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마음을 위해. =============================================================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감정이입이 격해서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체까지도
내게 녹아드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리진이라는 여인.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폭풍의 역사 속에서 격동적인 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그럴싸한 상상.
인간 각자가 가진 우주는 너무나도 거칠고 공격적으로
다른 우주를 침범한다.
의도된 것은 더욱 거칠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오만함을 경멸한다.
또 다시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 좋다.'
애정의 시선은 비교적 가슴에 담지 못하는 시기였으나
유독 마음에 고스란히 전염된 강연의 편지를 담아본다.
은방울,
잠이 든 네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꿈결 같다.
블랑 주교님을 따라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 궁의 나인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다가 블랑 주교님과 나를 보고 커졌던 너의 눈. 잊었을까. 이 집에서 어머니가 물항아리에 더운 물을 붓고 목욕을 시켜주었지. 그게 이 집에서의 첫 날이었다. 네가 있어서 다시 길을 떠나는 블랑 주교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네가 그랬지. 여기 살아......라고. 그때부터 여태 여기 살아......라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를 품고 살았다. 늘 무엇엔가 쫓겨다니듯 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의 연못에 아버지가 빠져 죽은 후 내겐 아버지가 남긴 피리만 들려 있었어. 그때는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날마다 찾아오는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는지 몰랐어. 어느 집 짚더미가 쌓인 헛간이나 불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 옆에서 잘 수 있는 날은 그나마 좋은 날이었지. 그런 내게 너는 그랬어. 여기 살아......라고.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그러니 너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당을 세우려는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홍종우 대감이 도와줄 거야. 어제 그를 만나 내 간절히 부탁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 집에서 글을 모르는 반촌의 아이들부터 글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봐도 좋을 거야. 곁에서 네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바닷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뿐이었다.
[리진]
촉촉한 마음을 위해.
=============================================================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감정이입이 격해서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체까지도
내게 녹아드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리진이라는 여인.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폭풍의 역사 속에서 격동적인 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그럴싸한 상상.
인간 각자가 가진 우주는 너무나도 거칠고 공격적으로
다른 우주를 침범한다.
의도된 것은 더욱 거칠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오만함을 경멸한다.
또 다시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 좋다.'
애정의 시선은 비교적 가슴에 담지 못하는 시기였으나
유독 마음에 고스란히 전염된 강연의 편지를 담아본다.
은방울,
잠이 든 네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꿈결 같다.
블랑 주교님을 따라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 궁의 나인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다가 블랑 주교님과 나를 보고 커졌던 너의 눈. 잊었을까. 이 집에서 어머니가 물항아리에 더운 물을 붓고 목욕을 시켜주었지. 그게 이 집에서의 첫 날이었다. 네가 있어서 다시 길을 떠나는 블랑 주교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네가 그랬지. 여기 살아......라고. 그때부터 여태 여기 살아......라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를 품고 살았다. 늘 무엇엔가 쫓겨다니듯 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의 연못에 아버지가 빠져 죽은 후 내겐 아버지가 남긴 피리만 들려 있었어. 그때는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날마다 찾아오는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는지 몰랐어. 어느 집 짚더미가 쌓인 헛간이나 불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 옆에서 잘 수 있는 날은 그나마 좋은 날이었지. 그런 내게 너는 그랬어. 여기 살아......라고.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그러니 너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당을 세우려는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홍종우 대감이 도와줄 거야. 어제 그를 만나 내 간절히 부탁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 집에서 글을 모르는 반촌의 아이들부터 글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봐도 좋을 거야. 곁에서 네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바닷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뿐이었다.
-p.260(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