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pin 677호 3항 독도

임홍순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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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pin 677호 3항  독도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영토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너무나 분명하였기에, 굳이 독도가 우리영토임을 주장하는 글을 올리는 것조차 무의미 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본도 이제는 독도와 관련한 발언을 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달았으리라 믿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명백한 입장과 청산이 전재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전부 이루어 질 수는 없어도 차츰 개선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독도 문제를 들고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국제법역시 아는 것이 없지만, 한쪽이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그 지역이 영토분쟁 지역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데체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 있을까?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언급할 필요도 없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선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연합군최고사령부(SCAP)의 임시 통치를 받게 된다. 여기서 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 일본정부에  지시령(SCAPIN)을 하달하게 되는데, 제 677호에는 영토에 대한 일반 규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677호 3항에서 “일본 영토는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큐슈(九州), 시코쿠(四國) 등 4개 주 섬들과 약 1천개의 주변 작은 섬들로 제한한다”며
“웃즈로(Utsuryo.울릉도),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독도), 쿠엘파트(Qualpart.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다” 고 명기하였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국가에서는 여전히 독도를 리앙쿠르 라고 부르고 있다.
 독도는 이미 512년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정벌할 때 부속된 섬이 분명하였지만, 서구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정조 11년 1787년 프랑스 함선이 발견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프랑스 함장은 독도를 처음으로 발견한 승무원의 이름인 Dagelet을 따 다줄레라고 불렀다. 이후 1849년 프랑스 선박 리앙쿠르호의 이름을 따서 해도에 표시하면서 리앙쿠르로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독도의 영명을 리앙쿠르로 개명하고자 하는 로비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즉 독도는 프랑스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된 섬으로 한국의 영토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우산무릉이도, 재현정동해중. 이도상거불원, 풍일청명, 즉가망견.

▶우산과 무릉, 두 섬이 현의 정동방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가 있다.
scapin 677호 3항  독도
라고 세종대왕 지리지에 명기되어 있어, 최초 발견자와 영유권자가 조선임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16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8도 총도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동해상에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다만 독도를 우산도라 칭하고 울릉도 안쪽에 왜곡되어 있을 뿐이며, 이후 발행된 지도에서는 바로 잡았다. 따라서 서양 함선의 발견을 근거로 한 영토권 주장이나 독도의 영명표기는 전혀 합리적일 수 없는 주장이다.

 일본이 오히려 문제로 삼는 것은 역사적 지리적 관점이 아니라, scapin 677호에 실린 내용의 불분명함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울릉도나 제주도는 우리나라 국민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별다른 의의를 달 수 없지만, 당시 독도에는 거주자가 없었고 또한 대한민국의 영토로 귀속시킨다는 내용을 명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여도 역사적으 독도를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 조선임이 분명한데,  문서내용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쟁거리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당시 문서내용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일본의 작은 도서들에 대해 아무나라나 무조건 영토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구나 677호에서 울릉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이것은 대한민국의 영토로 귀속됨을 분명히 하였다.
 독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명기는 1946년 6월 22일 SCAPIN(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이 발표한 제 1033호  제 3조 B 조항에 있다.

  제 3조에서 [일본인의 어업 및 포경업의 허가 구역](통칭 매가더 라인)을 설정했는데, 그 B항에서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은 금후 북위 37도15분, 동경 131도 53분에 있는 리앙쿠르岩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또한 同島에 어떠한 접근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일본인의 獨島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것은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독도'와 그 영해, 근접수역을 한국(당시 미군정)의 영토와 영해로 재확인하고 일본인의 독도에의 접근은 물론이요 독도 주변 12해리 영해와 근접수역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하여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거듭 명확히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국제법상의 합법기관으로서의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SCAPIN 제 677호와 제 1033호에 의하여 '독도'가 한국(당시 미군정)의 영토이고 일본영토가 아님을 명확히 결정하고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과 함께, 한반도와 간도를 포함한 울릉도 독도 제주도 마라도 가거도등 부속도서에 대한 영토주권을 수립한 것이다.

그리고 제 2차 초안(1947년 8월 5일 성안), 제 3차 초안(1948년 1월 2일 성안), 제 4차 초안(1949년 10우러 13일 성안), 제 5차 초안(1949년 11월 2일 성안)까지는 '獨島'가 명문으로 기록되어 포함되어 있었다.

 제 6차 초안(1949년 12월 29일 성안)에는 '독도'의 이름이 빠져 있었지만, 이미 5차에 걸쳐 확인하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대한민국 영토로서의 독도의 지위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다.

 실제 1951년 6월 20일 주한미군 존 B. 콜터 중장이 장면 국무총리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미 공군이 리앙쿠르 록스(독도)를 훈련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등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또 1951년 7월 7일 주한 미8군 육군부사령관실이 주한 미사령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7월 1일 장면 총리실과 국방장관실은 물론이고 독도는 한국 내무부 관할이어서 내무부 장관도 이를 승인했다”고 언급, 독도가 한국땅임을 거듭 인정했다.


 그런데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의 대일강화조약에서 일본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최종승인하고,  제주도와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일본은 이 조약내용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이용,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무인도의 경우, 일반적으로 최초 점유자나 발견자 혹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주도에 포함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그리고 우리가 독도의 최초 발견자이자 점유자이며 울릉도를 주도로 하여 관리하고 있음은, 조선과 일본 양국이 발행한 지도에 수도 없이 확인되고 있다. 지도 뿐 아니라 각종 문서까지 일일히 거론하기 조차 힘들다.

scapin 677호 3항  독도
동판조선국전도 1882 편찬자 : 기무라
  일본이 발행한 지도로, 비록 동해를 일본해로 대마도를 자국영토로 표시하였지만,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표기하고 있으며, 조선과 동일한 색채로 표시하여 조선 영토임을 표현하였다.19세기 이전에 일본에서는 지금과 반대로 독도를 '송도', 울릉도를 '죽도'라 불렀다는 것을 입증, 지금 일본이 독도를 죽도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도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대전의 주범이자 패전국에 불구한 일본에게 매우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전쟁중에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한 명기를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이를 거부 1951년 8월 10일 일본측에 영유근거가 있다는 견해를 연합군 사령부 측이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연합군 사령부를 대변하는 주장이라기 보다는, 당시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미국측의 주장으로, 이미 독립이 승인된 주권국가의 영토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구하다.

  따라서 독도 영토 소유권 문제는 국제 분쟁의 소지조차 없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미국은 우리보다도 일본에 대해 더 우호적이다.  미국은 제 3자 이지만 우리나라의 독립과 일본의 패전 처리 당시, 군정을 담당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묵시적으로나마 일본을 지지 해 주리라는 계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착실하게  독도와 관련한 유리한 근거를 만드는 동안 우리정부는'조용한 외교'라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여, 현재 독도는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분쟁지역화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부터 시작일 수 있다.
 독도의 주권수호와 영토권 확립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대마도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왔다.
 
 즉각적인 영토편입은  불가능하지만 일본을 보라, 무려 40년간의 끈질긴 영유권 주장으로 분쟁지역화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50년 100년 후를 바라보며 대마도를 최소한 분쟁지역화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나 해설서 등에도 대마도에 관련된 일련의 자료를 구체적으로 다루어,  향 후 자라나는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인 사고를 갖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일본이 범하고 있는 역사적 판단착오와 제국주의 망상에 젖은 독도 침탈 야욕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다.
 우리는 대마도가 우리영토라는 충분한 역사적 지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물론 일본역시 여기에 상응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마도야 말로 국재분쟁지역이며, 어느나라에게 영토권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