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젊은이여! 피하지 말고 부딪쳐라

이상희2008.07.15
조회125
대한민국 젊은이여! 피하지 말고 부딪쳐라

듀폰, 코닝, BMW, 베인&컴퍼니….

십여년 전만 해도 이런 글로벌 기업은 '못 올라갈 나무'로 치부돼 한국인이 이들 기업의 리더가 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세계 굴지 기업의 중역이 되어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 글로벌 리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Weekly BIZ가 만나본 7명의 한국인 글로벌 리더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나이 60이 넘은 김동수 듀폰 아시아·태평양 회장의 눈빛은 20대 못지 않은 패기를 뿜었고, 이행희 한국코닝 대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여자 사령관 같은 당당함이 묻어났다.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는 지금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늘 '등태산 소천하(登泰山 小天下·공자가 태산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대단한 '배경'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입사 초기 영어 한마디 못했던 사람도 있고, 입사 전엔 미국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세일즈라고는 전혀 몰랐던 백면서생, 고졸 출신, 사학과 출신 여대생….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성공 비결은 베일에 가려진 게 아니라 누구나 아는 평범한데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리더들은 "피하지 말고 부딪치면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공짜는 없다. 준비하고 공부하라

신데렐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글로벌 리더가 된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했다. 서양인들보다 한 발 앞서려면 더 배우고 더 멀리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장우 이메이션 글로벌브랜드 총괄대표의 좌우명은 '세상에 늦은 것은 없다(It's never too late to be what you might have been)'이다. 그는 "MBA학위 받고 와서 마케팅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사람들이 많다"며 "학위는 회사생활의 시작에 불과하다. 세상엔 배울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미 경영학과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각각 갖고 있는 그는 지금 디자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행희 대표가 처음 입사했을 때 주어진 업무는 무역문서 타이핑 등 단순 사무업무였다. 그런데도 그는 과감하게 고객들을 직접 만나 무역 상담에 나섰다가 부장, 차장들에게 혼이 났다. "내가 하는 일을 왜 당신이 넘보느냐"는 것. 하지만 이 대표를 찾는 고객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일감이 집중됐다. "시키는 일만 해서는 클 수가 없지요. 내가 먼저 역량을 보여주어 자연스럽게 그 일이 내게 오게 만들어야지요. 그냥 앉아서 '저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데'라고 불평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준비하고 먼저 치고 나가야 합니다."


김효준 대표는 "리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준비된 사람만이 쟁취할 수 있는 게 바로 리더 자리라는 것. 그가 미국 유명 대학 박사와 MBA 출신을 꺾고 BMW에 입사한 것도 순전히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삽니다. 아는 만큼만 보이게 마련이죠. 항상 호기심을 갖고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김동수 회장은 인생을 등산에 비유했다. 산 하나를 넘고 그제야 그 앞에 놓인 다른 산을 보고 준비하면 이미 늦는다는 것이다. "편한 데에만 안주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면 빨리 승진할 수는 있어도 금방 좌절합니다." 다행히 글로벌 기업에서는 실력과 논리만 갖추면 얼마든지 소신을 펼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은 언제든지 '노(No)'가 통한다.

이재현 이베이(Ebay)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대표는 2001년 이베이가 한국의 옥션을 인수한뒤 옥션의 홈페이지와 회사 명칭을 이베이식으로 바꾸려 한 본사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미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팀을 한국 특유의 PC방에 데려가 한국인의 인터넷 이용 패턴을 보여줬다. 검색어부터 입력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화면에 꽉 찬 정보부터 훑어나가는 한국인을 보고 본사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브랜드 인지도도 옥션이 이베이보다 30% 더 높았다. 현장과 데이터를 확인한 이베이 본사는 당초 계획을 포기했다.



■브레이크 더 박스(break the box·울타리를 걷어 치우라)

글로벌 리더를 겉모습만 보면 탄탄대로를 달려온 듯한 착각이 든다. 멋진 세단에 화려한 넥타이 등등. 하지만 김동수 회장은 "CEO는 부딪치고 깨지면서 올라온 자리"라며 우리들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엔지니어라고 세일즈 못해? 공대 안 나와서 공장일 못해? 글로벌 기업에는 그런 것 따질 만한 럭셔리(luxury)는 없다."

그는 화공과(UC버클리) 출신으로 입사 후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1993년 자동차사업 부문 세일즈 책임자로 발탁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연필 한 자루 팔아본 적 없던 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버텨냈다. "세일즈맨으로 변신하지 못했다면 난 아마 지금도 공장에서만 일하고 있었겠죠?"

글로벌 리더들은 남이 가지 않은 길, 힘든 곳, 해외로 나가라고 주문한다. 리스크가 없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기 때문. 이성용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컨설팅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은 한국에서 대학 나와 한국에서만 빙빙 돌려고 하는 게 보인다"며 "과거 60년대 기업가 정신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기업가 정신은 CEO가 되면서 생기는 게 아니고, 팔팔한 중간관리자 때부터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영어는 의사소통 수단, 실전으로 익혀라

한국인 글로벌 리더들에게도 영어는 짐이었다. 하지만 해답을 알고 있기에 그리 짐스럽지 않았다. 바로 자신감이었다.

구자규 GE헬스케어 아시아클리니컬시스템사장은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자꾸 말해야 합니다. 맞을까, 틀릴까 걱정말고 나오는 대로 하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어차피 네이티브(원어민)가 아닌데요. 대신 잘 들어야 합니다."

이행희 대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입사할 때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절박하게 쓰다 보면 영어가 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몸에 배면 본인 생각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고, 해외 무대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영어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악센트 고치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한국인인데 왜 미국인처럼 하려고 하느냐고 말이죠.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이니 그냥 자연스럽고 자신 있게 영어를 구사하라고요."

김효준 대표는 "중3 영어면 충분히 의사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너무 어렵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쉬운 문장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서는 미국인의 생활습관이나 문화적 배경도 공부해야 한다.

김동수 회장은 "영어도 중요하지만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소통이 안 되면 소용이 없다. 결국 논리적으로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라 네이티브나 다름없는 영어 실력을 갖고 있는 이성용 대표 역시 "영어를 배우려 하지 말고 자꾸 써 버릇 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해외 자원봉사를 추천했다. "캄보디아에 자원봉사를 나갔다고 합시다. 어떻게 하겠어요. 안 되는 영어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꾸 부딪쳐야 영어가 늡니다."

이베이의 이재현 대표는 '엘리베이터 스피치'란 비즈니스 용어를 상기시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장을 만난다고 하자. 시간은 10초. 그래도 사장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불필요하게 어렵고 긴 문장보다는 간단, 명료하게 의사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메일을 할 때도 2~3문장 이상 길어지지 않게 애쓴다고 한다.



■경청하라-글로벌 리더의 제 1 덕목

정보를 독점하고 지시하는 리더의 시대는 갔다.

김동수 회장은 '듣는 참을성과 태도'를 글로벌 리더의 필수 요건으로 꼽았다. "미국 친구들이 가만히 듣고 있는 날 보며 '쟤는 꼭 스폰지 같아. 무서워'라고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모두의 말을 듣고 베스트 솔루션을 찾는 게 바로 리더지요." 그는 "예전에는 CEO가 모든 정보를 쥐고 직원들을 리드했지만, 요즘에는 CEO에게 정보가 제일 늦게 온다"며 "결국 CEO가 직원들의 정보와 생각을 잘 들어서 방향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종이 위에 회사의 조직도를 거꾸로 그려 보였다. 자신이 가장 밑에 있고 직원들을 위에 둔 모습이었다. CEO가 혼자 일해서 1000명을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리를 짜서 1000명이 스스로 최상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리더는 '이네이블러(enabler·힘을 실어주는 사람)'라고 했다.

구자규 사장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상대의 마음을 사는 독특한 경영 기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의료기기 전시회에서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1년 전 중국 선양(瀋陽)의 병원협회 의사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이 3시간을 손수 운전해 달려온 것이다. "자기들 얘기를 너무 잘 들어줘 고마웠다고 하더군요. 선양 한번 더 와달라고요. 앞으로 선양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사람과 네트워킹이 경쟁력이다

이재현 대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손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올 초 본사 기술총괄책임자(CTO)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 미식축구 신문을 집중 탐독했다. 이 대표는 CTO가 좋아하는 수퍼볼과 달라스 카우보이팀을 화제로 꺼냈고, 대화는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둘은 금방 친해졌다. 이 대표는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맥 휘트먼 본사 회장을 만날 때는 미국의 대학 문제를 화두로 올려 회장의 입을 열도록 만든다.

이행희 대표는 자신의 리더십을 신뢰에서 찾았다. 그는 "인간은 더불어 살게 돼 있다"며 "특히 신제품 개발에 몇 년씩 걸리는 코닝 같은 첨단산업은 사람을 길게 사귀는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 경쟁사에 밀려 고전하고 있던 고객 회사에 코닝의 신제품을 내밀며 협력사업을 제의해 함께 돌파구를 만든 적이 있다.

"고객사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정보도 주고받고 엔지니어 교육도 시켜주면서 상생하지요." 그래서 그는 업무의 70% 이상을 고객 만나는 데 쓴다. 이메일보다 전화가, 전화보다는 1대1 접촉이 네트워킹에 좋기 때문이다.

김효준 대표는 2000년에 BMW 한국 대표가 되면서 토요일마다 평상복을 입고 대리점들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면 개선점과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한번은 대학교수 한 사람이 차를 산 뒤 서비스에 불만이 많다고 해서 그 교수를 모시고 해당 대리점을 찾아 1시간 동안 '불편 강의'를 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이 강의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고객 불만이 터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성용 대표는 평소 '못 나가는' 사람을 더 챙긴다. "누구든 굴곡이 있게 마련인데, 어려워진 사람을 피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일수록 가까이 합니다. 대부분 재기했고 제 소중한 고객이 됐지요." 그는 요즘 고객회사 임원들에게 무료로 퍼스널 코칭(coaching)을 해 준다. 퇴직 후 무얼 할 것인지가 최대 고민거리라고 한다. 고민을 털어놓는 임원은 물론 그들의 수많은 선후배, 동료가 모두 이 대표의 잠재 고객들이다.

김동수 회장은 "10년간 CEO를 맡으면서 사람 계발하는 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직원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한다. 멘토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라면, 코칭은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부서장 모르게 직원들을 불러 고민을 들어주며 코칭을 하는데, 퍼포먼스(실적)가 금방 좋아지는 걸 보며 희열을 느낍니다."   by 김영진 산업부 기자 helloj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