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 곳에>

주용현2008.07.29
조회46

이준익 감독의 전작 [즐거운 인생]은 좀 의아한 작품이었습니다. [황산벌]로 데뷔해 [왕의 남자]로 대박을 터뜨리고 [라디오 스타]로 입지를 다진 감독의 기대작이었으니까요. 사실, 그 정도 위치에서라면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요. 선례로 박찬욱 감독이 그랬던것처럼요. 하지만 [즐거운 인생]은 굉장히 친숙한 공식의 영화였어요. 새로울 것은 없다치더라도 같은 부류의 영화들에게서 느껴질법한 감정선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가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따라서 이준익 감독의 이번 작품 [님은 먼곳에]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먼저 이준익 감독에게 착각하고 있던 바를 밝혀야겠군요. 그는 보여지기 위한 상업적인 영화와 자신의 영화세계관을 따로 규정해두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비록 [황산벌]이 코믹요소 과잉으로 어정쩡하게 다가왔어도 그것이 그가 택한 세계관일 수 있던거죠. [님은 먼곳에]도 사실 과잉된 장치들이 더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요소들이 엿보이는건 어쩌면 그가 영화판에 있을 동안 풀어야 할 과제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님은 먼곳에]에서 그의 핸디캡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관객들이 내러티브를 따져가며 영화를 관람했는지 모르겠지만, [놈놈놈]만큼이나 [님은 먼곳에]도 이야기면에서는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순이의 감정선도 관객들에게는 노출되지 않고요. 따라서 관객들은 순이가 왜 베트남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할겁니다.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개연성의 공백을 통해 순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주의깊게 볼 수 있었으니까요. 더욱이 그 공백이 억지스럽지는 않으니까요. 열린 추론을 해볼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에 순이가 베트남으로 향한 이유는 여자에게 내재된 모성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자는 '독기품고 간 것이다, 집에서 보내니 어쩔수없이 간 것이다' 등으로 추론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철없는 남편한테 찾아가 한 마디 쏴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군요. '니가 그토록 열올려 괴로워하던 것이 사랑인줄 알았냐, 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아!' 다그치며 품고 싶었다는 생각이 저에게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님은 먼곳에]가 여성을 예찬하는 영화라는 생각에 저는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비단, 수애라는 배우를 이쁘게 담아냈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죠. 그 첫번째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씁쓸한 장치가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팝송이 낯설은 1차원적인 이유를 끌어들이기는 하지만 '휴머니티'를 노래하는 써니가 미군들 앞에서 무대를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던 것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에 '휴머니티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죠. 그녀는 한국군 앞에서, 심지어 베트콩 앞에서도 '휴머니티'를 노래하고 그들은 그 노래에 울림을 느끼니까요. 그녀가 악에 받쳐 '수지큐'를 열창할때 열광하던 미군들 앞에서 그녀가 지어 보였던 얼굴이 어떻던가요. 그녀는 가면을 썼습니다. 그들의 방식대로 자신의 목적(남편찾기)을 위해 그들의 수단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두번째로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든 장면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순이를 통해 이준익 감독은 겁쟁이로 대변되는 여성성을 배제시키고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받아들이는 여성을 표현합니다. 이는 그녀가 왜 베트남까지 왔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어느정도 일조하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모성애에 대한 발로가 아닐까합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여성을 예찬하기 위해 베트남전을 끌어들인 것은 아닐겁니다. 여성으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그는 휴머니티를 얘기하고 싶었을테죠. 저는 휴머니티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합리화로 치닫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변명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 앞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휴머니티에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