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싸이인가요, 홈피인가요, 메일인가요? 12사단 출신 제 또래로 외국에 거주하시는 분이 글을 올리셨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아무리 법무관이라고 해도 같은 사단 출신이라고 하면 한번쯤 되새김질을 하게 됩니다. 제가 등산 갔다가 온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셨지요. 맨 꼴찌에서 가까스로 수년만에 다녀온 사진입니다. 우습지만 별반 부러워하실 일 못된다는 말씀을 농담으로 적어둡니다. 대학 시절, 그 데모 많던 전남대에서 최루가스 지겹도록 마시고 살았습니다. 지랄탄이라고 기억하시는 분 계시지요? 한방씩 빵빵 쏘는 최루탄이 아니라 연발형 최루탄입니다. 그리고 최루탄도 얼마나 종류가 많았습니까? 일종의 수류탄처럼 가지고 들어와서 시위대 안에다가 터뜨려놓고 가던 '짭새(?)'들도 있었지요. 저 멀리서 사실상 한방한방씩 '직방(?)'하는 것도 있었고, 따다다다 연발로 날아오는 것도 있었고 그랬습니다. 5.18 때부터 최루가스를 맛본 셈이지요. 3사관학교로 군대를 갔지요. 법무관 교육과정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화생방 시간이 있어서 최루가스를 실컷 맛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 갔더니 하필 법무부가, 그러니까 재판부와 검찰부와 법무참모부가 사단 화학대 한 쪽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단 화학대는 참 억울했을 겁니다. 자기네 부댄데 도리어 법무관들이 활개치듯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군기 빠진 법무관들이 화학대를 오락가락 하며 안 좋은 군기를 보여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 띄다 보면 법이 작동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화학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사건은 곧바로 입건되서 처벌되곤 했습니다. 직업군인을 희망하던 대단히 용맹스럽고 능력 있던 대위가 법망을 피하지 못하고 끝내 옷을 벗어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대위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법 집행의 형평성이라는 기준에서입니다. 군대 폭력은 저도 엄하게 처벌하곤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한테 하도 줄빳다를 많이 맞은 기억이 선해서 그랬었을까요? 그때 화학대에는 원통에 사는 지역 방위들이 출퇴근하곤 했습니다. 참 착하고 선량한 강원도 원통의 토박이들이었습니다. 그 어린 방위들과 친해져 낚시도 가곤 했습니다. 밤이면 퇴근해서 농사 일을 하거나 때론 친구들과 강가에서 낚시질을 하곤 할 때, 제가 합류한 적도 있습니다. 며칠 전, 그 친구 중 한 명이 5-6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형이 무슨 단속에 걸려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변호사라지만 눈앞의 현실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답답했습니다. 최근의 물대포에 최루액이 섞였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보며 최루가스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군 시절 화학대 방위가 연락을 와서 다시 한 번 군대 생활을 되새기게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늘 최루탄을 없앴다는 걸 자랑하곤 하십니다. 단순히 그런 지경을 넘어서 이제 엠네스티에 대해서도 따지고 대항하고 반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 고난의 시절, 엠네스티가 우리를 향해 발언하고 따져주었던 고마움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전번 등산 때 앞서 걸으시던 분들께서 '엠네스틴가 뭔가 이 자식들은 전두환 때는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 난리를 피우냐'며 비난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벌써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삽니다. 2
최루탄과 군대와 엠네스티
얼마 전 싸이인가요, 홈피인가요, 메일인가요?
12사단 출신 제 또래로 외국에 거주하시는 분이 글을 올리셨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아무리 법무관이라고 해도 같은 사단 출신이라고 하면
한번쯤 되새김질을 하게 됩니다.
제가 등산 갔다가 온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셨지요.
맨 꼴찌에서 가까스로 수년만에 다녀온 사진입니다.
우습지만 별반 부러워하실 일 못된다는 말씀을 농담으로 적어둡니다.
대학 시절, 그 데모 많던 전남대에서
최루가스 지겹도록 마시고 살았습니다.
지랄탄이라고 기억하시는 분 계시지요?
한방씩 빵빵 쏘는 최루탄이 아니라 연발형 최루탄입니다.
그리고 최루탄도 얼마나 종류가 많았습니까?
일종의 수류탄처럼 가지고 들어와서
시위대 안에다가 터뜨려놓고 가던 '짭새(?)'들도 있었지요.
저 멀리서 사실상 한방한방씩 '직방(?)'하는 것도 있었고,
따다다다 연발로 날아오는 것도 있었고 그랬습니다.
5.18 때부터 최루가스를 맛본 셈이지요.
3사관학교로 군대를 갔지요.
법무관 교육과정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화생방 시간이 있어서 최루가스를 실컷 맛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 갔더니 하필 법무부가, 그러니까 재판부와 검찰부와 법무참모부가 사단 화학대 한 쪽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단 화학대는 참 억울했을 겁니다.
자기네 부댄데 도리어 법무관들이 활개치듯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군기 빠진 법무관들이 화학대를 오락가락 하며
안 좋은 군기를 보여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 띄다 보면 법이 작동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화학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사건은
곧바로 입건되서 처벌되곤 했습니다.
직업군인을 희망하던 대단히 용맹스럽고 능력 있던 대위가
법망을 피하지 못하고 끝내 옷을 벗어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대위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법 집행의 형평성이라는 기준에서입니다.
군대 폭력은 저도 엄하게 처벌하곤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한테 하도 줄빳다를 많이 맞은 기억이 선해서
그랬었을까요?
그때 화학대에는 원통에 사는 지역 방위들이 출퇴근하곤 했습니다.
참 착하고 선량한 강원도 원통의 토박이들이었습니다.
그 어린 방위들과 친해져 낚시도 가곤 했습니다.
밤이면 퇴근해서 농사 일을 하거나
때론 친구들과 강가에서 낚시질을 하곤 할 때,
제가 합류한 적도 있습니다.
며칠 전, 그 친구 중 한 명이 5-6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형이 무슨 단속에 걸려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변호사라지만 눈앞의 현실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답답했습니다.
최근의 물대포에 최루액이 섞였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보며
최루가스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군 시절 화학대 방위가 연락을 와서
다시 한 번 군대 생활을 되새기게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늘 최루탄을 없앴다는 걸 자랑하곤 하십니다.
단순히 그런 지경을 넘어서 이제 엠네스티에 대해서도
따지고 대항하고 반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 고난의 시절, 엠네스티가 우리를 향해 발언하고 따져주었던
고마움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전번 등산 때 앞서 걸으시던 분들께서
'엠네스틴가 뭔가 이 자식들은 전두환 때는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 난리를 피우냐'며 비난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벌써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