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로티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기록은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는 한 공연에 167번 커튼앵콜과 1시간 15분동안의 박수를 받아 기네스북에 오른 가수다. 또한 공연 여행때는 보통 35개의 가방을 갖고 다닌다. 그의 짐이 많은 이유는 그가 직접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페라 ‘연대의 딸’에서 고음인 하이C를 9번이나 올라가 160년만에 다시 나타난 고음가수라는 기록을 지녔으며 록가수 스팅, U2의 보, 팝싱어 샐린 디온, 프랭크 시나트라등과 노래를 불러 오페라 가수가 동시에 팝뮤직계에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은 ‘Three Tenors’다.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경쟁은 유명하다. 오페라나 리사이탈 공연에서 관중이 몇 명이나 모였나, 박수와 앵콜이 몇 번 있었나까지 두사람은 신경을 썼다. 톱클래스의 일류급 가수가 함께 노래 부른다는것은 오페라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에 속한다. 우선 이름을 내세워 출연료를 서로 높이기 때문이다.
1990년 극적인 계기가 왔다. 호세 카레라스가 백혈병을 앓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자 카레라스는 자선음악회를 열어 봉사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파바로티에게 찬조출연을 부탁했을때 파바로티는 흔쾌히 승낙했다. 도밍고와는 달리 카레라스에 대해 파바로티는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었으며 카레라스가 백혈병을 앓았을때는 매일 병원에 전화하고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정도다.
이때 이탈리아의 어느 흥행업자가 파바로티에게 “도밍고도 함께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내놓자 자존심 강한 파바로티도 이를 수용했다. 왜냐하면 이 음악회는 자선이 목적이기 때문에 세사람이 똑같이 30만달러씩 출연료를 받기로 해 말썽의 소지가 없었다. 게다가1990년은 이탈리아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해였기 때문에 이 자선음악회를 유서 깊은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궁전에서 열기로 했다.
결과는 세사람 모두 놀랄 정도였다. 1100만장의 CD가 팔려 나갔다. 이는 세계음반사상 기록이다. 이때부터 ‘Three Tenors’라는 상품으로 세사람이 세계 순회공연에 나섰다. 행사는 파바로티팀이 맡아 했는데 자선이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공연하다보니 말이 많았고 결국 주최측이 파바로티에게만 따로 웃돈을 준것이 탄로나 파바로티가 후일 탈세벌금으로 90만달러를 물어내는 망신을 겪었다.
‘Three Tenors’는 오페라계에 새로운 공연형식을 탄생시켰다. 사실 오페라 무대에 한번 서려면 몇달전부터 연습해야하고 공연기간 꼼짝 못하고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수들에게는 울며 겨자먹기가 바로 오페라 출연이다. 그러나 ’Three Tenors’ 공연은 1시간만 고생하면 되는데다 출연료도 오페라의 몇배인 200만달러나 정도니 이런 수지맞는 일이 없다. 또 항상 부르던 노래를 되풀이 하는것이기 때문에 땅짚고 헤엄치기에 해당하는 공연이다. “호랑이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 오페라가수 세계의 불문율이다. 파바로티는 이 불문율을 깼을 뿐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록싱어와도 어울려 공연을 하는 등 갖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말년의 그는 돈의 노예가 된것같은 인상을 풍긴 것이 사실이다. 그의 유산은 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You"ll Never Walk Alone/Three Tenors
파바로티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기록은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는 한 공연에 167번 커튼앵콜과 1시간 15분동안의 박수를 받아 기네스북에 오른 가수다. 또한 공연 여행때는 보통 35개의 가방을 갖고 다닌다. 그의 짐이 많은 이유는 그가 직접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페라 ‘연대의 딸’에서 고음인 하이C를 9번이나 올라가 160년만에 다시 나타난 고음가수라는 기록을 지녔으며 록가수 스팅, U2의 보, 팝싱어 샐린 디온, 프랭크 시나트라등과 노래를 불러 오페라 가수가 동시에 팝뮤직계에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은 ‘Three Tenors’다.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경쟁은 유명하다. 오페라나 리사이탈 공연에서 관중이 몇 명이나 모였나, 박수와 앵콜이 몇 번 있었나까지 두사람은 신경을 썼다. 톱클래스의 일류급 가수가 함께 노래 부른다는것은 오페라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에 속한다. 우선 이름을 내세워 출연료를 서로 높이기 때문이다.
1990년 극적인 계기가 왔다. 호세 카레라스가 백혈병을 앓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자 카레라스는 자선음악회를 열어 봉사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파바로티에게 찬조출연을 부탁했을때 파바로티는 흔쾌히 승낙했다. 도밍고와는 달리 카레라스에 대해 파바로티는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었으며 카레라스가 백혈병을 앓았을때는 매일 병원에 전화하고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정도다.
이때 이탈리아의 어느 흥행업자가 파바로티에게 “도밍고도 함께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내놓자 자존심 강한 파바로티도 이를 수용했다. 왜냐하면 이 음악회는 자선이 목적이기 때문에 세사람이 똑같이 30만달러씩 출연료를 받기로 해 말썽의 소지가 없었다. 게다가1990년은 이탈리아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해였기 때문에 이 자선음악회를 유서 깊은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궁전에서 열기로 했다.
결과는 세사람 모두 놀랄 정도였다. 1100만장의 CD가 팔려 나갔다. 이는 세계음반사상 기록이다. 이때부터 ‘Three Tenors’라는 상품으로 세사람이 세계 순회공연에 나섰다. 행사는 파바로티팀이 맡아 했는데 자선이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공연하다보니 말이 많았고 결국 주최측이 파바로티에게만 따로 웃돈을 준것이 탄로나 파바로티가 후일 탈세벌금으로 90만달러를 물어내는 망신을 겪었다.
‘Three Tenors’는 오페라계에 새로운 공연형식을 탄생시켰다. 사실 오페라 무대에 한번 서려면 몇달전부터 연습해야하고 공연기간 꼼짝 못하고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수들에게는 울며 겨자먹기가 바로 오페라 출연이다. 그러나 ’Three Tenors’ 공연은 1시간만 고생하면 되는데다 출연료도 오페라의 몇배인 200만달러나 정도니 이런 수지맞는 일이 없다. 또 항상 부르던 노래를 되풀이 하는것이기 때문에 땅짚고 헤엄치기에 해당하는 공연이다.
“호랑이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 오페라가수 세계의 불문율이다. 파바로티는 이 불문율을 깼을 뿐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록싱어와도 어울려 공연을 하는 등 갖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말년의 그는 돈의 노예가 된것같은 인상을 풍긴 것이 사실이다. 그의 유산은 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파바로티는 가버렸다.
Three Tenors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