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사랑이라니 선영아

백소망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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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 사랑이라니 선영아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 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사람도 없는 막차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집에까지 가는 동안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한없이 웃었던 기억.

아파트 근처 으슥한 벤치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어색한 마음에 둘이서 처음 입맞췄던 기억.

자존심 때문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다가

되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그만 혼자서 울어버린 기억.

사랑이 끝난 뒤 지도에 나오는 길과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지 않는 길과,

가로수가 드리워진 길과 어두운 하늘만

보이던 길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기억.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온전하게, 그 사람에게 소위 말하는 '올인 이란 걸 하게 된다.

예전에 많이 좋아하던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을 좋아하면서 뼈저리게 배운 것이었다.

 

연애는 '조금 더 사랑하는 쪽이 힘들다' 라는 것.

많이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냉정을 찾기 힘들어지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어하고 확인하고 싶어한다.

구속하려 들고 항상 자신이 먼저이길 원한다.

그런 감정이라는 것이 연날리기 하듯 풀었다 놨다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연인들이 싸우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고

어느 노래가사처럼 계절처럼 사랑과 만남이

되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말투부터, 행동이며 생각.. 하다못해 손톱 깍는 방법까지

지독하게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바라봐도 멋진 사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랑을 하고 싶지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럴 겨를도 틈도 없다.

많이 지쳐서 지금은 연애보다는

나 스스로를 다져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김연수 - 사랑이라니 선영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