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내딪기

이정희2008.06.21
조회79
한 걸음 내딪기

*

세상이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잖아

분명히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

내가 하고 있는 고민, 남들에게는 거뜬할 것 만 같고

내가 하고 있는 생각, 남들에게는 별일 아닌 것 같고

 

어느 문턱에 이르렀을 때

넘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생각해도

실은 맘 속에 넘고 싶어, 라는 자기주문을 걸게 마련이잖아

 

헌데, 못 넘었어

다들 넘는데 나만 결국 그걸 해내지 못했어

그럴 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기도 아닌 미세한 분자보다 더 작은 물질 같아

내가 나를 어색해 할 때

내가 나임을 인정하기 싫을 때

 

그럴 때 가장 슬픈 일은

이곳에 아무도 내 편이 없다라는 외로움이야,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무언가

내가 힘들다고 투정부릴 수 있는 누군가

 

없을 때,

내가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디를 가야 하는지

한 걸음 내딪는 일이 천추의 돌을 들어 올리는 일처럼 힘들지

 

그치만 말야

나도 네가 무얼 고민하는지

뭐가 널 힘들게 하는지 알아

다만 나는 온전한 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너의 말을 들어주고 너의 어깨를 잡아줄 수 밖에는 도리가 없어

내가 너였더라도 나는 너처럼 똑같이 울기만 더 하겠니

 

그렇게 생각해

나 아닌 네가 힘들어 할 때

그렇게 네가 갈팡질팡하며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을 때

내가 너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너를 붙잡아야 하는 나라면

네가 무너질 때 나는 똑바로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네가 귀를 닫아도 나는 너에게 잔소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지만

네가 돌아올 곳이 있는 거잖아

이렇게 해야지만

네가 다시 나에게로 올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네가 돌아올 곳이 엉터리가 아니기 위해선

나는, 네가, 힘들 때에도,

올바른 곳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지만

너의 또 다른 시작도 햇빛 가득한 곳일 수 있을테니

두려워 하지 말고 지금처럼 걸어와

네가 이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나는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을게

 

잘 걸을 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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