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 대한민국이 회갑을 맞이한다. 극심한 이념적 대립을 겪으면서도 짧은 기간 안에 정부를 수립하고 현재와 같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발전, 그 뒤에는 그와 같은 흐름을 근저에서부터 만들어 낸 정부수반들의 사저(私邸)가 있었다. 잠시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그러나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돌아보고, 챙겨보아야 하는 정부수반 유적들, 그 유적들의 역사적 의미를 반추해 본다.
■ 잊혀진 정부수반 유적들
조각본부 이화장은 연일 정계요인의 내왕이 접종하고 있는 한편 조각에 부심중. 4일 오후 1시 20분에는 별항과 같이 제삼차로 4장관 2처장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오전 9시반에는 안호상 문교장관, 동 9시 40분에는 전진한 사회장관이 인사차 방문하였고...(후략)
위는 1948년 8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의 일부이다. 이 기사를 통해 1948년 8월 정계요인 및 언론의 시선과 발걸음이 온통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이자 대한민국 초대정부의 조각본부였던 이화장(梨花莊)에 집중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 정부수반의 사저(私邸)들은 당대 역사의 흐름을 근저에서부터 형성해가는 변화와 발전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이에 쏠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사저들은 권력의 이동과 정부수반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또한 급격히 대중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특히,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갈등과 충돌에 의한 극심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경교장․이화장․장면 총리 가옥․윤보선 대통령 가옥․박정희 대통령 가옥․최규하 대통령 가옥 등의 정부수반의 유적들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수반 개인의 정치적 침몰과 운명을 함께 하며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더욱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이렇게 잊혀지고 외면받아야 마땅한 곳들인가.
■ 그들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이유
오는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풀려난 지 63년이 되는 날이자 스스로를 통치할 국가와 정부를 수립하여 주권을 행사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개인으로 따지면 회갑을 맞이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 이르러 대한민국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 미래의 방향타를 바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지난 현대사를 엄정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서울 지역의 정부수반 유적 6곳에 대한 관심이 건국 60년을 맞이하여 새로워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와 정부의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과거 역사가 그곳에 한데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격동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는 무수한 역사서적들 속에서보다 우리 눈앞에 실존하는 정부수반 유적들을 직접 한 번 둘러보았을 때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보존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제 곧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훼손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에 서울시는 건국 60년을 맞이해 우리의 현대사를 역사․문화유적이라는 실물을 통해 반추해 보기 위하여 서울 지역 내 역대 정부수반 유적 6곳에 대한 종합적인 보존․관리계획을 수립, 발표하게 되었다.
■ 정부수반 유적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이기에...
그렇다면 위 계획에 포함된 역대 정부수반 유적들은 각기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갖는 곳인가.
먼저, 경교장(京橋莊)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1876~1949)이 광복을 맞이해 1945년 11월 23일 중국으로부터 귀국해 1949년 6월 26일 서거하기까지 머물던 곳이다. 이곳은 김구 주석의 거소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이 헌법에서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청사이기도 했다. 또한 임시정부가 해방 정국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면서부터는 이승만의 이화장․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 등 당시 정국을 이끌어가던 세 구심점 가운데 하나로서 반탁운동․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 남북협상운동이 전개되는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임시정부 청사인 이 국가적 유적은 김구 주석 암살 이후 다시 원소유자에게 반환되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줄곧 외국대사관, 미군 주둔지, 병원 등 그 위상에 걸맞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어져 왔다. 특히 1968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유적의 내․외부는 문화재 지정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는 하나 김구 주석 집무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시설로 사용되고 있어 국가적 유적을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교장의 역사성이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보존 노력과 함께 소유자인 삼성의 거시적 측면에서의 결단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
한편, 낙산자락에 자리한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대통령(1875~1965)이 미국에서 귀국한 후 돈암장과 마포장에 이어 거주한 곳이다. 이승만은 마포장에서 이사한 1947년 10월 18일부터 경무대에 입주하는 1948년 8월 12일까지, 그리고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1960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이곳을 무대로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수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한독당․사회주의 세력이 불참한 5․10 총선거에서 승리,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에는 이화장에 ‘조각본부(組閣本部)’을 두고, 초대정부를 이끌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이화장은 초대대통령의 정치적 흥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자 국가적으로는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초대정부의 내각이 구성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서울시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 바 최초 문화재 지정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위상과 가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축출하고 집권한 장면 총리(1899~1966)와 윤보선 대통령(1897~1990)의 가옥은 얄궂게도 이화장과 가까운 명륜동과 안국동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장면은 이승만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1952년 부산 정치파동 이후 자유당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신익희․조병옥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집권해 의원내각제를 표방한 2공화국의 실권 총리가 되었다. 명륜동에 자리한 그의 사저는 1937년 장면이 직접 건립해 196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줄곧 거주하던 가옥으로 2공화국 집권세력인 민주당이 출범하게 된 막후 장소이자 1960년 4․19 혁명 시 학생․시민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2007년 소유권 변동 과정에서 멸실될 위기에 놓여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을 통해 보존하였다.
안국동에 위치한 윤보선 대통령의 가옥은 대지 4,667㎡에 건물만도 안채․사랑채․안사랑채 등 11동이나 있는 대저택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1918년 이후 1990년 7월 18일 서거하기까지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장면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신파와 대비되는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로서 장면 총리 가옥과 함께 제2공화국 탄생의 막후 장소가 되었다. 정부수반 유적들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고 있으나 일부 훼손된 건물들에 대한 정비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과 서교동의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민주주의 발전과 산업화에 있어서 큰 변혁을 가져왔던 군부의 정치개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들이다.
신당동 주택가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은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1958년 5월부터 5․16 이후인 1961년 8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하기까지 거주한 곳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에서 육사 5․8기생, 해병대 등과 함께 장면의 제2공화국을 전복하는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이를 진두지휘했다. 5․16 혁명 공약, 각계에 보내는 호소문, 포고령 등의 문안이 이곳에서 작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건물 내부 거실 벽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군사정변을 인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친필서한이 걸려 있어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70년대 신흥 주거지로 개발된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최규하 대통령이 1972년 직접 건립하여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돼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그리고 신군부의 쿠데타로 1980년 8월 16일 사임한 후 돌아와 수십 년 간 침묵의 세월을 보낸 끝에 2006년 영면하기까지 거주한 곳이다. 유적의 존재 자체가 신군부 등장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일시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대통령 일가가 사용한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생활용품이 현재까지는 내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 원형복원되어 각 시대별로 특성화된 교육공간으로 거듭나다.
서울시는 우리나라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이상의 정부수반 유적 6곳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나아가 이들을 수도 서울의 매력적인 고부가가치 문화․관광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2013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유적들이 멸실․훼손되지 않도록 금년 중 제도적 영구 보존방안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지방문화재인 이화장을 경교장․안국동 윤보선 대통령 가옥의 경우처럼 국가 지정문화재로 승격하고, 비등록되어 보존에 어려움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 가옥과 최규하 대통령 가옥도 문화재 등록을 새롭게 추진한다.
아울러 유적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각 정부수반들이 대표하는 시대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특성화된 역사교육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유적별 연혁과 특성, 주변의 자연적․인문적 환경, 유적과 수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차 정비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들 유적들의 정비가 일정한 궤도에 오르게 되면 주변 명소와 연계하여 정부수반 유적 투어 코스도 신설, 운영하여 유적의 교육적 효과 및 문화자원으로서의 활용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이상과 같은 계획은 특히 소유자․유족․기타 다양한 이해집단들 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 그리고 지속적인 예산 확보가 전제될 때 실현 가능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서울시, 그리고 국민 전체가 지금이 아니면 이들 유적들을 더 이상 보존도, 복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절박한 현실을 인식하고, 또한 지난 60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결국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정부수반 유적들을 국민적 자산으로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다.
정부수반 유적, 역사의 뒤안길로부터 다시 돌아오다
정부수반 유적,
역사의 뒤안길로부터 다시 돌아오다
김수정(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
오는 15일, 대한민국이 회갑을 맞이한다. 극심한 이념적 대립을 겪으면서도 짧은 기간 안에 정부를 수립하고 현재와 같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발전, 그 뒤에는 그와 같은 흐름을 근저에서부터 만들어 낸 정부수반들의 사저(私邸)가 있었다. 잠시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그러나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돌아보고, 챙겨보아야 하는 정부수반 유적들, 그 유적들의 역사적 의미를 반추해 본다.
■ 잊혀진 정부수반 유적들
조각본부 이화장은 연일 정계요인의 내왕이 접종하고 있는 한편 조각에 부심중. 4일 오후 1시 20분에는 별항과 같이 제삼차로 4장관 2처장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오전 9시반에는 안호상 문교장관, 동 9시 40분에는 전진한 사회장관이 인사차 방문하였고...(후략)
위는 1948년 8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의 일부이다. 이 기사를 통해 1948년 8월 정계요인 및 언론의 시선과 발걸음이 온통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이자 대한민국 초대정부의 조각본부였던 이화장(梨花莊)에 집중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 정부수반의 사저(私邸)들은 당대 역사의 흐름을 근저에서부터 형성해가는 변화와 발전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이에 쏠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사저들은 권력의 이동과 정부수반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또한 급격히 대중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특히,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갈등과 충돌에 의한 극심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경교장․이화장․장면 총리 가옥․윤보선 대통령 가옥․박정희 대통령 가옥․최규하 대통령 가옥 등의 정부수반의 유적들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수반 개인의 정치적 침몰과 운명을 함께 하며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더욱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이렇게 잊혀지고 외면받아야 마땅한 곳들인가.
■ 그들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이유
오는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풀려난 지 63년이 되는 날이자 스스로를 통치할 국가와 정부를 수립하여 주권을 행사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개인으로 따지면 회갑을 맞이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 이르러 대한민국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 미래의 방향타를 바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지난 현대사를 엄정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서울 지역의 정부수반 유적 6곳에 대한 관심이 건국 60년을 맞이하여 새로워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와 정부의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과거 역사가 그곳에 한데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격동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는 무수한 역사서적들 속에서보다 우리 눈앞에 실존하는 정부수반 유적들을 직접 한 번 둘러보았을 때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보존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제 곧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훼손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에 서울시는 건국 60년을 맞이해 우리의 현대사를 역사․문화유적이라는 실물을 통해 반추해 보기 위하여 서울 지역 내 역대 정부수반 유적 6곳에 대한 종합적인 보존․관리계획을 수립, 발표하게 되었다.
■ 정부수반 유적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이기에...
그렇다면 위 계획에 포함된 역대 정부수반 유적들은 각기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갖는 곳인가.
먼저, 경교장(京橋莊)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1876~1949)이 광복을 맞이해 1945년 11월 23일 중국으로부터 귀국해 1949년 6월 26일 서거하기까지 머물던 곳이다. 이곳은 김구 주석의 거소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이 헌법에서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청사이기도 했다. 또한 임시정부가 해방 정국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면서부터는 이승만의 이화장․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 등 당시 정국을 이끌어가던 세 구심점 가운데 하나로서 반탁운동․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 남북협상운동이 전개되는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임시정부 청사인 이 국가적 유적은 김구 주석 암살 이후 다시 원소유자에게 반환되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줄곧 외국대사관, 미군 주둔지, 병원 등 그 위상에 걸맞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어져 왔다. 특히 1968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유적의 내․외부는 문화재 지정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는 하나 김구 주석 집무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시설로 사용되고 있어 국가적 유적을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교장의 역사성이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보존 노력과 함께 소유자인 삼성의 거시적 측면에서의 결단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
한편, 낙산자락에 자리한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대통령(1875~1965)이 미국에서 귀국한 후 돈암장과 마포장에 이어 거주한 곳이다. 이승만은 마포장에서 이사한 1947년 10월 18일부터 경무대에 입주하는 1948년 8월 12일까지, 그리고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1960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이곳을 무대로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수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한독당․사회주의 세력이 불참한 5․10 총선거에서 승리,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에는 이화장에 ‘조각본부(組閣本部)’을 두고, 초대정부를 이끌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이화장은 초대대통령의 정치적 흥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자 국가적으로는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초대정부의 내각이 구성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서울시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 바 최초 문화재 지정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위상과 가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축출하고 집권한 장면 총리(1899~1966)와 윤보선 대통령(1897~1990)의 가옥은 얄궂게도 이화장과 가까운 명륜동과 안국동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장면은 이승만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1952년 부산 정치파동 이후 자유당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신익희․조병옥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집권해 의원내각제를 표방한 2공화국의 실권 총리가 되었다. 명륜동에 자리한 그의 사저는 1937년 장면이 직접 건립해 196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줄곧 거주하던 가옥으로 2공화국 집권세력인 민주당이 출범하게 된 막후 장소이자 1960년 4․19 혁명 시 학생․시민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2007년 소유권 변동 과정에서 멸실될 위기에 놓여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을 통해 보존하였다.
안국동에 위치한 윤보선 대통령의 가옥은 대지 4,667㎡에 건물만도 안채․사랑채․안사랑채 등 11동이나 있는 대저택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1918년 이후 1990년 7월 18일 서거하기까지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장면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신파와 대비되는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로서 장면 총리 가옥과 함께 제2공화국 탄생의 막후 장소가 되었다. 정부수반 유적들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고 있으나 일부 훼손된 건물들에 대한 정비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과 서교동의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민주주의 발전과 산업화에 있어서 큰 변혁을 가져왔던 군부의 정치개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들이다.
신당동 주택가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은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1958년 5월부터 5․16 이후인 1961년 8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하기까지 거주한 곳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에서 육사 5․8기생, 해병대 등과 함께 장면의 제2공화국을 전복하는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이를 진두지휘했다. 5․16 혁명 공약, 각계에 보내는 호소문, 포고령 등의 문안이 이곳에서 작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건물 내부 거실 벽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군사정변을 인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친필서한이 걸려 있어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70년대 신흥 주거지로 개발된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최규하 대통령이 1972년 직접 건립하여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돼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그리고 신군부의 쿠데타로 1980년 8월 16일 사임한 후 돌아와 수십 년 간 침묵의 세월을 보낸 끝에 2006년 영면하기까지 거주한 곳이다. 유적의 존재 자체가 신군부 등장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일시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대통령 일가가 사용한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생활용품이 현재까지는 내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 원형복원되어 각 시대별로 특성화된 교육공간으로 거듭나다.
서울시는 우리나라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이상의 정부수반 유적 6곳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나아가 이들을 수도 서울의 매력적인 고부가가치 문화․관광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2013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유적들이 멸실․훼손되지 않도록 금년 중 제도적 영구 보존방안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지방문화재인 이화장을 경교장․안국동 윤보선 대통령 가옥의 경우처럼 국가 지정문화재로 승격하고, 비등록되어 보존에 어려움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 가옥과 최규하 대통령 가옥도 문화재 등록을 새롭게 추진한다.
아울러 유적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각 정부수반들이 대표하는 시대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특성화된 역사교육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유적별 연혁과 특성, 주변의 자연적․인문적 환경, 유적과 수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차 정비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들 유적들의 정비가 일정한 궤도에 오르게 되면 주변 명소와 연계하여 정부수반 유적 투어 코스도 신설, 운영하여 유적의 교육적 효과 및 문화자원으로서의 활용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이상과 같은 계획은 특히 소유자․유족․기타 다양한 이해집단들 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 그리고 지속적인 예산 확보가 전제될 때 실현 가능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서울시, 그리고 국민 전체가 지금이 아니면 이들 유적들을 더 이상 보존도, 복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절박한 현실을 인식하고, 또한 지난 60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결국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정부수반 유적들을 국민적 자산으로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