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의 미학" 빌 게이츠 vs 한국 기업 총수

이영환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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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의 미학' 빌 게이츠 vs 한국 기업 총수

2008년 6월 28일(토) 6:12 [연합뉴스]

"은퇴의 미학" 빌 게이츠 vs 한국 기업 총수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보여준 아름다운 퇴장은 전세계 경영인들의 은퇴문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있는 데다 그룹 총수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식 경영풍토에선 한창 일할 때 경영현장을 떠나 사회사업이나 문화사업에 전념하며 새출발을 하는 재벌총수를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재계에서 이뤄진 기업 총수들의 퇴진은 직계자손 이나 형제간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등의 비리연루에 따른 사회적 비난 여론에 떠밀려 은퇴를 선언한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은퇴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재벌 총수 은퇴는 '눈가림'?= 한국에서 총수들의 퇴진장면은 지금까지 적잖게 연출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느정도 시일이 흐르면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비난 여론이 잠잠해지면 복귀하는 게 다반사였다.

지난해 보복폭행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도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93년말 외화 밀반입 혐의로 구속기속된 후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자숙차원에서 경영에서 물러났었다. 장기간 해외에 머물면서 해외투자 부문만 관장해오던 김 회장은 1994년 10월에 그룹창립 42주년 행사를 계기로 경영에 복귀했다.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은 2005년 7월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오너 일가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자 그해 11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책임을 통감하고 경영일선 및 국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며 그룹회장직을 내놓았다.

이후 박 회장은 2007년 3월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앙대 재단이사장으로 취임, 사실상 두산그룹을 대표하고 있다.

삼성 특검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결국 삼성 경영쇄신 차원에서 물러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퇴를 놓고서도 다양한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약속한 대로 끝까지 대주주로만 남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룹경영이 흔들리거나 인수.합병(M&A) 위기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경우 그의 복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경영시스템은 전문경영인이 활동하기 쉬운 구조로 돼 있는 반면, 한국은 오너 중심 경영체제라고 할 수 있다"면서 "경영문화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미국식 경영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나아가 "전문경영인시장이 발달해 있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른 투명경영이 어려운 한국경영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오너 경영이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판 빌 게이츠 은퇴사례 나올까 = 총수 중심의 우리나라 경영구조 아래에서 한창 일할 때인 52세에 퇴진한 빌 게이츠 식 은퇴가 당분간 요원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총수가 경영의 선두에 서있는 데다 가부장적 기업문화 때문에 미리 은퇴를 준비하기 어렵고 고령이거나 건강이 나빠져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때가 돼서 비로서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망해서야 은퇴하는 총수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 은퇴다운 은퇴의 모습은 보여준 총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경영에서 떠나 사회공헌 활동과 농장경영 등에 몰두하고 있는 LG의 구자경 명예회장이나 이웅렬 회장에게 기업을 물려준 뒤 경영에 일절간여하지 않고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이 한국에서 은퇴모델로 꼽힌다. 또 경영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3년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최근 KAIST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는 안철수 교수의 경우는 국내 IT업계에서 빌 게이츠 MS 회장과 가장 유사한 은퇴사례로 손꼽힌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95년 2월 "다가올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젊고 의욕적인 사람이 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아들인 구본무 현 LG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활동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며 된장, 청국장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고 공익사업을 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안 교수는 퇴진후 각종 강연 및 외부활동 등을 통해 벤처의기능과 사회적 효과 등을 역설하며 벤처기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 이승희 사무국장은 "국내에서 빌 게이츠 회장 같은 은퇴사례가 나오려면 무엇보다 재벌의 세습체제 고리를 끊고, 전문경영인 양성을 통한 전문경영인 시장활성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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