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강자를 만든다"-최고의 스토리왕국 크리스티①

황정민200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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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강자를 만든다"-최고의 스토리왕국 크리스티①

"스토리가 강자를 만든다"-최고의 스토리왕국 크리스티①

세계 최대의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는 ‘스토리 왕국(王國)’이다. 세계 기업 중 ‘가장 많은 스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꼽으라면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단연 1순위로 꼽힌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 ‘거함’ 소더비를 완전히 제쳐온(2004년 제외) 크리스티는 최고의 스토리 왕국이다. 인상파 그림에서부터 현대미술, 고미술, 보석, 와인, 자동차, 곰인형, 심지어 수몰됐던 타이타닉호의 구명조끼(지난해 런던 크리스티서 1억1000만원에 낙찰됐다)까지 크리스티가 취급하는 경매물품에는 각종 스토리가 켜켜이 담겨 있다. 뿐만아니라 ‘수퍼 헤비급’인 크리스티의 막강한 고객들 역시 엄청난 스토리를 쏟아내며 이 스토리 강국을 더욱 강자로 만들고 있다.

"스토리가 강자를 만든다"-최고의 스토리왕국 크리스티①

1764년 영국서 창립돼 244년 역사를 지닌 다국적 경매사 크리스티는 빌 게이츠를 비롯해 쟁쟁한 재계 거물들과 전세계 최상위 부호들,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들을 고객으로 두고 각종 스토리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또 매 경매 때마다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초고가(최근엔 현대미술품도 1000억원대 낙찰을 목전에 두고 있다)를 수시로 경신하는 다수의 걸작 미술품도 크리스티에 숱한 사연과 역사를 부여하고 있다.

게다가 크리스티는 오너인 프랑소와 피노 회장(71)까지 구찌, 프라다, 쁘렝땅백화점 등 명품브랜드가 총집결된 PPR그룹의 대표여서 ‘움직이는 스토리 메이커’다. 따라서 크리스티는 한마디로 ‘스토리로 점철된 기업’이자 이를 통해 정상에 오른 기업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크리스티를 에워싸고 인구에 회자되는 스토리는 하나둘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배우 마릴린 몬로가 ‘메이저리그 강타자’ 조 디마지오로부터 받은 결혼반지를 비롯해 마릴린 몬로의 소장품 일체(보석, 드레스는 물론 깨진 안경까지 총 576점)가 199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올려지며 파생한 각종 사연들이다. 불과 3000달러짜리였던 디마지오의 반지는 세기의 섹시스타가 불멸의 스타 플레이어에게 받은 반지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그만치 77만달러에 낙찰됐다.

같은 날 경매에서는 마릴린 몬로가 존 F. 케네디의 생일 축하파티 때 입었던 드레스도 출품됐는데 1만달러였던 추정가의 100배가 넘는 126만달러에 팔리며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당시 두사람이 공공연한 연인관계였던 데다, 파티가 뉴욕 메디스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며 대중의 주목을 엄청 끌었기 때문에 낙찰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음은 물론이다.

크리스티는 이 경매를 진행하며 몬로가 모조 다이아몬드가 무수히 박힌 문제의 드레스를 입고 케네디를 향해 “Happy Birthday Mr. President”를 노래하는 장면을 사진과 함께 도록에 자세히 소개하는 등 경매에 화제를 불어넣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또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년)에서 입었던 지방시의 검은 드레스(낙찰가 80만달러)를 경매에 부친 것도 크리스티였고, 빠삐용의 명배우 스티브 맥퀸이 소장했던 페라리 250GT가 거의 훼손돼 무인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30만달러에 낙찰시킨 것도 크리스티다. 이처럼 경매물품과 얽힌 스토리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런 무수한 스토리를 200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가며 크리스티는 도도한 스토리 강국으로 부상한 것.

"스토리가 강자를 만든다"-최고의 스토리왕국 크리스티①

김순응 K옥션 사장은 “한국 경매회사와 서양 경매회사가 크게 다른 점은 소장기록이다. 소장자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미술품은 가격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이것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다른 점이다. 내가 사는 삼성전자 주식이 누가 판 것이냐는 알 방법도 없고, 안다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지만 미술은 다르다. 예술품은 워낙 가치평가가 주관적이어서 소장자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가치평가가 크게 달라진다. 크리스티 같은 정상급 경매사는 그같은 스토리를 잘 찾아내고, 정교하게 활용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밝혔다. 즉 메이저 경매사들은 일단 작품을 위탁받으면 스토리를 찾아내기 위해 거의 혈안이 된다는 것. 편지라든가 작은 메모조각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게 이를 방증한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티는 고객들 자체도 워낙 초특급 유명인사가 많아 대중들이 좋아할 각종 사연이 양산되고 있다. 뉴욕 헤지펀드 매니저 스테판 코헨, 카지노계의 대부 스티브 윈, 금융계 거물 헨리 크래비스, 화장품회사 에스티 로더의 로널드 로더 회장, 가수 마돈나와 스팅,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등이 그들이다.

지난 5월 12일 뉴욕 록펠러센터의 크리스티 프리뷰 장에는 영국 배우 휴 그랜트(48)가 모습을 드러내 가뜩이나 뜨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더욱 달궜다.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휴 그랜트는 미술시장에서도 알아주는 A급 컬렉터. 휴 그랜트는 6년 전 소더비경매에서 34억원을 주고 샀던 앤디 워홀의 ‘리즈’라는 작품을 작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내놓아 200억원대의 차익을 실현하며 대박을 터뜨린바 있다. 그런 그가 올봄 크리스티의 메이저 세일(블록버스터 작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메인경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집할 만한 멋진 작품이 또 없나’하고 살피기 위해서다.

크리스티 서울사무소의 배혜경소장은 “휴 그랜트는 크리스티를 자주 찾는 스타다. 작년 11월에도 자신이 내놓은 워홀의 ‘리즈’라는 작품을 친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크리스티를 찾았는데 당시 너무나 격의 없는 태도여서 좀 놀랬다. 사실 크리스티에는 유명인사들이 다반사로 찾아 어지간한 사람은 주목을 끌지도 못한다”고 밝혔다.

바로 이들의 등장이 화제가 되고, 이슈를 만들고 스토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크리스티는 이들 유명인사를 홍보마케팅에 잘 활용(물론 스타 본인이 작품보유사실 공개를 오케이했기 때문에 알릴 수 있었다)하고, 멋지게 포장하는 데도 도통한 기업이다. 각종 이야기들이 얼마나 대중들을 사로잡는지, 또 크리스티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셈이다.

글=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