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거리를 두어야 서로가 상처주거나 상처 받지 않는 관계가 될까? 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 형제를 대하여야 더 인격적으로 깊어지는 성숙한 관계가 될까? 를 기도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아버지학교를 섬기다보니 스스럼 없이 대화를 하는 스텝들이 많이 늘었다.
잠시 허깅하면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스텝이 있는가 하면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 받는
아주 밀접한 거리로 지내는 스텝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친밀감의 거리가, 사랑을 나누고 축복하는 그 밀접한 거리가
동시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러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니 스텝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의 내용들을
옆에서 자주 듣고, 보게 된다. 흉허물 없는 사이여서 그런지 오고 가는 말들속에서
따뜻한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목사이지만 그렇게 그들과 함께 가까운 거리(밀접거리)로 함께 사역을 하고 지내는 것이 즐겁고 유쾌하여서 그런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더 많은 스텝들과 그런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밀접거리를 두고 지낼 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예의인데,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꼭 필요한데 많은 스텝들이 친밀감의 거리를 폭력의 거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고, 오랫동안 함께 섬기고, 서로를 잘 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서로에게 함부로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수준 낮은
폭력적 관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데, 한두번은 그냥 넘기지만 결국 그 말들은 가슴에 남게 되고 결국은 사회적거리, 공적거리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폭력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갈수록 새로운 스텝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체거리로 이제 막 들어선 형제들이 기존의 스텝들의 언행을 보고는 더 이상 밀접거리로
들어가지 않고 공적인 거리,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갔다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려워서 미리 방어막을 세운 것이다.
육군단에 예비아버지학교를 개설하기 위하여 군사령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군사령관으로 부터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육군단의 부대지휘방침은
"상호존중과 배려" 인데 그것은 선임이라고 해도 후임에게 반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반대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분의 지휘방침은 분명했었다.
계급, 나이, 입대순서라는 복잡 미묘한 관계로 인해서 갈등이 싹트고, 그 대부분이
말로 인한 상처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것이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 초급간부와 말년병장의 관계에서 자칫 군의 단결력을 저하시키는 갈등의 요소가 잠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결되지 않은 부대는 적과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말이 곧 부대의 단결력을 저하시키고 전투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이 무형전력이며 만질수도, 볼 수도 없지만 전시에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게 된 후로는 부대지휘방침을 "상호존중과 배려" 라고 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존중의 언어사용하기, 정감어린 인사말 나누기, 올바른 군대예절 생활화 하기룰 실천해서 군부대 사고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간부들에게 부하들에게 인격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경례를 하면서 정감어린 인사말을 건네며(충성! 식사하셨습니까? 사랑합니다) 또 부하의 경례를 받으면 정확하게 답례를 해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가혹행위를 할수 없고 존중어를 사용하면서 구타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행동을 좌우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정말 존경할 만한 가치관을 가진 분이셨으며 동행한 스텝들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하물며 군부대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를 세워나가는데 가정을 세우고 아버지들을 세워나간다고 하는 스텝들이 서로를 향하여 함부로 말을 한다면 이처럼 모순된 일이 어디있을까?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열심히 스텝으로 섬겼는데 갈수록 도를 넘는 언행으로 선을 넘어오고, 처음에는 예의를 지키더니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스텝들이 늘어가면서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가까이 갔다가는 목사만 상처받게 될 것같아서 이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 (1883~1931, 레바논의 대표작가, 철학자, 화가) 은 다음과 같은 글로 우리를 교훈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 - - - - - - - - - - - - - - - - - - - -
동물학자들에게 사용되는 용어중에 임계거리라는 것이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 가보면 사자와 얼룩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 거리가 임계거리이다. 임계거리안에 들어간 얼룩말은 사자의 먹이가 됨을 자청하는 것이기에 그 거리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또한 사자는 어떻게 하든지 그 거리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동원을 한다.
스텝과 스텝사이에도 임계거리가 필요하다. 너무나 지나치게 가까이 들어오면 당황스럽고 부담스럽다. 적당한 비밀, 적당한 존중, 적당한 친밀감이 필요하다. 그렇게 임계거리를 서로가 유지해 갈때 평화로운 아버지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적당한 임계거리는 서로를 자유롭게 하며 그것을 유지해 나갈때 비로소 평화가 있는 것이다.
가깝다고, 오랫동안 같이 섬겼다고, 서로를 잘 안다고 하는 이유로 너무 쉽게 말을 하고,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임계거리를 무시한 사자와 얼룩말이 아프리카 초원을 헐떡거리며 달리듯이 그렇게 쫒고 쫒기는 관계가 되고 말 것이다. 으르렁거리면서.....
"깨끗한 마음을 간절히 바라며 덕을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왕의 친구가 된다"(잠22:11)
"누구든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해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고 화평을 따르고 화평을 이루라"(벧전3:10-11)
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져야 하는가(가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들의 관계의 거리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1. 밀접거리(intimate distance)가 있는데 약 46cm로
애무를 나눌 수도 있지만 동시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다.
2. 개체거리(personal distance)는 1.2m 이내의 거리로
상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친밀감의 거리이다.
내 생각엔 이 둘의 관계의 거리는 가족관계의 거리, 친밀한 스텝들과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스텝으로 함께 섬기고 있는 형제들이나 같은 교회에서 교우로 지내는 관계가
이런 밀접거리, 개체거리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계의 거리는 서로가 예의를 지키고
상호존중과 배려를 통해 더 깊은 관계로 성숙해가는 거리이다.
반면에 서로 예의를 지키지 않고 함부로 대하거나 말을 할 때 가장 크게 상처를 받는
폭력의 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3. 사회거리로 (social distance)는 1.2~9m 떨어진 거리로
사무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거리이다.
직장이나 업무로 만나는 관계일 것이다. 형식적인 인사만을 하고 지나가는 관계이다.
4. 공적거리(public distance)로 9m 정도인데
이는 공연자와 관객처럼 관찰자로 지켜보는 거리이다.
최근 들어서 나는 스텝들과 얼마의 거리를 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얼마의 거리를 두어야 서로가 상처주거나 상처 받지 않는 관계가 될까? 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 형제를 대하여야 더 인격적으로 깊어지는 성숙한 관계가 될까? 를 기도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아버지학교를 섬기다보니 스스럼 없이 대화를 하는 스텝들이 많이 늘었다.
잠시 허깅하면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스텝이 있는가 하면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 받는
아주 밀접한 거리로 지내는 스텝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친밀감의 거리가, 사랑을 나누고 축복하는 그 밀접한 거리가
동시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러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니 스텝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의 내용들을
옆에서 자주 듣고, 보게 된다. 흉허물 없는 사이여서 그런지 오고 가는 말들속에서
따뜻한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목사이지만 그렇게 그들과 함께 가까운 거리(밀접거리)로
함께 사역을 하고 지내는 것이 즐겁고 유쾌하여서 그런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더 많은 스텝들과 그런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밀접거리를 두고 지낼 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예의인데,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꼭 필요한데 많은 스텝들이 친밀감의 거리를 폭력의 거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고, 오랫동안 함께 섬기고, 서로를 잘 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서로에게 함부로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수준 낮은
폭력적 관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데,
한두번은 그냥 넘기지만 결국 그 말들은 가슴에 남게 되고 결국은 사회적거리, 공적거리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폭력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갈수록 새로운 스텝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체거리로 이제 막 들어선 형제들이 기존의 스텝들의 언행을 보고는 더 이상 밀접거리로
들어가지 않고 공적인 거리,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갔다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려워서 미리 방어막을 세운 것이다.
육군단에 예비아버지학교를 개설하기 위하여 군사령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군사령관으로 부터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육군단의 부대지휘방침은
"상호존중과 배려" 인데 그것은 선임이라고 해도 후임에게 반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반대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분의 지휘방침은 분명했었다.
계급, 나이, 입대순서라는 복잡 미묘한 관계로 인해서 갈등이 싹트고, 그 대부분이
말로 인한 상처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것이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 초급간부와
말년병장의 관계에서 자칫 군의 단결력을 저하시키는 갈등의 요소가 잠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결되지 않은 부대는 적과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말이 곧 부대의 단결력을 저하시키고 전투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이 무형전력이며 만질수도, 볼 수도 없지만 전시에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게 된 후로는 부대지휘방침을 "상호존중과 배려" 라고 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존중의 언어사용하기, 정감어린 인사말 나누기, 올바른 군대예절 생활화 하기룰
실천해서 군부대 사고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간부들에게 부하들에게 인격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경례를 하면서 정감어린 인사말을 건네며(충성! 식사하셨습니까? 사랑합니다)
또 부하의 경례를 받으면 정확하게 답례를 해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가혹행위를 할수 없고 존중어를 사용하면서 구타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행동을 좌우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정말 존경할 만한 가치관을 가진 분이셨으며
동행한 스텝들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하물며 군부대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를 세워나가는데
가정을 세우고 아버지들을 세워나간다고 하는 스텝들이 서로를 향하여
함부로 말을 한다면 이처럼 모순된 일이 어디있을까?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열심히 스텝으로 섬겼는데 갈수록 도를 넘는 언행으로 선을 넘어오고,
처음에는 예의를 지키더니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스텝들이 늘어가면서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가까이 갔다가는 목사만 상처받게 될 것같아서
이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 (1883~1931, 레바논의 대표작가, 철학자, 화가) 은 다음과 같은 글로 우리를 교훈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 - - - - - - - - - - - - - - - - - - - -
동물학자들에게 사용되는 용어중에 임계거리라는 것이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 가보면 사자와 얼룩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 거리가 임계거리이다.
임계거리안에 들어간 얼룩말은 사자의 먹이가 됨을 자청하는 것이기에
그 거리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또한 사자는 어떻게 하든지 그 거리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동원을 한다.
스텝과 스텝사이에도 임계거리가 필요하다.
너무나 지나치게 가까이 들어오면 당황스럽고 부담스럽다.
적당한 비밀, 적당한 존중, 적당한 친밀감이 필요하다.
그렇게 임계거리를 서로가 유지해 갈때 평화로운 아버지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적당한 임계거리는 서로를 자유롭게 하며 그것을 유지해 나갈때 비로소 평화가 있는 것이다.
가깝다고, 오랫동안 같이 섬겼다고, 서로를 잘 안다고 하는 이유로 너무 쉽게 말을 하고,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임계거리를 무시한 사자와 얼룩말이 아프리카 초원을 헐떡거리며 달리듯이
그렇게 쫒고 쫒기는 관계가 되고 말 것이다. 으르렁거리면서.....
"깨끗한 마음을 간절히 바라며 덕을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왕의 친구가 된다"(잠22:11)
"누구든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해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고 화평을 따르고 화평을 이루라"(벧전3:10-11)
=======father.or.kr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민만규목사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