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_ 스펀지 & 패러다임 쉬프트

홍은화2008.06.27
조회84

미발행 공개로 바로 이전 페이퍼를 써 내려가다가 감당이 안되서 새로 씁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이 페이퍼 다음호에 [ 가나라다라마바사 - 내 페이퍼의 변화: 용어사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에 대해서는 미발행 공개로 작성한 (옆의 Home 클릭후, 목록 클릭하면 나옵니다) 부분을 참조해 주세요.

 

( 이번 페이퍼에 등장할 용어 : 패러다임, 패러다임 쉬프트, 상상계-> 상징계 -> 실재계)

 

 

해프닝 페이퍼에 밝혔 듯 , 이번 페이퍼는 허문영님의 씨네 21의 글을 읽다가 관점의 차이가 달라지는 부분때문에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목차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 허문영님의 쿵푸팬더에 대한 전문

( 허문영님은 인디아나 존스와 연관지어 이야기 해 주셨는데 쿵푸팬더가 등장하기 이전 글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제 658호. 전영객잔 ,111쪽  )

 

2. 관점의 차이가 달라진 부분과 그 이유 (이 부분은 " 네모네모 스폰지 송 " 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만화를 보신 분들에게 유용할 예가 될 것 같습니다.)

 

 

 

1. 허문영님의 쿵푸팬더에 대한 전문 :

 

[ 온갖 동물들이 쿵푸 대결을 벌이는 이 혼성장르 애니메이션의 성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한심한 낙오자가 공동체의 영웅이자 지상 최강자가 된다는 극히 순진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포의 음성을 맡은 잭 블랙의 목소리 연기보다 여기서 더 훌륭한 건 없는 것 같다.

 

중략. 이부분이 궁금하시면 씨네21 로....(링크 클릭)

 

(1-1)는 영웅의 완성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실제적인 성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도상은 무협장르에서 빌려왔음에도 오히려 고전적 서부극에 가깝다. 무협장르의 영리한 미국식 번안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좀더 흥미로운 점은  다른 데있다. 나는 이영화를 보면서 이상한 점 하나 때문에 계속 긴장을 느꼈다.

 

그것은 판다인 포의 아버지가 오리라는 사실이다. 오리의 아들이 판다가 될 수 있다면 사마귀가 그 몸집 그대로((3)"어! 당신은 당신 인형과 크기가 똑같군요" 라고 포는 말한다) 강호의 절정고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는 (4)종의 차이가 인간적 성향 혹은 소속 집단의 차이의 비유로 받아들여지는 의인동물 애니메이션의 발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렇다 해도 왜 굳이 판다와 오리를 부자로 설정했을까.

 

그것은 비유로서의 차이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과도한 설정 아닐까.

 

 따라서 이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용문서에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낙담한 뒤 집으로 돌아온) 포가 아버지에게 " 나는 아무래도 아버지 아들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할때, 즉 약속된 비유로서의 차이가 존재론적 차이로 인지되려는 순간,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것에 긍정적으로 답하면서 비유로서의 차이로 형성된 이 동물 공동체의 상징적 질서가 붕괴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한순간이다.

 

이때, 오리아버지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1-2)" 너에게 말해줄 게 있는데... 실은 국물의 비법은 없다는 거야."

 

 이 뜬금없는 대답은 '너는 틀림없는 내 아들이다'라는 안심의 확인을 뛰어넘어 친부(오리아버지)와 양부(거북이 대사부)의 법을 동일화한다. 용문서의 비급과 국물 비법은 똑같이 없는 것이다. 없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문서가 사실상 거울이라는 점이다.

 

마치 정신분석학을 원용하려는 듯 ,는 거울로서의 용문서에 비친 자기 모습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 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지점까지 갔다가, 모든 차이를 일거에 무효화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자아 이상형으로 되돌이켜 인지하는 (2) 상상계에로의 퇴행 혹은 그때의 충만함에 대한 향수. 그곳은 스필버그가 한동안 머물렀으나 오래전에 떠나온 영화적 장소이기도하다.

 

판다 아들과 오리 아버지의 이 이상한 문답보다 그 장소의 여전한 매혹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는 힘들 것이다.  ]

 

 

- 요약하자면 < 쿵푸팬더 > " 상상계로의 퇴행에 대한 향수 "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즉 " 나 (그리고 나와 동일시 대상이 되는 어머니) " 의 중심으로 인지되던 - 거울속 나를 인지하게 되던 순간의 그때처럼 영화에서도 용문서가 거울로 작용한다 - 그 때의 충만함(자존감의 최고치이던 때)에  대한 향수.

 

 

2. 관점의 차이가 달라진 부분과 나의 관점

 

: 그런데 나는 빨간색 글 (오리 아버지 = (판다인) 포의 아버지인 오리) 이후에  가슴 두근거림에 대한 공감이 깨지고야 말았다.

 

 

 그때까지는 (이 페이퍼전 미발행글에 썼듯 ) 나도 그 이상한 점 때문에 긴장을 느꼈던 것이다.

 

허문영님의 분석은 조금 아쉬웠다. " 거울 " 에 관한 부분이 만일 내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 그럴싸한데~ " 에서 그쳤을 것이다. ( 그럴싸한데~에 관한 감정적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든 평론가들을 존경하며, 동경한다)

 

아니, "그럴싸한데~"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1번에 쓴 허문영님의 글에는 오류가 두가지 숨어있기 때문이다.

 

(1-1),(1-2)과 (2)에 대한 부분이다.

 

이미 서두에 (1-2) 공동체 회복(상징계)이라는 결론을 두고, (2)" 상상계로의 퇴행 " 이라는 것은 논리적 오류가 따르기 때문이다.

 

만일 서두에 그런 결론이 없이 상징계로 갔다가 "상상계로 퇴행 " 했다라고 한다면 그건 논리적 오류가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1-2) " 국물의 비법은 없다는 거야 " 라는 것에서 간과해야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포가 어떻게 상징계의 질서에 입문했나 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비법전수는 " 언어와 기호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규범을 습득하는 지점"으로의 상징계.

 

허문영님께서는 그 비법이 곧 양부의 법과 대사부의 법이 동일화 되는 지점이고, 비법이 없다는 사실보다 용문서가 사실상 " 거울 "이라는 점이다 (상상계로의 퇴행) 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 국물의 비법은 없다는 거야 " 라는 지점에서 "비법이 없다는 거야 " 로 흘러 거울(상상계로의 퇴행)로 가는 과정으로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서 " 비법이 없다 "라는  비법이 전수되는  과정에 관점이 옮겨졌다.

 

(내가 이전에 굳이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실재계만을 쓰지 않고 프로이드의 성적 심리 발달 과정을 쓴 이유도 그때문이다. " 남근기(-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거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버지의 사랑과 승인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본받고 성격과 가치를 내면화 하는시기)와 생식기(남근기의 심리가 다시 드러남)"에 관한 발달 심리이론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 이 이야기에서 성적 심리에 초점을 두지말고 어떻게 아이가 상징계로 입문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자. 그리하여 나는 프로이드(의 남근기)와 라캉 (상징계두 심리학자의 용어를 합성하여 사용해야 했다. 라캉이 프로이드의 수제자 이자 새로운 재정립- 리메이크? ^^ 아 놔~ 용어의 한계를 늦기면서 막 웃김. 암튼, 프로이드가 만든 이론을 라캉화 시킨 것이니까- 을 했던 이유라는 것은 모두 다 알듯이.)

 

 

 내가 허문영님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가장 구체적 예가 있다.

 

만일, 정말 " 상상계로의 퇴행 " 이라면 아버지의 비법을 통해서 깨달음이 이루어 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푸의 손가락 권법(?)으로 타이렁을 이겨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은 포가 타이렁을 그 육중한 엉덩이로 얼굴을 깔아 뭉갰을 때이다.

 

포의 엉덩이와 그 무게에 어찌하지 못하는 타이렁의 얼굴이 슬로우 모션 되면서,

 

-예고 때나 영화소개에서 한번도 아니 가벼운 썩소조차 짓지 않던 나는 슬로우 모션이 진행 되면서- 유진이와 현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엉덩이가 터질 듯 점점 커지는 것처럼 , 나 역시  점점 더 크게 웃게 되었다.

 

물론, 내가 앞 뒤 계산해서 웃은 것은 아니지만

허문영님의 말한  충만했던 상상계로의 퇴행에 대한 향수가 100% 맞다는 심리분석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특별하게 재미난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그 부분에서 가장 강력한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 ( 다른 부분에 대한 것은 조금 뒤로 미루겠다)

 

그 때까지 시푸에게 힘들게 배운 권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포 자신 (허문연미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이미지를 자아 이상형으로 ) 의 신체를 이용하여 타이렁을 어찌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맺음이 되었다면 " 상상계로의 퇴행 " 에 큰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뻥이다. ^^; 그래도 좀 이견은 있었을 것이다. 뒤에 이야기할 스펀지송)

 

문제는  그 후에 포가 시푸의 " 손가락 권법 "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물론 포가 홀로 득도하긴 했지만, 여기서 포와 타이렁에 대한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타이렁은 놀라서 " 설마 시푸가 그것까지 전수해 주었겠어? " (정확한 대사는 아니고.... 나는 영화를 극장에서 애들과 한번봐서 적지는 못했다)

 

포는 무어라 대답했던가?  (시푸가 전수 해 주지는 않았다는 뉘앙스였다) 암튼 포는 그 권법으로  

타이렁을 이긴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 역시 " 시푸의 비법 " 이라는 것이다.

 

"비법이 없다는 비법"  과 " 시푸의 비법" 은 모두 포에게로 전수된다.

 

이는 전자가 언어를 통한 상징계의 질서 방법으로의 전수 , 후자가  상징계의 질서에 존재하는 비법이되 상상계의 방법으로- 즉 자아 이상형에 부합하듯 홀로 터득- 전수 되었다는 점에서

 

" 상상계로의 퇴행" 이라고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에서 타이렁은  선 악 구도의 " 악의 축"으로 패자가 된 것이라기 보다

 

상징계로 입문하는 과정에 필요한 (굳이 나이로 따지지 않고 보자면 남근기의 과정에서 )  아버지의 법을 (명령을) 거스른 인물(동물)이라는 점- 성장과정에서 치뤄야할 것-에서의 패자이다.

 

(a) 둘다 " 시푸의 비법" 이 있음을 알지만 스스로 터득한 자와 그렇지 못한자  

 

즉, 는 단지, 상상계나 상징계로 환원된 세계가 아닌  (3)의 포가 사마귀에게  ""어! 당신은 당신 인형과 크기가 똑같군요"  대사가 관객에게 " 는 (상상계와 상징계가 호재하는 랍니다 " 라고 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즉 인형 사마귀와 포가 만난 ( 만화 속) 실세계에서 크기가 동일했 듯,

의 이야기는 현실계(=실재계, real)와 동일 하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는 어떤 현실계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에 나는  (3)의  "  종의 차이 "와 관련되어 내 견해를 보태고자 한다.

 

이번 페이퍼가 허문영님 비평에서 출발하긴 했으나,  나는 꽤 오랜동안 에서 내가 본 " 패러다임 쉬프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꾸 " 어디서 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사구조가 고전적 클리셰다 라는 것과는 다르다.

 

쿵푸팬더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만화? 혹은 영화? 에서 보았다라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에 관한 가장 흡사하고 구체적 기운(?)을 느낀 "스펀지송" 이 떠올랐다.

 

그래서 감독을 클릭해 보고는 그만! 그만! 그만!

 

나는 나한테 놀랐다. ( 나를 재수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인걸 어째. 이번주에 "나를 재수 없다고 할지 몰라도"란 말을 세번째 쓰게 되었는데, 자제해야겠다. 정말 재수없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감독을 클릭해 보면 알것이다. - 감독이 스펀지의 원래 캐릭터 창시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후에 (만화)영화로 제작될 때 감독이였다.

 

만일 감독을 먼저 클릭해 본 이라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나는 내가 느낀걸 뒷받침 하기 위해 클릭해보고 놀란 것이다. )

 

" SpongeBob SquarePants "시리즈를  우리나라 EBS 방송에서 방영했었다.  (지금도 케이블에 나오나?)

 

 

다시 위로 돌아가서 " 종의 차이" 를 말하자.

 

이 영화에서 종의 차이는 단순히 " 동물농장"의 종의 차이의 의사소통과는 다르다.

 

" 혈연적, 유전적" 종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펀지 만화를 보면, 스펀지가 일하는 햄버거가게의 게걸 사장은 "게" 종류이다. (가재?) 그런데 그의 딸은 흰수염 고래이다.

 

이 만화를 중반부터 본 사람들은 "만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고, 를 같은 맥락에서 생각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만화에서 돈만 밝히는 (오리아버지랑 느낌이 똑같다) 게걸 사장은 이 딸을 정말 (느무 느무 느무 느무 -세번으로는 안된다- )사랑한다.

 

그래서 이 고래 딸이 입양되었으리라고는 생각치(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 입양 "임을 밝히고 있다.  (결말에서가 아니다) 

 

그리고 굳이 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판다- 오리 의 부자관계는 시푸(랫서판다: 판다과이다)- 타이렁(표범) 의 부자관계와 대구에서 볼 때, 타이렁이 어떻게 시푸손에 길러지게 되었나 부분과 중복되기에 그 입양관계 설명이 생략되었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포-아버지는 정말 만화세계이기에 가능한  종의 차이(가 구분되지 않는) 만화세계인가?

 

입양이란 관계가 생략된 실재계의 도상인가?

 

 

나는 "종의 차이"에 대한 상상계와 상징계를 논하기 보다 (이미 실재계-인형과 같은 크기-라고 내 견해를 말했으니까) 구체적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일을 즐기고 유진크랩(버거가게 게걸사장-Eugene H. Krabs) 의 비법을 가진 스펀지와  자신의 쿵푸를 즐기고 역시 시푸의 비법(손가락권법)을 가진 포.

 

늘 게걸사장의 비법을 훔쳐가려는 플랑크톤과 용문서를 가지려 했던 타이렁.

 

 

이러니, 내가 이 만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란 느낌이 들 수 밖에.

 

요는 스펀지에서도 쿵푸팬더에서도 " 입양 " 에 대한 가치관의 시선이다.

 

그 둘에서 우리는 "종의 차이"를 걱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단지, 만화세계라서가 아니다. " 아버지가 그렇게 아들 포 (딸-고래: Pearl Krabs) 를 사랑하는데 " 종 " 이 왜 중요하냐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 친부 " 에 대한 가치관이 과연 " 혈연적, 유전적"으로 중요한가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물론 "입양"이란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 입양" 이 "친부"에 대한 가치관을 위협 (혹은 바뀌게함, 즉 포와 오리가 정말 친부라 느껴지는 것. 돈만 사랑하는 게살버거 사장이 무한적으로 -혈연적 친부처럼- 딸에 대한 사랑을 지켜보면서 만화시리즈 중반에 본 이들이 포를 보듯 만화니까 둘을 부녀관계로 설정했나보다라고 착각하게 할만큼. ) 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는 새로운 이야기이다.

 

- 스펀지밥 영화가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는 이미 시리즈를 통해 입양관계가 전제되어있다-

 

이 이전까지 나는 "네모네모 스펀지송 "을 새로운 가치관의 한 종류라고 보았다.

 

(입양에 대한 나의 생각은 패러다임 쉬프트가 떠오른 가장 주된 이유이긴 하나, 단지 "입양" 하나에 관한 부분만은 아니다. 영화에 단편적 부분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면 나는 다른식의 페이퍼를 썼을 것이다. 좀 더 개인적고 감성적인 페이퍼?.)

 

그런데 이 를 본 관객의 반응에서 그 가치관의 순응에 대해 (마치 고전적 이야기구조(클리셰_링크)로 느낄 만큼)  놀랐다.

 

이 영화는 이 영화 자체로는 새로운 가치관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객과의 관계로 놓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인류역사, 혹은 영화 역사에서 패러다임 쉬프트의 방증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바로 쓰다만 전호에 영화에 대한 정의 혹은 역할에 대해 언급하였다. :

     영화는 현재의 상황(사회,정치,문화)에 대해 담아내는 거울이자,

     그 상황을 때에 따라 선전(프로파간다)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현 상황에 나타난 몇몇 단서들을 이용해 미래를 제시하는  청사진이 될 수도 있다. )

 

 

 

[ 여기서,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에 대해 적어보겠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갖춰진 기본적인 가정이나 가치관, 목적, 신념, 기대, 이론, 지혜 등을 말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질서유지를 위한 것을 포함해서, 다
수의 패러다임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략이나 계획에 기초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다. 질서유지의 패러다임은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 이동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현행 패러다임을 의식적으로 분석하거나 고찰한 결과로, 돌연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현행 패러다임의 부적절성이나 위험성등을 지적하는 이는, 적절한 변화를 사회에 요구하여 새로운 질서의 모델을 제시하는 개인이나 그룹들이다. 새로운 모델이 공동체에 의해 받아 들이어진 경우, 패러다임 이동이 일어난 것이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낡은 가설이나 가치관, 목표, 신념, 기대, 이론 등을 대치한다.  ]

 

 

이 패러다임 이동에서 던질 가치관은  " 친부(모) "와 " 양부(모)" 의 정의에 관한 것이다.

 

과연 당신은  "스펀지"와 "쿵푸팬더"를 보고나서 당당하게 " 판다-오리& 유진크랩-고래"의 관계를 만화기때문에 가능한 세계라고 할 것인가? "입양"한 "친부"의 관계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비단, 와 은 " 친부모"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패러다임만을 보여주는 것이아니다.

 

영화 초반 쿵푸와 5전사들(?)의 관계에서의 긴장감에도 관심을 가져보아야 한다.

 

포는 5전사들이 자신을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학에게 자꾸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학과 원숭이(포의 실수로 구멍이 뚫려서) 는 각자 자기 방에서 자기의 도를 충실하게 갈고 닦는다. 전형적인 미국의 개인주의이다.  만일, 여기서 그쳤다면 이건 패러다임 쉬프트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타이그라(안젤리나 졸리-호랑이)가 타이렁을 무찌르러 갈 때,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공동체를 구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

 

아시다시피 " 개인주의가 옳다/ 공동체가 옳다"  라는 이분법적 가치관의 구획이 아니다.

 

"스펀지"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 해 보겠다.

 

( 이 에피소드는 만화 시리즈 전편에 드러나 있는 스펀지의 성격이기도 하다. )

 

한번은 스펀지밥 (해면동물로 후생동물중 가장 하위에 속한다)이 깐깐징어(이 만화세계에서 자신이 가장 이성적이고 똑똑하며 유진크랩 사장의 부당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일과 생활 모두에서 회의론적 인물로 나온다.)가 씹다가 뱉은 껌을 갖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이에 대해 수십번의 확답을 요구한다. 깐깐징어는 그러라고 한다. (쓰레기를 가지고 왜저러나 싶다.물론 그걸 가지고 잘 쓸거라는 우리의 예상대로) 스폰지밥은  상상초월의 다양한 용도로 씹다뱉은 껌을 활용한다. 이후 깐깐징어는 배아파 죽을라 그러고 어처구니 없게도 그 껌을 다시 뺏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시 돌아온 그 껌은... 그 껌은... 스펀지밥처럼 활용해 보려고 하나 역시 무용지물-오히려 골칫덩어리-로 되버리고 만다.

 

포와, 타이렁은 똑같이 용문서의 비법 (비법은 없다는 비법) (= 씹다버린 껌)을 보았다.

 

그러나 둘에게는 왜? 다르게 작용했나의 문제가 개입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동을 엿볼 수 있게한다.

 

 

" 스펀지 " 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느꼈다면

" 쿵푸팬더 "는  패러다임 쉬프트의 현상이 느껴진다 고나 할까?

 

 

(스펀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한 엄창난 양은 나 보다 그 시리즈 전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어떤주의에서 어떤주의로의 이동이냐?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에는 아직 내 힘으로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오랫동안 "헐리우드 만화 영화" 속에 담겨있던 "나의 희생을 통한 영웅주의 "나  " 공동체 회복 " "신데렐라적 계급(신분)상승 "적 주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의  "상징계 질서"를 유지하면서 실재계에서  자유로운 "자기발산-나의 표출"로 가고 있음을 보았다는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에서 "레이서"는 이런 부분에서 "포"와 닮아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같은시기에 다른 국가에서 같은 발명품이 만들어지거나, 비슷한 문학 작품이 탄생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 듯)

 

스펀지를 통해 좀 더 많은 가치관들과 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 페이퍼는 에 관한 것이니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스펀지송 시리즈를 본적이 있고 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부분에 관해 좀 더 소통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제 글은 늘 오픈입니다. 제 페이퍼들을 읽고 여러분들의 어떤 생각의 부분에 도화선이 된다면 긁어다 쓰셔도 됩니다. 라고 말하면 너무 노골적인  저작권침해 허용인가? 암튼, 지금 생각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