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를 생각하며........

이상호200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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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던 노인. 그 노인은 취재진에게 사실은 새벽 12시 40분에 끝나지만, 택시비 아끼려고

여기서 자빠져(그 노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있다가 첫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이 돈이 없어 시집 장가도 못간다고 웃

는다. 그 웃고 있는 입 사이에는 앞니가 없다.

술을 한잔 한 것 같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저씨. 그 아저씨는 취재진에게 차가 있지만 기름값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탄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부가 같이 열심히 돈을 버는데 왜 자꾸 살기 힘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입에는 너털 웃음이 있었다.

지하철 안의 도넛집. 21세 나이에 결혼한 한 부부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은 그 부부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가 둘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부인이 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부인은 남편을 열심히 돕는다.

군입대를 앞둔 남편 앞에 또 자기를 대신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부인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 입에는 헛웃음이 있었다. 그 부인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무렵 간호학원에 다녀 간호사가 될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당차게 말한다.

한 기계공은 하루 24시간 일한다. 그리고 하루를 쉰다. 이렇게 계산하면 15일 근무에 15일 휴식이다.

생활이 힘든 이 기계공은 휴식의 15일을 지하철 역 근처에서 노점상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24시간 노동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불평 불만이 아니다. 단지 자신은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데, 생활이

힘들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말할 때 기회의 균등을 말한다.

이 기회 균등의 결과가 바로 위의 결과이다.

열심히 일해도 점점 힘들어 진다는 저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저씨의 말에 우린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공산주의를 배격함에 있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효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해도 똑같이 나누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서스럼 없이 미국식 자본주의를 택했다.

두 이론을 흑백으로 무썰듯 나눈다음 우리를 도운 저들이 선택했던 바로 저 자본주의를 선택했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갈 수 없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서 "장학금 받으면 되는것 아닌가" 하는 식으로 누구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럼으로써 저 신림역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삶은 게으르거나 못배우거나 기회를 잡지 못한 낙오자가 되고 만다.

사실 노동을 했으면 그만큼의 보수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보수를 통해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저들은 노동을 해서 보수를 받는 당연한 절차 후 그 보수로 이 사회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지 말라. 죽일테다.

그들은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져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회 비리 사건에 대해 거기에 있는 한 시의원이 동료가 밥먹으라고 준 돈인데, 뭐 그런건 줄 알았느냐고 말했다.

뭘 먹는지는 몰라도, 물가가 미친듯이 오르지 않고서야 그 돈으로 밥을 먹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비리에 대해, 또 소위 윗대가리 분들께서 여러 대기업 위주의 정책, 또 아파트 종부세 완화 등등의 재벌 위주의 정책을

아무 꺼리낌 없이 내세울 때 마다 하는 말이 대한민국 경제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단지 그 성장 속에 많은 눈물이 있었던게 문제였다.

그 눈물을 사람들은 희생이라는 말로 꾹 참아내었다. 그게 불과 20년 30년 전이다.

그 사람들은 희생했다. 그 희생을 강요하던 사람들 혹은 그 사람들의 이론 행동을 좆던 사람들은 아직 뺏지를 차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성장을 위해 혹은 대외신임도를 위해 그 희생한 사람들에게 이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주인의식"이다.

투표권을 가진 이들은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인은 자신들의 한 표를 행하면서, 자기 대신 이 나라의 정치를 국회에 맡겼다.

말 그대로 맡겼기 때문에 국회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의견의 반영이 잘못되고 있다.

이명박이 당선될때 빙의 걸린 사람처럼 나불거리던 말. 그 "경제'는' 꼭 살리겠습니다."

다른거 다 무시해도 경제는 살리겠다는 저 말에 사람들은 다른거 다 무시하고 저 한마디에 그를 뽑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와 이명박이 말하는 경제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내가 잘 사는 것을 의미했다. 후자는 나라가 잘 사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국가 등등 대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표의 높은 순위가 이명박이 말한 경제인 것이다.

그리고 저 지표를 높이는데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이제까지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어느 선까지 잘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사람 돈 불려주는게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괴리는 홍정욱의 당선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앞서고 있던 노회찬이 역전 당한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대통령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것. 둘째는 뉴타운.

여기에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홍정욱이었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참을 수 없는 건 다름아닌 마음의 부익부 빈익빈이다.

 돈이 없으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게 지속되다 보면 마음에 여유는 사라진다.

여유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것은 내 마음의 삭막이다. 문화생활, 친구, 가족과의 여행 등등은 남 이야기이자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유가 있다면 그렇지 않다. 문화생활, 친구, 가족과의 여행 등등은 내 삶이 된다.

 지금은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학생때는 공부하랴, 졸업하고는 취업하랴, 취업하고는 자신의 자식을 똑같은 자신의 과정으로 복제하랴 참 각박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