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 경영학을 가르친 실용주의 가풍 우리나라에는 이미 400년 전에 학교를 만들어 ' 경영학 '을 가르친 가문이 있었다. 다름아닌 조선 최고의 백의정승으로 이름난 명재 윤증 ( 1629~1724 ) 가문이다. 명재 윤증은 명분이 앞선 조선의 정치 현실에서도 실리를 추구한 인물로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명재가는 다른 명문가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실용적인 가풍을 지닌 까닭에 경영학적 관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속되고 마음을 감추고 사는 세상이 되어 인도 人道를 가르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을 알게 되고 재물에 자기욕심만 부리고 자기 몸만 편하려하거나 제 집만을 알게 되어서 친목과 존경의 도리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뿐 아니라 선조대대로 살던 고향을 한 번 떠나면 평생 동안 틈을 내어 선조의 산소에 성묘하지 않거나 비록 두루 친족이 있다 하나 여러 세대 서로 왕래하지 않게 되면 친족간에도 서로 알아 보지 못하게되며, 혹은 산소를 분별치 못하게 된다. 윤정중 편저 ( 노종 오방파의 유서와 전통) 에서.. 매우 검소하면서도 실용적인 가풍을 지닌 명재가는 " 아들에게 훈계한 글 " 이라는 뜻의 ( 계제자서 )를 두번씩이나 자녀들에게 남겼다. 윤황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고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정적의 탄핵으로 유배당한 후 병으로 죽었다. 1637년 윤황은 유배지로 가면서 동작진에서 아들에게 가훈을 내렸다. 지금 남자와 여자의 비단 옷은 모두 모아서 불살라버려라. 만일 이 같이 개혁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집안에서 쫓아내면서라도 시켜야겠다. 선비가 빈둥거리고 노는 버릇은 패가망신하는 병폐이니 이번의 난리( 정묘호란 )를 경험 삼아 절대로 구습을 밟지 말고 지금부터는 모두가 농사짓거나 장사하거나 또는 베를 짜면서 머슴과 종과 손을 나누어 생업에 힘 쓸 것이며, 공부하는 사람은 아침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 책을 읽도록 하여라. 윤정중 편저 ( 노종 오방파의 유서와 전통 )에서.. 이어 다음과 같이 검소한 생활을 당부했다. 1. 남자는 오십이 되어야 비단 옷을 허락하라. 2. 부녀자의 상용의복은 베옷, 무명엇으로하고 비단 옷은 외출 할 때에만 잠시 갈아 입되 고운 비단은 입지 마라. 3. 채소같이 소박한 반찬을 먹되, 담배와 도박을 절대 금하라. 4. 떡쌀은 닷 되를 넘지 말며 지짐이는 세 꽂이로 하고 유밀과는 쓰지마라. 5. 혼수는 절대 비단을 쓰지 말고, 시부모가 새 며느리에게 예물을 주는 것 또한 폐습이니 일절 행하지 마라. 명재가는 이러한 가훈을 명문화해 놓고 살천해 왔다. 특히 명재가는 유교 사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사의 허례의식을 개선해 제수품의 수를 줄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대부 집에서 추석 차례상에 송편도 전도 올리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당연히 제사상도 작은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명재는 허례의식을 따지는 명분보다 실학사상을 중시했는데 여기에는 여성을 배려한 사려 깊은 마음씨가 담겨 있다. 명재 가문의 부녀자들이 잦은 제수품 준비로 너무 혹사당한다면 간소화했다고 한다 요즘의 표현으로 대학자인 명재는 페미니스트였던 셈이다. 어린 시절 명재 고택에서 자란 윤완식씨는 " 어릴 때 집에서 보리밥을 먹고 자랐다. 우리집은 지금도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생일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부잣집에서 생일상을 받으면 배고픈 이웃에게 비난을 받을까봐생일상도 못 받게 했습니다. 이런 관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법보다는 인심이 위에 있다. 명재 윤증 집안은 주변 백성들을 위한 베품의 방안으로 의창을 운영하며 매년 각출하는 200석의 쌀로 수해나 가뭄 때 굶주리는 이웃들을 위해 구휼사업에 나섰다. 실용적인 가풍에 따라 요즘의 명재 집안에도 정치인이 거의 없다. 대신 공대 출신이나 가업 경영자, 의사 등 실용적인 학문이나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리고 장사를 장려한 파격적인 명재가의 실용적인 가풍을 이어 후손 가운데 두 명의 굴지의 대기업 회장에 올랐다. 한국야쿠르트 창업주인 윤덕병 회장은 8대손이고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도 이 집안 출신이다. 매년 여름방하 때면 명재의 후손들은 종학당에 모여 명재의 가르침을 받는다.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매번 100여명의 학생들이 명재가에 내려오는 실용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 종학당은 당시 관학인 성균관과 대조를 이루는 사학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요즘의 초. 중.고와 대학이 함께 있는 원스톱 캠퍼스에 비유할 수 있다. 특히 10세 아이부터 과거를 보는 청소년들까지 연령과 학업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 ( 교과 과정 )을 마련했다 종학당은 설립 이후 42명의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1910년까지 280년 동안 존속했다. 하버드대보다 10년 앞서 설립된 종학당은 비슷한 시공간 속에 존립해 왔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하버드대와 달리 종학당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개혁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고등교육의 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 역사의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수백년 동안 지속될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하버드내나 종학당의 시스템적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종학당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외부 변수에 의해 초래되는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문이든 대학이든 기업이든 지속 가능한 발전은 다름아닌 기획형 인재에 달려 있음을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전기기기 제조 회사인 GE사가 사내 인재교육에 연간 10억달러를 투자하는 이유인것이다. 가문이든 기업이든 더 나아가 국가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속적인 성장만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탁월한 시스템 , 진취적인 조직문화가 꼭 필요하다. 이 세가지가 있어야 성과주의 경영을 이뤄 낼 수 있으며 기업의 비젼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 세가지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이 바로 " 시스템 경영 " 이다. 시스템 경영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비체계적인 업무 수행 관행을 체계적 업무 수행으로 바꾸는 것이다. 명재가는 종학당과 사창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한 사람의 리더십에 대한 인간 경영이 아니라 명문화와 규칙을 통한 시스템적 경영에 접근했다. 종학당과 사창 시스템은 요즘 기업에 요구되는 " 지속 가능한 경영 "의 모범을 이미 400년전에 보여준 좋은 예이다. 500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_ 저자 최효찬 1
시대를 앞서간 실용주의 가풍 명재 윤증
17세기에 경영학을 가르친 실용주의 가풍
우리나라에는 이미 400년 전에 학교를 만들어
' 경영학 '을 가르친 가문이 있었다.
다름아닌 조선 최고의 백의정승으로 이름난
명재 윤증 ( 1629~1724 ) 가문이다.
명재 윤증은 명분이 앞선 조선의 정치 현실에서도
실리를 추구한 인물로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명재가는 다른 명문가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실용적인 가풍을 지닌 까닭에 경영학적 관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속되고 마음을 감추고 사는
세상이 되어 인도 人道를 가르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을 알게 되고 재물에 자기욕심만
부리고 자기 몸만 편하려하거나 제 집만을 알게 되어서
친목과 존경의 도리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뿐 아니라 선조대대로 살던 고향을 한 번 떠나면
평생 동안 틈을 내어 선조의 산소에 성묘하지 않거나
비록 두루 친족이 있다 하나 여러 세대 서로 왕래하지
않게 되면 친족간에도 서로 알아 보지 못하게되며,
혹은 산소를 분별치 못하게 된다.
윤정중 편저 ( 노종 오방파의 유서와 전통) 에서..
매우 검소하면서도 실용적인 가풍을 지닌 명재가는
" 아들에게 훈계한 글 " 이라는 뜻의 ( 계제자서 )를
두번씩이나 자녀들에게 남겼다.
윤황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고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정적의 탄핵으로 유배당한 후 병으로 죽었다.
1637년 윤황은 유배지로 가면서 동작진에서 아들에게 가훈을 내렸다.
지금 남자와 여자의 비단 옷은 모두 모아서
불살라버려라. 만일 이 같이 개혁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집안에서 쫓아내면서라도 시켜야겠다.
선비가 빈둥거리고 노는 버릇은 패가망신하는 병폐이니
이번의 난리( 정묘호란 )를 경험 삼아 절대로 구습을 밟지 말고
지금부터는 모두가 농사짓거나 장사하거나 또는 베를 짜면서
머슴과 종과 손을 나누어 생업에 힘 쓸 것이며, 공부하는 사람은
아침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 책을 읽도록 하여라.
윤정중 편저 ( 노종 오방파의 유서와 전통 )에서..
이어 다음과 같이 검소한 생활을 당부했다.
1. 남자는 오십이 되어야 비단 옷을 허락하라.
2. 부녀자의 상용의복은 베옷, 무명엇으로하고 비단 옷은
외출 할 때에만 잠시 갈아 입되 고운 비단은 입지 마라.
3. 채소같이 소박한 반찬을 먹되, 담배와 도박을 절대 금하라.
4. 떡쌀은 닷 되를 넘지 말며 지짐이는 세 꽂이로 하고
유밀과는 쓰지마라.
5. 혼수는 절대 비단을 쓰지 말고, 시부모가 새 며느리에게
예물을 주는 것 또한 폐습이니 일절 행하지 마라.
명재가는 이러한 가훈을 명문화해 놓고 살천해 왔다.
특히 명재가는 유교 사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사의
허례의식을 개선해 제수품의 수를 줄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대부 집에서 추석 차례상에
송편도 전도 올리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당연히 제사상도 작은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명재는 허례의식을 따지는 명분보다 실학사상을 중시했는데
여기에는 여성을 배려한 사려 깊은 마음씨가 담겨 있다.
명재 가문의 부녀자들이 잦은 제수품 준비로 너무
혹사당한다면 간소화했다고 한다
요즘의 표현으로 대학자인 명재는 페미니스트였던 셈이다.
어린 시절 명재 고택에서 자란 윤완식씨는 " 어릴 때 집에서 보리밥을
먹고 자랐다. 우리집은 지금도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생일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부잣집에서 생일상을
받으면 배고픈 이웃에게 비난을 받을까봐생일상도 못 받게 했습니다.
이런 관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법보다는 인심이 위에 있다.
명재 윤증 집안은 주변 백성들을 위한 베품의 방안으로 의창을
운영하며 매년 각출하는 200석의 쌀로 수해나 가뭄 때 굶주리는
이웃들을 위해 구휼사업에 나섰다.
실용적인 가풍에 따라 요즘의 명재 집안에도 정치인이 거의 없다.
대신 공대 출신이나 가업 경영자, 의사 등 실용적인 학문이나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리고 장사를 장려한 파격적인 명재가의 실용적인 가풍을 이어
후손 가운데 두 명의 굴지의 대기업 회장에 올랐다.
한국야쿠르트 창업주인 윤덕병 회장은 8대손이고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도 이 집안 출신이다.
매년 여름방하 때면 명재의 후손들은 종학당에 모여 명재의
가르침을 받는다.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매번 100여명의 학생들이
명재가에 내려오는 실용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
종학당은 당시 관학인 성균관과 대조를 이루는 사학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요즘의 초. 중.고와 대학이 함께 있는
원스톱 캠퍼스에 비유할 수 있다.
특히 10세 아이부터 과거를 보는 청소년들까지 연령과
학업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 ( 교과 과정 )을 마련했다
종학당은 설립 이후 42명의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1910년까지 280년 동안 존속했다.
하버드대보다 10년 앞서 설립된 종학당은 비슷한
시공간 속에 존립해 왔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하버드대와 달리
종학당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개혁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고등교육의 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 역사의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수백년 동안 지속될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하버드내나
종학당의 시스템적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종학당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외부 변수에 의해
초래되는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문이든 대학이든 기업이든 지속 가능한 발전은 다름아닌
기획형 인재에 달려 있음을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전기기기 제조 회사인 GE사가 사내 인재교육에
연간 10억달러를 투자하는 이유인것이다.
가문이든 기업이든 더 나아가 국가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속적인 성장만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탁월한 시스템 ,
진취적인 조직문화가 꼭 필요하다.
이 세가지가 있어야 성과주의 경영을 이뤄 낼 수 있으며
기업의 비젼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 세가지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이 바로
" 시스템 경영 " 이다.
시스템 경영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비체계적인
업무 수행 관행을 체계적 업무 수행으로 바꾸는 것이다.
명재가는 종학당과 사창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한 사람의
리더십에 대한 인간 경영이 아니라 명문화와 규칙을 통한
시스템적 경영에 접근했다.
종학당과 사창 시스템은 요즘 기업에 요구되는
" 지속 가능한 경영 "의 모범을 이미 400년전에
보여준 좋은 예이다.
500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_ 저자 최효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