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하게 지루할 틈을 주기는 하되, 한국 영화의 또다른 참신한 변주... <놈놈놈>

백혁현2008.07.26
조회34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내가 말한다. “참 이상한 영화야. 굉장히 박진감 넘치고 익사이팅한데 때때로 지루하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 타고 차 타고 오토바이 타고 기차 타고 달리고, 그러다가 넘어지고, 쥐어 터지고, 폭발하고, 치고받고 들이받고, 총 쏘고 칼 던지고 쫓고 쫓기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중간중간 어디쯤에서인가 지루하다.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만, 교묘하게 중간중간 틈을 찾아 지루할 여지를 주는 영화라고 말해야 하나...


  어린 시절 TV에서 해주던 튜니티, 같은 영화를 보면서 깔깔대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초적 행태에 열광하던 때도 있었으니, (대신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만주 웨스턴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보기 드물게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만주 웨스턴이라 할 수 있는 영화가 아예 원천적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바야흐로 시기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1930년대, 그리고 배경은 하수상하기 그지없는 만주, 여기에 세 명의 캐릭터 특이한 인간들이 있으니 바로 돈 되는 현상범들을 쫓는 좋은 놈 박도원(정우성), 살벌하기 그지없는 냉혈한이며 최고라는 명칭에 목숨을 거는 나쁜 놈 박창이(이병헌) 그리고 아리송한 능력과 어리버리한 유머로도 끝까지 살아남는 재능만큼은 탁월한 열차털이범 이상한 놈 윤태구(송강호) 이다.


  영화는 이들 세 사람이 지도 한 장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다. 그리고 여기에 독립군 몇몇과 일본군 다수, 마적단과 친일파 등이 가세하여 일은 꼬이고 복잡해지고 커지고 황당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감독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듯, (혹은 웨스튼이라는 장르가 대개 그렇듯) 영화의 대부분은 세 인물의 캐릭터를 극대화 시키는 데에 잔뜩 주력한다.


  좋은 놈 정우성은 입꼬리에 살포시 썩소가 내려 앉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시종일관 멋들어지게 엽총을 난사하면서 중력을 무시한채 날아다니고, 나쁜 놈 이병헌은 부드득 이라도 갈고 있는 것처럼 입을 앙다문 채 한 쪽 눈을 살짝 가린 듯 만 듯 한 머리스타일 사이로 무시무시한 눈빛을 날리고, 이상한 놈 송강호는 얼핏 주눅들어 있는 듯한 엉거주춤한 자세와는 무관하게 유유자적 유들유들 실력자들 사이를 무시로 굴러다니면서도 절묘하게 쏠 것은 쏘고 피할 것은 피한다.


  그렇게 영화는 두 시간이 조금 넘는 런닝타임을 내러티브의 힘이 아니라 캐릭터의 힘으로 돌파한다. (마지막 즈음 목적지를 앞둔 대규모 추격씬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액션들 또한 이들 캐릭터를 돋보이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모두들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최종 목적지를 어떻게들 알고 몽땅 그렇게 꾸역꾸역 몰려드는지, 윤태구가 구해낸 아이들은 어디다 떨군 것이고 조선족 마을은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좋은 놈처럼 보이던 박도원은 또 왜 그렇게 마지막 삼각 대결에 순순히 응하는 것인지 등등의 의문은 해소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가지는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 배우의 캐릭터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송강호의 어김없는 연기력 또한 영화를 훌륭하게 보필한다. 무모하다 싶은 도전을 서슴치 않은 감독의 도박과도 같았을 연출 또한 미진하나마 어느 정도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 영화의 스펙트럼을 새롭게 확장시키는 (그것이 옛 만주 웨스턴의 변주라고 한들) 모험을 마다하지 않은 제작자 모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