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스페인 왕이 수행원을 데리고 시골길을 산책을 하던 중 배가 고파서 식사준비를 시켰다. 수행원은 근처 누추한 집에 가서 왕의 식사로 아무 거라도 좋으니 빨리 만들라고 독촉했다. 누추한 집의 주인인 남자는 재료가 마땅치 않아 보이는 계란을 풀어 팬에 넣고 익힌 후 접시에 담아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남자의 동작을 보고"Quel homme lest ! (정말 재빠른 남자)라고 감탄을 했는데 그 후 Hommelest(오믈레스트)가 그 후 Omelest(오믈렛)로 변화했다고 한다.
♠ 샌드위치 ♠
영국에 샌드위치라는 항구 도시에 몬터규 귀족 일가가 살고 있었다. 몬터규 귀족은 샌드위치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영국 초대 해군 제독을 지냈던 제 4대 샌드위치 백작은 카드놀이를 너무너무 좋아해 점심시간까지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백작은 식당에서 호밀 빵에 야채와 베이컨을 넣고 먹었는데 이런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서 따라 먹던 것이 점차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는 이미 로마인들이 2000년 전에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걀을 넣은 샌드위치는 미국에서 서부 개척 시대에 냉장고가 없어 상한 음식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 빵 사이에 달걀을 으깨서 먹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 핫도그 ♠
핫도그에는 두 가지의 유래설이 있다.
첫 번째 유래설은 독일 음식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독일 음식 중에 빵에 소시지를 끼워 먹는 frankfurter 라는 요리가 있었다. 이 요리가 1860년 미국에 전파되게 되었고 미국인들은 이 음식을 타크스 훈트(몸통이 길고 다리 짧은 개) 소시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음식은 특히 야구 경기장에서 유행했다고 하는데 1906년 신문 만화가가 신문에 삽입할 때 핫도그라고 표기를 해서 이름이 정해졌다고 한다.
두 번째 유래설은 좀 충격적인데, 유럽 중심인 스위스의 동부 지역에서 개고기 소시지를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이 있었다. 물론 핫도그의 재료가 개고기였다는 것은 아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때 등장한 간이 음식으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빵 틈에 끼워먹는 일종의 샌드위치였는데 그것을 먹던 한 손님이 뜨거운 개고기 소시지를 먹는 것 같다고 말을 한 것을 주인이 듣고 힌트를 얻어 이름을 핫도그라고 지었다고 한다.
♠ 햄버거 ♠
햄버거 하면 미국이 생각나거나 독일 hamburg 도시가 떠오른다. 독일에서 유래되어 미국으로 넘어가서 먹게 되었다던 햄버거.
하지만 더 유력한 유래가 있다. 중세에 아시아 초원 지대에 살고 있던 타타르 족이라는 유목 민족이 있었는데 날고기를 얇게 잘라 양파, 후추 등의 양념을 해서 말안장에 넣고 먹기 시작 했다.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독일 함부르크 상인들이 이 비법을 전수해 갔는데 날로 먹기는 좀 역겨워 익혀 먹었다.
이 양념한 고기는 우리나라의 육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04년 미국의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먹기 시작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육회와 유래가 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 커피의 기원 ♠
'커피'란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에티오피아의 지명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힘과 정열>을 뜻하는 희랍어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커피의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만큼 그 전해된 내력도 명확하지 않은데, 전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칼디'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양떼가 목장근처의 열매를 먹은 후 흥분상태가 되어 뛰노는 것을 본 뒤 그것을 수도원 원장에게 물어보았는데 원장도 이상히 여기고 그 열매를 따서 끓여 먹어 보았더니 기분이 유쾌하고 머리가 상쾌해졌다는 것이다. 이후 제자들에게도 마시게 해서 졸지 않고 기도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로써 커피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커피가 현대인의 식사음료와 기호음료로써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늘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양치기 소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만 해도 커피는 '신이 내린 소중한 약'으로 여겨져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이슬람교 사원이 관리하며 포교의 수단으로 이용하던 '빨간 열매에 불과 했다. 그러던 것이 1554년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의 옛 이름)에 커피점이 생겨났고, 그곳은 곧 학생 예술가, 철학가, 정치가가 모이는 사교장이 되었다.
그러자 통치자들은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정치, 종교적인 토론을 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고 곧 커피금지령이 내려졌다. 심지어 커피가 십자군 병사들에게 의해 유럽대륙으로 퍼져 나간 초기에는 이슬람 세계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해서 이교도의 음료로 배척되기도 했다. 그러한 고통의 시절을 보내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비로소 자유와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칵테일의 어원 ♠
칵테일은 직역하면 "수탁꼬리"가 된다.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 어느 항구에 영국배가 입항하였다. 상륙한 선원들이 어느 술집에 들어갔는데 카운터 안에서 소년이 껍질을 벗긴 예쁜 나무 가지로 드락스(Drace)라고 하는 원주민의 혼합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스트레이트로만 마셨기 때문에 이 광경이 신기하게 보였다. 한 선원이 "그게 뭐지?" 라고 물었다. 선원은 술을 물었는데 소년은 예쁜 나뭇가지를 물어보는 줄 알고 나무 가지가 닭 꼬리처럼 생겼으므로 "꼴라 데 갈료(Cola de gallo)"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수탉꼬리를 의미한다. 이것을 영어로 바꿔서 칵테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 스페인군이 뉴멕시코 지방을 정복했을 때 그 지방에는 아스텍구족이 살고 있었으며 칵테일이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하나였다고 한다. 아스텍구족 이전에 7~11세기 전 그 지방에는 돌텍크족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귀족의 하나가 진귀한 혼합주를 만들어 어여쁜 자기의 딸 "콕돌"과 함께 바치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 혼합주를 그 귀족의 딸 이름을 붙여 "콕돌" 이라 불러 그 후부터는 그러한 혼합주의 이름이 아스텍구족의 언어의 하나로 전해졌다고 한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버지니아 기병대의 "패트릭 후라나간" 이라는 한 아일랜드 인이 기병대에 입대하였다. 그 사람은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전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혼의 "베티" 라는 여인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곧 망부대에 종군할 것을 희망, 1779년 동부대가 뉴욕근교에 이동했을 때 주보를 담당하였다. 그 여인은 "Bracer"라고 하는 혼합주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대원들에게 마시게 했는데 군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느 날 그녀는 반미 영국인 지주의 닭을 훔쳐 와서 장교들을 위로하였는데 장교들은 닭의 꼬리로 장식된 Bracer를 밤새 마시며 춤을 추고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만취되어 있던 어느 한 장교가 닭의 꼬리로 장식된 그 Bracer를 보고 '야 그 콕스 테일 멋지다!!' 라고 말하자 역시 술에 취한 다른 장교가 '응 정말 멋있는 술이야~!' 라고 해서 그 후부터 혼합된 Bracer를 칵테일이라고 했던 것이 다른 혼합주도 칵테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술의 고장 '켄터키'에서는 투계가 유행되었는데, 이때 돈을 걸고 싸움을 시키던 한 사람이 돈을 잃게 되자 화가 난 끝에 마시던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며 그 싸움에 진 닭의 꼬리를 빼어 술잔에 넣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콕 스테일" 하며 크게 웃었고 그것을 보았던 주위 사람들이 모든 술을 섞은 다음 닭의 꼬리를 장식하고 투계의 싸움을 희비로 나누었다고 한다.
♠ 와인 ♠
포도의 이름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210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하무라비 왕이 만든 법전에 보면 포도주의 업(業)에 관한 규정이 적혀있다. 또 나일강 근처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에서 발굴(1922년)된 이집트 왕의 분묘 벽화에 포도의 재배, 발효, 지하저장의 모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보면 "포도주는 포도나무를 심었던 노아의 하사품이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주신인 오시리스에 의해 얻었다"라고 가리키고 있으며 또한 포도주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주는 반면 인간의 도덕을 속이는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그리스도가 포도주를 "젊은 피"라고 이야기한 성서(故事)로부터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따라 교회 근처에 포도밭이 생겨나서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 최고의 포도주는 에게해에 있는 키오스 섬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키오스섬에서 3세기경부터 포도주를 만들 때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오랜 시간동안 저장 숙성시키는 포도주 제조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세기 전후부터 수도승의 세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포도밭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독일에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106년에 베네딕트파의 수도사가 Johanesberg에 포도밭을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1131년에는 Rhein 지역의 Eperbach의 수도사가 Steinferg에 대단위 포도원을 만들었으며 프랑스에서는 1152년 Bordeaux 지방의 공주인 Eleanore가 Henry 2세와 결혼했을 때 프랑스 서쪽의 포도산지중 1/2가량이 영국왕실의 소유가 되고 나서부터 영국이 프랑스 와인의 최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13세기에는 영국인들이 보르도(Bordeaux)의 레드와인(Vin Rouge)을 "크라렛"이라고 부르며 즐겨 마셨다요. 그러나 영불전쟁이 영국의 패배로 끝난 이후에는 영국은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에서 수입하게끔 되었으나 그 후 스페인의 왕가 또한 프랑스의 Bourbon 왕가와 결연을 맺게 되어 공동으로 영국에 대항했다. 이로 인해 영국은 포르투갈과 "메수엔조약(Methuen-Treaty)"을 맺어 포트(Port)와인을 본격적으로 수입하였으나 와인의 질이 프랑스산에 비해 떨어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인 남아프리카와 호주에 대량의 포도나무를 심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약 50여 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 밀크셰이크 ♠
밀크셰이크의 사전적 의미는 우유를 주재료로 하여 아이스크림을 섞은 소프트드링크 음료이다. 다량의 유지방이 들어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음료이다. 처음엔 달걀과 우유를 넣어 만들었다.
옛날 북유럽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음료 보다는 감기 예방 차인 계란 술로 출발을 했다. 과거에는 럼을 넣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맛을 위해 넣지 않고 발전을 한 것이 지금의 맛있는 밀크셰이크가 된 것이다
♠ 아이스크림 ♠
아이스크림 역사를 보면 구약시절 아브라함과 이삭이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대 중국인이 BC3000경부터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 즙을 혼합해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아이스크림은 1851년 미국에서 유래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1년에 자동화가 되어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살도 찌고 영양가도 별로 없다는 엄청난 오해를 갖고 사는 아이스크림의 영양은 양질의 단백질과 지용성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뇌나 신경의 역할을 돕고 있다. 또한 칼슘이 풍부하여 뼈를 만드는 것 외에 심장이나 근육의 수축을 도와 혈액응고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과일이나 너트류를 첨가해서 우유에 부족한 비타민 C나 철분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 간식으로도 좋은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 보충뿐만 아니라 소화액 분비를 촉진 시키며 또 액상이라 이에 잘 붙지 않아 충치의 원인이 되지 않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골절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데, 멸치나 채소보다 맛이 좋고 먹기 쉽기 때문에 칼슘섭취에 더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 스낵 ♠
스낵의 어원은 (snap: 잽싸게 물다)인데 중세 네덜란드인 snacken (깨물다)에서 유래되었다. 스낵의 개념은 광범위하게는 부담 없이 즐기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가리킨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간단한 식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 도넛의 구멍 ♠
혹시 도넛을 먹으면서 대체 누가 구멍을 뚫었기에 한입의 양이 줄었을까 생각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도넛에 구멍을 뚫게 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네덜란드에 머문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전했다는 설이 있다. 네덜란드 주부들이 밀가루 반죽 가운데에 호도를 올린 다음 튀김과자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본 청교도인들이 미국에 가서 링도넛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는 도넛이 화살을 맞아서 구멍이 생겼다는 이야기인데, 19세기 무렵 인디언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순례자의 부인이 빵을 만들던 중 인디언이 쏜 화살이 빵에 맞자 그 모양 그대로 구워내, 가운데에 구멍이 난 도넛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곳을 살펴보면 만들어진 빵의 가운데 부분이 익지 않아서 그 부분을 파내고 먹다보니 동그란 구멍이 났다는 얘기도 있다.
♠ 라면의 탄생 ♠
라면이란 면을 증숙 시킨 후 기름에 튀긴 유탕면과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에 분말 스프를 합친 것을 일반적으로 라면이라고 한다. 라면의 발상지는 일본이며 중국의 튀겨낸 면에서 힌트를 얻어 1958년 가을 일청식품에서 생산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9년 봄, 에스코트라는 회사가 본격 생산을 시작했으며 1960년 겨울부터는 명성식품이 치킨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때 생산되던 라면은 [조미면]으로서 면에 양념 국물을 가미한 것이었다. 1961년에 이르러서야 명성식품에 의해 현재와 같은 양식의 라면이 생산되었고 일본에서의 라면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라면이 들어온 것은 1963년 9월부터였고 1983년 이전까지 삼양과 농심의 양사체제로 라면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후 빙그레 등 신규업체가 늘어나면서 농심, 삼양, 야쿠르트, 오뚜기, 빙그레 등 많은 업체가 라면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 사바사바 ♠
사바(鯖)는 일본어로 고등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등어는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제철이다. 가을의 고등어는 온몸에 기름이 올라있어 조리만 잘하면 다른 생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단 고등어의 단백질 중에는 히스티딘이란 성분이 들어있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알레르기성 체질인 사람은 가능하면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고등어 요리를 일본에서는 시메사바라고 부르는데, 생선이름이 사바로 정해진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사바의 사(小)는 작다라고 하는 의미의 사로서 바는 이빨을 촉음화한 것으로서 결국 사바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이 고등어를 가리키는 이름 사바가 국내에선 약간 의미가 바뀌어 누구에게 무슨 일을 부탁할 때 잘 보이려고 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그 말이 생긴 연유도 흥미롭다.
옛날 일본은 지리적인 위치로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왜구는 굶주림에 우리를 침범했고 조선시대에 그 왜구들이 많이 있는 대마도에서 직접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고등어는 귀한 생선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지금같이 냉장고가 없었던 때였다. 어느 한 일본인이 나무통에 고등어 두 마리를 담아서 관청에 일을 부탁하면서 선물로 가지고 가는 도중에 누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그냥 사바가지고 관청에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거기에서 고등어 사바로 무슨 부탁을 바란다는 사바사바한다는 우리식 의미로 전해지고 있다.
♠ 프티 푸르 이야기 ♠
프티 푸르는 프랑스어로 '약한 불'이라는 뜻이다. 프티 푸르의 기원은 옛날 마을 전체에서 같이 빵을 구워 먹던 시절로 올라간다.
집집마다 빵을 굽는 가마를 갖추지 못하던 시절 프랑스인들은 마을 공동의 큰 가마를 두고 마을 사람들의 식량을 함께 해결했는데 이때 가마의 크기는 짐작대로 굉장히 컸다. 이렇게 해서 빵을 굽고 난 뒤 불을 꺼도 가마에 남은 열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이 여열을 이용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프티 푸르들이다. 말 그대로 불이 꺼진 빵 가마의 약한 불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발효 반죽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굽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처음에는 프티 푸르라고 하면 단순한 과자 종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의 프랑스에서는 프티 푸르의 정의는 아주 광범위하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자른 작은 케이크나 달지 않은 애피타이저 혹은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모두 프티 푸르의 범위에 포함되는데 이러한 음식들은 주로 리셉션이나 뷔페, 칵테일파티 혹은 집에서 열리는 작은 파티의 애피타이저나 후식으로 널리 사용된다. 특히 뷔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파티에선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할 수 있다. 칼이나 숟가락, 포크 없이 손으로 집어서 먹을 수 있고 접시에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프티 푸르의 화려하고도 앙증맞은 모습이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 약식 ♠
약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 신라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 때 임금이 소풍을 나가 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쥐가 까마귀를 쫓으려 하자 임금이 신하를 시켜 까마귀의 뒤를 쫓게 해 한참을 쫓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 근처에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연못 근처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편지를 건네주고 사라져 버렸다. 편지의 봉투에는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라고 쓰여 있었는데 무사는 이 편지를 임금에게 전달하게 되었고 이 글을 읽은 임금은 두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하여 열지 않게 했다.
이때 왕실의 예언자가 말하기를 두 사람은 서민을 말하는 것이고 한 사람은 임금 자신이라고 얘기를 하자 겁이 난 임금은 즉시 그 편지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빨리 왕실로 돌아가 거문고 갑을 쏘아라."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임금은 즉시 왕실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속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죽은 두 사람이 나오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왕실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궁주와 중이었는데 서로 간통하여 이 날 밤에 숨어 있다가 임금을 해치려고 했던 것이었다.
까마귀의 은혜를 입은 임금은 까마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까마귀가 좋아하는 대추로 약식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선물했다. 그 때의 음식이 점점 전해 내려오면서 밤과 잣, 대추를 넣고 까마귀의 털 색깔처럼 검게 물들인 약식을 만들어 사람들이 먹게 되었던 것이다.
♠ 떡국 ♠
명절마다 먹는 음식을 "세시음식"이라고 하는데 떡국도 세시 음식 중의 하나이다. 설날 세시음식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떡국이다. 가래떡을 뽑아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육수에 끓인 설날 음식인 떡국은 설날이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이 날 먹는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전모양을 본뜬 떡국을 길게 뽑은 가래떡으로 만드는 이유는 새해 아침 긴 음식을 먹어 장수하라는 뜻에서란다.
♠ 김 ♠
김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 먹는다고 한다. 200~300년 전 경상도 하동 지방의 한 할머니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김이 많이 붙은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뜯어 먹었다고 한다. 먹어 보니 맛이 매우 좋아서 그 후 대나무를 물속에 세워서 김을 양식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류학자들이 전하는 이야기인데, 정문기라는 사람이 전남 완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어구에 김이 붙어 나온 것을 보고 그때부터 김을 양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400년 전부터 김이 전남 광양군의 토산품이었다고 씌어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오래 전부터 양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양식을 해왔던 김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희귀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 빈대떡 ♠
빈대떡은 녹두를 물에 불렸다가 맷돌에 갈아 솥뚜껑에 부친 것으로 황해도에서는 막붙이, 평안도에서는 녹두지짐, 지짐이라고 한다. 여기에 새콤한 김치를 다져서 넣기도 하고, 또 고사리나 도라지를 넣어 쌉쌀한 맛을 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빈대떡은 특별한 날이면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서 꼭 하는 음식중의 하나이다. 그런 빈대떡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서울 덕수궁 뒤쪽의 동네 이름이 지금은 정동이지만 예전에는 빈대가 많아서 빈대골이라고 했다. 그런데, 빈대골에 사는 사람 중에 부침개 장수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빈대떡이 되었다고 한다.
'명물기략'에서는 중국의 콩가루 떡인 알병의 알자가 빈대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이 와전되어서 빈대떡이 되었다고 한다.
빈대떡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으로 오해하기 쉽다. 또한 노래에서 나오는 것처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먹지'란 말로도 그렇게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예전의 빈대떡 쓰임새를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서울지방에서는 큰상이나 제상에 전을 고일 때 빈대떡이나 밀적을 부쳐서 아래에 고이고 그 위에 생선전, 간전, 산적을 얹었다. 이렇게 빈대떡은 정성을 다해서 일반적으로 예부터 즐겼던 음식이다.
여러 가지 간식 & 식사류 이름의 유래②
여러 가지 간식 & 식사류 이름의 유래②
♠ 오믈렛 ♠
옛날 스페인 왕이 수행원을 데리고 시골길을 산책을 하던 중 배가 고파서 식사준비를 시켰다. 수행원은 근처 누추한 집에 가서 왕의 식사로 아무 거라도 좋으니 빨리 만들라고 독촉했다. 누추한 집의 주인인 남자는 재료가 마땅치 않아 보이는 계란을 풀어 팬에 넣고 익힌 후 접시에 담아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남자의 동작을 보고"Quel homme lest ! (정말 재빠른 남자)라고 감탄을 했는데 그 후 Hommelest(오믈레스트)가 그 후 Omelest(오믈렛)로 변화했다고 한다.
♠ 샌드위치 ♠
영국에 샌드위치라는 항구 도시에 몬터규 귀족 일가가 살고 있었다. 몬터규 귀족은 샌드위치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영국 초대 해군 제독을 지냈던 제 4대 샌드위치 백작은 카드놀이를 너무너무 좋아해 점심시간까지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백작은 식당에서 호밀 빵에 야채와 베이컨을 넣고 먹었는데 이런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서 따라 먹던 것이 점차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는 이미 로마인들이 2000년 전에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걀을 넣은 샌드위치는 미국에서 서부 개척 시대에 냉장고가 없어 상한 음식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 빵 사이에 달걀을 으깨서 먹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 핫도그 ♠
핫도그에는 두 가지의 유래설이 있다.
첫 번째 유래설은 독일 음식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독일 음식 중에 빵에 소시지를 끼워 먹는 frankfurter 라는 요리가 있었다. 이 요리가 1860년 미국에 전파되게 되었고 미국인들은 이 음식을 타크스 훈트(몸통이 길고 다리 짧은 개) 소시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음식은 특히 야구 경기장에서 유행했다고 하는데 1906년 신문 만화가가 신문에 삽입할 때 핫도그라고 표기를 해서 이름이 정해졌다고 한다.
두 번째 유래설은 좀 충격적인데, 유럽 중심인 스위스의 동부 지역에서 개고기 소시지를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이 있었다. 물론 핫도그의 재료가 개고기였다는 것은 아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때 등장한 간이 음식으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빵 틈에 끼워먹는 일종의 샌드위치였는데 그것을 먹던 한 손님이 뜨거운 개고기 소시지를 먹는 것 같다고 말을 한 것을 주인이 듣고 힌트를 얻어 이름을 핫도그라고 지었다고 한다.
♠ 햄버거 ♠
햄버거 하면 미국이 생각나거나 독일 hamburg 도시가 떠오른다. 독일에서 유래되어 미국으로 넘어가서 먹게 되었다던 햄버거.
하지만 더 유력한 유래가 있다. 중세에 아시아 초원 지대에 살고 있던 타타르 족이라는 유목 민족이 있었는데 날고기를 얇게 잘라 양파, 후추 등의 양념을 해서 말안장에 넣고 먹기 시작 했다.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독일 함부르크 상인들이 이 비법을 전수해 갔는데 날로 먹기는 좀 역겨워 익혀 먹었다.
이 양념한 고기는 우리나라의 육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04년 미국의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먹기 시작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육회와 유래가 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 커피의 기원 ♠
'커피'란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에티오피아의 지명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힘과 정열>을 뜻하는 희랍어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커피의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만큼 그 전해된 내력도 명확하지 않은데, 전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칼디'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양떼가 목장근처의 열매를 먹은 후 흥분상태가 되어 뛰노는 것을 본 뒤 그것을 수도원 원장에게 물어보았는데 원장도 이상히 여기고 그 열매를 따서 끓여 먹어 보았더니 기분이 유쾌하고 머리가 상쾌해졌다는 것이다. 이후 제자들에게도 마시게 해서 졸지 않고 기도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로써 커피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커피가 현대인의 식사음료와 기호음료로써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늘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양치기 소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만 해도 커피는 '신이 내린 소중한 약'으로 여겨져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이슬람교 사원이 관리하며 포교의 수단으로 이용하던 '빨간 열매에 불과 했다. 그러던 것이 1554년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의 옛 이름)에 커피점이 생겨났고, 그곳은 곧 학생 예술가, 철학가, 정치가가 모이는 사교장이 되었다.
그러자 통치자들은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정치, 종교적인 토론을 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고 곧 커피금지령이 내려졌다. 심지어 커피가 십자군 병사들에게 의해 유럽대륙으로 퍼져 나간 초기에는 이슬람 세계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해서 이교도의 음료로 배척되기도 했다. 그러한 고통의 시절을 보내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비로소 자유와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칵테일의 어원 ♠
칵테일은 직역하면 "수탁꼬리"가 된다.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 어느 항구에 영국배가 입항하였다. 상륙한 선원들이 어느 술집에 들어갔는데 카운터 안에서 소년이 껍질을 벗긴 예쁜 나무 가지로 드락스(Drace)라고 하는 원주민의 혼합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스트레이트로만 마셨기 때문에 이 광경이 신기하게 보였다. 한 선원이 "그게 뭐지?" 라고 물었다. 선원은 술을 물었는데 소년은 예쁜 나뭇가지를 물어보는 줄 알고 나무 가지가 닭 꼬리처럼 생겼으므로 "꼴라 데 갈료(Cola de gallo)"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수탉꼬리를 의미한다. 이것을 영어로 바꿔서 칵테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 스페인군이 뉴멕시코 지방을 정복했을 때 그 지방에는 아스텍구족이 살고 있었으며 칵테일이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하나였다고 한다. 아스텍구족 이전에 7~11세기 전 그 지방에는 돌텍크족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귀족의 하나가 진귀한 혼합주를 만들어 어여쁜 자기의 딸 "콕돌"과 함께 바치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 혼합주를 그 귀족의 딸 이름을 붙여 "콕돌" 이라 불러 그 후부터는 그러한 혼합주의 이름이 아스텍구족의 언어의 하나로 전해졌다고 한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버지니아 기병대의 "패트릭 후라나간" 이라는 한 아일랜드 인이 기병대에 입대하였다. 그 사람은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전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혼의 "베티" 라는 여인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곧 망부대에 종군할 것을 희망, 1779년 동부대가 뉴욕근교에 이동했을 때 주보를 담당하였다. 그 여인은 "Bracer"라고 하는 혼합주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대원들에게 마시게 했는데 군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느 날 그녀는 반미 영국인 지주의 닭을 훔쳐 와서 장교들을 위로하였는데 장교들은 닭의 꼬리로 장식된 Bracer를 밤새 마시며 춤을 추고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만취되어 있던 어느 한 장교가 닭의 꼬리로 장식된 그 Bracer를 보고 '야 그 콕스 테일 멋지다!!' 라고 말하자 역시 술에 취한 다른 장교가 '응 정말 멋있는 술이야~!' 라고 해서 그 후부터 혼합된 Bracer를 칵테일이라고 했던 것이 다른 혼합주도 칵테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술의 고장 '켄터키'에서는 투계가 유행되었는데, 이때 돈을 걸고 싸움을 시키던 한 사람이 돈을 잃게 되자 화가 난 끝에 마시던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며 그 싸움에 진 닭의 꼬리를 빼어 술잔에 넣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콕 스테일" 하며 크게 웃었고 그것을 보았던 주위 사람들이 모든 술을 섞은 다음 닭의 꼬리를 장식하고 투계의 싸움을 희비로 나누었다고 한다.
♠ 와인 ♠
포도의 이름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210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하무라비 왕이 만든 법전에 보면 포도주의 업(業)에 관한 규정이 적혀있다. 또 나일강 근처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에서 발굴(1922년)된 이집트 왕의 분묘 벽화에 포도의 재배, 발효, 지하저장의 모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보면 "포도주는 포도나무를 심었던 노아의 하사품이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주신인 오시리스에 의해 얻었다"라고 가리키고 있으며 또한 포도주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주는 반면 인간의 도덕을 속이는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그리스도가 포도주를 "젊은 피"라고 이야기한 성서(故事)로부터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따라 교회 근처에 포도밭이 생겨나서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 최고의 포도주는 에게해에 있는 키오스 섬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키오스섬에서 3세기경부터 포도주를 만들 때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오랜 시간동안 저장 숙성시키는 포도주 제조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세기 전후부터 수도승의 세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포도밭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독일에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106년에 베네딕트파의 수도사가 Johanesberg에 포도밭을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1131년에는 Rhein 지역의 Eperbach의 수도사가 Steinferg에 대단위 포도원을 만들었으며 프랑스에서는 1152년 Bordeaux 지방의 공주인 Eleanore가 Henry 2세와 결혼했을 때 프랑스 서쪽의 포도산지중 1/2가량이 영국왕실의 소유가 되고 나서부터 영국이 프랑스 와인의 최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13세기에는 영국인들이 보르도(Bordeaux)의 레드와인(Vin Rouge)을 "크라렛"이라고 부르며 즐겨 마셨다요. 그러나 영불전쟁이 영국의 패배로 끝난 이후에는 영국은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에서 수입하게끔 되었으나 그 후 스페인의 왕가 또한 프랑스의 Bourbon 왕가와 결연을 맺게 되어 공동으로 영국에 대항했다. 이로 인해 영국은 포르투갈과 "메수엔조약(Methuen-Treaty)"을 맺어 포트(Port)와인을 본격적으로 수입하였으나 와인의 질이 프랑스산에 비해 떨어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인 남아프리카와 호주에 대량의 포도나무를 심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약 50여 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 밀크셰이크 ♠
밀크셰이크의 사전적 의미는 우유를 주재료로 하여 아이스크림을 섞은 소프트드링크 음료이다. 다량의 유지방이 들어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음료이다. 처음엔 달걀과 우유를 넣어 만들었다.
옛날 북유럽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음료 보다는 감기 예방 차인 계란 술로 출발을 했다. 과거에는 럼을 넣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맛을 위해 넣지 않고 발전을 한 것이 지금의 맛있는 밀크셰이크가 된 것이다
♠ 아이스크림 ♠
아이스크림 역사를 보면 구약시절 아브라함과 이삭이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대 중국인이 BC3000경부터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 즙을 혼합해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아이스크림은 1851년 미국에서 유래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1년에 자동화가 되어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살도 찌고 영양가도 별로 없다는 엄청난 오해를 갖고 사는 아이스크림의 영양은 양질의 단백질과 지용성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뇌나 신경의 역할을 돕고 있다. 또한 칼슘이 풍부하여 뼈를 만드는 것 외에 심장이나 근육의 수축을 도와 혈액응고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과일이나 너트류를 첨가해서 우유에 부족한 비타민 C나 철분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 간식으로도 좋은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 보충뿐만 아니라 소화액 분비를 촉진 시키며 또 액상이라 이에 잘 붙지 않아 충치의 원인이 되지 않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골절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데, 멸치나 채소보다 맛이 좋고 먹기 쉽기 때문에 칼슘섭취에 더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 스낵 ♠
스낵의 어원은 (snap: 잽싸게 물다)인데 중세 네덜란드인 snacken (깨물다)에서 유래되었다. 스낵의 개념은 광범위하게는 부담 없이 즐기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가리킨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간단한 식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 도넛의 구멍 ♠
혹시 도넛을 먹으면서 대체 누가 구멍을 뚫었기에 한입의 양이 줄었을까 생각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도넛에 구멍을 뚫게 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네덜란드에 머문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전했다는 설이 있다. 네덜란드 주부들이 밀가루 반죽 가운데에 호도를 올린 다음 튀김과자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본 청교도인들이 미국에 가서 링도넛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는 도넛이 화살을 맞아서 구멍이 생겼다는 이야기인데, 19세기 무렵 인디언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순례자의 부인이 빵을 만들던 중 인디언이 쏜 화살이 빵에 맞자 그 모양 그대로 구워내, 가운데에 구멍이 난 도넛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곳을 살펴보면 만들어진 빵의 가운데 부분이 익지 않아서 그 부분을 파내고 먹다보니 동그란 구멍이 났다는 얘기도 있다.
♠ 라면의 탄생 ♠
라면이란 면을 증숙 시킨 후 기름에 튀긴 유탕면과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에 분말 스프를 합친 것을 일반적으로 라면이라고 한다. 라면의 발상지는 일본이며 중국의 튀겨낸 면에서 힌트를 얻어 1958년 가을 일청식품에서 생산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9년 봄, 에스코트라는 회사가 본격 생산을 시작했으며 1960년 겨울부터는 명성식품이 치킨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때 생산되던 라면은 [조미면]으로서 면에 양념 국물을 가미한 것이었다. 1961년에 이르러서야 명성식품에 의해 현재와 같은 양식의 라면이 생산되었고 일본에서의 라면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라면이 들어온 것은 1963년 9월부터였고 1983년 이전까지 삼양과 농심의 양사체제로 라면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후 빙그레 등 신규업체가 늘어나면서 농심, 삼양, 야쿠르트, 오뚜기, 빙그레 등 많은 업체가 라면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 사바사바 ♠
사바(鯖)는 일본어로 고등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등어는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제철이다. 가을의 고등어는 온몸에 기름이 올라있어 조리만 잘하면 다른 생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단 고등어의 단백질 중에는 히스티딘이란 성분이 들어있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알레르기성 체질인 사람은 가능하면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고등어 요리를 일본에서는 시메사바라고 부르는데, 생선이름이 사바로 정해진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사바의 사(小)는 작다라고 하는 의미의 사로서 바는 이빨을 촉음화한 것으로서 결국 사바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이 고등어를 가리키는 이름 사바가 국내에선 약간 의미가 바뀌어 누구에게 무슨 일을 부탁할 때 잘 보이려고 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그 말이 생긴 연유도 흥미롭다.
옛날 일본은 지리적인 위치로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왜구는 굶주림에 우리를 침범했고 조선시대에 그 왜구들이 많이 있는 대마도에서 직접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고등어는 귀한 생선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지금같이 냉장고가 없었던 때였다. 어느 한 일본인이 나무통에 고등어 두 마리를 담아서 관청에 일을 부탁하면서 선물로 가지고 가는 도중에 누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그냥 사바가지고 관청에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거기에서 고등어 사바로 무슨 부탁을 바란다는 사바사바한다는 우리식 의미로 전해지고 있다.
♠ 프티 푸르 이야기 ♠
프티 푸르는 프랑스어로 '약한 불'이라는 뜻이다. 프티 푸르의 기원은 옛날 마을 전체에서 같이 빵을 구워 먹던 시절로 올라간다.
집집마다 빵을 굽는 가마를 갖추지 못하던 시절 프랑스인들은 마을 공동의 큰 가마를 두고 마을 사람들의 식량을 함께 해결했는데 이때 가마의 크기는 짐작대로 굉장히 컸다. 이렇게 해서 빵을 굽고 난 뒤 불을 꺼도 가마에 남은 열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이 여열을 이용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프티 푸르들이다. 말 그대로 불이 꺼진 빵 가마의 약한 불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발효 반죽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굽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처음에는 프티 푸르라고 하면 단순한 과자 종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의 프랑스에서는 프티 푸르의 정의는 아주 광범위하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자른 작은 케이크나 달지 않은 애피타이저 혹은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모두 프티 푸르의 범위에 포함되는데 이러한 음식들은 주로 리셉션이나 뷔페, 칵테일파티 혹은 집에서 열리는 작은 파티의 애피타이저나 후식으로 널리 사용된다. 특히 뷔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파티에선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할 수 있다. 칼이나 숟가락, 포크 없이 손으로 집어서 먹을 수 있고 접시에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프티 푸르의 화려하고도 앙증맞은 모습이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 약식 ♠
약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 신라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 때 임금이 소풍을 나가 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쥐가 까마귀를 쫓으려 하자 임금이 신하를 시켜 까마귀의 뒤를 쫓게 해 한참을 쫓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 근처에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연못 근처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편지를 건네주고 사라져 버렸다. 편지의 봉투에는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라고 쓰여 있었는데 무사는 이 편지를 임금에게 전달하게 되었고 이 글을 읽은 임금은 두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하여 열지 않게 했다.
이때 왕실의 예언자가 말하기를 두 사람은 서민을 말하는 것이고 한 사람은 임금 자신이라고 얘기를 하자 겁이 난 임금은 즉시 그 편지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빨리 왕실로 돌아가 거문고 갑을 쏘아라."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임금은 즉시 왕실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속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죽은 두 사람이 나오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왕실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궁주와 중이었는데 서로 간통하여 이 날 밤에 숨어 있다가 임금을 해치려고 했던 것이었다.
까마귀의 은혜를 입은 임금은 까마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까마귀가 좋아하는 대추로 약식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선물했다. 그 때의 음식이 점점 전해 내려오면서 밤과 잣, 대추를 넣고 까마귀의 털 색깔처럼 검게 물들인 약식을 만들어 사람들이 먹게 되었던 것이다.
♠ 떡국 ♠
명절마다 먹는 음식을 "세시음식"이라고 하는데 떡국도 세시 음식 중의 하나이다. 설날 세시음식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떡국이다. 가래떡을 뽑아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육수에 끓인 설날 음식인 떡국은 설날이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이 날 먹는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전모양을 본뜬 떡국을 길게 뽑은 가래떡으로 만드는 이유는 새해 아침 긴 음식을 먹어 장수하라는 뜻에서란다.
♠ 김 ♠
김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 먹는다고 한다. 200~300년 전 경상도 하동 지방의 한 할머니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김이 많이 붙은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뜯어 먹었다고 한다. 먹어 보니 맛이 매우 좋아서 그 후 대나무를 물속에 세워서 김을 양식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류학자들이 전하는 이야기인데, 정문기라는 사람이 전남 완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어구에 김이 붙어 나온 것을 보고 그때부터 김을 양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400년 전부터 김이 전남 광양군의 토산품이었다고 씌어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오래 전부터 양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양식을 해왔던 김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희귀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 빈대떡 ♠
빈대떡은 녹두를 물에 불렸다가 맷돌에 갈아 솥뚜껑에 부친 것으로 황해도에서는 막붙이, 평안도에서는 녹두지짐, 지짐이라고 한다. 여기에 새콤한 김치를 다져서 넣기도 하고, 또 고사리나 도라지를 넣어 쌉쌀한 맛을 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빈대떡은 특별한 날이면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서 꼭 하는 음식중의 하나이다. 그런 빈대떡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서울 덕수궁 뒤쪽의 동네 이름이 지금은 정동이지만 예전에는 빈대가 많아서 빈대골이라고 했다. 그런데, 빈대골에 사는 사람 중에 부침개 장수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빈대떡이 되었다고 한다.
'명물기략'에서는 중국의 콩가루 떡인 알병의 알자가 빈대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이 와전되어서 빈대떡이 되었다고 한다.
빈대떡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으로 오해하기 쉽다. 또한 노래에서 나오는 것처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먹지'란 말로도 그렇게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예전의 빈대떡 쓰임새를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서울지방에서는 큰상이나 제상에 전을 고일 때 빈대떡이나 밀적을 부쳐서 아래에 고이고 그 위에 생선전, 간전, 산적을 얹었다. 이렇게 빈대떡은 정성을 다해서 일반적으로 예부터 즐겼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