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용인(龍仁). 자 중경(重卿). 시호 장양(壯襄).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이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이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고 김종서(金宗瑞)의 《제승방략(制勝方略)》을 증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주(尙州) ·충주(忠州)에서 왜군과 싸워 패배하였다. 그 후 임진강 ·평양 등을 방어하고 동변방어사(東邊防禦使)가 되었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 때 명나라 원병과 평양을 수복하였다. 서울 탈환 후 훈련도감(訓鍊都監)이 설치되자 좌지사(左知事)로 군대를 훈련했고, 후에 함북 순변사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도 순변사를 거쳐 무용대장(武勇大將)을 지냈다. 1600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상경 도중 정평(定平)에서 병사했다. 좌참찬(左參贊)이 추증되었다
이일....
본관 용인(龍仁). 자 중경(重卿). 시호 장양(壯襄).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이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이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고 김종서(金宗瑞)의 《제승방략(制勝方略)》을 증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주(尙州) ·충주(忠州)에서 왜군과 싸워 패배하였다. 그 후 임진강 ·평양 등을 방어하고 동변방어사(東邊防禦使)가 되었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 때 명나라 원병과 평양을 수복하였다. 서울 탈환 후 훈련도감(訓鍊都監)이 설치되자 좌지사(左知事)로 군대를 훈련했고, 후에 함북 순변사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도 순변사를 거쳐 무용대장(武勇大將)을 지냈다. 1600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상경 도중 정평(定平)에서 병사했다. 좌참찬(左參贊)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