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새치기한 놈년

이용범2008.07.14
조회215

-비열하게 새치기한 인물들을 보며 분개해서 쓴 저의 일기입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만, 확실한 더러움을 보며 참을 수 없었습니다. 긴 글이지만 시간되시면 읽어보시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월 12일 아침 7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계속 된 빗줄기는 어느 정도 가늘어졌지만, 캐리비안베이로 놀러가기로 한 내 마음은 근심 투성이었다.

 

 방학이 시작하고 맨날 늦게 자는 바람에 2시에 일어나는 나에게 오랜만에 맞보는 새벽은 상쾌함 이전에 짜증과 귀찮음의 시간이었다.

 

 화창할 거라던 기상청의 예보는 어젯밤부터 빗나갈 징조를 보였다. 하지만 기상청을 탓하진 않는다. 그 확률이란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비가 조금이라도 오는 이 상황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결정인 것이다.

 

 얼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진석이는 가자면 갈 모양이었다. 내 동생 용호가 얼마나 가고 싶어했는지 아는 나는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집을 나서자 비는 어느 정도 그쳤다. 하지만 여름임에도 비 온 직후의 날씨는 물놀이를 하기엔 추웠다. 가는 것을 결정하고서도 귀찮음과 짜증이 되돌아가라고 종용했지만 일단 가기로 한 건 가는 수밖에 없었다.

 

 9시까지 강남역에 모이기로 한 우리는 시간에 대충 맞춰서 만났다. 하지만 아무도 버스정류장이 어딘지 몰랐기에 우리는 잠시 버스정류장을 찾아 헤매야 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은 찾을 필요도 없었다. 엄청난 대열의 인파가 버스정류장이 여기라고 손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긴 줄은 서울에서 캐비안베이를 갈 거리만큼이나 긴 기다림이었다.

 

 이 당황스러움에 나는 분당으로 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에버랜드를 가는 건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또한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 사이사이에 있을 혹시 모를 변수에 일찌감치 단념했다. 결국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 한대에 50여명 정도 탄다고 보았을 때 표본적으로 한 3대가 지나가면 앉아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3대 쯤이야 젊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10시가 넘어서 우린 드디어 탈 수 있었고, 11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다.

 

 ‘7시부터 일어나서 11시에 도착하다니!‘

 

 하지만 다 견뎌 낼 수 있었다. 우리에겐 시원한 물과 아름다운 여인들의 자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조금만 있으면 다 잊을 거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대이동이라도 하듯이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었지만 난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고 먼저 가서 친구들과 동생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간 나는 갑자기 배보다 머리가 아팠다. 화장실에 입구부터 서있는 줄이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버스 정류장 쪽에 가까운 화장실을 택하고 그리로 향했다. 다행히 이 화장실을 텅텅 비어서 원초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었다. 큰 일을 해결한 나는 다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머지 않은 곳에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친구들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는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고, 친구들은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입장제한이 걸려서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매표소 앞에는 대기표를 나누어 주며 오후 3시에 입장할 사람들을 위한 표를 팔고 있었다. 온갖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무함도 다가왔다.

 

 하지만 실패를 겪어온 나여서 그런지 그러한 짜증과 허무함 속에서도 얼른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3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가.

 

 돌아가기엔 너무나 아까운 이 시간들 그냥 3시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3시까지 기다려봐야 얼마 못 놀고 그러기엔 기다림의 대가가 너무 작다.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자.”

 

 그래서 우린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 놀려고 과외학생이 오늘 하자는 걸 일부로 내일로 옮긴 진석이는 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준이도 마찬가지였다. 내 동생은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었는지 직원의 옷을 어디서 구해가지고 들어갈 수 없냐고 내게 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간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우리는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진석이는 오늘로 과외를 다시 바꿨고, 우린 미칠듯한 새벽에, 말 그대로 새벽같이 출발해서 꼭 이 여름의 스페셜한 계획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강남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아이러니 하게도 두 가지 우연이 있었다. 그 한가지는 돌아가기 위해 탄 버스가 우리가 아침에 탄 버스라는 사실이었다. 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내 동생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특이한 버스기사의 이름을 기억한 동생의 기억력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출발해서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던 버스를 우리가 탄 것이었나 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와의 동승이었다. 아침에 두 녀석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유창한 영어로 씨부렁거리기에 거슬렸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강남역 정류장에서 다시 같이 탄 것이다. 나와 동생은 그 아이들을 보고 동시에 그 사실을 알았고 웃기는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할지 몰라 했다. 고된 아침을 보내고 집에 도착하니 2시였다. 7시부터 2시까지 버스만 탔고 기다리기만 했다. 녹초가 돼버렸다.

 

 일찍 돌아온 우리를 보고 부모님은 당황스러워하셨다. 우리는 내일 아침 다시 가기로 했음을 알려드렸고 시원한 물 한잔으로 짜증을 달랬다.

 

 내 동생의 실망이 컸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금세 야구를 하러 나가버렸다. 오늘로 예정되었던 물놀이를 위해 그토록 좋아했던 야구를 빠지기로 결심한 것이었는데 물놀이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야구를 하러 간 것이었다. 어린이 야구단 같은 건데 요즘 야구의 인기가 대단한 것 같았다. 아무튼 난 집에서 TV를 보며 약속도 다 취소한 오늘을 저주했다. 그러던 중 별안간 튀김 튀기는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났고 밖을 내다보니 굵은 장대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허허허 이걸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못 놀길 잘한 건가?’

 

 새옹지마란 이건 건가 보다 생각했다. 아예 오는 김에 천둥 번개까지 내려쳐서 문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는 묘한 생각까지 들었다. 남의 불행에서 행복을 찾는 이상한 심리까지 격해진 나였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일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야구를 하러 간 내 동생 용호였다. 역시나 그 녀석은 잠시 후 비를 쫄딱 맞은 채 집으로 돌아왔고, 그 어린 녀석이 오늘은 최악의 날이라며 오늘을 저주했다. 참 그 모습에서 황당한 웃음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하루는 지나갔고 어느덧 자정이 다가왔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용호는 일찌감치 잠들었고, 매일 새벽 4~5시에 자던 나도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시끄러운 모닝콜과 함께 새벽 5시30분이 되었다. 이상야릇한 오기로 인해 바로 눈을 떴고 창 밖을 확인했다. 비는 그쳤다!

 

 “천우신조!!”

 

 를 외치며 다들 일어났는지 즉시 전화로 확인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일찌감치 잠에서 깨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우리의 불쌍한 모습을 측은하게 여기셨는지 어머니는 아버지께 부탁하여 우리를 대려다 주라 하셨었다. 일요일 아침의 달콤한 잠을 마다하고 아버지는 승락 하셨고, 우리는 아버지 차를 타게 됐다. 준이는 우리집에 오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첫 차를 타고 도착했고, 우리는 6시반 결전장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분당에서 버스 정류정류장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진석이까지 픽업해서 캐리비안베이로 갔다. 강남역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욱 빨리 도착하길 기원했다.

 

 8시가 조금 안돼서 우린 도착했다. 그런데 난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주차장은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어떤 이들에 의해 메워져 있던 것이다.

 

 ‘놀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냐!’

 

 매표소는 다시 또 기나긴 줄의 행렬로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이번엔 입장할 수 있으니까!’

 

  만약에 내 앞에서 딱 줄이 끈기면서 입장제한이 걸리면 삼성 제품은 앞으로 절대 구입 및 이용을 사절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오지 않았고, 잠시 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어가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유가 시대에 항상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우리 가족에게 차는 이제 장식품이 된지 오래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탄 차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그런 차까지 이용한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시설 내부로 들어가자 사물함을 구입하는 줄이 또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젠 이정도 줄은 이미 익숙해졌다.

 

 잠시 후 우리는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의 세계로 입장했다. 그 환타지한 곳으로 나가는 입구에서  개그 콘서트에 예전엔 나왔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는 개그맨 정명훈과 김인석을 마주쳤다. 그 옆에 다른 개그맨도 있었지만 얼굴만 알고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연예인까지 보니 뭔가 즐거웠다. 온갖 개그프로를 유치원 때부터 꼬박 보아온 나는 그들에게서 왠지 나를 알지 않을까 하는 친숙함을 느꼈다. 아무튼 우리는 그들을 지나치고 넘실거리는 인공파도와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들을 보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새 친구 ‘줄’은 여기서도 존재하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미끄럼틀 한 번 타는데 걸리는 시간이 2시간이었다. 이 번 줄은 정말 지그재그로 꼬이기도 하고 직선으로 한 없이 늘어선 줄의 결정판이었다. 이러한 물 미끄럼틀을 우리는 두 개 탔다. 즉 4시간의 기다림이 산정된다. 약 20 초를 위해 2시간씩 줄을 선 우리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후에 개장 마감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다른 여러 미끄럼틀을 별 기다림 없이 많이 타게 되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의 하루는 즐겁게 끝나가고 있었다. 해는 주황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갔고 선 크림도 안바르고 신나게 놀았던 우리의 얼굴 또한 붉게 변해있었다.

 

 피곤에 녹초가 된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근데 ‘이런 젠장!’ 어둑어둑한 정류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래도 각자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다르니까 ‘여러 버스들을 타겠지’ 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강남역으로 가는 5002번 버스를 타기 위한 줄만이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긴 꼬릴 넘실넘실 자랑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젠장’ 이다. 진석이는 분당방향 버스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부러웠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도 무릎과 발목 발바닥이 쑤셨다. 그래도 조금 더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어제 아침 강남역에서 기다렸던 것 보다는 줄이 짧았다. 2대 정도만 보내면 우리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지났고 2대를 보내자 우리는 거의 맨 앞의 선두 그룹이 되어 잠시 후 있을 귀환의 순간을 설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위해 줄의 행렬을 이어갔다. 캐리비안베이 마감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러한 풍경은 정말 경기 불황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의 광경이었다. 뭐 나 조차도 놀러 왔으니까 거기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었다. (한가지 변명은 내가 경제 활동인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튼 다만 삼성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순간에 어떤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5002번 버스 타는 곳인가를  방백 했다. 나는 그런 불특정 다수에게 외치는 그들에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함을 해소시켜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당신들이 서야 할 줄의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의 친절한 대답에 그들의 얼굴은 싸늘해졌고 그 중 한 아름다운 여자분의 얼굴이 창백해 진걸 보는 순간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남의 불행에서 행복을 찾는 비열한 기쁨이 쏟아오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 여성 그룹은 줄의 끝을 찾으러 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방백을 하던 그 이쁜 여자분이 나에게 갑작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나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 여성분의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내가 어느 정도 예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시죠?”

 

 “제가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일행인척 해서 옆에 같이 서 있을 수 없을까요?”

 

 아.. 나는 당황스러워서 준이의 얼굴과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부탁할 것이면 목소리라도 좀 작게 하지 옆에 앉거나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한테 다 들릴 정도로 이야기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그렇게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 여자분은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는 그 흔하게 빠지는 보충수업조차 빼먹은 적이 없고 공공질서에 대한 이상한 사명감과 이질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건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질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공공질서를 그렇게 중요시 하면서도 친구들과 있을 때는 함부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나의 이상한 성격 때문이다. 평소에는 절대 그러지 않고 쓰레기를 줍기 까지도 하는 내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일부로 버리는 모습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튼)

 

 난 정신을 차리고 그 여자에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요. 그럴 순 없을 것 같아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기다리셨고, 바쁘실 거에요. 미안합니다.”

 

 그 여자는 알겠다고 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 여자가 간 후 준이가 나한테 여자가 이뻐서 고민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래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정도는 양심과의 갈등에서 10%도 안된 수치였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멍청한 짓을 저지를 뻔한 것이다. 줄의 맨 앞에 서있다는 것은 어떠한 권력도 아니고, 내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이 줄의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재였다. 내가 남용할 권력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권리인 것이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당도했다. 멀리서부터 오고 있는 버스를 보며 사람들은 무슨 타이타닉 호의 탈출용 구출보트를 발견한 듯이 웅성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옆에 갑자기 이질적인 낯선 존재들이 끼어들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터라 우리 바로 앞 그룹과 뒷 그룹의 형상은 이미 친숙해진 터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부조화가 극명이 생긴 찰나였다. 왠 남녀 커플과 어두컴컴해서 구별도 안되는 두명의 사람, 총 4명이 옆에서 끼어드는 것이다. 일명 새치기를 행하고 있었다. 뒤에서 몇몇 사람들이 큰 소리는 못 내고 줄 서던 사람 아닌 것 같다고 외치며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했다. ‘새치기’란 단어는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운이 쭉 빠져 있던 나는 그 사람들이 갑자기 원래 거기 서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며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네 명의 인물상들은 얼렁뚱땅 우리 앞에서 버스에 승차했고, 난 그냥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있다가 동생과 준이와 함께 차에 탔다. 나머지 두명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커플은 맨 뒷 자석에 앉은 것을 보았다. 앞 쪽에 몇 명의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는 바람에 같이 앉을 곳을 찾던 우리도 맨 뒤 바로 앞에 남아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내 바로 뒤에는 그 커플이 앉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귀찮아서 그냥 그런 놈년들은 무시하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여자가 말했다.

 

 “아까 뒤에서 꿍시렁꿍시렁 우리 얘기 한 거지?”

 

 그리고 뒤이어 남자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렇지 뭐, 어차피 타고 나면 말하지도 못할 거면서 참나.”

순간 난 소위 빡 돈다는 그 말처럼 분노가 치밀었다.

 

‘새치기해서 미안한척의 척이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보이면 안되냐?’

 

 잠시 후 그 놈년들은 오히려 지들이 참 잘했다고 서로 칭찬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남자의 발언은 공공질서를 지킨 사람들을 모두 병*신 취급하는 것이었다. 마치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못하는 너희들은 쓰레기야! 좀 배워라 멍청아’ 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눈 앞에 넋 놓고 있던 나까지도 싸잡아 인간 말종으로 만드는 일종의 신의 꾸지람이기도 했다.

 

 피곤에 지쳐서 가만히 있었다는 건 변명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말을 했어야 했다.

 

 “야이 개자식들아 사람들 줄 서 있는거 안보여? 어디서 새치기 하고 지^랄이야!”

 

 하지만 난 못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순간에도 못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얘기 할 수 있었다.

 

 “이 시*팔 것들아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라고.

 

 근데 나는 못했다. 그리고 차는 출발하고 있었다. 애기 때부터 차만 타면 잠을 자왔던 나는 강남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갈등이 나를 몰아세웠다.

 

 도대체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물론 1시간을 넘게 줄을 기다리던 나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난 온전히 그리고 유유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순서는 그들로 인해 4명분이나 뒤로 옴겨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탔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 없다. 그렇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무엇 때문일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나가는 밤의 불빛들이 아른거리며 스쳐갔다. 그리고 그 창은 나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맑지 않은 창으로 반사되는 맑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바로 양심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야 하며 새치기 하면 안 된다는 규칙, 그리고 그것을 어기면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양심의 문제였다. 내가 줄을 서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기다렸던 것은 내 양심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만약 내가 줄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면 캐리비안 베이 담을 넘고 몰래라도 들어가 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했으면 오늘까지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난 모든 것의 공정함을 유지했다. 하다못해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나에게 같이 줄을 서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던 그 이쁘고 아름다웠던, 그리고 바쁘시다고까지 말했던 여자분에게까지 공정성을 운운하며 거절했던 나였다. (변변치 못한 변명으로 요구한 그 순간부터 아름다움은 사실 사라졌었다.)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을 뭉개버린 웬 거지 같은 떨거지들이 자신들의 무책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건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당장 일어나서 이 녀석들에게 이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진짜 급해서 서서가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시킬까? 너희들은 양심도 없냐며 면박을 줄까? 니네들이 쟁취한 그 달콤한 자유가 얼마나 오래가는 거길래 그렇게 사느냐며 화를 낼까? 이도 저도 안되면 그냥 때릴까?

 

 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각종 생각이 머릿속을 돌았다. 맨 뒤자리에 앉은 5명 중 네명이 일행이라면 내가 싸우게 되면 불리 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길 수 있을까?

 

 괜한 말도 안돼는 망상까지 하는 나였다. 그리고 막상 싸울 수 없는 나의 나약함에까지 화가 났다. 소시민의 무기력함이 증명되는 순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피곤한 전쟁이자 멍청한 자폭임을 모두가 자명하게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치고 박는 싸움은 생각없는 행동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끔찍할 만큼 무식한 행동이었다. 어떻게든 해서든 내 개인적인 분노를 해결하고 싶었고, 그 멍청이들에게 유치원 교육을 다시 받게 끔 하고 싶었다. 그 순간 이 놈들의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이 누군진 모르지만 너희들의 잘못함을 보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맨 뒷 자석은 불이 꺼져 있어서 너무 어두컴컴했다. 내 카메라 성능을 알기에 플래쉬를 터뜨려도 잘 안나올 것이 뻔했다. 난 그 대상들이 차에서 내리기 위해 불이 환하게 켜진 출구 쪽으로 오길 기다렸다. 난 뒤에서 그 인간들을 보며 “야 임마” 를 외치고 나를 보는 순간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싸우게 되면 싸우는 거였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 놈들이 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강남역이 다 왔는데 내릴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둘이 껴안고 그저 세상 모른 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재수 없는 상황에 사랑스럽게도 버스기사 아저씨가 버스의 모든 불을 켜줬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강남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고, 나는 마지막으로 짐을 쌓고 내리면서 그 인간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관심도 없었을 거다. 이미 글러먹은 족속들이니까.

 그렇게 나는 동생과 준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준이는 나에게 그것 때문에 잠 안자고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내 기분을 온갖 욕설로 표현했다.

 

 아무튼 금세 우리의 화제는 준이 옆에서 자던 어떤 여자가 준이 어깨에 그 무거운 머리를 기대고 자는데 그 여자 친구들이 그걸 보고도 깨우지도 않고, 그 여자도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머리를 쌔게 부딪쳐서 깼을 만도 한데 그것도 무시한 채 계속 기대서 자는 바람에 준이의 어깨가 무진장 아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다 잊고 집으로 향했다.

 

 준이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고, 나와 동생은 강남역에서 우리집까지 가기 위한 730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저녁시간이라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고 730번 버스가 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문도 열리지 않은 버스 앞으로 모였다. 줄 같은 건 이제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잘생긴 백인 외국인도 있었는데 창피했다. 이 외국인이 또 얼마나 미개한 황인종이라고 속으로 욕해댈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몇 개 보이지도 않는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무언의 몸싸움을 했고, 몇몇 경쟁의 승자들만이 마음속 기쁨의 환호를 미소로 외치며 버스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동생한테 외쳤다.

 

 “그냥 서서 가자.”

 

 

-고등학교 입시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덕시간에 배운 양심까지도 더러운 입시제도에 파묻히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