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비하인드 스토리

김경미2008.07.28
조회72
궁중 비하인드 스토리

 

 

왕의 침실에선 여인도, 내시도 알몸이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왕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암살이었다.

구조적으로 도저히 외부인이 암살을 할 수는 없었다.

살해 방법은 내부인의 독살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침실에 든 여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도 이미 예상되는 터..

여인이 옷 속에 단도라도 숨겼으면 큰 일.

그래서 임금의 침실을 찾는 여인은 나체로 입장했다.

여인을 안내하는 두 명의 환관도 나체였다.

환관은 그 날 임금의 밤을 충족시킬 여인을 낙점한다.

선택된 여인은 몸을 깨끗히 씻은 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매력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환관 두 명이 그녀의 방을 두드리면 여인은 옷을 훌러덩 벗었다.

임금을 해칠 아무 것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법무기를 소지하지 않음을 확인한 환관은 복을 부른다는 붉은색 이불에 여인을 싸 짊어지고 임금의 침실로 인도한다.

물론 환관도 임금의 방에 갈 때는 모두 옷을 벗은 나체다.

여인도, 환관도 완전히 무장해제된 것이다.

임금의 침실에서 옷을 입고있는 사람은 임금 이외에 중전만이 유일하다.

 

환관은 여인을 상궁에게 인계한다.

상궁은 비단잠옷을 여인에게 주고, 임금을 모시는 방법을 오리엔테이션한다.

그 중에 하나가 아무리 좋아도 자정을 넘기지 말라는 것.

임금의 침실에서 자정을 넘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중전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또 국사를 보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에 자정을 넘기면 안된다는 점을 대략 설명한다.

물론 자정이 되면 방 밖에서 대기중인 환관이 "시간이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갑니다~!"라고 외친다.

세 번을 외쳤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환관이 입장해 여인을 끌어낼 수 있다.

 

 

 

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궁중 비하인드 스토리

 

 

 

TV드라마에서 널리 알려졌던 내시 김처선.

그는 조선의 내시중 가장 잔혹한 죽음을 당했다.

세종 때부터 궁궐생활을 시작한 그는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7대를 섬기는 동안 인생의 부침이 계속되었다. 문종 때 강원도 영해로 유배된 그는 단종 때 사면되었다.

그러나, 계유정란의 소용돌이 속에 삭탈관직된 뒤 관노로 전락했다.

세조 때 궁에 돌아와 원종공신 3등에 추록되는 등 실세로 자리를 잡았으나 성실성을 의심받아 자주 매질의 수난을 당했다. 여기에는 사대부와는 다른, 낮은 등급의 사람으로 여긴 분위기가 많이 작용되었다.

성종 때는 성종의 모후 신병치료에 공을 세워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지위에 올랐다.

그의 인생은 연산군에 의해 가장 잔혹하게 마감되었다.

연산군의 음행이 계속되자 김처선은 어느 날 집안 식구들을 모은 뒤 유언을 했다.

"오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리곤 입궐해 왕에게 비행을 그칠 것을 극력 주청했다.

"늙은 놈이 여섯 임금을 섬겼고, 경서를 대강 읽었지만 고금을 통해 상감처럼 하신 분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주색을 탐하는 일을 그만 하시옵소서."

이에 격분한 연산군이 장 100대를 때렸다.

그래도 김처선이 바른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연산군은 활을 당겨 김처선의 갈비뼈를 쏘아 맞췄다.

김처선은 화살을 쥐면서 "대신들도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하겠사옵니까, 다만 전하께서 임금을 더 하실 수 없는 게 한스러울 뿐입니다." 라고 절규했다.

이성을 잃은 연산군은 화살을 한번 더 날리고 김처선의 다리를 잘랐다. 그리곤 자신에게 걸어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김처선은 "전하 같으면 두 다리가 잘렸음에도 걸어 다닐 수 있겠소이까?"라고 비웃었다.

조롱당한 연산군은 그의 혀를 뽑고, 두 팔과 목을 잘라 저자거리에 걸어 놓았다.

또 그의 양자인 이공신과 7촌까지도 연좌시켜 처형하고, 본관인 전의도 없앴다. 평소 김처선과 가깝게 지내던 인물도 하옥시키는 등 분노를 표출했다.

여기에 '처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은 물론이고, 여름 절기 중의 하나인 처서를 조서로 바꾸게 했다.

 

구천을 떠돌던 김처선이 복권(復權)된 것은 중종 때였다.

이와 관련된 설이 있다.

 

『 한 내시가 금강산의 절에서 잠을 자다가 김처선을 만난 것이다.

김처선은 깜짝 놀란 내시에게 "나는 원통하게 죽었으나 혼백은 죽지못해 떠돌아 다니고 있다. 갑자사화와 무오사화의 희생자들이 모두 억울함을 풀었으나 나는 아직도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다. 나를 어여삐 여겨 주소서." 라고 호소했다. 』

 

내시는 이 말을 중종에게 고하였고, 마침내 그는 신원이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