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자살한 조선의 덕혜공주님

이우석2008.07.27
조회187

  쓰시마의 이즈하라시 답사도 어느덧 절반 가량의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다. 반쇼인에서 내려온 다음의 목적지는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이었다. 이즈하라 쵸(町)는 그다지  넓은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자료관에 가는 도중에 있던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와 쓰시마 번주가의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의 혼인 축하 기념비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평생을 이로 인해 고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1년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상징으로서 다케유키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으나, 순탄치 못한 혼인생활을 하였다. 결국에는 남편과 이혼하였으며, 이후에는 딸마저 결혼에 실패해 자살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였던 그녀는 역사가 만들어 낸 모진 풍파 속에서 살다 간 인물이었다.

 

 

  자료관 입구쪽에는 조선통신사들이 통과했다고 하는 고라이몬(高麗門)이 자리하고 있었다. 본래의 쓰시마 번주 거성이었던 가네이시성(金石城)은 1659년의 대화재로 인해 불타버렸으며, 이후 새로이 후츄성(府中城, 사지키바라성桟原城)을 지었다. 새로 지어진 사지키바라성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내빙하기도 하였는데, 이 고라이몬은 후츄성의 제3문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고라이몬은 1987년에 태풍으로 무너져버렸으며, 이후 1989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해서 복원한 것이다.

 

 

  고라이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자료관의 근처에는 여러 기념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조선통신사의 기념비도 그 중 하나였다. 근세에 조선과 일본 사이의 선린관계를 담당했던 통신사들을 기리기 위한 비였다.

 

 

  조선과의 선린관계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의 기념비이다. 그는 조선어와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조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하는 조선통이었다. 그는 현실적인 시각에서 조선과의 관계를 풀어가고자 하였고 조선어 역관을 양성하는 데에 노력하는 등, 조선과의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한평생을 쏟았던 인물이다.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한 설명이다.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 들어갔다. 자료관애는 쓰시마에 관련된 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원래 일본에서는 자료관 내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몰래 찍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_-) 위의 사진은 아메노모리 호슈의 초상이다. 유학자 답게 참 완고하게 생기신 분이다. 

 

 

  대마도 번주의 오동나무 문양이 새겨진 군선(軍扇)이다. 오동나무 문양은 얼마전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연설 단상에 붙어 있어서 문제시되었던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양이나 조선총독부의 문양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는 소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할 무렵에 신하로 복속하면서 히데요시에게서 하사받은 문양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쓰시마의 소씨가 히데요시와 같은 오동무늬의 표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쓰시마 도주의 화압(花押)과 도장이다. 화압이란 일종의 서명으로, 문서가 오갈 때 그 작성자의 신원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화압은 서명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마다 다른 모양이기 때문에, 문서의 감정에서 화압의 진위여부를 두고 그 문서의 위조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화압의 활용은 일본 중근세 '문서주의'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행정 혹은 거래 시에 문서를 통해 이를 증명함으로써 정확한 증거를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문서주의의 모습은 비단 지배층 사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농공상의 하층에 위치하고 있던 농민, 공인, 상인들도 토지나 문서의 교환, 주인 증명, 신원보증 등의 증빙서류를 통해서도 두루 찾아볼 수 있다.

  같이 찍혀있는 것은 화압과 마찬가지로 도주의 문건임을 증명하는 도장이다. 그러나 화압에 비해서 비교적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상대에게 사용했던 것이다. 도장은 이전부터도 존재하고 있었으나, 본격적인 도장의 확산은 전국시대 말기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부터 수많은 문서가 발행되기 시작하면서 화압을 대신하고자 각지의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도장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쓰시마에서 종종 발견되는 천연기념물인 쓰시마야마네코이다. 말을 풀어 보자면 쓰시마에 사는 산고양이 정도 되겠다. 이 녀석은 캐릭터화 되어서 쓰시마의 관광 마스코트로 활용되기도 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와 비슷하게 생겼다.  

  쓰시마의 가장 훌륭한 볼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쓰시마야마네코도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쓰시마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천연기념물이라고 하면서 박제를 해 놓은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동물은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은데 말이다. 이러한 희귀한 동물들을 박물관에서 보는 박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일본의 근세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보니 과거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다.(다만 이제 시작인지라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긴 하다.-_-) 세상의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