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보병궁 전도서 에서 전하는 바에 따른 "인도에서 승려 생활한 예수님"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님의 청년기인 13∼29세까지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 부분들이 중세기 때로만 캐톨릭( 콘스탄틴) 에 의해 삭제 되 미국 등, 그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만 은 성경이 마치 66권으로만 된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허나 나머지는 이스라엘, 또 이라크 내 하미르크 국립박물관에 보존 되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예수의 잊어버린 세월」,「법화경과 신약성서」등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교계에서도 인정하는 " 보병궁 복음서 " 가전해지면서 예수님의 인도생활이 자세히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또는 해외에서도 한인 목사들 에 의해 철저하게 이 사실들은 비밀 리 해왔기에 외국사람 에 의한 외국 신학대학을 공부하신 목회자님들만 아십니다. 허나 이 사실을 밝혀 봐야 이단으로 몰리기에 그냥 말없이 계실 뿐입니다.
그럼 여기에 보병궁 복음서의 일부를 실습니다.
<보병궁복음서 11장 12절, 16장 1∼2절>
인도의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배우도록 하시요 이것은 성기(聖氣) 교육의 일부이니까요. 요셉의 가정은 나사렛의 마미온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마리아는 그 아들 예수에게 엘리후와 살로메로 부터 얻은 교훈 불경(佛經)과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수는 베다의 찬가와 아베스다 경전을 읽기를 즐겨 했으나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은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실랄한 말을 읽었다.
<보병궁복음서 21장 19절, 23장 3∼10절>
예수는 그리시나 신(神)을 모신 자간나스의 절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어 이곳에서 베다성전 마니법전을 배웠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연구하려고 뜻을 세워 인도의 의사들 가운데 으뜸가는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었다.
"우도라카"는 물, 흙, 식물, 더위와 추위, 햇빛과 그늘, 빛과 어둠의 용법을 가르쳤다. "우도라카"는 말한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이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한편 자연계의 물상(物像)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의료의 비약이 된다.
<보병궁복음서 36장 1∼4절>
티벳트 랏사에 한 교사를 위한 사원이 있었다.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 이 소장되어 있었다. 인도의 성자인 "피자빠지"는 이미 이들 사본을 읽었으므로 그 내용 가운데 많은 비밀의 교훈을 예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 자신이 직접 읽기를 원했다. 한편 요동(遼東) 전부의 성현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인 "멩그스테"가 이 티벳트의 사원에 있었다. 에모다스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험난했지만 예수는 여행길에 올랐고, "피자빠지"는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길잡이를 붙여 주었다.
☞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배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신약성서에 예수의 13∼29세까지의 기록이 없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습니다.
신약성서의 거의 전부가 조작 됐고 엉터리가 많다는 증거는 예수가 죽은 후 70∼80년 후에 ( 50∼ 60년 이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 계시를 받았다며 사도 바울에 의하여 고린도서가 제일 먼저 쓰여졌고, 그 후 4대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근 80∼90년 후에 신약이 만들어지기 시작 됐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 본인도 또 그 제자들도 유대교를 신봉했었고 그가 죽은 후 몇 십 년 후에 일부 극소수의 부족들이 부활을 얘기했고 무조건 믿으라는 논리 하에 예수를 신격화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 하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13∼33세까지의 기록은 현재도 분명히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공개 및 보관 전시되어 있고 또 그 당시 곧 바로 쓰여진 단지 기행문이라는데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도의 명의(名醫) " 우도라카 "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과 치료법을 배우고 "베다" 및 불경(佛經)을 읽으며, 성인 피자빠지 의 소개로 신비의 불교인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스테 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됩니다.
Jeff Buckley ( 미 ,Yale 대 종교학 교수 )원작, 민 경식 교수 번역판 의
「법화경과 신약 성서」에 보면.......
독실한 불교도이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 이사(ISSA) " 입니다. 이사(ISSA)는 14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샤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힌두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사(ISSA)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 생활을 합니다.
이샤의 불교공부는 캐시미르를 거쳐 라닥크의 "레"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티벳트에서는 그곳의 밀교계 고승 멩크스테에게 심령치료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습니다.
불교의 승려인 이사(예수)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 때 이루어집니다. 스승인 "멩그스테 "는 예수에게 기적의 비법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그 후 .........( 거두절미, 한국 자칭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내용들... ) 예수는 유대교도들에게 모함되어 십자가에 묶였고, 유대교들은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예수교 초기의 복음서인 토마스 복음서에 밝혔듯이 억지 부활주장도 결국은 윤회(輪廻) 사상이 깃든 것도 바로 힌두교 영향인 것입니다.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배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글쓴이 : 빌리 그레함 ( 목사. 미국 ),
마르틴 슈나이더( 베를린 퀠른 캠퍼스 신학대 교수, 독일)
옮긴이 : 김 요셉 ( 한총.신.대 교수, 밥존슨 신학대 교수역임)
예수는 인도에서 승려생활을 하였다. ( 4 편 )
이번 주에는 보병궁 전도서 에서 전하는 바에 따른 "인도에서 승려 생활한 예수님"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님의 청년기인 13∼29세까지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 부분들이 중세기 때로만 캐톨릭( 콘스탄틴) 에 의해 삭제 되 미국 등, 그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만 은 성경이 마치 66권으로만 된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허나 나머지는 이스라엘, 또 이라크 내 하미르크 국립박물관에 보존 되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예수의 잊어버린 세월」,「법화경과 신약성서」등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교계에서도 인정하는 " 보병궁 복음서 " 가전해지면서 예수님의 인도생활이 자세히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또는 해외에서도 한인 목사들 에 의해 철저하게 이 사실들은 비밀 리 해왔기에 외국사람 에 의한 외국 신학대학을 공부하신 목회자님들만 아십니다. 허나 이 사실을 밝혀 봐야 이단으로 몰리기에 그냥 말없이 계실 뿐입니다.
그럼 여기에 보병궁 복음서의 일부를 실습니다.
<보병궁복음서 11장 12절, 16장 1∼2절>
인도의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배우도록 하시요 이것은 성기(聖氣) 교육의 일부이니까요. 요셉의 가정은 나사렛의 마미온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마리아는 그 아들 예수에게 엘리후와 살로메로 부터 얻은 교훈 불경(佛經)과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수는 베다의 찬가와 아베스다 경전을 읽기를 즐겨 했으나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은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실랄한 말을 읽었다.
<보병궁복음서 21장 19절, 23장 3∼10절>
예수는 그리시나 신(神)을 모신 자간나스의 절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어 이곳에서 베다성전 마니법전을 배웠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연구하려고 뜻을 세워 인도의 의사들 가운데 으뜸가는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었다.
"우도라카"는 물, 흙, 식물, 더위와 추위, 햇빛과 그늘, 빛과 어둠의 용법을 가르쳤다. "우도라카"는 말한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이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한편 자연계의 물상(物像)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의료의 비약이 된다.
<보병궁복음서 36장 1∼4절>
티벳트 랏사에 한 교사를 위한 사원이 있었다.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 이 소장되어 있었다. 인도의 성자인 "피자빠지"는 이미 이들 사본을 읽었으므로 그 내용 가운데 많은 비밀의 교훈을 예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 자신이 직접 읽기를 원했다. 한편 요동(遼東) 전부의 성현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인 "멩그스테"가 이 티벳트의 사원에 있었다. 에모다스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험난했지만 예수는 여행길에 올랐고, "피자빠지"는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길잡이를 붙여 주었다.
☞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배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신약성서에 예수의 13∼29세까지의 기록이 없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습니다.
신약성서의 거의 전부가 조작 됐고 엉터리가 많다는 증거는 예수가 죽은 후 70∼80년 후에 ( 50∼ 60년 이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 계시를 받았다며 사도 바울에 의하여 고린도서가 제일 먼저 쓰여졌고, 그 후 4대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근 80∼90년 후에 신약이 만들어지기 시작 됐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 본인도 또 그 제자들도 유대교를 신봉했었고 그가 죽은 후 몇 십 년 후에 일부 극소수의 부족들이 부활을 얘기했고 무조건 믿으라는 논리 하에 예수를 신격화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 하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13∼33세까지의 기록은 현재도 분명히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공개 및 보관 전시되어 있고 또 그 당시 곧 바로 쓰여진 단지 기행문이라는데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도의 명의(名醫) " 우도라카 "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과 치료법을 배우고 "베다" 및 불경(佛經)을 읽으며, 성인 피자빠지 의 소개로 신비의 불교인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스테 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됩니다.
Jeff Buckley ( 미 ,Yale 대 종교학 교수 )원작, 민 경식 교수 번역판 의
「법화경과 신약 성서」에 보면.......
독실한 불교도이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 이사(ISSA) " 입니다. 이사(ISSA)는 14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샤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힌두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사(ISSA)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 생활을 합니다.
이샤의 불교공부는 캐시미르를 거쳐 라닥크의 "레"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티벳트에서는 그곳의 밀교계 고승 멩크스테에게 심령치료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습니다.
불교의 승려인 이사(예수)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 때 이루어집니다. 스승인 "멩그스테 "는 예수에게 기적의 비법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그 후 .........( 거두절미, 한국 자칭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내용들... ) 예수는 유대교도들에게 모함되어 십자가에 묶였고, 유대교들은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예수교 초기의 복음서인 토마스 복음서에 밝혔듯이 억지 부활주장도 결국은 윤회(輪廻) 사상이 깃든 것도 바로 힌두교 영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