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히 실패한 2008의 촛불집회

양민호200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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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촛불시위는 완벽히 실패했다.

 

1987년.

연세대 경영학도 이한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대학생들의 시위는

결국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냈다.

비록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노태우가 당선됨으로 민주주의는 그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대통령 직선제를 도출시킴으로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찍었다.

 

그러나 2008년 시민들의 시위는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집회.

 

2008년의 시위는 놀랍게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되었다.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그 세를 확장함에 따라

더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집단이 이에 포함되었다.

민노당, 민노총, 민주당, 각종 노조가 이에 속한다.

결국 어이없게도 시위의 양상은 보혁대결의 구도로 진행되었고,

국민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기본으로 시작된 순수한 촛불집회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어린자와 늙은자, 기독교와 비기독교,

노동자와 생산자의 구도로 재편되었다.

결국 해방이후부터 지루하게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었던

이른바 남남갈등이 쇠고기로 부활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는 정부의 치밀한 시위 진압 정책

 

이명박과 경찰청장은 결론적으로 승리했다.

이것은 그들이 언론을 장악해서도 아니였고, 국민을 설득해서도

아니였다. 이건 완벽한 채찍과 당근 전략의 승리다.

 

소규모의 시위에서 군홧발로 짓밟으면서도 대규모의 시위에서는

커다란 옹벽을 쌓아놓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그 커다란 옹벽은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에게는

정말이지 짜증나는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소규모의 시위에서도 경찰은 광화문 근처의 대부분의

통행을 차단함으로서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함을 선사했다.

물론 그 불편함에 대한 책임은 시위대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주동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다.

시민들의 시위는 리더가 없었고, 공동의 목적은 당연히 없었다.

정권타도라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던 1987년과는 확연히 다른

난잡한 시위가 지리하게 이어졌다.

 

지금 정부가 얼마나 치졸한 문제들을 떠안고 태동했는가?

소위 전과 18범의 인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그와 똑같은 무리들로 내각이 채워지고, 온갖 뜬구름 잡는

또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가득차 있는 정부가 아닌가.

마치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치, 경제, 사회적 정책이 그들의 머리속에 들어있지 않은가?

대운하로 대표되는 국토개발사업, 친일/친미 굴욕외교, 반공,

영어몰입교육, 공기업의 사기업화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정권은 태동시부터 응당 없어져야할 구시대적인 유물이었다.

고시철회를 외칠 것이 아니고 이명박의 탄핵을 처음부터 외쳤어야

했다. 쇠고기를 외치다보니 그제서야 시민들은 깨닳은 것이다.

그래서 대운하도 외치고, 결국 정권퇴진도 외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미 때가 늦었다. 

많은 시민들은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OUT을 외쳤지만,

금융노조는 이 찬스를 기화로 비정규직 철폐를 내세웠고,

일부 과거의 386세대는 국가보안법철폐와 양심수의 석방을

외쳐댔으며, 민주당은 쇠고기를 외쳐대며 내심 인기몰이에 나섰다.

 

꼴통 한나라당의 주성영이 작금의 사태를 "천민민주주의"라 했다.

(사실 천민민주주의라는 말은 없다. 내가 이 전의 글에서 언급한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만약 천민민주주주의라는 표현이 중우정치를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의 양상은 전형적인

중우정치의 표본이다. 정부는 이미 힘을 잃었고, 여론에 좌지우지

되며 아무런 정책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감정에 휩싸인 시민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할 따름이다.

 

정치란 여론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여론이란 것은

가장 어리석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해 둬야 한다.

예를들어 히딩크가 2001년도 국가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항상 5:0으로 졌기 때문에.

여론대로라면 히딩크는 완벽한 실패자였고, 당장 네덜란드 비행기에 올라타야 할 신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성공했다. 여론 또한 완벽히 뒤집혔다.

그게 정치다. 때로는 여론을 무시할 만한 자신감과 리더십을 발휘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히딩크와 이명박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명박은 지금 완벽한 식물인간이다.

이명박을 극도로 혐오하는 나지만, 그에게도 일말의 저력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된 그이기에.

 

그러나 2008년의 시민집회는 그의 5%의 가능성 조차도

완벽한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생각해보자.

현재 대통령은 식물인간이다. 그럼 제1의 권력은 누구가 갖겠나?

당연히 국회다. 과반을 훌쩍 넘겨버린 한나라당으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너무나도 비참한 결과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애초부터 정권을 퇴진시키지 못할 것이었다면,

그의 남아 있는 5%의 잠재능력조차 밟아버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보통 우스개소리로 대통령제의 국가에서 제1의 권력은 대통령,

제2의 권력은 국회, 제3의 권력은 언론이라고 한다.

이 중 우리 국민이 기댈 곳이 현재 과연 있는가?

2008의 촛불집회가 불행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이제

어느정도 직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느 정도 타결된 쇠고기 협상에 과연 만족하나?

정부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명문화 했나?

또는 내장등의 SRM이 집중된 물질 또한 수입하지 않겠다고

재협상을 했나? 추가협상에 명문화했나? 미안하지만 절대 아니다.

정부의 협상단은 미국과 협상한게 아니다. 국민과 협상한거다.

국민들은 결국 정부의 말장난(expression)에 놀아나고 있는거다.

 

이런걸 보고 바로 조삼모사라고 한다.

 

주위의 동료와 어른과 동생들이 점점 촛불집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을 보며 깨닳은 바를 적어봤다.

 

물론 얻은 것은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이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조중동이 이나라를 망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을

많은 이들로 하여금 깨닫게 했고, 견제하게 했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진보적 여론의 힘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그러나 잃은게 너무 많다.

한나라당의 국회에게 너무 많은 힘을 실어줘버렸다.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혼돈은 단순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걸맞게 세계적인 경제 또한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만 바라는게 있다면

좀 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한다. 국민들이 직접 대표자를 뽑고 그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권은 국민의

가장 중요한 권리가 되는 것이다. 그걸 자각하지 못했던 국민들이

이것을 향후 5년 동안 자각하게 된다면 그마나 지금부터 5년

이후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남아 있는 희망은 현재 이 것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