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지만 목사님의 권유로 나는 2008년 1월부터 인정 전도사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인정 전도사라 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정통(백석대학교)의 교단 법에 명시되어 있는 직책으로 목사가 인정하는 사람을 인정 전도사로 1년 동안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적은 인원이지만 오후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 지났다.
목사님과 함께 다니고 이제는 아예 목사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목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교제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말 가까이에서 목사님들의 삶을 보는 것이다. 노회에서 행정 간사를 하는 목사님과도 친분이 있어서 노회 돌아가는 소식도 심심찮게 듣는 편이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들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도 모른다. 목사도 사람인지라 분명 잘못 된 모습들이 있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참 어의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나고 어찌 보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내게 그것이 큰 시험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목사님도 사람이니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그렇다고 합리화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목사라는 직분이 주님이 부르신 것으로 주의 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목사 같지 않은 목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논외로 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반대편이다.
내가 섬기는 신 목사님은 컴퓨터 쪽에 특출한 은사가 있으셔서 신학교에서 컴퓨터 강의도 하시고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한 목사님들께 컴퓨터나 홈페이지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제공하고 계신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 많다.(나는 홈페이지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한 목사님은 지하에서 작은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뇌수술을 받으셨다. 그런데 의사의 실수로 수술중 시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실명하셨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목사님을 도와주셔도 모자랄 판에 실명을 시키셨다. 막 자라나는 아이들과 사모님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요즘에는 TV를 통해 유명하신 목사님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일반 대중들도 목사라 하면 많은 신도를 거느린 지도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를 회사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못하다. 작년 대선의 막바지에서 한 언론이 종교단체, 특히 교회의 세금 문제를 들고 나온 일이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고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쥐어짜서 엄청난 세금을 내야할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는 종교단체에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면, 정부는 하루에도 수 없이 생겨나고, 또 그만큼 사라지는 개척교회들을 지원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성도 수로는 전기요금을 충당하기도 어려운 것이 다수 교회들의 현실이다.
일 때문에 여러 개척교회들을 들러보면 복음에 사로잡힌 목사님들은 정작 말씀을 전하거나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생활비가 충당되지 않아 야간에 택시운전이나 학원 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현실이다.(내가 아는 한 목사님은 야간에 학원 버스를 운전하다가 세 번이나 사고를 내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랐다) 교회에서 전도사 월급이 얼마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말 도 안 되는 금액을 받아가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있다.
그런데 순결한 기독교 교리에 이방의 사상들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 탄 듯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복음, 미혹된 세상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탐욕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승승장구한다. 교인들이 자꾸 는다. 사람들이 저리로 가면 성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흥’이라고 부른다. 거룩한 단어들을 의미도 모르고 갖다 붙여서 진리로 보이도록 치장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제대로 일 하고 계신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하나님께 헌신하는 아무런 세상 자랑도 없는 주의 종들을 어려운 형편 가운데 내어버려 두시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왜 망할 교리들을 만들어내는 이방 사상의 거짓 선지자들이 흥하게 내버려두시는가? 왜 이렇게 현실에서 하나님은 무능해보이며 그분을 섬기는 종들을 비참한 상황 가운데 내어버려 두시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한다. 마치 하나님이 조롱당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까맣게 상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있으시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거룩한 주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의 종들이 불쌍해서 하나님께 한 번 따지고 싶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눈물 나게 고맙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하1:2~4)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하1:13)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하1:17)
하나님,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공의를 좀 보여주십시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하2:1~3)
마음의 분이 3절에서 턱 하고 막힌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2:4)
그렇습니다, 하나님...
칭의의 인간은 현실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하2:13,14)
하나님의 영광을 볼 그 날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하2:20)
나는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다. 하박국도 그랬을까? 그의 분노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잠잠해진 풍랑처럼... 그렇게 잠잠해졌을까? 그의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3:2)
주의 종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3:13)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나는 다시 기억하게 된다. 포도즙틀에 죄인들을 넣고 밟을 때에 그 선혈이 옷에 튈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신 이사야서 63장 3절 말씀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박국도 그 하나님의 위엄과 공포감에 사로잡혔으리라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하3:16)
나는 이제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본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일들을 본다. 세상에 눈을 빼앗겨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 나의 마음은 평온하며 하나님의 위엄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강하고 근엄하신 분을 믿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하3:17~19)
주는 이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실 것이라.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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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하나님(부흥)
신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지만 목사님의 권유로 나는 2008년 1월부터 인정 전도사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인정 전도사라 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정통(백석대학교)의 교단 법에 명시되어 있는 직책으로 목사가 인정하는 사람을 인정 전도사로 1년 동안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적은 인원이지만 오후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 지났다.
목사님과 함께 다니고 이제는 아예 목사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목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교제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말 가까이에서 목사님들의 삶을 보는 것이다. 노회에서 행정 간사를 하는 목사님과도 친분이 있어서 노회 돌아가는 소식도 심심찮게 듣는 편이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들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도 모른다. 목사도 사람인지라 분명 잘못 된 모습들이 있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참 어의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나고 어찌 보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내게 그것이 큰 시험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목사님도 사람이니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그렇다고 합리화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목사라는 직분이 주님이 부르신 것으로 주의 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목사 같지 않은 목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논외로 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반대편이다.
내가 섬기는 신 목사님은 컴퓨터 쪽에 특출한 은사가 있으셔서 신학교에서 컴퓨터 강의도 하시고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한 목사님들께 컴퓨터나 홈페이지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제공하고 계신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 많다.(나는 홈페이지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한 목사님은 지하에서 작은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뇌수술을 받으셨다. 그런데 의사의 실수로 수술중 시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실명하셨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목사님을 도와주셔도 모자랄 판에 실명을 시키셨다. 막 자라나는 아이들과 사모님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요즘에는 TV를 통해 유명하신 목사님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일반 대중들도 목사라 하면 많은 신도를 거느린 지도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를 회사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못하다. 작년 대선의 막바지에서 한 언론이 종교단체, 특히 교회의 세금 문제를 들고 나온 일이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고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쥐어짜서 엄청난 세금을 내야할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는 종교단체에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면, 정부는 하루에도 수 없이 생겨나고, 또 그만큼 사라지는 개척교회들을 지원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성도 수로는 전기요금을 충당하기도 어려운 것이 다수 교회들의 현실이다.
일 때문에 여러 개척교회들을 들러보면 복음에 사로잡힌 목사님들은 정작 말씀을 전하거나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생활비가 충당되지 않아 야간에 택시운전이나 학원 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현실이다.(내가 아는 한 목사님은 야간에 학원 버스를 운전하다가 세 번이나 사고를 내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랐다) 교회에서 전도사 월급이 얼마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말 도 안 되는 금액을 받아가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있다.
그런데 순결한 기독교 교리에 이방의 사상들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 탄 듯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복음, 미혹된 세상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탐욕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승승장구한다. 교인들이 자꾸 는다. 사람들이 저리로 가면 성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흥’이라고 부른다. 거룩한 단어들을 의미도 모르고 갖다 붙여서 진리로 보이도록 치장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제대로 일 하고 계신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하나님께 헌신하는 아무런 세상 자랑도 없는 주의 종들을 어려운 형편 가운데 내어버려 두시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왜 망할 교리들을 만들어내는 이방 사상의 거짓 선지자들이 흥하게 내버려두시는가? 왜 이렇게 현실에서 하나님은 무능해보이며 그분을 섬기는 종들을 비참한 상황 가운데 내어버려 두시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한다. 마치 하나님이 조롱당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까맣게 상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있으시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거룩한 주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의 종들이 불쌍해서 하나님께 한 번 따지고 싶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눈물 나게 고맙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하1:2~4)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하1:13)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하1:17)
하나님,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공의를 좀 보여주십시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하2:1~3)
마음의 분이 3절에서 턱 하고 막힌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2:4)
그렇습니다, 하나님...
칭의의 인간은 현실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하2:13,14)
하나님의 영광을 볼 그 날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하2:20)
나는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다. 하박국도 그랬을까? 그의 분노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잠잠해진 풍랑처럼... 그렇게 잠잠해졌을까? 그의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3:2)
주의 종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3:13)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나는 다시 기억하게 된다. 포도즙틀에 죄인들을 넣고 밟을 때에 그 선혈이 옷에 튈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신 이사야서 63장 3절 말씀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박국도 그 하나님의 위엄과 공포감에 사로잡혔으리라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하3:16)
나는 이제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본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일들을 본다. 세상에 눈을 빼앗겨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 나의 마음은 평온하며 하나님의 위엄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강하고 근엄하신 분을 믿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하3:17~19)
주는 이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실 것이라. 아멘, 아멘, 아멘.
※공지사항※
1. 이 페이퍼는 모든 지적 재산(이미지까지)이 보호받고 있습니다. 다음 네 가지 사항을 꼭 지켜주세요.
① 스크랩 하실 경우 반드시 댓글을 남겨주세요.(출처확인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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