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회상할 때면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허나 그것이 글 쓰는 자의 것이라면 과장이 아닌 환상을 한다. ‘환상하다’라는 표현은 낯설지만, 글을 쓰려는 사람은 이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세상이 슬플 때는 더욱 애절하게, 평범하면 비범하게, 지루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세상을 미화시킨다. 이 영화는 환상한다. 지나간 시절을 왜곡해서 바라본다. 우리가 가장 슬펐던 그 순간을 미화한다.
영화는 한국의 비극적인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잔재가 역력한 대학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하루하루를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남학생 수영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삐삐소녀를 만나게 된다. 순간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수영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이다.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를 부르며 그녀는 투신하고 만다. 세상은 그것을 혁명을 위한 몸부림이라 말한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삐삐소녀는 계속해서 수영의 앞에 나타나 수영을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갈피를 못 잡게 헤집는다. 점점 현실과 환상이 모호해질 때, 수영은 혼란스럽지만,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는 가벼운 행복감에 젖어간다.
공상의 나래를 펼쳐 창공에 오르면 구름 위는 온통 그대의 품. 만일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임을 알아주세요. 만일 내가 그대의 미소에 눈멀지 않는다고 말하면 .....
교수님!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일루전에서 시작된다는 니체의 말이 거꾸로 적용될 수 있나요?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만든다’ 라고요?” 교수는 “누가 질문하지 않았나? 일루전의 현시성에 대해 말이야?”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시를 읽고 울어버릴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싶었던 내가 생각났다. 그런 감수성이 참 부러웠다. 텍스트로 상상을 하고, 그것이 내게 감정의 화학작용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을 맛본 자라면 그 느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 별빛 속으로는 그 느낌을 잘 알고있다. 어릴적 철 없는 생각들을 동경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미화시켜 그 비극적인 첫사랑과 사상의 혼란까지 환상적인 것이라 말하며 현재의 자신을 위로한다. 세상 사람들이 과거를 미화시켜 자기위안에 빠지는 실수를 안 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서, ‘황규덕’ 감독은 오로지 그 과거의 환상에 매달려, 감상에 빠지는 오류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위안거리이기에 꼭 붙잡아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어휘와 감성으로 과거를 가꾸어 마음속에 간직하길 원한다. 그건 거짓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위로다. 삐삐소녀가 환상이던 귀신이던 그까짓 것은 상관이 없다. 내가 그녀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사라진 첫사랑에 슬퍼하고 고독하면 어떠하리. 언제나 마음속에서 말을 걸어 줄 터이니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괘념치 아니한다. 글을 쓰는 자에게 그것보다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떨어지는 객관성이 행복이 될 수 있다니...
비극의 역사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이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것이 숙명일지도 모른다. 비극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재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것을 극복해야만 인생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광주의 사건을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포장해야한다. 우리는 위로해야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미화시켜 가슴에 새겨야한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아름답게 변화시켜 생각하는 기교다. 상공을 수놓는 대공포가 별빛의 아름다운 빛깔로 다가올 때 진정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그 사실을 각인시킨다. 마음 속 끓어오르는 감정을 아름답게 포장해 보관한다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힘을 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과의 문턱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마지막이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되기 위한 수식과도 같은 것이다. 손을 잡고서 우리 이제 만나지 못하더라도 좋은 추억을 함께하자. 유치한가? 유치하지 않다. 그것은 아름답다. 니체는 현실을 일루전을 통해 조금 다르게 보았다. 그것이 철학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것을 역으로 생각했다. 환상을 현실에 투영시켜 위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수영은 수지라는 학생을 과외를 통해 가르치게 된다. 수영은 삐삐소녀를 빠르게 잊는다. 수지라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푹 빠진다. 수지의 집은 아름답다. 환상적인 기운이 엄습한다. 키위, 장미, 당구대, 와인, 그리고 안정된 아르바이트 비.. 천국이 바로 그런 느낌일까? 수영은 창밖의 대공포(폭죽과도 같은)를 배경으로 그곳에 빠져든다. 살기 위해서다. 수영은 절망적인 상황까지 환상을 현실에 투영시킨다. 절망적인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해져가고, 수영도 그렇게 존재감을 잃어간다. 수영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져갈 때,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할 때, 우리의 문학은 완숙하게 숙성된다. 고통은 잊혀진다.
언제나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난 따듯하지 못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저건 너무 유치해. 유치해. 유치해. 그런 말들을 반복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어색함을 느끼고는 멋진 어휘를 사용하기 위해서 진정 와 닿는 말들을 포기했다. 그게 참 멋진 건줄 알았다. 허나 <별빛 속으로>는 화법이 솔직해서 아름답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듯하지만, 지극히 솔직한 화법으로 우릴 위로한다. 이제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학이자 혁명이다. 또한 세상을 증명하는 도구이다. 진실을 환상이라는 렌즈로 투영해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멋들어진 도구다.
수영과 수지는 세상에 귀를 닫고 자신들의 행복을 생각한다. 소소한 것들과 진정 사랑하는 이들이 영화를 수놓는다. 대공사격이 불꽃놀이로 보이는 세상을 꿈꾸며 그들은 환상한다. 세상에는 이런 혁명도 있다. 아직도 꿈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어둠이 내린 대지위로 살며시 다가와 포도주를 뿌리는 소녀 그 붉은 빛줄기 색깔도 내음도 없이 흙 속으로 사라지면 어둠의 조각은 산산조각 어리둥절 그 낙하하는 순간에도 붉은 피로 노래하는 소녀 슬픈 선율 연주해주는 군사들에게 경배를 나누지 못한 니체의 영혼에도 경배를 .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아니 꿈을 꾸고 싶다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세상을 좀 더 예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면, 세상을 바꾸는 혁명도 쉬울 것이다. 아 언제부터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사라 졌는가? 이제는 식어버려 더 이상 만지기조차 싫다. 그 순간 푸른 나비가 내게 다가와 어릴 적 삐삐소녀가 당신에게 시원한 청명함을 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파란 그 나비가 참 시원하구나.
그 시대의 죽어간 젊은이들이 현실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축 꺼진다.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추억하며 예쁘게 생각할 것이다. 별빛 속으로 투영시켜 근사하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철이 없다. 내가 이러고 있다.
세상을 환상하다.
별빛 속으로 (For Eternal Hearts, 2007)
무언가를 회상할 때면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허나 그것이 글 쓰는 자의 것이라면 과장이 아닌 환상을 한다. ‘환상하다’라는 표현은 낯설지만, 글을 쓰려는 사람은 이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세상이 슬플 때는 더욱 애절하게, 평범하면 비범하게, 지루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세상을 미화시킨다. 이 영화는 환상한다. 지나간 시절을 왜곡해서 바라본다. 우리가 가장 슬펐던 그 순간을 미화한다.
영화는 한국의 비극적인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잔재가 역력한 대학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하루하루를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남학생 수영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삐삐소녀를 만나게 된다. 순간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수영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이다.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를 부르며 그녀는 투신하고 만다. 세상은 그것을 혁명을 위한 몸부림이라 말한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삐삐소녀는 계속해서 수영의 앞에 나타나 수영을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갈피를 못 잡게 헤집는다. 점점 현실과 환상이 모호해질 때, 수영은 혼란스럽지만,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는 가벼운 행복감에 젖어간다.
공상의 나래를 펼쳐 창공에 오르면 구름 위는 온통 그대의 품. 만일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임을 알아주세요. 만일 내가 그대의 미소에 눈멀지 않는다고 말하면 .....
교수님!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일루전에서 시작된다는 니체의 말이 거꾸로 적용될 수 있나요?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만든다’ 라고요?” 교수는 “누가 질문하지 않았나? 일루전의 현시성에 대해 말이야?”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시를 읽고 울어버릴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싶었던 내가 생각났다. 그런 감수성이 참 부러웠다. 텍스트로 상상을 하고, 그것이 내게 감정의 화학작용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을 맛본 자라면 그 느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 별빛 속으로는 그 느낌을 잘 알고있다. 어릴적 철 없는 생각들을 동경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미화시켜 그 비극적인 첫사랑과 사상의 혼란까지 환상적인 것이라 말하며 현재의 자신을 위로한다. 세상 사람들이 과거를 미화시켜 자기위안에 빠지는 실수를 안 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서, ‘황규덕’ 감독은 오로지 그 과거의 환상에 매달려, 감상에 빠지는 오류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위안거리이기에 꼭 붙잡아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어휘와 감성으로 과거를 가꾸어 마음속에 간직하길 원한다. 그건 거짓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위로다. 삐삐소녀가 환상이던 귀신이던 그까짓 것은 상관이 없다. 내가 그녀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사라진 첫사랑에 슬퍼하고 고독하면 어떠하리. 언제나 마음속에서 말을 걸어 줄 터이니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괘념치 아니한다. 글을 쓰는 자에게 그것보다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떨어지는 객관성이 행복이 될 수 있다니...
비극의 역사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이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것이 숙명일지도 모른다. 비극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재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것을 극복해야만 인생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광주의 사건을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포장해야한다. 우리는 위로해야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미화시켜 가슴에 새겨야한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아름답게 변화시켜 생각하는 기교다. 상공을 수놓는 대공포가 별빛의 아름다운 빛깔로 다가올 때 진정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그 사실을 각인시킨다. 마음 속 끓어오르는 감정을 아름답게 포장해 보관한다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힘을 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과의 문턱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마지막이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되기 위한 수식과도 같은 것이다. 손을 잡고서 우리 이제 만나지 못하더라도 좋은 추억을 함께하자. 유치한가? 유치하지 않다. 그것은 아름답다. 니체는 현실을 일루전을 통해 조금 다르게 보았다. 그것이 철학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것을 역으로 생각했다. 환상을 현실에 투영시켜 위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수영은 수지라는 학생을 과외를 통해 가르치게 된다. 수영은 삐삐소녀를 빠르게 잊는다. 수지라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푹 빠진다. 수지의 집은 아름답다. 환상적인 기운이 엄습한다. 키위, 장미, 당구대, 와인, 그리고 안정된 아르바이트 비.. 천국이 바로 그런 느낌일까? 수영은 창밖의 대공포(폭죽과도 같은)를 배경으로 그곳에 빠져든다. 살기 위해서다. 수영은 절망적인 상황까지 환상을 현실에 투영시킨다. 절망적인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해져가고, 수영도 그렇게 존재감을 잃어간다. 수영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져갈 때,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할 때, 우리의 문학은 완숙하게 숙성된다. 고통은 잊혀진다.
언제나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난 따듯하지 못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저건 너무 유치해. 유치해. 유치해. 그런 말들을 반복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어색함을 느끼고는 멋진 어휘를 사용하기 위해서 진정 와 닿는 말들을 포기했다. 그게 참 멋진 건줄 알았다. 허나 <별빛 속으로>는 화법이 솔직해서 아름답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듯하지만, 지극히 솔직한 화법으로 우릴 위로한다. 이제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학이자 혁명이다. 또한 세상을 증명하는 도구이다. 진실을 환상이라는 렌즈로 투영해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멋들어진 도구다.
수영과 수지는 세상에 귀를 닫고 자신들의 행복을 생각한다. 소소한 것들과 진정 사랑하는 이들이 영화를 수놓는다. 대공사격이 불꽃놀이로 보이는 세상을 꿈꾸며 그들은 환상한다. 세상에는 이런 혁명도 있다. 아직도 꿈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어둠이 내린 대지위로 살며시 다가와 포도주를 뿌리는 소녀 그 붉은 빛줄기 색깔도 내음도 없이 흙 속으로 사라지면 어둠의 조각은 산산조각 어리둥절 그 낙하하는 순간에도 붉은 피로 노래하는 소녀 슬픈 선율 연주해주는 군사들에게 경배를 나누지 못한 니체의 영혼에도 경배를 .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아니 꿈을 꾸고 싶다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세상을 좀 더 예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면, 세상을 바꾸는 혁명도 쉬울 것이다. 아 언제부터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사라 졌는가? 이제는 식어버려 더 이상 만지기조차 싫다. 그 순간 푸른 나비가 내게 다가와 어릴 적 삐삐소녀가 당신에게 시원한 청명함을 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파란 그 나비가 참 시원하구나.
그 시대의 죽어간 젊은이들이 현실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축 꺼진다.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추억하며 예쁘게 생각할 것이다. 별빛 속으로 투영시켜 근사하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철이 없다. 내가 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