄자들이 양산되어 발전하는 정보시스템에 찬물을 들이 붓는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집중적인 정보의 조합들이 엄습해 올 때 폭발적인 부의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들을 한다. 인터넷에 검색만 잘하면 되는 시대라고 말이다. 정보는 엄청난데 그것을 이용할 줄 모르니 제대로 검색해내는 것이 최대 미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재빠르게 찾은 그 정보를 어떤 형태로 포장시킬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기회를 잡았을 때 가장 집중적인 힘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효율이 컨버젼스의 의미이다.  


참 방대한 양의 책을 요약하는 느낌으로 정리해봤다. 독후감 보다는 요약문이 되어버린 면이 없지 않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미래를 보는 알고리즘에 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것들로 미래를 보았다. 물건 하나하나에도 사회의 흐름을 의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모습이 역력하다. 정보를 위해 인생을 사는 작가정신이 나를 감동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허나 그가 혼신의 힘을 들여 작성한 이 책에는 믿어선 안 될 말들이 가능하다. 참고라고 하기에는 그가 저자가 쓰는 어투는 단정적이기 그지없다.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미래를 예측하는데 객관적이고, 체계적일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에 이 책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미래와 맞는 나를 만들기 위한 참고서적일 뿐이지 진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보면서 현실과 괴리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만이 저자를 가장 제대로 존경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위대한 작가에게 진정 경의를 표한다. 덕분에 세상의 체계가 머릿속에 잡히는 듯 해 맘이 참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