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류 지점이었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고 부르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가 약 30만명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있는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해상도시로 유명하다. 옛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해왔으며,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로써 번영해 왔다.
18세기말 나폴레옹에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1000년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공화국체제를
지켜오며 번창해왔으며, "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본토와의 사이에 철도다리가 세워지고 1932년에는 자동차 다리가 건설되면서
본토와의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이곳의 주요 관광지는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한
산마르코성당과 두칼레 궁전, 유리 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
해수욕장· 카지노·국제 영화제(베니스 영화제)로 유명한 리도 등이 있다.
특히 산마르코 광장의 산마르코대성당과 두칼레궁전,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은
이탈리아 관광, 미술, 건축예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베네치아의 역사.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부 극단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기원은
토사들이 내륙의 여러 지류들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 형성된 늪지대(Laguna)였다.
따라서 이곳의 환경은 숲이 무성한 가운데 모기를 비롯한 온갖 해충들이 가득하여 인간이
살기에는 매우 부적합하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총체적인 위기를 배경으로 북방민족인
훈족(Hun)의 대대적인 공세와 특히 568년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문명의 세계에 대한 파괴의
본성을 드러낸 롱고바르디족의 위협은 이곳으로 피신한 베네토(Veneto) 지역의 주민들에게
죽음보다는 자연환경과의 험난한 투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후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거쳐 697년에는 사실상 공화국의 선포를 의미하는 도제(Doge)를 선출(697)하였는데
이러한 체제는 1797년 나폴레옹의 지배이전까지 1100년간 지속되었다. 기원 후 810년
베네치아는 프랑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고 비잔틴 제국의 보호 하에서 상인들의 자유로운
교역과 무역활동으로 부를 축척하고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기회를 포착하였다. 또한 공화국의
수도를 리도(Lido)섬에서 지대가 높아 방어에 유리한 리알토(Rialto)로 이전하였으며 제 10대
도제인 파르테치파치오(Partecipazio)의 통치기간에는 국가의 근거를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오늘날 이 도시의 원형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력을 동원하여 성인 마르코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강탈하여 도시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하면서 시신의 안치를
위한 산 마르코(San Marco)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중략.......)
오늘날 베네치아는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된 이후 베네토 지역의 경제를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로서 국가의 경제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 대한 세인들의 공통된 이미지는 가랑잎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수면에
떠있는 세계 유일의 거대한 박물관 이라고 할 것이다.
이탈리아를 머리속으로 떠올리며
가장 가보고싶은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마와 베니스를 꼽는다.
피렌체,밀라노,나폴리 등등
훨씬 크고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베니스를 꼽는 이유는
"물의 도시" 라는
어감이 주는 신비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빈에서 출발한 기차는 아침무렵 베니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서둘러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를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나섰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적어도 한번쯤 '그곳에 가고싶다'는 욕망의 날개를 퍼덕였던 환상과 동화의 세계이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수상궁전들과 수로들을 미끄러지는 반달의 곤돌라 그리고 태양이 빛나는 날에는 온통 눈부신 백의(白衣)의 광채를 뿜어내는 대리석의 예술품인 것이다. 미로의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 궁전을 이어주는 40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에는 나만의 애절한 사랑을 토해낸 무수한 숨결들이 머물고 있다.]
왠지 로맨스가 일어날것만 같은 베니스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려졌다..후후훗
[바토레토가 줄지어 서있는 베니스의 해안가 풍경]
베니스의 교통 수단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일종의 연락선인
수상버스 바토레토(Vaporetto)
택시처럼 손님들을 모시고 다니는
모터보트 수상택시(Motoscafi)
그리고 베니스의 자랑거리인
조그만 배 곤돌라(Gondola)이다.
수상버스는 많은 승객이 태우고
큰 뱃길을 다닌다.
짐이 많지 않은 사람은 수상버스를 타고 내려서 목적지까지 걸어가면 된다.
수상택시는 일종의 모터보트인데 5-6명은 탈수 있고 짐도 충분히 실을 수 있다.
원하는 호텔이나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상버스와 수상택시에게도 육지에서 처럼 적용되는 교통규칙이 있다고 한다.
속도를 많이 내면 충돌 위험도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물결이 일어나 다른 배를 출렁거리게 하거나,
물가에 닿아있는 건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세가지 교통수단중 바토레토를 타고 리도섬으로 향했다.
[리도섬을 가게되면 꼭 여기를 지나친다. 이름은 모르겠다....]
리도(lido)섬
행정적으로는 베네치아에 속한다.아드리아해에 면한 쪽에는 사빈(砂濱)이 펼쳐지고, 해수욕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호텔이 줄지어 있으며 중심에는 카지노가 있다. 이 카지노에서는 해마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가 개최된다. 남북으로 좁고 긴 이 섬의 북단은 베네치아항(港)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섬의 남부에는 오랜 어촌이 있다. 남북 약 12킬로의 좁고 긴 섬으로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20세기에 들어서 리조트가 개발되어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고급 호텔과 최신식시설이 완비된 레저시설등 서구의 유수의 리조트지로 발전되었다. 고급 휴양지로 알려지면서 여름은 세계각지에서 밀려드는 바캉스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여름이 지나면 이곳도 휴식기를 맞기때문에 여름에 이곳을 방문하는것이 좋다.
[리도섬 해안가에서 찰칵 찰칵!!]
누드비치를 예상하고 갔던 우리에게 생각보다 큰 볼거리를(?)를 제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많은 수확을 하고 돌아왔다.
후후후후뒤에 여인네들 보이시는가...???
절대 일부러 찍은거 아님...절대 믿어주시기 바람.......후후후.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카지노 앞에서]
강수연,박찬욱,임권택...
그들 덕분에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베니스 영화제.
그 영화제가 열린다는곳을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지만
실상은 정말 허름하기 짝이 없는 카지노였다...
더군다나 폐장이 되었는지 안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붉은색 카펫을 보리라 예상하고 찾아간 우리는 허탈감을 감출수 없었다.
[사진으로 보는 베네치아]
[탄식의 다리 (한숨의 다리)]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Prigioni)을 잇는 다리이다.
대평의원회에서 재판을 받아 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감옥으로 가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창문으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탄식을 한 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죄수들의 낙서가 남아 있는 감옥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
이 한숨의 다리(Ponte di Respiro)를 되돌아 건너온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주인공은 오늘날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카사노바(Casanova)였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사실 이 인물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에 접근하고 배신하였지만,
단 한번도 분노와 절망의 눈물을 자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연민과 애절한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 뿐이다.
그가 다시 살아온 것은 바로 그 여인들의 끝없는 애정과 탄원서의 덕분이었다.
카사노바는 대부분 배신과 좌절 그리고 서리 찬 원망의 찌꺼기들을 남기는
우리 시대의 바람둥이가 아니라, 남녀의 사랑을 예술로 탐익한 인물이었다고 할 것이다~~!!!!!
고로 바람둥이는 위대하다~~~!!
퍽...!!! --;;
알았으니 제발 돌만 던지지 말아주3......후후후.
산 마르코 대사원
[Basilica di San Marco]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사원은 828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마르코의 유체를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다.
그러다가 967년 화재로 유실,
1063년부터 10년에 걸쳐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사원으로, 바깥 둘레는 330m이며 5개의 원뚜껑을 갖고 있다.
17~18세기 때 제작된 정면 위의 모자이크화에는 사원의 창건 유래가 표현되어 있으며,
특히 내부에 금박과 보석으로 치 장된 ‘황금의 제단’ 은 압권.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제단의 십자가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제단 맞은편 오른쪽으로는 보물관이 있는데
고대로부터 베네치아가 획득한 전리품과 진귀한 보물들이 있다.
어떻게 하나만... 가져올수 없나..???
[코레르 박물관 앞에서]
코레르 박물관은
대사원 건너편 ‘나폴레옹의 날개(Ala Napoleonica)’ 라고 하는
건물의 2, 3층에 있는 박물관이다.
14~18세기의 베네치아 역사, 예술, 풍속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2층은 당시 베네치아의 지도와 동전을, 3층은 회화관으로
14~16세기 베네치아파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않다...
대부분 비둘기와 함께 친구가 되어 즐겁게 놀다간다...
비둘기 말을 배우고 싶음 여기로 가보는게...^^;;
[베네치아의 전통인 카니발 복장과 가면]
카니발은 현재 베네치아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축제로서,
1094년 베네치아 총독이었던 Vitale Falier의 지배시기에 사순절이 시작되기 이전 기간에
대중들이 즐겼던 오락과 관련이 있으며, 1296년에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직전의
마지막 날을 축일로 지정함으로써 카니발은 공식적인 축제가 되었다.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매년 10월초에 시작되는 연극 개막 공연과 때를 같이하여 시작됨으로써 매우 긴 기간 동안
진행되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카니발은 정부가 가면의 착용을 허용하는 때인 성 스테파노
일부터 시작되어 재(災)의 수요일 전날에 끝났다. 이 기간 동안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미뤄두고 전적으로 즐기는데 몰두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한 주요 광장과
대수로 주변에는 여러 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었다. 축제 분위기는 매우 떠들썩하였고,
트럼펫과 피리, 북 등이 항상 분위기를 돋웠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들여온 온갖 종류의 과일과 과자, 사탕들을
판매하는 행상들이 돌아다니곤 하였다.
카니발 가면은 유리 세공품과 더불어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네치아의 히트!!! 상품이다.
몇개 구입하려 했으나...
역시 이동과 휴대의 불편함때문에 접고 말았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신기하다고 사진찍으면 돈을 내야한다.
그러니 조심하도록..나역시..그럴뻔했으니까.....후후후후
진정한
베네치아 여행을 위해서.
베네치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것같다.
대부분의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산 마르코 광장만을
고집하거나,
기차역에 도착한 후에
수상버스인 바포 레토(vaporetto)나 수상택시인 모터보트를 타고
역사중심지(historical center)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거나,
또는 곤돌라를 타고 산 마르코 광장의 주변수로를 한가 하게 둘러보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여행] 이탈리아 - 물의 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로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는 동서 문물의
합류 지점이었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고 부르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가 약 30만명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있는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해상도시로 유명하다. 옛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해왔으며,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로써 번영해 왔다.
18세기말 나폴레옹에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1000년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공화국체제를
지켜오며 번창해왔으며, "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본토와의 사이에 철도다리가 세워지고 1932년에는 자동차 다리가 건설되면서
본토와의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이곳의 주요 관광지는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한
산마르코성당과 두칼레 궁전, 유리 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
해수욕장· 카지노·국제 영화제(베니스 영화제)로 유명한 리도 등이 있다.
특히 산마르코 광장의 산마르코대성당과 두칼레궁전,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은
이탈리아 관광, 미술, 건축예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베네치아의 역사.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부 극단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기원은
토사들이 내륙의 여러 지류들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 형성된 늪지대(Laguna)였다.
따라서 이곳의 환경은 숲이 무성한 가운데 모기를 비롯한 온갖 해충들이 가득하여 인간이
살기에는 매우 부적합하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총체적인 위기를 배경으로 북방민족인
훈족(Hun)의 대대적인 공세와 특히 568년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문명의 세계에 대한 파괴의
본성을 드러낸 롱고바르디족의 위협은 이곳으로 피신한 베네토(Veneto) 지역의 주민들에게
죽음보다는 자연환경과의 험난한 투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후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거쳐 697년에는 사실상 공화국의 선포를 의미하는 도제(Doge)를 선출(697)하였는데
이러한 체제는 1797년 나폴레옹의 지배이전까지 1100년간 지속되었다. 기원 후 810년
베네치아는 프랑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고 비잔틴 제국의 보호 하에서 상인들의 자유로운
교역과 무역활동으로 부를 축척하고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기회를 포착하였다. 또한 공화국의
수도를 리도(Lido)섬에서 지대가 높아 방어에 유리한 리알토(Rialto)로 이전하였으며 제 10대
도제인 파르테치파치오(Partecipazio)의 통치기간에는 국가의 근거를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오늘날 이 도시의 원형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력을 동원하여 성인 마르코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강탈하여 도시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하면서 시신의 안치를
위한 산 마르코(San Marco)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중략.......)
오늘날 베네치아는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된 이후 베네토 지역의 경제를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로서 국가의 경제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 대한 세인들의 공통된 이미지는 가랑잎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수면에
떠있는 세계 유일의 거대한 박물관 이라고 할 것이다.
이탈리아를 머리속으로 떠올리며
가장 가보고싶은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마와 베니스를 꼽는다.
피렌체,밀라노,나폴리 등등
훨씬 크고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베니스를 꼽는 이유는
"물의 도시" 라는
어감이 주는 신비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빈에서 출발한 기차는 아침무렵 베니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서둘러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를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나섰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적어도 한번쯤 '그곳에 가고싶다'는 욕망의 날개를 퍼덕였던 환상과 동화의 세계이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수상궁전들과 수로들을 미끄러지는 반달의 곤돌라 그리고 태양이 빛나는 날에는 온통 눈부신 백의(白衣)의 광채를 뿜어내는 대리석의 예술품인 것이다. 미로의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 궁전을 이어주는 40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에는 나만의 애절한 사랑을 토해낸 무수한 숨결들이 머물고 있다.]
왠지 로맨스가 일어날것만 같은 베니스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려졌다..후후훗
[바토레토가 줄지어 서있는 베니스의 해안가 풍경]
베니스의 교통 수단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일종의 연락선인
수상버스 바토레토(Vaporetto)
택시처럼 손님들을 모시고 다니는
모터보트 수상택시(Motoscafi)
그리고 베니스의 자랑거리인
조그만 배 곤돌라(Gondola)이다.
수상버스는 많은 승객이 태우고
큰 뱃길을 다닌다.
짐이 많지 않은 사람은 수상버스를 타고 내려서 목적지까지 걸어가면 된다.
수상택시는 일종의 모터보트인데 5-6명은 탈수 있고 짐도 충분히 실을 수 있다.
원하는 호텔이나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상버스와 수상택시에게도 육지에서 처럼 적용되는 교통규칙이 있다고 한다.
속도를 많이 내면 충돌 위험도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물결이 일어나 다른 배를 출렁거리게 하거나,
물가에 닿아있는 건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세가지 교통수단중 바토레토를 타고 리도섬으로 향했다.
[리도섬을 가게되면 꼭 여기를 지나친다. 이름은 모르겠다....]
리도(lido)섬
행정적으로는 베네치아에 속한다.아드리아해에 면한 쪽에는 사빈(砂濱)이 펼쳐지고, 해수욕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호텔이 줄지어 있으며 중심에는 카지노가 있다. 이 카지노에서는 해마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가 개최된다. 남북으로 좁고 긴 이 섬의 북단은 베네치아항(港)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섬의 남부에는 오랜 어촌이 있다. 남북 약 12킬로의 좁고 긴 섬으로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20세기에 들어서 리조트가 개발되어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고급 호텔과 최신식시설이 완비된 레저시설등 서구의 유수의 리조트지로 발전되었다. 고급 휴양지로 알려지면서 여름은 세계각지에서 밀려드는 바캉스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여름이 지나면 이곳도 휴식기를 맞기때문에 여름에 이곳을 방문하는것이 좋다.
[리도섬 해안가에서 찰칵 찰칵!!]
누드비치를 예상하고 갔던 우리에게 생각보다 큰 볼거리를(?)를 제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많은 수확을 하고 돌아왔다.
후후후후뒤에 여인네들 보이시는가...???
절대 일부러 찍은거 아님...절대 믿어주시기 바람.......후후후.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카지노 앞에서]
강수연,박찬욱,임권택...
그들 덕분에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베니스 영화제.
그 영화제가 열린다는곳을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지만
실상은 정말 허름하기 짝이 없는 카지노였다...
더군다나 폐장이 되었는지 안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붉은색 카펫을 보리라 예상하고 찾아간 우리는 허탈감을 감출수 없었다.
[사진으로 보는 베네치아]
[탄식의 다리 (한숨의 다리)]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Prigioni)을 잇는 다리이다.
대평의원회에서 재판을 받아 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감옥으로 가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창문으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탄식을 한 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죄수들의 낙서가 남아 있는 감옥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
이 한숨의 다리(Ponte di Respiro)를 되돌아 건너온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주인공은 오늘날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카사노바(Casanova)였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사실 이 인물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에 접근하고 배신하였지만,
단 한번도 분노와 절망의 눈물을 자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연민과 애절한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 뿐이다.
그가 다시 살아온 것은 바로 그 여인들의 끝없는 애정과 탄원서의 덕분이었다.
카사노바는 대부분 배신과 좌절 그리고 서리 찬 원망의 찌꺼기들을 남기는
우리 시대의 바람둥이가 아니라, 남녀의 사랑을 예술로 탐익한 인물이었다고 할 것이다~~!!!!!
고로 바람둥이는 위대하다~~~!!
퍽...!!! --;;
알았으니 제발 돌만 던지지 말아주3......후후후.
산 마르코 대사원
[Basilica di San Marco]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사원은 828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마르코의 유체를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다.
그러다가 967년 화재로 유실,
1063년부터 10년에 걸쳐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사원으로, 바깥 둘레는 330m이며 5개의 원뚜껑을 갖고 있다.
17~18세기 때 제작된 정면 위의 모자이크화에는 사원의 창건 유래가 표현되어 있으며,
특히 내부에 금박과 보석으로 치 장된 ‘황금의 제단’ 은 압권.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제단의 십자가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제단 맞은편 오른쪽으로는 보물관이 있는데
고대로부터 베네치아가 획득한 전리품과 진귀한 보물들이 있다.
어떻게 하나만... 가져올수 없나..???
[코레르 박물관 앞에서]
코레르 박물관은
대사원 건너편 ‘나폴레옹의 날개(Ala Napoleonica)’ 라고 하는
건물의 2, 3층에 있는 박물관이다.
14~18세기의 베네치아 역사, 예술, 풍속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2층은 당시 베네치아의 지도와 동전을, 3층은 회화관으로
14~16세기 베네치아파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않다...
대부분 비둘기와 함께 친구가 되어 즐겁게 놀다간다...
비둘기 말을 배우고 싶음 여기로 가보는게...^^;;
[베네치아의 전통인 카니발 복장과 가면]
카니발은 현재 베네치아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축제로서,
1094년 베네치아 총독이었던 Vitale Falier의 지배시기에 사순절이 시작되기 이전 기간에
대중들이 즐겼던 오락과 관련이 있으며, 1296년에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직전의
마지막 날을 축일로 지정함으로써 카니발은 공식적인 축제가 되었다.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매년 10월초에 시작되는 연극 개막 공연과 때를 같이하여 시작됨으로써 매우 긴 기간 동안
진행되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카니발은 정부가 가면의 착용을 허용하는 때인 성 스테파노
일부터 시작되어 재(災)의 수요일 전날에 끝났다. 이 기간 동안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미뤄두고 전적으로 즐기는데 몰두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한 주요 광장과
대수로 주변에는 여러 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었다. 축제 분위기는 매우 떠들썩하였고,
트럼펫과 피리, 북 등이 항상 분위기를 돋웠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들여온 온갖 종류의 과일과 과자, 사탕들을
판매하는 행상들이 돌아다니곤 하였다.
카니발 가면은 유리 세공품과 더불어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네치아의 히트!!! 상품이다.
몇개 구입하려 했으나...
역시 이동과 휴대의 불편함때문에 접고 말았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신기하다고 사진찍으면 돈을 내야한다.
그러니 조심하도록..나역시..그럴뻔했으니까.....후후후후
진정한
베네치아 여행을 위해서.
베네치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것같다.
대부분의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산 마르코 광장만을
고집하거나,
기차역에 도착한 후에
수상버스인 바포 레토(vaporetto)나 수상택시인 모터보트를 타고
역사중심지(historical center)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거나,
또는 곤돌라를 타고 산 마르코 광장의 주변수로를 한가 하게 둘러보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교통수단을 이용한 평범한 기행보다는
지도도 없이 어림잡아 방향만을 정한 체
도보로 산 마르코 광장까지 미로의 숲을 탐험하려고 한다.
보통 2시간 남짓 걸리는 미로여행은 크고 작은 수로들과
그 주변을 감싸안은 기괴한 모양새의 집들, 이들을 허공으로 이어주는 온갖 모양의
아담한 다리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아담한 꽃들로 장식된 중세의 주거지를 통과하여
드넓은 역사의 마르코 광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일부러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역시 지도 한장 달랑들고
베네치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어릴적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으면서
느낄수 있었던 미로속을헤메는 짜릿한 경험...
그런 것들이 분명
베네치아를
겉에서만 보고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한 무언가를 나에게 허락해 주었다.
베네치아는 카니발의 가면처럼
용기가 없는 자에게
결코 비밀의 미소를보내지 않는다.
베니스를 동경하며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면속에 감추어진 진실의 모습을...
베니스의 그 진정한 모습을 찾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