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프랑스 - 아주 긴 파리이야기

박현용2008.06.22
조회172



[파리의 중심 샹제리에 거리와 개선문]





파리 [ Paris ]

면적 106㎢, 인구 약 212만 5000명(1999)이다. 교외를 포함한 ‘대(大)파리’는 면적 1,000㎢, 인구 약 1021만 명(1990)이다. 오랫동안 센현(縣)의 주도(主都)였으나 1964년부터 파리만으로 독립 현이 되었다. 프랑스의 정치·경제·교통·학술·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 불리며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의 도시’ 라고 부른다.

세계의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여 몹시 좁은 편에 속하지만 둘레 36km의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에 둘러싸인 부분이 1860년 이래의 파리 시가지이다. 그러나 프랑스 전체의 0.25%에 이르는 면적에 전인구의 약 6분의 1이 집중해 있는 ‘대파리’는 해마다 10만∼15만 명씩 인구가 불어나고 있다.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에의 집중현상’은 프랑스의 특징이며, 파리는 세계 제4위의 인구밀집 지역이다.

센강(江)이 남동쪽에서 시가지로 들어와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감싸안으면서 북쪽으로 크게 만곡을 이룬 다음 남서쪽을 거쳐 시외로 흘러나간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뱅센 숲, 서쪽으로는 불로뉴 삼림공원이 이어진다. 센강의 남쪽을 ‘좌안(左岸:리브고슈)’, 북쪽의 보다 넓은 지역을 ‘우안(右岸:리브드루아트)’이라고 부르며, 시 주변에는 로마의 ‘일곱 언덕’을 연상시키는 언덕이 줄지어 솟아 있다. 연평균기온은 10℃, 1월 평균기온 3℃, 7월 평균기온 19℃로 생활하기에 적당하다. 강우일수는 연평균 189일, 강수량은 600m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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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직선의 아주 긴 파리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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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배낭여행의 마지막 나라이자 도시인 파리에 입성했다.
예술문화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나라..
그리고 그 중심부에 우뚝 서있는 파리..

마지막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지나간 많은 여행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영국-벨기에-네덜란드-독일-체코-오스트리아-이탈리아-모나코-스위스.......
거기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 후후훗..

파리를 글로 이야기하는것은 굉장히 어려운작업이다.
수많은 볼거리로 가득찬 이 도시를 간단히 요약하는것은 실로 불가능하다고 말할수밖에..

그저...
생각나는대로..
느끼는대로 사진과 더불어 한번 소개해보려한다..
내가 느낀 아름답고 환상적인 "빛의 도시" 파리에 대한 긴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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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직선의 아주 긴 파리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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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지름 240m의 원형 광장에 서 있는 높이 50m의 건축물로
프랑스 역사 영광의 상징인 개선문(l'Arc de Triomph)은
콩코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2.2km 거리에,
샹젤리제 거리의 끝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 개선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샤를르 드골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샹젤리제를 비롯해 12개의 대로가 이 곳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광장이 에트왈(etoile: 별, 방사형의) 광장으로도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문은 1806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공되었으나
 그는 개선문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1920년 이래로 1차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의 밑에 묻히게 되었고 매일 저녁 6시 30분에는 이 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낮보다는 밤에 보는 개선문이 훨씬 아름다운것 같다.
파리에서 밤에 아름답지 않은것이 무엇이 있겠냐만은 말이다.
개선문은 샹젤리에 거리의 정확히 중앙에 위치해 있다. (콩코드광장과 드골광장 사이)
 




개선문 꼭대기에서 일자로 쭉 벋은 대로를 따라가면 라데팡스 지역의 신개선문이 나타난다.
신---구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그들의 세심한 노력..
파리를 왜 과거와 현재가 살아숨쉬는 도시라고 했는지 알것 같았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

샹제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Elysee)는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길이 2km의 대로이다.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에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의 거리이다.
양쪽에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여행사가 즐비하며
화려한 거리의 노상 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리도 극장도 이곳에 위치한다.


파리에 입성했을때 파리는 한참 세일기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시로 자주 열리는 것이 세일이지만
유럽에서는 여름, 겨울 보통 딱 2차례 밖에 열지 않는다.
특히 여름에 열리는 세일기간이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기이다.
샹젤리제 거리 양쪽으로 쭉 늘어선 명품점들...
구찌,루이비통,프라다,알마니.샤넬.....온통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들이 바로 우리나라 인간들..
나는 여기서 그렇게 많은 한국 여자들을 볼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가타 같은 매장은 20대 초반의 한국여자들이 완전 싹 쓸어가다시피 했다.

' 아..! 돈이 마빡에서 튄다는것이 저런걸 두고 말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그런사람으로 인해 나에게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부익부 빈익빈.....후후훗..


 
                
 
 


 콩코르드 광장(La Place de la Concorde)

  콩코르드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이었고 1792년에는
  레볼뤼시옹 광장이었다가 지금의 이름이 확정된 것은 1830년이다.
 
  테뢰르 통치하에는
  이 광장의 84,000㎡에 달하는 넓이의 광장이
  교수형 장소로 이용되어,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포함한 1119명의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이 광장은 1755년에서 1775년 사이에 앙쥬 자크 가브리엘(1698-1782)에 의해서 설계되었다.
난간으로 둘러쌓인 도랑으로 만들어진 8각형으로 설계되었으며
프랑스의 대표적 8개 도시
( 브레스트, 루앙, 릴르, 스트라스부르, 리옹, 마르세이유, 보르도, 낭트)를 상징하는
8개의 동상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높이 솟아있는 저 건축물은 오벨리스크라고 부른다
1829년 이집트의 통치자 메흐메트 알리로부터 기증을 받은 3250년이나 된 조형물이다.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되었지만 그때는 단두대의 피로 얼룩진 장소였을것이다...
그런것을 생각하니 참 아이니컬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콩코드광장(화합의 광장)이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이 광장에서 개선문과 반대쪽으로 직진을 하면 루브르박물관이 나오고 왼쪽으로 돌면..
라파예트나 쁘렝땅같은 유명백화점이 즐비한 번화가가 나온다.
광장과 루브라 사이에 있는 공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에서 무료료 거치해둔 수면용 의자에 누워서 말이다.
우리나라도 공원에도 저런거 있으면 좋을텐데....다 훔쳐가려나......후후훗...^^;;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1793년에 프랑스 공화국에 의해 설립된 르브루 미술관은
애슈몰린 미술관(Ashmolean Museum,1683년),
과 드레스덴 미술관(Dresden,1744년), 그리고
바티칸미술관(1744년)등으로 나열하며,
유럽에서도 최대최고의 미술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루브루는 원래
미술관으로 사용될 계획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리 4세가 1671년에 그랜드 갤러리를 1층에 열었다.
미술과 예술품에 박식했던 그녀는
"고대의 방 " 과 왕의 뎃상실과 왕의 회화실을 두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1747년 왕의 콜렉션들을 감상할 수 있는 "뮤즈의 궁전"으로 불리우면서
박물관의 역활이 부각되었다고하니 그 옛부터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있어다고 전해진다.
현재에는 페이가 설계한 유리로 만들어진 피라미드가 루브르를 대표한다.
루브르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을 몇가지 말하자면,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토라케의 "니케", 들라크르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등등 헤아릴 수 없는
유명한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유리 피라미드를 좀 더 지나면 1805년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여 베니스에서 빼앗았다가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돌려준 산 마르코의 네마리 말들을 조각한 카루젤 개선문도
볼거리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40여만 점에 이르는 유사이래 최대의 회화, 조각 작품을 소장한 곳으로 예술인의 꿈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전체전시품의 60퍼센트이상이 전리품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참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Rechelieu관, Sully관, Denon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작품 당 10초만 구경한다 하여도 전체를 다 보는데 35일이 걸린다 하니
그 방대함은 말로다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고 왔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지......^^;;

루브르 박물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루브르를 상징하는 유리 피라미드이다.
이 기념물은 1981년 계획된 루브르 전체 건물을 박물관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미테랑 대통령의 대 루브르 계획안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는데, 1983년에 착공해서 1989년에 완공된 유리의 피라미드는 박물관의 일반인 출입구로서 내부 유적 발굴과 전체 보수비를 포함해서 20억 프랑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이 기념물은 현대 감각의 가벼운 건축 양식으로서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오밍 페이의 작품으로 툴르리 공원과 베르사이유 공원을 설계한 정원사 르노트르의 '풍경적 정원'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준공은 루브르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한다.

지하 광장에서 중앙의 유리의 피라미드를 올려다 보면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웅장하게 보이며 실제 규모는 길이 220m, 폭 110m이다. 높이는 루브르의 2층 높이(20m)와 3층(24m)의 중간인 12.60m이며 그 기울기는 이집트의 기자(Chiza) 피라미드의 각도인 50.70도를 취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는 생-고뱅 회사에서 제작했고 순수 수정과 같은 맑은 투명도를 갖도록 영국에서 표면을 처리하였다.

어떤 건축가는 루브르 궁과 유리 피라미드의 조화를 보고
"인류가 지나쳐온 장구한 역사는
다시 끝간데 없는 미래로 열려 있다는 것을 아이오밍 페이가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는 현재의 모습이다........정말 옳은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틀담 성당의 야경]


노틀담 대성당 (Cathedral Notre-Dame)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노트르담(Notre-Dame)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하다. 파리의 발상지인 시테섬의 동쪽 끝에 있는 파리의 상징적 건물로 1163년에 기공해 182년 만에 완성되었고, 800년의 프랑스 역사가 담겨 있다.
성당내부에는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수많은 조각들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 있는 4가지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인 장미창이 유명하다. 나폴레옹등 많은 국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틀담 사원은
  원래 씨떼섬에 정착한 고대 로마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4세기에 카톨릭이 국교로
  되면서 이곳을 성당으로 만들었고,
  1163년 개축공사를 시작하면서
  길이 130m, 폭 48m, 높이 35m라는
  거대한 모습으로 변모된 것이다.

공사 기간이 170년이나 걸린 전형적인 고딕양식으로 특히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예술로서는 최고의 걸작이다.
특히 장미의 창이라 알려진 9.6m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 저렇게 만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신이 빚은 솜씨다.

거리의 여자요, 최고의 미인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흉측한 몰골의 꼽추 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이 이 노틀담 사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종치기인 콰지모도 그는 파리 시민들을 향해 종을 울리며 그 종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듯, 자신의 사랑 또한 그렇게 퍼져 나가길 빌지 않았을까. 800년이라는 긴 역사의 무게를 감내해 온 를 뜻하는 노틀담 사원은 지나온 역사만큼의 무게를 안고 오늘도 프랑스의 하루 하루를 담으며 묵묵히 서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미덥게 느껴 질 수가 없다.


 

                       [사끄레 꾀르 대성당 - 몽마르트 언덕의 정상에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Montmartre)


몽마르트르 언덕은 로마교회와 관련해서
종교적 의미를 띄면서도 이 곳에서 시대에 따른
미술 사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문화예술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오늘날, 주거지역이기도 하면서
역사, 문화적 중심지이기도 하여
오래된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길을 거닐고 싶어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600만에 이른다.
 
창작과 예술의 장소,
이 곳에서 관광객들은 항상 계단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들을 볼 수 있고
또한 영화 촬영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예술적 모습을 띄는 지역이
밤에는 환락가로 변하여 여성이 혼자 걷기에는
불안할 정도이다.
언덕을 내려와서 Clichy 대로가있는 주변이 그러한데


많은 영화관, 극장, 술집들이 자리하고 물랭 루즈가 위치한 곳도 이 곳이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파리 풍경 - 에펠탑,노틀담사원,개선문 등에서도 볼수있다]


몽마르트를 가기전에 난 몽마르뜨가 낮은 언덕인줄 알았다...
이렇게 빼곡히 건문들이 있는게 아니라 푸른 언덕 위에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착각은 자유다...맞는말이다...흐흐흐

흡사 로마의 스페인 광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거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계단 맨 아래에서 한 프랑스 예술가가 쇼를한다.
그 텔레비젼에서 하는 프랑스식 몰래카메라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별안간 놀래킨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당하면 굉장히 기분나쁠텐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들 웃으며 지나간다.
우리나라같으면 자기가 그사람으로 인해 바보가 되었다고 싸움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적 차이인가...?? ^^;;

계단 바로 밑에서는 세네갈 사람들이 이상한 색깔 띠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손을 달라고해서 호기심에 손을 주었다가는 손에 그 이뿐 띠를 차게된다..
그리고 영락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어야한다.....후후훗..^^
그런데 어찌나 한국말들을 잘하는지....한국사람들이 많이 오긴하나보다..
월드컵 때문인지 그래도 나름대로 한국사람들에게 친절한것 같기도 하다..
한국이 축복의 땅이라나...?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긴 그 축복의 땅 말이다..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계단으로 올라가 성당옆쪽에서는 그 유명한 화가들의 집합소가 있다.
피카소,고흐..등등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는 그 유명한 장소..
지금도 그곳에는 이름모를 많은 화가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장한장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미래의 피카소들이 보이는것 같았다.

앗~!! 맞다~~!!
이 근처에 물랑루즈 극장이 있다는데 도데체 어디지...??
흐흐흐흐흐......^^;;



                                               
                                                [퐁피두 센터 전경]



                     [하늘에 떠다니는 느낌이..., 건물에서 본 복도의 외관]




               [옥상 야외카페-강렬한 햇빛이 좀 뜨거워 보이지만 경치는 좋다]




퐁피두센터 [ Centre Pompidou ]

정식명칭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 문화센터
(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
너비 166m, 안길이 60m, 높이 42m.
소재지구의 명칭을 따서
보부르센터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 (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 미술관(MNAM)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대통령
G.퐁피두의 이름을 붙여 1977 년에 개관하였다.

설계 공모를 통해 이탈리아인 R.피아노와 영국인 R.로저스의 공동설계가 채택되었다.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여러 시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비 배관이 적색과 청색의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문화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이미지와 자유롭게 내부의 변경이 가능한 설계가 파리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다. 견학자의 70%는 문화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한다고 한다.

퐁피두 센터를 본 첫 느낌은 마치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진 폐품 제련소 같은 느낌이었다.
외형의 철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건물을 가로질러 대형 배수관이 계단 형상으로
돌출돼 있는 특이한 모습.
그리고 외벽을 감싼 유리가 강철구조와 함께 햇빛을 받아 번뜩거리는 모습..
정말 독특해..... ㅡㅡ;;

이 예술문화센터는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9년에 시작돼 1977년에 개관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MNAM) 공공정보도서관(BPI), 신 개념의 음악 창작과 탐구를 위한 음악·음향연구소(IRCAM), 극장, 서점, 회의실, 카페 등의 시설이 들어선 복합공간으로 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정보의 수집과 분류 및 재생산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있다고 한다.
사실, 기이한 외관과 문화의 중앙집권화에 대한 우려로 건립초기에는 반발과 비판이 심했으나 현재는 파리의 명소가 되어 현대 프랑스 문화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퐁피두센터는 국제적 설계 공모를 통해 당시 젊은 건축가인 이탈리아인 R.피아노와 영국인 R.로저스의 공동작품을 채택하는 파격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센터건립과 병행하여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팀에 의해 기획 안이 짜여지고 구체적 운영계획안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현재, 다양한 프로그램과 열린 행정에 의한 운영방식으로 주민의 삶과 문화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중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급변하는 미래를 위해 늘 변화 발전할 준비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퐁피두 센터는 공사중' 이라 말하나 보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팀들이 이 진화의 과정에 도전하고 있다.

2007년 프랑스 메츠시에도 퐁피두 제 2탄 '퐁피두센터 - 메츠' 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저런 독특한 건물들이 생길까...
건물에서조차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파리이다..
오래된것이면 오랜된것....새로운것이면 새로운것 나름대로 말이다..


           

                                     [신도시 라데팡스의 건물들 ]


      

                                  [신도시 라데팡스의 조형물]

    

                                  [비와 라데팡스의 가로등]




                                        [라데팡스 1 ON 1 게임]


우리가 라데팡스를 갔을때는 나이키 에서 주최하는 1 ON 1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3 ON 3 를 하는데 이녀석들은 왜 1 ON 1 을 하지...??
똘레랑스 문화때문인가...??
아무튼 열심히 구경했다... 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나와 제형이도 뛰고 싶었지만...참가신청을 미리 해야만 해서 포기했다.
일대일 승부에서 5번 이상의 승을 거둔사람이 본선에 진출하고
위에보이는 코트에서 본선대결을 이룬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장 잘하는 사람 10명을 뽑아 보는것처럼 5 ON 5 게임을 한다.

1 ON 1 에서는 키 제한 같은것은 없었는데 (7점내기)
200 정도의 선수와 160 정도의 선수가 준결승에서 맞붙었었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키 작은 사람을 응원했지만...
아깝게 석패...!!
그래도 그 사람이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신개선문을 뒤로하고 한장 찰칵!]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 (La Defense)

파리 중심의 서쪽에 현대적인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라데팡스는 유럽에서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는 가장 큰 지역이다. 1958년에 공사가 시작된 복합 단지는 사무실로 이용되는 건물들이 주를 이루지만 이뿐만 아니라 호텔, 아파트, 쇼핑점, 레스토랑, 카페등이 들어서 있다. 파리 외곽에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이 곳은 파리내의 개발에 대한 압력을 성공적으로 제한하여 파리의 보존에 기여하게 되었다.

                         


라데팡스에 세워진 첫번째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Jacques Depusse가 설계한 Tour Nobel로 이전 건물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시작된 새로운 프로젝트는 많은 사무실이 있는 전형적인 거대한 타워였다. 프랑스 건축가 Saubot, Jullien이 설계한 Tour Fiat(1974)와 Tour Elf(1985)는 각각 10만 평방미터의 사무실 공간이 있는 건물들이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는 Tour Pacific, Japan Tower(1992)와 Tour Coeur-Defense(1995)가 있다.

1989년에는 덴마크 건축가 Johann Otto von Spreckelsen이 설계한 신개선문이 완공되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샹제리제 거리와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는 신개선문은 1989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의 건축 디자인 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중 하나이다.
신개선문은 그 유명한 개선문과 일직선상으로 위치해 있을뿐 아니라 두께 또한 똑같다.
신개선문은 파리 중심의 루브르에서 시작되어 샹제리제 거리, 개선문을 따라서 보불전쟁
(1870~1871)때 파리 방어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기념비 연장선상의
마지막에 위치해 있다.
작은 기념비들은 그 주위의 마천루에 가려 난장이처럼 보이고 그 때문에.........................
이 지역이 La Defence라고 이름지어졌다.

                        


라데팡스는 최고의 비즈니스단지를 지향했으나 기능만을 중시, 무미건조한 초고층 빌딩숲만을 건설하는 방식을 피했다고 한다. 전체적인 도시설계에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건축물에는 예술적 감각을 가미하는 한편 트인 공간 곳곳에 예술품을 설치했다. 그래서 라데팡스는 "미학과 기능이 조화된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예술작품의 경우 세자르 미로 등 전세계의 유명 예술가들이 참가, 60여개의 조각품 등이 설치됐다. 또 89년 프랑스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 건설된 그랜드아치 등 대형 건축물 및 설치물도 볼거리를 이루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들 두고 "야외박물관"이라고 부르며 실제로 많은 관광객과 조각가 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루부르박물관~개선문~라데팡스로 이어지는 8km의 일직선 길을 일컫는 " 역사적 중심축" 을 살린 도시설계는 매우 인상적이며 이 일직선 도로를 통해 라데팡스에서 파리의 개선문 등이 곧바로 보인다. 중심축은 17세기부터 프랑스의 각 왕조나 정부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일직선의 대로로 프랑스는 파리에서 라데팡스를 거쳐 북서쪽 25km에 위치한 세르지퐁트와즈 신도시 전망대까지 이 축이 연장된다.

라데팡스는 이를 관광상품화해 다른 신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기념품상점까지 비즈니스지역 한가운데 설치해 놓고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책자 10여종을 만들어 15~50프랑에 판매하고 있다. 또 그랜드아치에 전망대를 만들고 전망대에 예술작품을 전시, 외부인들을 끌고 있다.

연간 방문객은 약 100만명이나 된다. 특히 비즈니스지역의 복층구조물 윗층인 지상으로는 자동차가 전혀 다닐 수 없는데도 둘러보는데 40분 걸리는 소형 관광버스만은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상의 업무기능을 살리면서 "관광신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라데팡스에 가면 우리나라의 건물들과 정말 많은 비교를 하게 된다.
요즘은 그마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많이 고려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냥 빨리 짓는거에 급급한 실정이다
라데팡스의 신건축물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언제쯤.....
하는 물음을 안가질수가 없었다..


         


                                 [밑에서 본 에펠탑의 야경]



에펠탑[Eiffel Tower]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높이는 984피트(약 300 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재료에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平爐鋼)이 사용되었다.
탑에는 3개소에 각 각 전망 테라스가 있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無電塔)으로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프랑스.............파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에펠탑.........!!!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같이 인식되는 물음과 답이다.
그렇다. 만약 파리에 에펠탑이 없으면 그것은 더이상의 파리가 아닌것이 된다.
처음 만들어졌을때는 파리의 조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항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아니 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에펠탑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보잘것없는 철근 구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낮과 밤...
동서남북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그 멋과 운치가 시시각각 변하는 에펠탑을 보면
에펠탑을....파리를....프랑스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언제나 독특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파리...
그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모습을 보며 파리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I LOV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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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직선의 아주 긴 파리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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