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넜다. 미국 정부와의 신의를 지키려고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강 건너편에서 잡아끈 것은 부시 정부다. 미국 측은 이번 추가 협상의 공식 합의서를 고시 공포와 연계시키면서까지 강한 압박 전술로 나왔다. 원래 합의됐던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고시)을 발효할 때만 미국 측이 서명한 합의 서한을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주권 국가 간 협상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무례한 강수로 한국 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능력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기도 하다. 정부 여당은 이번 추가 협상 결과를 놓고 자화자찬했으나 밖에서는 누가 봐도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쇠고기 추가 협상 결과와 관련, 백악관 대변인(Dana Perino) 역시 23일 정례 브리핑 말미에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겼었다. "우리는 과연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We'll see if they-i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able to move forward on that.)"
루비콘 강을 건넌 MB
결국 이명박 정부는 고시 공포로 백악관의 기대에 부응하며 전진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들 눈에도 그게 전진으로 비칠까? 하긴, 전진은 전진이되 어느 쪽으로의 전진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지난 6월10일 대집회 때 광화문에 축조된 '명박산성' 벽에 이런 안내판이 붙었었다.
"이곳은 국경선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미국의 코리아주입니다. USA 코리아주지사 이명박."
대다수 국민들 눈에는 이명박 정부가 명박산성의 국경선을 넘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은 명백히 '비행착각'에 의한 위험한 월경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끔 겪는 착시와 방향 착각, 즉 공간정위상실(spatial disorientation)인 것이다. 지난 칼럼에 썼듯이, 비행착각이 위험한 것은 자기 과신이다. 계기판도 무시하고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오로지 자신의 육감적 판단만이 옳다고 믿고 일로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끝은? 처참한 말로, 즉 추락일 뿐이다.
협상에서의 신의는 물론 중요하다. 일국의 정부로서 대외적 체면과 평판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협상의 경우다. 잘못된 협상이었음이 판명 났는데도 신의와 체면 때문에 바로잡지 못하고 미적대거나 미봉책만 고수하면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국민들은 배신감을 씹으며 등지게 된다. 그렇다고 상대국과의 신의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보았듯이 더 손상될 뿐이다. 두고 보라. 앞으로 문제만 더 생기고 악화될 것이다.
촛불의 심지는 국민적 자존심
지난 근 두 달간 촛불과 함께 타오르는 것은 국민의 분노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 미국에게 내줄 것, 안 내줄 것 다 내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다. 어처구니없는 협상 때문에 좋아하는 설렁탕, 냉면, 곱창구이를 못 먹게 되고, 어린 자녀 그리고 앞길 창창한 청소년들의 미래가 돌연 잿빛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을 것이란 데 대한 분노다.
거듭되는 허위와 기만으로 국민들을 속이다가 들통 나도 천연덕스러운 모습에서 오는 허탈한 분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외치던 '재협상'의 함성을 외면하더니 끝내 추가 협상의 졸렬한 성과로 "이제 다 됐잖느냐"며 되레 기세등등하게 반격을 꾀하는 데 대한 분노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촛불의 분노 리스트는 한량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짓이겨진 데 대한 분노다. 한국의 촛불 현상에 대해 는 지난 6월 12일 '한국의 분노, 쇠고기 그 이상(An Anger in Korea over More Than Beef, 6/12)'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민족주의 혹은 반미감정으로 해석한 바 있다.
외견상 그리 보일 수도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 둘 다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반미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정의롭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부시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지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나 반감은 결코 아니다.
촛불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촛불을 태우는 파라핀이 먹을거리 안전을 지키려는 본능적 의지라면, 촛불의 심지가 되는 것은 한국인들의 국민적-국가적 자존심이다. 부시 정부에 조공하듯 국민의 식탁 안전을 갖다 바친 것이 국민들의 자존감을 짓뭉개며 공분케 한 것이다. 안전의 욕구와 자존감의 욕구는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욕구(Basic Human Needs)다.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반미 같은 정치적 문제도 아니다.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본능의 발로일 뿐이다. 보편적인 욕구이기에 누구에게나 폭넓게 공감되고,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강력하고 오래간다. 끝내 촛불이 이길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적 욕구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침해 상태가 해소될 때까지,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갈등은 지속된다. 그런 보편적 욕구의 추구는 정당한 것이기에 결국 이기게 돼 있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고, 갈등해결학의 원리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조치를 속히 재고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추가 협상 결과, 국민들에게 거부될 수밖에 없는 까닭
촛불을 구성하는 이 두 가지 핵심 욕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추가 협상의 과정과 결과는 정부 측 홍보와 달리 낙제점이다. 안전의 욕구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뿐 아니라 추가 협상 추진 과정에서 국민적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가 협상이 쇠고기 안전성 면에서 턱없이 미흡한 것은 '박상표 칼럼' 등을 통해 충분히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추가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의 자존심이 상하게 됐는지 하는 것만 살펴보자.
무릇 일을 함에 있어서 "무엇을"(what, 본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how, 과정)이다. 외국과 협상을 할 때도 그 결과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당당하게 제대로 임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쇠고기 합의가 당국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국민들의 공분을 크게 자아낸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기 위해 그 후 국민들이 요구한 것도 "당당하게 재협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거부하고 꼼수와 편법에 의존해 국민들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했다. 결국 여론에 밀려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하고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추진하게 됐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추가 협상의 핵심은 민간 자율 규제 도입인데, 이 역시 대다수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다분히 굴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권 국가의 정부라면, 과학적 연구 결과, 국제 규범, 외국 사례, 우리의 음식 문화 등 많은 국민들에게 이미 공부가 된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우리는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된 쇠고기만 수입하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안전성문제는 전혀 제기하지 못하고 대신 민간 업자들을 앞세웠다. 일부 쇠고기 수입업체들로 최근 조직된 한국수입육협의회는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도 안전하다고 믿지만, 현재 시장 조건상(국민들의 불신) 과도적 조치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겠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관련 기관에 배포했다.
그런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미국 육류수출연맹 등 3개 축산 단체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출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 농무부 및 무역대표부에 보냈다(6월 20일). 이를 토대로 미국 정부는 '품질 시스템 평가(QSA)' 프로그램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출되도록 지원(보증이 아니라)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추가 협상' 결과 발표문에서, 양국 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수출 쇠고기 연령 제한' 지원은 하지만 "한국의 수입업체들과 미국 수출업체들은 미국 쇠고기가 연령에 관계없이 안전하다고 확인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도 한국 국민들이 못 믿으니 30개월 미만으로 자율 규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무슨 큰 선심 쓰듯 한 것이다. 아울러 미국 측은 이번 합의가 '경과 조치'(as a transitional measure)란 점을 극구 강조하고 있는데, 발표문 속의 이 두 대목은 조만간의 전면 개방을 위한 사전 포석 차원에서 깔아놓은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한국의 수입육협의회, 미국 육류수출협회, 그리고 이번 추가협상 결과 발표문(미 무역대표부의 영문판)를 읽다보면 한국 국민들은 졸지에 '무지몽매한 꼴통'이 돼버린 느낌이다. "사실 안전한 것인데도 막무가내로 불신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당당한 국민의 자존심이 끝내 바로잡을 것이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홀로 적진에 들어가 당당한 기개로 소손녕의 대군을 물리친 서희의 담판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반면 빗나간 탐욕 혹은 잘못된 판단으로 민족에게 멍에를 지우고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이들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쇠고기 협상으로 조상과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을 기록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운 기록이 오래가도록 할 순 없다. 바로잡아야 한다.
"정정당당 코리아"를 목 놓아 외치던 국민들이다. 무릎 꿇고 살기를 거부하고 부정과 불의에 분연히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룬 시민들이다. 세계 어디 가도 꿀릴 것 없이 자랑스럽고 당당한 대한미국을 만들고자 애써왔다. 그렇게 힘들게 가꿔온 삶이고 나라이기에 더 살갑고 소중하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당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대접받고자 한다. 우리 국민들의 긍지와 자존심은 그만큼 근거가 있고 당당하다. 그만큼 힘이 세다. 누구든 그것을 짓밟으려 한다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종국엔 큰 상처 입고 물러나게 될 뿐이다.
강영진/편집위원·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펌] 이명박 정부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 프레시안
2BM가 요번 고시를 강행한 배경..
http://cynews.cyworld.com/Service/news/ShellView.asp?ArticleID=2008062418283544112&LinkID=8
이명박 정부는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넜다. 미국 정부와의 신의를 지키려고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강 건너편에서 잡아끈 것은 부시 정부다. 미국 측은 이번 추가 협상의 공식 합의서를 고시 공포와 연계시키면서까지 강한 압박 전술로 나왔다. 원래 합의됐던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고시)을 발효할 때만 미국 측이 서명한 합의 서한을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주권 국가 간 협상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무례한 강수로 한국 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능력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기도 하다. 정부 여당은 이번 추가 협상 결과를 놓고 자화자찬했으나 밖에서는 누가 봐도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쇠고기 추가 협상 결과와 관련, 백악관 대변인(Dana Perino) 역시 23일 정례 브리핑 말미에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겼었다. "우리는 과연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We'll see if they-i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able to move forward on that.)"
루비콘 강을 건넌 MB
결국 이명박 정부는 고시 공포로 백악관의 기대에 부응하며 전진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들 눈에도 그게 전진으로 비칠까? 하긴, 전진은 전진이되 어느 쪽으로의 전진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지난 6월10일 대집회 때 광화문에 축조된 '명박산성' 벽에 이런 안내판이 붙었었다.
"이곳은 국경선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미국의 코리아주입니다. USA 코리아주지사 이명박."
대다수 국민들 눈에는 이명박 정부가 명박산성의 국경선을 넘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은 명백히 '비행착각'에 의한 위험한 월경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끔 겪는 착시와 방향 착각, 즉 공간정위상실(spatial disorientation)인 것이다. 지난 칼럼에 썼듯이, 비행착각이 위험한 것은 자기 과신이다. 계기판도 무시하고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오로지 자신의 육감적 판단만이 옳다고 믿고 일로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끝은? 처참한 말로, 즉 추락일 뿐이다.
협상에서의 신의는 물론 중요하다. 일국의 정부로서 대외적 체면과 평판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협상의 경우다. 잘못된 협상이었음이 판명 났는데도 신의와 체면 때문에 바로잡지 못하고 미적대거나 미봉책만 고수하면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국민들은 배신감을 씹으며 등지게 된다. 그렇다고 상대국과의 신의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보았듯이 더 손상될 뿐이다. 두고 보라. 앞으로 문제만 더 생기고 악화될 것이다.
촛불의 심지는 국민적 자존심
지난 근 두 달간 촛불과 함께 타오르는 것은 국민의 분노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 미국에게 내줄 것, 안 내줄 것 다 내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다. 어처구니없는 협상 때문에 좋아하는 설렁탕, 냉면, 곱창구이를 못 먹게 되고, 어린 자녀 그리고 앞길 창창한 청소년들의 미래가 돌연 잿빛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을 것이란 데 대한 분노다.
거듭되는 허위와 기만으로 국민들을 속이다가 들통 나도 천연덕스러운 모습에서 오는 허탈한 분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외치던 '재협상'의 함성을 외면하더니 끝내 추가 협상의 졸렬한 성과로 "이제 다 됐잖느냐"며 되레 기세등등하게 반격을 꾀하는 데 대한 분노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촛불의 분노 리스트는 한량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짓이겨진 데 대한 분노다. 한국의 촛불 현상에 대해 는 지난 6월 12일 '한국의 분노, 쇠고기 그 이상(An Anger in Korea over More Than Beef, 6/12)'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민족주의 혹은 반미감정으로 해석한 바 있다.
외견상 그리 보일 수도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 둘 다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반미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정의롭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부시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지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나 반감은 결코 아니다.
촛불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촛불을 태우는 파라핀이 먹을거리 안전을 지키려는 본능적 의지라면, 촛불의 심지가 되는 것은 한국인들의 국민적-국가적 자존심이다. 부시 정부에 조공하듯 국민의 식탁 안전을 갖다 바친 것이 국민들의 자존감을 짓뭉개며 공분케 한 것이다. 안전의 욕구와 자존감의 욕구는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욕구(Basic Human Needs)다.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반미 같은 정치적 문제도 아니다.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본능의 발로일 뿐이다. 보편적인 욕구이기에 누구에게나 폭넓게 공감되고,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강력하고 오래간다. 끝내 촛불이 이길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적 욕구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침해 상태가 해소될 때까지,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갈등은 지속된다. 그런 보편적 욕구의 추구는 정당한 것이기에 결국 이기게 돼 있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고, 갈등해결학의 원리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조치를 속히 재고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추가 협상 결과, 국민들에게 거부될 수밖에 없는 까닭
촛불을 구성하는 이 두 가지 핵심 욕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추가 협상의 과정과 결과는 정부 측 홍보와 달리 낙제점이다. 안전의 욕구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뿐 아니라 추가 협상 추진 과정에서 국민적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가 협상이 쇠고기 안전성 면에서 턱없이 미흡한 것은 '박상표 칼럼' 등을 통해 충분히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추가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의 자존심이 상하게 됐는지 하는 것만 살펴보자.
무릇 일을 함에 있어서 "무엇을"(what, 본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how, 과정)이다. 외국과 협상을 할 때도 그 결과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당당하게 제대로 임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쇠고기 합의가 당국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국민들의 공분을 크게 자아낸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기 위해 그 후 국민들이 요구한 것도 "당당하게 재협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거부하고 꼼수와 편법에 의존해 국민들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했다. 결국 여론에 밀려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하고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추진하게 됐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추가 협상의 핵심은 민간 자율 규제 도입인데, 이 역시 대다수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다분히 굴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권 국가의 정부라면, 과학적 연구 결과, 국제 규범, 외국 사례, 우리의 음식 문화 등 많은 국민들에게 이미 공부가 된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우리는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된 쇠고기만 수입하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안전성문제는 전혀 제기하지 못하고 대신 민간 업자들을 앞세웠다. 일부 쇠고기 수입업체들로 최근 조직된 한국수입육협의회는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도 안전하다고 믿지만, 현재 시장 조건상(국민들의 불신) 과도적 조치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겠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관련 기관에 배포했다.
그런 요청에 응하는 형식으로 미국 육류수출연맹 등 3개 축산 단체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출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 농무부 및 무역대표부에 보냈다(6월 20일). 이를 토대로 미국 정부는 '품질 시스템 평가(QSA)' 프로그램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출되도록 지원(보증이 아니라)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추가 협상' 결과 발표문에서, 양국 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수출 쇠고기 연령 제한' 지원은 하지만 "한국의 수입업체들과 미국 수출업체들은 미국 쇠고기가 연령에 관계없이 안전하다고 확인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도 한국 국민들이 못 믿으니 30개월 미만으로 자율 규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무슨 큰 선심 쓰듯 한 것이다. 아울러 미국 측은 이번 합의가 '경과 조치'(as a transitional measure)란 점을 극구 강조하고 있는데, 발표문 속의 이 두 대목은 조만간의 전면 개방을 위한 사전 포석 차원에서 깔아놓은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한국의 수입육협의회, 미국 육류수출협회, 그리고 이번 추가협상 결과 발표문(미 무역대표부의 영문판)를 읽다보면 한국 국민들은 졸지에 '무지몽매한 꼴통'이 돼버린 느낌이다. "사실 안전한 것인데도 막무가내로 불신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당당한 국민의 자존심이 끝내 바로잡을 것이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홀로 적진에 들어가 당당한 기개로 소손녕의 대군을 물리친 서희의 담판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반면 빗나간 탐욕 혹은 잘못된 판단으로 민족에게 멍에를 지우고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이들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쇠고기 협상으로 조상과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을 기록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운 기록이 오래가도록 할 순 없다. 바로잡아야 한다.
"정정당당 코리아"를 목 놓아 외치던 국민들이다. 무릎 꿇고 살기를 거부하고 부정과 불의에 분연히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룬 시민들이다. 세계 어디 가도 꿀릴 것 없이 자랑스럽고 당당한 대한미국을 만들고자 애써왔다. 그렇게 힘들게 가꿔온 삶이고 나라이기에 더 살갑고 소중하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당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대접받고자 한다. 우리 국민들의 긍지와 자존심은 그만큼 근거가 있고 당당하다. 그만큼 힘이 세다. 누구든 그것을 짓밟으려 한다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종국엔 큰 상처 입고 물러나게 될 뿐이다.
강영진/편집위원·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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