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정희 대통령의 “親日” 주장에 대한 반박문 전문

장용복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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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정희 대통령의 “親日” 주장에 대한 반박문 전문

1. 객관성과 사실성의 결여

귀 연구소가 朴正熙대통령을 “친일인사”로 규정한데 대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당 사업회로서는 귀 연구소의 역사 평가가 객관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귀 연구소는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주관적, 좌편향적 기준에 의해 朴대통령을 평가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날조하였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2. 朴대통령의 이력서에는 어떤 친일기록도 없다.

귀 연구소는 朴대통령을 일본군 중위였다고 단정하고 이를 근거로 그분을 “친일”로 규정했으나 朴대통령은 일본군이 아니라 만주군 장교였으며 일본군과 만주군은 법적으로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말씀 드리면서 朴대통령의 정확한 軍 이력을 사실에 입각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朴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졸업한 후 제 11기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57기생 반에 파견되었습니다. 원래 일본 사관학교에는 구한말 시절 한국 무관 생도를 비롯하여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 유학생들도 입교했습니다. 이들 유학생에는 蔣介石을 비롯하여 國府軍 사관생 수백 명도 포함되었습니다. 朴대통령이 소속했던 만주군 유학생도 수많은 외국 유학생의 일부였습니다.

만주군 유학생들은 사관학교에서의 복장과 모표, 계급장이 일본 학생들과는 확연히 달랐고 일본 육사 57기라는 것도 제57기 상당(해당된다는 의미)으로 구별되었습니다.

朴대통령은 그런 유학생의 신분으로 1년 반의 교육을 마치고 1944년 4월 20일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당일부로 만주군 육군 견습사관으로 임명되었고 2개월 후인 1944년 7월 1일부로 만주군 육군소위로 임관되었습니다.

임관과 동시에 만주국 서남 熱河省에 있는 만주군 육군 제8團(연대에 해당)에 배속된 후 團副官으로 임명되었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45년 7월 1일부로 중위로 진급되었으나 1개월 반 후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다시 말해 朴대통령의 만주군 장교생활은 1년 4개월에 불과했으며 소대장 한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朴대통령이 소속된 만주군이 독립군 토벌에 가담했다고 하나 이는 근거 없는 날조이며 만주군은 당시 毛澤東 군대와 싸웠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모택동은 그 후 한국전에 중공군을 파견하여 북진통일을 방해한 점을 참고로 말씀 드립니다.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朴대통령은 시간적으로 친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럴 권한이나 직위를 갖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일본육사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朴대통령을 친일로 규정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한.일수교를 둘러싼 모함과 오해

한일회담과 관련하여 일각에서 朴대통령을 친일로 매도하고 있으나 이는 완전한 모함이자 오해임을 지적합니다. 1951년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된 한일 수교회담은 5차 회담까지 갔으나 일본의 대일 청구권 불인정과 이승만 정부의 의지 결여로 결렬되었습니다.

대일수교에 강한 의지를 보인 朴대통령은 “굴욕외교‘라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1965년 6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을 조인하고 국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1964년 당시 한국의 수출고가 1억 1,900만 달러였던 시절에 8억 달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었고 이것이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seed money)이 되었다는 점은 역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朴대통령은 ”친일“을 한 게 아니라 일본 교육을 받은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일본을 ”활용하고 극복한“ 지도자입니다. 한국에 비해 훨씬 산업화된 일본을 최대한 활용한 朴대통령의 예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발전된 한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朴대통령은 오늘의 한국을 만든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을 친일인사 명단에 올리는 것은 역사를 왜곡함은 물론 후세 교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당 사업회는 생각합니다.

 

 

4. 朴正熙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

朴대통령이 5천년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지도자라는 사실은 역사와 국민이 증언하고 있고 귀 연구소 또한 이를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이런 분을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추앙하지는 못할망정 ‘친일인사’ 명단에 삽입하는 것은 반민족적, 반역사적 처사이며 따라서 순리에 역행하는 이런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朴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 여론조사들

朴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합니다. 지난 9년간 실시된 이 조사를 보면 朴대통령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로서 역사 속에, 국민의 의식 속에 각인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자료를 참고하시어 향후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하는 바입니다.

박정희대통령관련 여론조사[본 홈페이지 좌측하단 참조]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12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박정희 전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에 포함시킨데 대해 "역사왜곡"이라고 반박하고 박 전대통령의 이름을 삭제하라고 촉구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10일 두 기관에 보낸 서한에서 ▲박 전대통령의 친일주장은 객관성과 사실성이 결여됐고 ▲박 전대통령의 이력서에 친일기록이 없으며 ▲한일수교를 둘러싼 친일론은 모함과 오해라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박 전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만주군에서 근무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근거로 친일 주장을 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며 "박 전대통령이 근무한 만주군은 일본군과는 법적으로 다르며 복무기간도 겨우 1년4개월로 소대장도 못한 채 육군소위로 해방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대통령은 시간적으로 친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럴 권한이나 직위를 갖지도 않았다"면서 "단지 일본 육사를 다녔다는 이유로 친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기념사업회는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 자료등록일자 2008/06/13  >

자료출처: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