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들어와서 더욱더 사람들의 외로움은 증가하고 있다우스꽝스러운 일이다과거와 비교해보면 즉 문명이 발달되기 전과 비교해보면객관적으로 한 명의 개인이 하루동안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훨씬 늘었다하지만 끊임없이 현대인은 무언가 마음의 공허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그 이유는 무얼까?왜 예 전의 농경사회보다 현대사회가 더 쉽게 외로움이라는 것에노출되는 걸까?난 그이유로 몇가지를 들고 싶다첫째로 소통의 부재이다소통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이다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사라졌다물론 이야기를 하긴 한다하지만 마치 예전의 원시시대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돌아간 빌딩속의 이 현대적 원시사회에서사람들은 그 누군가를 제대로 믿을수가 없다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게 된다사람들은 단지 안녕 잘지내니 이정도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낸다실제로 이 말의 깊이가 현대인들의 관계의 깊이다안녕 잘지내? 그리고 뒤돌아서서 자신의 길을 간다현대인은 무언가 깊이 있는 그리고 믿을수 있는 만한 소통이 필요하다두번째로 공유가능한 체험의 부재이다예전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든일을 같이 해야 했다혼자서 하는 농경일은 너무 비효율적이니까사람들은 거의 한 마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고자연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형성되게 되었다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가는 데 있서 다른 사람이 그다지 필요하지않다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수는 있다문제는 그 잘산다는 말이 정신적인면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게 문제겠지만어쨋건 그렇다는 것이다현대인의 삶은 지독하게 변화가 심하고 만나는 사람도 자주 바뀐다오늘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내일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흔한일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체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해야 한다 안그러면 인생의 병에 걸리게 되니까세번째 이유로 위의 두가지와 비슷한 개념인데바로 상호 인지의 부족이다이것은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한마디로 서로간에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옆집에 누가 사는지 뒷집에는 누가 있는지당연히 옆집의 누군가와 뒷집의 누군가도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이것은 소통과 공유체험의 부족에서 시작된것이다네번째로 신앙의 부재이다농경사회에서는 신앙은 단순햇다유럽에서는 기독교가 지배적종교였고 한국과 일본,중국등에서는잘 알다시피 불교와 도교, 그리고 조상숭배가 그 몫을 대신했다하지만 현대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신은 죽었다..라고더 이상 신은 없다고 말한다 오직 남은건 그래 이제 돈 뿐이다어쩌면 맞는것도 같다 신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비록 내가 믿고는 있지만 웬지 기도응답이 없는것을 보면하지만 분명한것은 신을 믿음으로써 얻는 이득이믿지 않음으로 얻는 것보다는 많다는 것이다성경에서,혹은 어떤 종교에서든간에인간은 존귀한 존재로 간주된다 . 최소한 불교같이인간을 윤회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라도인간이 처음에는 미생물에서 시작되서 몇번의 진화를 걸쳐서만들어 진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난 똑똑해 난 이성적이야난 그딴 종교는 안믿어!라고 말할때 그는 종교가 그에게 줄수 있는 이득즉 인간의 가장 내면에 존재 하고 있는 삶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종교를 가짐으로 인해 그가 얻게될수 있는 인간의 존엄과 긍지 또한 포기하는것이 된다일단 미생물의 후예가 사랑과 믿음 희생을 말한다는 것은 좀 웃기지 않는가?
삶의 요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즉 문명이 발달되기 전과 비교해보면
객관적으로 한 명의 개인이 하루동안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훨씬 늘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현대인은 무언가 마음의 공허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얼까?
왜 예 전의 농경사회보다 현대사회가 더 쉽게 외로움이라는 것에
노출되는 걸까?
난 그이유로 몇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로 소통의 부재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사라졌다
물론 이야기를 하긴 한다
하지만 마치 예전의 원시시대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돌아간 빌딩속의 이 현대적 원시사회에서
사람들은 그 누군가를 제대로 믿을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단지 안녕 잘지내니 이정도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낸다
실제로 이 말의 깊이가 현대인들의 관계의 깊이다
안녕 잘지내? 그리고 뒤돌아서서 자신의 길을 간다
현대인은 무언가 깊이 있는 그리고 믿을수 있는 만한 소통이 필요하다
두번째로 공유가능한 체험의 부재이다
예전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든일을 같이 해야 했다
혼자서 하는 농경일은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사람들은 거의 한 마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고
자연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형성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가는 데 있서 다른 사람이 그다지 필요하지않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수는 있다
문제는 그 잘산다는 말이 정신적인면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게 문제겠지만
어쨋건 그렇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지독하게 변화가 심하고 만나는 사람도 자주 바뀐다
오늘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내일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흔한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체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 안그러면 인생의 병에 걸리게 되니까
세번째 이유로 위의 두가지와 비슷한 개념인데
바로 상호 인지의 부족이다
이것은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한마디로 서로간에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뒷집에는 누가 있는지
당연히 옆집의 누군가와 뒷집의 누군가도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이것은 소통과 공유체험의 부족에서 시작된것이다
네번째로 신앙의 부재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신앙은 단순햇다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지배적종교였고 한국과 일본,중국등에서는
잘 알다시피 불교와 도교, 그리고 조상숭배가 그 몫을 대신했다
하지만 현대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신은 죽었다..라고
더 이상 신은 없다고 말한다 오직 남은건 그래 이제 돈 뿐이다
어쩌면 맞는것도 같다 신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가 믿고는 있지만 웬지 기도응답이 없는것을 보면
하지만 분명한것은 신을 믿음으로써 얻는 이득이
믿지 않음으로 얻는 것보다는 많다는 것이다
성경에서,혹은 어떤 종교에서든간에
인간은 존귀한 존재로 간주된다 . 최소한 불교같이
인간을 윤회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라도
인간이 처음에는 미생물에서 시작되서 몇번의 진화를 걸쳐서
만들어 진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난 똑똑해 난 이성적이야
난 그딴 종교는 안믿어!
라고 말할때 그는 종교가 그에게 줄수 있는 이득
즉 인간의 가장 내면에 존재 하고 있는 삶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
종교를 가짐으로 인해 그가 얻게될수 있는 인간의 존엄과 긍지 또한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일단 미생물의 후예가 사랑과 믿음 희생을 말한다는 것은 좀 웃기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