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TV에서 처음 이나영을 본 건 99년 봄 즈음이었다(겨울일 수도 있다). 그 땐 한창 MBC에서 '우리가 정말로 사랑했을까(이하 우정사)'가 방영 중이었는데 TV 옆에서 10시 경에 컴퓨터를 할 때 즈음이면 욘사마와 김혜수와 지금은 롯데의 꽃미남처럼 변해버린 박상민들 속에 섞여서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워낙 드라마에 관심이 없던 터라, 그리고 당시 드라마의 초점은 모두 욘사마, 김혜수, 윤손하에게 맞춰져 있었던 탓에 금방 잊혀질 기억처럼, 그냥 지나쳤었다(그리고 그 당시엔 이름도 몰랐다). 당연히, 이민우와 함께 나오던 CF의 주인공이 이나영이 '우정사'의 욘사마 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퀸이 한창 상영될 즈음, 그리고 라네즈 CF가 완전 물이 올랐을 즈음(그래서 무려 PSB 야구 중계 도중에도 나올 정도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TV에 나오는 눈 디따 큰 연예인이 이나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야구 중계가 끝나고 난 뒤(PSB TV 중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롯데는 지곤 했다..) 가끔씩 퀸을 보면서 눈이 크고 눈망울이 특이한 여자 연예인을 보면서 "참 이상하게 생겼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기억될만한 것은 2001년 이나영이 리알토 MV에 출연한다는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 이나영은 원래 이상하게 생긴 것이다.-_-;;
이나영의 10년 간 활동을 살펴본다면 대부분 2002년을 기점으로 앞과 뒤라고 말할 것이다(마치 주형광의 처음 7년과 마지막 7년 처럼). 이나영 팬 뿐만 아니라 이나영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바로 '네멋대로 해라(이하 네멋)'가 상영된 것이 2002년인 것이다. 그리고 '네멋'이 상영되고 난 다음 이나영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180도에 가깝게 바뀌어 버린다.
필자가 2001년 처음 MCC21에 있는 이나영 공식 팬클럽 'DewRain'에 가입을 했을 때 볼 수 있었던 기사는 대부분이 신인 홍보용 기사, 말하자면 이나영의 어떤 연기자로서의 활동이 아닌 촬영장 에피소드나 별 시덥잖은 가십거리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까지 이나영이라 하면 '얼굴만 예쁘고 연기는 못하는' '연기보다 CF에 능한', 대략 몇 년 전 쯤에 대한민국에 신용카드 남발하듯이 기사에 남발하던 평가가 붙어 있었다. 필자가 MCC21에 처음 가입 했을 당시엔 이 말을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었다. '우정사'에서는 평범한 대사마저도 마치 불편한 옷처럼 어색한 투로 말하기 일쑤였고(특히나 이나영의 평소 말투가 어떤지 안다면 더더욱 어색하게 느껴진다) 2000년 KBS 시트콤 '멋진 친구들'에서는 팬의 입장에서도 조금은 보기 민망한, 그러니까 영어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대사 처리 능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나마 무난하게 나왔다고 한다면 '퀸'과 '카이스트' 정도?
결국 2001년 까지 이나영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CF 힘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가 힘들다. 처음으로 출연한 한국 영화 '천사몽'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흥행에서 박살이 났고 이나영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2001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천사몽'의 경우, 이나영의 골수팬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나영의 변화는 2002년이 아닌 2001년, 바로 '천사몽'부터 시작됐다고 말하고 싶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영화관에서 '천사몽'을 봤고, 그 길로 이나영의 팬이 되기로 했다(아마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은 전국에 나 혼자일 것이다-_-;;). 조연으로 나왔음에도 박은혜를 제치고 여명과 함께 영화 포스터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이나영은 길지 않은 자신의 등장신 내에서 당시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팬이 된 것은 이나영이 이쁘기 때문이었지만, '천사몽' 내에서의 이나영은 볼 만 했다. 적어도 '얼굴만 예쁘고 연기는 못하는' '연기보다 CF에 능한' 연기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그렇다고 '천사몽'만으로 이나영의 연기 실력이 급상승 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왜냐면 극 중에서 대사는 딱 두 마디, 것도 더빙으로 삽입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름 노력을 기울인 액션과 무게 잡는 분위기 속에서 의외의 여성스러움을 연출하는데 있어서는 절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편집 실력에서 이미 말아먹을 징조가 보였다). 정리하자면, '천사몽'은 2001년 이전까지의 이나영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한꺼번에 정리해 버리는, 따라서 흥행에선 참패했지만 앞으로의 활동에 보이지 않는 큰 디딤돌이라고 할 수 있는 꽤나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2002년, 반전
'천사몽' 출연 이후 1년 가까이를 쉰, 쉬었다기 보다는 CF와 MV 촬영에만 집중하던 이나영은 다음 출연작으로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선택한다. 알고 보면 보헤미안 같은 스타일로 선택을 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세간의 평가에는 절대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출연작을 선택하는 이나영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특이할만한 선택은 아니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영화에 출연하나 보다..'라고 받아들였고, 이나영은 열심히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나영에게 내려지는 평가를 뒤집어 놓을 줄이야.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나영'이라는 이름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밴드 팬클럽 게시판에는 "이나영이 출연하는 거 보면 별로 좋지도 않은 영화일 것 같은데..."에 해당하는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타당한 평가였다. 이나영은 거의 1년이 넘도록 연기자 생활을 쉬었지만 CF 모델로서의 몸값은 더더욱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여준 것이 없는 마당에 좋은 평가를 바랄 처지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후아유' 시사회를 전후하여 많은 영화 관련 잡지에는 '이나영이 연기에 눈을 떴다!'라는 평가가 한 편 이상 꼭 실렸다(필자는 이걸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 봤기 때문이다-_-;;). 더 이상 어색한 발음이나 영어책 대사 처리는 하지 않았고, 예전에 비해 좀 더 자연스러워진 감정 표현은 누가봐도 이나영의 연기자로서의 능력이 일취월장 했다고, 정말로 일취월장 했다고 할 만 했다(어쩌면 서인주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이나영은 예전 '카이스트'에서도 그닥 어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군데군데 조금은 억지로 꾸며낸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조금은'이라는 말이 '대부분'이라는 말로 대체되던 시절에 비하면 별로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흥행에는 역시 참패했다(30만). 후아유가 개봉한 2002년 여름은 한.일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시절인 것이었다...
후아유가 개봉하기 직전, 이나영과 조승우가 부산 서면 롯데 백화점에 사인회를 가졌었다. 당시 시험기간 중 첫 번째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끝나자마자 서면으로 달려간 필자는 30번째 쯤에 서서 이나영의 사인(과 조승우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 깜짝 놀란 것이, 원래 DewRain의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팬클럽 게시판에 글 몇 번 썼었던 내 이름을 이나영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러면 안 되지만, 정말 그러면 안 되지만 이나영의 말에 대한 진정성을 꽤 오랫동안 의심했었는데 이나영이 팬들을 기억해 주는 능력을 확인하고 난 뒤 그 의심을 싹 지워 버렸다(내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기억을 그리 잘하지 못한 편에 속한다..). 보기는 2002년 2월 22일 생일파티때 봤었지만, 그 땐 이나영이 몸이 많이 안좋아서 사인회를 하지 않았던 터라 직접 대면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사인회 때 느꼈던 건, 이나영 정말 이쁘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왕친절하다, 두 가지 정도..
'후아유'는 이나영의 연기 실력 이외에, 또 다른 하나의 변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나영의 스타일 변신이었다! 이건 이나영도 직접 밝힌 적이 있는 내용인데, 1998년 데뷔 이후 이나영은 오랫동안 긴 생머리를 고수했다(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다가 2001년 초에 라네즈에서 단발머리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것은 이나영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라네즈의 스타일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스타일이 변한 건, 즉 긴 생머리가 아닌 다른 스타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찰랑찰랑 웨이브를 달고 나온 '후아유'가 처음인 것이다. 그리고, '네멋'에서는 자신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헤어 스타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된다('네멋' 이후로 디지털 퍼머가 엄청 유행한 걸로 알고 있다).
'네멋'에 대해선 굳이 길게 설명을 붙일 생각은 없다. 사실 필자는 '네멋'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으며, 챙겨 봤다 하더라도 필자보다 훨씬 뛰어난 매니아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필자가 쓴다고 해서 특별한 글이 나올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정리하고 싶은 걸 추린다면, 이나영은 '네멋'을 통해 연예인 세계에서 그 깨기 힘들다던 '유망주'라는 껍질을 완전히 깨버렸고(한 번 '연기 못하는 연기자'라는 딱지가 붙으면 특히 여자 연예인은 자의든 타의든 그거 떼내기 힘들다..), 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주연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네멋' 1화와 2화의 아직 벗지 못한 예전의 '이나영 티(예를 들면 1화에서 입원한 연지에게 노래 불러 달라고 투정 부리는 모습이나, 2화에서 입에 맞지도 않는 'ㅅㄲ'라는 단어를 섞으며 복수를 원망할 때)'를 빼면 뭐 더 이상 논할 도리가 없...
이나영이 있었던 지난 10년 - 1
1. 초창기 - 순탄치는 않았던 시절
필자가 TV에서 처음 이나영을 본 건 99년 봄 즈음이었다(겨울일 수도 있다). 그 땐 한창 MBC에서 '우리가 정말로 사랑했을까(이하 우정사)'가 방영 중이었는데 TV 옆에서 10시 경에 컴퓨터를 할 때 즈음이면 욘사마와 김혜수와 지금은 롯데의 꽃미남처럼 변해버린 박상민들 속에 섞여서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워낙 드라마에 관심이 없던 터라, 그리고 당시 드라마의 초점은 모두 욘사마, 김혜수, 윤손하에게 맞춰져 있었던 탓에 금방 잊혀질 기억처럼, 그냥 지나쳤었다(그리고 그 당시엔 이름도 몰랐다). 당연히, 이민우와 함께 나오던 CF의 주인공이 이나영이 '우정사'의 욘사마 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퀸이 한창 상영될 즈음, 그리고 라네즈 CF가 완전 물이 올랐을 즈음(그래서 무려 PSB 야구 중계 도중에도 나올 정도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TV에 나오는 눈 디따 큰 연예인이 이나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야구 중계가 끝나고 난 뒤(PSB TV 중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롯데는 지곤 했다..) 가끔씩 퀸을 보면서 눈이 크고 눈망울이 특이한 여자 연예인을 보면서 "참 이상하게 생겼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기억될만한 것은 2001년 이나영이 리알토 MV에 출연한다는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 이나영은 원래 이상하게 생긴 것이다.-_-;;
이나영의 10년 간 활동을 살펴본다면 대부분 2002년을 기점으로 앞과 뒤라고 말할 것이다(마치 주형광의 처음 7년과 마지막 7년 처럼). 이나영 팬 뿐만 아니라 이나영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바로 '네멋대로 해라(이하 네멋)'가 상영된 것이 2002년인 것이다. 그리고 '네멋'이 상영되고 난 다음 이나영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180도에 가깝게 바뀌어 버린다.
필자가 2001년 처음 MCC21에 있는 이나영 공식 팬클럽 'DewRain'에 가입을 했을 때 볼 수 있었던 기사는 대부분이 신인 홍보용 기사, 말하자면 이나영의 어떤 연기자로서의 활동이 아닌 촬영장 에피소드나 별 시덥잖은 가십거리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까지 이나영이라 하면 '얼굴만 예쁘고 연기는 못하는' '연기보다 CF에 능한', 대략 몇 년 전 쯤에 대한민국에 신용카드 남발하듯이 기사에 남발하던 평가가 붙어 있었다. 필자가 MCC21에 처음 가입 했을 당시엔 이 말을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었다. '우정사'에서는 평범한 대사마저도 마치 불편한 옷처럼 어색한 투로 말하기 일쑤였고(특히나 이나영의 평소 말투가 어떤지 안다면 더더욱 어색하게 느껴진다) 2000년 KBS 시트콤 '멋진 친구들'에서는 팬의 입장에서도 조금은 보기 민망한, 그러니까 영어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대사 처리 능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나마 무난하게 나왔다고 한다면 '퀸'과 '카이스트' 정도?
결국 2001년 까지 이나영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CF 힘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가 힘들다. 처음으로 출연한 한국 영화 '천사몽'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흥행에서 박살이 났고 이나영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2001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천사몽'의 경우, 이나영의 골수팬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나영의 변화는 2002년이 아닌 2001년, 바로 '천사몽'부터 시작됐다고 말하고 싶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영화관에서 '천사몽'을 봤고, 그 길로 이나영의 팬이 되기로 했다(아마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은 전국에 나 혼자일 것이다-_-;;). 조연으로 나왔음에도 박은혜를 제치고 여명과 함께 영화 포스터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이나영은 길지 않은 자신의 등장신 내에서 당시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팬이 된 것은 이나영이 이쁘기 때문이었지만, '천사몽' 내에서의 이나영은 볼 만 했다. 적어도 '얼굴만 예쁘고 연기는 못하는' '연기보다 CF에 능한' 연기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그렇다고 '천사몽'만으로 이나영의 연기 실력이 급상승 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왜냐면 극 중에서 대사는 딱 두 마디, 것도 더빙으로 삽입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름 노력을 기울인 액션과 무게 잡는 분위기 속에서 의외의 여성스러움을 연출하는데 있어서는 절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편집 실력에서 이미 말아먹을 징조가 보였다). 정리하자면, '천사몽'은 2001년 이전까지의 이나영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한꺼번에 정리해 버리는, 따라서 흥행에선 참패했지만 앞으로의 활동에 보이지 않는 큰 디딤돌이라고 할 수 있는 꽤나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2002년, 반전
'천사몽' 출연 이후 1년 가까이를 쉰, 쉬었다기 보다는 CF와 MV 촬영에만 집중하던 이나영은 다음 출연작으로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선택한다. 알고 보면 보헤미안 같은 스타일로 선택을 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세간의 평가에는 절대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출연작을 선택하는 이나영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특이할만한 선택은 아니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영화에 출연하나 보다..'라고 받아들였고, 이나영은 열심히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나영에게 내려지는 평가를 뒤집어 놓을 줄이야.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나영'이라는 이름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밴드 팬클럽 게시판에는 "이나영이 출연하는 거 보면 별로 좋지도 않은 영화일 것 같은데..."에 해당하는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타당한 평가였다. 이나영은 거의 1년이 넘도록 연기자 생활을 쉬었지만 CF 모델로서의 몸값은 더더욱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여준 것이 없는 마당에 좋은 평가를 바랄 처지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후아유' 시사회를 전후하여 많은 영화 관련 잡지에는 '이나영이 연기에 눈을 떴다!'라는 평가가 한 편 이상 꼭 실렸다(필자는 이걸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 봤기 때문이다-_-;;). 더 이상 어색한 발음이나 영어책 대사 처리는 하지 않았고, 예전에 비해 좀 더 자연스러워진 감정 표현은 누가봐도 이나영의 연기자로서의 능력이 일취월장 했다고, 정말로 일취월장 했다고 할 만 했다(어쩌면 서인주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이나영은 예전 '카이스트'에서도 그닥 어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군데군데 조금은 억지로 꾸며낸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조금은'이라는 말이 '대부분'이라는 말로 대체되던 시절에 비하면 별로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흥행에는 역시 참패했다(30만). 후아유가 개봉한 2002년 여름은 한.일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시절인 것이었다...
후아유가 개봉하기 직전, 이나영과 조승우가 부산 서면 롯데 백화점에 사인회를 가졌었다. 당시 시험기간 중 첫 번째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끝나자마자 서면으로 달려간 필자는 30번째 쯤에 서서 이나영의 사인(과 조승우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 깜짝 놀란 것이, 원래 DewRain의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팬클럽 게시판에 글 몇 번 썼었던 내 이름을 이나영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러면 안 되지만, 정말 그러면 안 되지만 이나영의 말에 대한 진정성을 꽤 오랫동안 의심했었는데 이나영이 팬들을 기억해 주는 능력을 확인하고 난 뒤 그 의심을 싹 지워 버렸다(내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기억을 그리 잘하지 못한 편에 속한다..). 보기는 2002년 2월 22일 생일파티때 봤었지만, 그 땐 이나영이 몸이 많이 안좋아서 사인회를 하지 않았던 터라 직접 대면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사인회 때 느꼈던 건, 이나영 정말 이쁘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왕친절하다, 두 가지 정도..
'후아유'는 이나영의 연기 실력 이외에, 또 다른 하나의 변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나영의 스타일 변신이었다! 이건 이나영도 직접 밝힌 적이 있는 내용인데, 1998년 데뷔 이후 이나영은 오랫동안 긴 생머리를 고수했다(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다가 2001년 초에 라네즈에서 단발머리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것은 이나영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라네즈의 스타일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스타일이 변한 건, 즉 긴 생머리가 아닌 다른 스타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찰랑찰랑 웨이브를 달고 나온 '후아유'가 처음인 것이다. 그리고, '네멋'에서는 자신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헤어 스타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된다('네멋' 이후로 디지털 퍼머가 엄청 유행한 걸로 알고 있다).
'네멋'에 대해선 굳이 길게 설명을 붙일 생각은 없다. 사실 필자는 '네멋'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으며, 챙겨 봤다 하더라도 필자보다 훨씬 뛰어난 매니아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필자가 쓴다고 해서 특별한 글이 나올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정리하고 싶은 걸 추린다면, 이나영은 '네멋'을 통해 연예인 세계에서 그 깨기 힘들다던 '유망주'라는 껍질을 완전히 깨버렸고(한 번 '연기 못하는 연기자'라는 딱지가 붙으면 특히 여자 연예인은 자의든 타의든 그거 떼내기 힘들다..), 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주연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네멋' 1화와 2화의 아직 벗지 못한 예전의 '이나영 티(예를 들면 1화에서 입원한 연지에게 노래 불러 달라고 투정 부리는 모습이나, 2화에서 입에 맞지도 않는 'ㅅㄲ'라는 단어를 섞으며 복수를 원망할 때)'를 빼면 뭐 더 이상 논할 도리가 없...
[출처] 이나영이 있었던 지난 10년 - 1|작성자 핫둘셋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