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2003년 8월 24일 연합뉴스 보도 포토임 =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가 24일 오후 대구 U대회 프레스센터 앞에서 북한 인권개선 촉구시위를 벌이다 북한기자들과 충돌로 쓰러져 있다. 한-중 정상회담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하지 않으면 나는 죽음으로서 항의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하루 앞 둔 26일 오후, 폴러첸 박사는 청와대 앞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한 1인 시위를 진행하던 중 이같은 말을 던진 뒤 자살을 기도했다.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폴러첸 박사의 말을 단순히 탈북자 인권을 향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내뱉은 격한 언사로만 치부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본 방송 기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한 직후 박사가 주머니에서 꺼내 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약물이 담긴 주사기였다.
가위 쯤의 흉기로 착각한 본 기자가 박사의 돌발 행동에 머뭇거리는 사이 박사는 주저없이 주사기 바늘을 목에 갖다 댔고, 피스톤을 누르려는 찰나 곧바로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들에게 제압되었다.
박사를 바닥으로 제압하려는 경호원들의 외침과 저항하는 박사의 몸부림으로 인해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주변 분위기는 평화롭게 그지없었다. 옆에서는 피켓을 목에 건 한 시민이 지하철 문제와 관련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었고, 주변은 청와대를 관광하기 위해 찾은 일본 학생들로 부산했다.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한 직후 박사는 경찰에 연행되어 곧바로 인근 종로서 청운지구대에 넘겨진 박사는 조사를 받는 동안 줄곧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참담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박사와 동행했던 자유청년연대 최용호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폴러첸 박사에게 훗날 대통령이 되면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데 아직 성사되지 않아 그런 (행동을 한)것 같다”며 “‘사실 2주 전부터 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초 계획은 오후 7시까지 1인 시위를 마친 후 내가 박사를 데리러 오는 것 이었다”며 “지난 달 벌어진 중국인 폭동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구체적인 항의 조치를 취하지 않자 (박사가)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독일 출신으로 의학 박사인 폴러첸 박사는 진보 세력들 간에서는 ‘악질’로 통하는 인물이다.
지난 99년 7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인도적 의료지원을 위해 북한에 들어간 이후 대량 아사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뒤 소위 ‘출세’가 보장된 의사의 길마저 포기하고서 북한 인권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한편 각종 포럼과 세미나는 물론 단식 투쟁 등의 현장에 나섰으며, 지난 2002년 3월에는 탈북자 25명을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진입시키면서 기획입국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지난 2006년 9월에는 종북 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괴한들로부터 보복성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최 대표는 이후 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폴러첸 박사는 가볍게 훈방 조치만을 받고 풀려나 오후 5시 현재 남대문서 외사과의 보호 하에 귀가 중”이라고 밝혔다. 자유북한방송 [시론] 폴러첸의 마른 얼굴 ▲ 이미일 6.25전쟁남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지난 21일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씨가 열흘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외교통상부 앞을 찾아보았다. 이런저런 일로 분주한 필자로서도 이 서양인의 장기 단식이 몹시 걱정스러워 한번 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목에 건 빼빼 마른 북한 어린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의 얼굴도 불그스름하게 타 있었고 이미 충분히 말라 있었다. 2001년 폴러첸씨는 북한에서 응급의사로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추방된 후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한국으로 왔다고 알고 있다. 이후 그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려왔다. 때로 기이하고 돌출적인 행동까지 해가며 언론과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필자 역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무렵, 6·25전쟁 때 납북된 아버지의 생사를 찾아 가족모임을 만든 이후, 수십년 동안 침묵해온 남·북한 정부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이 문제를 일깨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분계선을 넘는 시늉을 하는 등 폴러첸씨는 여러 행동으로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해 왔음을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서 목표를 관철시켜야 하는 NGO 활동가로서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다. 지금 국내외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와 관심 뒤에는 그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그에 대해 인색한 사람들도 인정하는 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전위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을 알리려는 그의 의지는 매우 진지하고 일관되었던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이 보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폴러첸씨는 단식 2주일 만인 25일 저녁,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단식 때 그는 마치 순교라도 하려는 듯한 태세였다. 이 독일인 의사가 목숨까지 걸고 무언가를 주장하는데 그걸 그저 연기라고 말한다면 잔인한 판단일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한 달에 50만 달러를 벌기도 했다는 잘 나가던 의사였던 그가 지금 의사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북한의 보통사람들에 대해 그는 그의 방식대로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일 신문과 방송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 대해서만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지만, 그곳에 내 가족이 살고 내가 아는 친구가 산다고 생각해 보면 좀 다른 것도 보일 것이다. 폴러첸씨의 머릿속에는 마취제가 없어 소주를 마시고 수술을 받은 어린 소녀의 영상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에 대한 순정과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그를 높이 사주지 않는다면, 이제 먹고사는 문제 말고도 뭔가 정신적으로도 고양된 사회를 원하는 우리가 진짜 선진국을 꿈꿀 자격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번 단식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북한 인권에 대해 의미 있는 견해를 내놓기를 원한다는 간단한 목표를 놓고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라는 이상한 독트린 때문에 우리는 유엔총회에서도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북한 인권 얘기만 나오면 숨을 죽이는 것인지 모른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핵을 개발해도 우리는 조용히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사이 우리의 운명은 역사를 주도적으로 자신감 있게 이끌어가는 또 누군가가 결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 사무총장 경선에 나선 반기문 장관이 세계의 친구로서 건강한 선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 수장이라면 이제 이 독일인이 다시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반 장관과 우리 정부가 폴러첸씨에게 마음을 좀 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미일·6.25전쟁남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입력 : 2006.07.26 18:49 59' / 수정 : 2006.07.27 07:00 41'
청와대앞에서 자살시도한 폴러첸 / 폴러첸의 마른 얼굴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하지 않으면 나는 죽음으로서 항의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하루 앞 둔 26일 오후, 폴러첸 박사는 청와대 앞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한 1인 시위를 진행하던 중 이같은 말을 던진 뒤 자살을 기도했다.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폴러첸 박사의 말을 단순히 탈북자 인권을 향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내뱉은 격한 언사로만 치부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본 방송 기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한 직후 박사가 주머니에서 꺼내 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약물이 담긴 주사기였다.
가위 쯤의 흉기로 착각한 본 기자가 박사의 돌발 행동에 머뭇거리는 사이 박사는 주저없이 주사기 바늘을 목에 갖다 댔고, 피스톤을 누르려는 찰나 곧바로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들에게 제압되었다.
박사를 바닥으로 제압하려는 경호원들의 외침과 저항하는 박사의 몸부림으로 인해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주변 분위기는 평화롭게 그지없었다. 옆에서는 피켓을 목에 건 한 시민이 지하철 문제와 관련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었고, 주변은 청와대를 관광하기 위해 찾은 일본 학생들로 부산했다.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한 직후 박사는 경찰에 연행되어 곧바로 인근 종로서 청운지구대에 넘겨진 박사는 조사를 받는 동안 줄곧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참담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박사와 동행했던 자유청년연대 최용호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폴러첸 박사에게 훗날 대통령이 되면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데 아직 성사되지 않아 그런 (행동을 한)것 같다”며 “‘사실 2주 전부터 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초 계획은 오후 7시까지 1인 시위를 마친 후 내가 박사를 데리러 오는 것 이었다”며 “지난 달 벌어진 중국인 폭동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구체적인 항의 조치를 취하지 않자 (박사가)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독일 출신으로 의학 박사인 폴러첸 박사는 진보 세력들 간에서는 ‘악질’로 통하는 인물이다.
지난 99년 7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인도적 의료지원을 위해 북한에 들어간 이후 대량 아사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뒤 소위 ‘출세’가 보장된 의사의 길마저 포기하고서 북한 인권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한편 각종 포럼과 세미나는 물론 단식 투쟁 등의 현장에 나섰으며, 지난 2002년 3월에는 탈북자 25명을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진입시키면서 기획입국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지난 2006년 9월에는 종북 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괴한들로부터 보복성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최 대표는 이후 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폴러첸 박사는 가볍게 훈방 조치만을 받고 풀려나 오후 5시 현재 남대문서 외사과의 보호 하에 귀가 중”이라고 밝혔다. 자유북한방송 [시론] 폴러첸의 마른 얼굴
2001년 폴러첸씨는 북한에서 응급의사로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추방된 후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한국으로 왔다고 알고 있다. 이후 그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려왔다. 때로 기이하고 돌출적인 행동까지 해가며 언론과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필자 역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무렵, 6·25전쟁 때 납북된 아버지의 생사를 찾아 가족모임을 만든 이후, 수십년 동안 침묵해온 남·북한 정부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이 문제를 일깨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분계선을 넘는 시늉을 하는 등 폴러첸씨는 여러 행동으로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해 왔음을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서 목표를 관철시켜야 하는 NGO 활동가로서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다. 지금 국내외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와 관심 뒤에는 그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그에 대해 인색한 사람들도 인정하는 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전위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을 알리려는 그의 의지는 매우 진지하고 일관되었던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이 보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폴러첸씨는 단식 2주일 만인 25일 저녁,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단식 때 그는 마치 순교라도 하려는 듯한 태세였다. 이 독일인 의사가 목숨까지 걸고 무언가를 주장하는데 그걸 그저 연기라고 말한다면 잔인한 판단일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한 달에 50만 달러를 벌기도 했다는 잘 나가던 의사였던 그가 지금 의사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북한의 보통사람들에 대해 그는 그의 방식대로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일 신문과 방송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 대해서만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지만, 그곳에 내 가족이 살고 내가 아는 친구가 산다고 생각해 보면 좀 다른 것도 보일 것이다. 폴러첸씨의 머릿속에는 마취제가 없어 소주를 마시고 수술을 받은 어린 소녀의 영상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에 대한 순정과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그를 높이 사주지 않는다면, 이제 먹고사는 문제 말고도 뭔가 정신적으로도 고양된 사회를 원하는 우리가 진짜 선진국을 꿈꿀 자격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번 단식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북한 인권에 대해 의미 있는 견해를 내놓기를 원한다는 간단한 목표를 놓고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라는 이상한 독트린 때문에 우리는 유엔총회에서도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북한 인권 얘기만 나오면 숨을 죽이는 것인지 모른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핵을 개발해도 우리는 조용히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사이 우리의 운명은 역사를 주도적으로 자신감 있게 이끌어가는 또 누군가가 결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 사무총장 경선에 나선 반기문 장관이 세계의 친구로서 건강한 선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 수장이라면 이제 이 독일인이 다시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반 장관과 우리 정부가 폴러첸씨에게 마음을 좀 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미일·6.25전쟁남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입력 : 2006.07.26 18:49 59' / 수정 : 2006.07.27 07:00 41'
[출처] [시론] 폴러첸의 마른 얼굴 |작성자 flatline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